STYLE

에스콰이어 패션 에디터들이 나눈 2021 S/S 패션위크 토크 part.2

코로나19 시대에도 패션위크는 계속된다. <에스콰이어> 패션 에디터들이 나눈 2021 S/S 컬렉션에 관한 2시간 동안의 대화.

BYESQUIRE2021.03.19
 
 

ESQUIRE FASHION WEEK TALK

 
좋았어요. 처음에는 그렇게까지 좋다고 생각 안 했는데 다른 컬렉션과 동일 선상에 놓고 보니까 오히려 눈에 띄었어요. 틱톡 세대 ‘E-BOYS’로 타깃 캐릭터를 바꿨잖아요. 옷이 내 취향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에디 슬리먼이 확실히 똑똑한 것 같긴 해요.
항상 에디가 집착하는 게 젊음이잖아. 대충만 떠올려봐도 비트족, 히피, 록 키즈 등등을 거쳐 지금 틱톡 세대까지 왔어. 대부분의 브랜드가 MZ세대를 사로잡기 위해 안달이 났지만, 진짜 그들이 입는 옷들과 방식을 모사하면서까지 직접적으로 접근하진 않거든. 근데 에디는 이번에 그렇게 했더라고. 그게 너무 충격적으로 신선했어. 진짜 요즘 애들 옷, 하이퍼 리얼리즘인데 럭셔리야. 누군 또 럭셔리한 포에버21이라고 비아냥대기도 하던데 난 이 정도면 현대 예술 경지라 생각해. 동시대를 이렇게 현실 고증한 컬렉션이 이제껏 있었나. 딱 LA에 사는 돈 많은 10대들이 생각나더라고. 또 틱톡에서 거의 생중계하다시피 했고, 틱톡에서 한창 인기 있던 티아그즈(Tiagz)의 노래를 배경으로 깔고, 이런 것들에서 일종의 쾌감 같은, 뭐랄까 너무 통쾌하고 신나던데.
 
선배가 말한 것처럼 에디는 항상 젊음을 좇아왔잖아요. 근데 저는 사실 아직 에디가 셀린느에서 젊음을 표현하는 방식이 익숙하진 않아요. 그래도 에디가 브랜드를 잠식하는 느낌은 신기해요. 셀린느도 마찬가지고, 생 로랑 때도 그렇고, 디올 옴므 때도 그렇고. 이런 점은 인정할 만한 것 같아요. 그렇지만 아직 에디의 셀린느는 잘 모르겠어요.
어떤 아이템이 좋았어요? 난 패턴 있는 카디건과 니트 모자들.
저는 가죽 라이더 재킷이요. 라이더 베스트도 본래의 소재와 요소들을 그대로 가져왔는데 이번 시즌 콘셉트인 댄싱 키드를 되게 자연스럽게 녹여냈더라고요. 발랄한 색감의 프랑스 모터스포츠 경기장에서 촬영한 것도 참 귀여웠어요.
 
틱톡이나 유튜브 같은 걸 보면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젊은 세대들이 구찌나 발렌시아가 같은 브랜드를 많이 입잖아요. 근데 실제로 구찌를 풀 셋업으로 입으면 현실에서는 어딘가 우스꽝스러운 느낌이 들고. 반면에 셀린느는 풀 셋업으로 입어도 부담스럽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런 걸 보면 확실히 에디가 상업성과 하고 싶은 것들 사이에서 어떤 것이 대중에게 받아들여질지를 잘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스타일이 바뀌긴 했지만 조금 지겹게 느껴지는 건 그의 옷이 빼빼 마른 사람들에게만 어울린다는 것? 이런 부분에 대해선 에디의 미적 기준이 시대착오적이고 편협하는 비판도 많아요. 결국에는 지금의 옷도 마르고 어린 사람들을 위한 옷이라서 이 부분에 대해 얼마나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궁금하네요.

 

 
이번 시즌 생 로랑은 잘 모르겠어요. 안토니 바카렐로가 만든 컬렉션 중에서 제일 아쉬웠던 것 같고, 영상도 확실하게 멋있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아이템도 퍼 재킷이나 셔츠는 괜찮은데 다른 건 그닥….
영상이 엄청 새롭거나 하진 않은데 자본력이 주는 짜릿한 스펙터클은 확실히 있었어요. 루이 비통 영상도 이 정도의 스펙터클은 보여주지 못했으니까. 프라다도 한정된 공간에서 하고. 영상 초반에 지붕 위에서 뛰어다니는 장면은 옷이 잘 보이냐 아니냐의 문제를 떠나서 시각적으로 시원하긴 하니까….
항상 보면 생 로랑이 컬렉션을 풀어내는 방식이나 규모가 제일 훌륭해요. 캠페인 영상이나 오프라인 쇼 모두. 엄청난 공을 들여서 준비하는 느낌이라서요.
이번 쇼를 원래 하와이에서 하고 싶었는데 코로나19로 불가능하게 되면서 이런 영상으로 쇼를 대신했다고 하는 걸 어디서 주워들었어. 옷이 살짝 아쉬운데, 안토니가 선보인 것 중에선 가장 이지한 느낌이어서. 록다운 시즌에 사람들이 편한 옷을 많이 입으니까 아무래도 컬렉션 준비하면서 영향을 받은 거 같아. 그래도 여기에 생 로랑 특유의 긴장감이라든지 퇴폐미가 당연히 섞여 있긴 해. 룩 수도 적어서 전 시즌들에 비하면 아쉽지만 잠시 쉬어 가는 시즌이라고 생각할래. 안토니 팬으로서.
안전하게 가는 느낌이 있긴 해요.
 
생 로랑 특유의 퇴폐적인 분위기에 하와이안 무드를 결합했죠. 영상도 좋았어요 전. 브루클린 브리지, 베이징 등을 거쳐 마지막에 에펠탑을 찍었죠. 자신들의 헤리티지를 명확히 보여줬어요. 근데 옷에 담긴 의미와 영상의 의미가 연결되는 부분은 뭔지 궁금하더라고요. 스타일링 관점으로는 재킷에 조거 팬츠를 매치해 편하게 입는 방식을 강조했구나 싶었고요.
근데 조거 팬츠 말고 컬렉션에 반복적으로 나오던 살짝 짧고 통이 넓은 바지. 그건 좀 소화하기 쉽지 않을 거 같던데.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펜디 예쁘더라고요.
개인적으로는 작년 S/S 컬렉션의 테마인 가드닝이랑 조금 비슷한 느낌이 있어요.
소재 같은 게.
네. 그리고 주머니 많이 달린 유틸리티 스타일도.
 
코로나19로 인한 트렌드가 있잖아요. 집 안에서 입을 수 있는 이지웨어. 그래서 펜디도 이번에 잘 때 입는 리넨을 메인 소재로 사용한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실루엣도 여유롭게 만들어 편안한 느낌이고.
펜디가 FF 로고랑 노란색에 대한 집착을 버리면 이렇게 좋아지거든. 이탈리아 특유의 럭셔리하면서 여유로운 분위기도 물씬 풍기고. 이 쇼에서 중년 모델들이 중간중간 나오는데, 그게 또 이탈리아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 좋더라고. 난 펜디가 이번 컬렉션처럼 우아하고 고상한 방향으로 계속 갔으면 좋겠어.
 
근데 이런 옷보다는 FF 로고로 휘감은 제품이 더 잘 팔리기는 하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그렇긴 하겠죠. 항상 펜디도 S/S 컬렉션이 훨씬 예뻐 보여요.
그림자 프린트 셔츠도 예뻤고.
 
그게 실비아 벤추리니 펜디가 본인 집 욕실 안으로 그림자가 비치는 걸 직접 찍은 거래요. 초반 옷들이 컬렉션 전반으로 보면 살짝 생뚱맞지만 예뻐요. 그런데 뒤에 등장하는 옷들과 잘 어울리는지는 모르겠고요.
화이트나 크림 컬러 등 색에서도 변주가 조금 있고.
백도 이번 시즌이 더 나은 것 같아. 전보다.
 

 
이전 컬렉션들에 비해 훨씬 더 나아졌는데요?
카더라인데 발렌티노 직전 쇼가 펜디였대. 근데 펜디 쇼 모델 중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거지. 그래서 발렌티노가 펜디에 섰던 모델들 다 캔슬하고 부랴부랴 새로 모델들을 구했는데 여기에 새로운 얼굴이 많았어. 이 얘기가 진짜인지 어떤지 알 방도는 없으나 그래서 결론적으로 발렌티노가 새롭게 느껴지긴 했어. 좋은 방향으로.
 
개인적으로 발렌티노는 쿠튀르 브랜드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요즘은 스트리트 무드도 아니고 애매하게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정교한 디테일을 더 추가하면 오히려 무기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드는데, 남성복은 여성복보다는 실루엣이나 디자인의 폭이 좁으니까 어쩔 수 없나 봐요.
난 오히려 이번 시즌은 너무 요란하지 않아서 마음에 드네. 오버사이즈 재킷과 셔츠 이런 룩들을 심플하게 스타일링한 게 좋고. 리바이스랑 같이 만든 데님 팬츠도 예쁘네.
 
너무 예쁘지 않아요? 1969년에 판매했던 517 부츠컷 데님 팬츠를 재해석한 버전이라는데. 과하지 않게 어떤 룩에도 잘 어울릴 거 같아요.
가방도 단정한 게 예쁘고. 전반적으로 군더더기 없이 괜찮네.
 
니트에 프린트 넣은 것도 예뻐요. 가방은 정확하게 안 보여서 모르겠지만, 이전 시즌까지는 가방에 로고가 엄청 컸잖아요. 개인적인 소망은 그런 것 좀 그만했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이번 시즌은 많이 차분한데.
인정. 그렇지만 더 잘할 수 있는 브랜드라고 생각하니까 괜히 채찍질을 더 하고 싶은 기분, 뭔지 알죠?
 

 
랩 재킷 디자인을 언제까지 계속할지가 궁금해요.
그거랑 페그 트라우저 디자인이요!
자신의 색깔을 꾸준히,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디자이너들이 많지 않으니까 이런 면에서는 자기의 시그너처를 유지하는 게 의미가 있는 것 같긴 해요. 근데 한편으론 몇 시즌 동안 비슷한 걸 해오고 있으니까, 약간의 변주도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마크 웨스턴이 테일러링과 유틸리티를 재밌게 잘 융합하는 거 같아. 그래서 난 마크 웨스턴의 던힐이 썩 괜찮은데, 그만큼 그가 가진 콘텐츠의 가치가 여전히 잘 알려지지 않고 있는 거 같아서 좀 안타까워. 생각보다 빨리 교체될까 걱정.
실제로 룩을 보면 좋은 소재로 잘 만들었는데, 요즘 세상에서 바이럴 되기에는 아이캐칭한 요소가 좀 부족하긴 하죠.
 
옷을 보면 예쁘고 소재도 특이한데, ‘일반 사람들이 입었을 때 잘 어울릴까?’ 하는 의문이 들긴 해요.
고 오버사이즈 재킷도 모델 착장으로 보기엔 너무 아름다운데, 일반인들이 입기에는 아무래도 무리가 있고.
던힐이 디테일에 집중하고 포인트를 가미하는 점은 좋아요. 사이드를 여며 입는 재킷이나 카디건 같은 것들은 심미적으론 괜찮은데 실용적인 측면에서는 고객 입장에서 부담스럽지 않을까 싶어요. 집에 있는 다른 아이템과 매치할 수 있을까 싶은 의문도 들고요.
그래도 요즘 빅하우스에 있는 젊은 디자이너 중에서 마크 웨스턴처럼 테일러링에 몰두하는 디자이너가 없지 않나? 이런 점에선 진짜 인정. 개인적으론 마크 웨스턴 개인 브랜드도 기다리는데 과연 나올까?
동의해요. 던힐이 아닌 마크 웨스턴의 독자적인 레이블도 나왔으면 좋겠어요.
 

 
매튜 M. 윌리엄스의 첫 지방시 컬렉션이라 기대가 되면서도, 이전 디자이너인 클레어 웨이트 켈러의 컬렉션들이 점점 예뻐져서 보는 재미가 있었는데 너무 금방 끝나서 살짝 아쉬웠어요.
난 클레어 웨이트 켈러 시절의 지방시가 싫지 않았거든. 생각보다 럭셔리 브랜드에 여성 디자이너가 많지 않으니까 클레어가 지방시의 수장이라는 것 자체가 상징성도 있었고. 그렇지만 오래 못 버텨서… 한 3년 했나? 그 부분이 좀 아쉬워요.
그녀가 쿠튀르를 참 잘했어. 그렇지만 가방 세일즈가 좋지 않았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그런지 이번 컬렉션을 보면 모든 룩이 가방에 포커스 되어 있는 느낌도 들어.
옷은 어떻게 봐도 매튜 스타일인데, 지금까지 지방시가 자주 사용하는 소재를 쓰지 않아서 재미있었고 잘 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어떻게 세일즈로 연결이 될지는 두고 봐야겠죠.
클레어의 지방시가 소프트한 계열이었다면, 매튜의 지방시는 하드하고 스트리트적인 동시에 쿠튀르를 가미한 쪽으로 노선을 잡은 것 같고.
어쨌든 매튜의 지방시가 사람들 입에 많이 오르내리고 있는 건 분명한 거 같아요.
 
매튜의 컬렉션에선 개인적으로 부츠가 마음에 들더라고요. 브라운 컬러에 패턴 들어간 것도 좋고. 페인트가 딱딱하게 굳은 듯한 질감으로 코팅한 데님 팬츠는 되게 신기했어요.
뿔 달린 모자 귀엽지 않았어? 근데 버버리에서도 비슷한 게 나왔던데.
힙합 하는 사람들이 많이 쓸 것 같지 않아요? 아님 틱톡이라거나….
이 뿔이 슈즈에도 달려 있던데 그런 슈즈들도 좀 좋게 봤어. 스타일링을 로타 볼코바(Lotta Volkova)가 했던데 스타일링도 나쁘진 않았어. 아, 가방은?
솔직히 안티고나는 예쁜지 잘 모르겠어요. 모양 자체가 안 예쁜 것 같아요.
안티고나보다 새 가방이 괜찮던데. 매튜 윌리엄스가 새로 만든 가방 체인 보셨어요? G 로고가 잔뜩 박혀 있거든요. 이런 요소는 사람들이 많이 좋아할 것 같아요.
 
난 옷이 좀 심심한 거 같아. 가방과 액세서리를 위한 부속품 정도로만 느껴진다고 할까? 1017 알릭스 9SM과 겹쳐 보이는 부분도 있고. 지방시가 이번에 쿠튀르를 했나?
이번에는 안 한 것 같아요.
한두 시즌 정도 더 기다려봐야 할 것 같아요. 요즘엔 오히려 쿠튀르 매출이 오르고 있다는 얘기도 있고, 지방시는 쿠튀르 하우스라는 이미지도 강하니깐…. 어쨌든 매튜가 쿠튀르를 잘할 수 있을지 굉장히 궁금하긴 하네요. 지방시 같은 브랜드를 이끌려면 좀 더 다양한 걸 보여줘야 하니까요. 근데 지금 보니까 2021 S/S랑 프리폴도 거의 다 비슷하네.
캠페인도 살짝 실망. 되게 기대했는데. 여러모로 다양성을 추구하는 게 느껴지고, 디지털 세대를 겨냥한 행보가 좀 재밌는 거 같아. 이전과 좀 다르게 느껴져서.

 

 
밤에 선글라스 쓰고 파리 길거리를 쏘다니는 영상이 멋있었어.
맞아요, 노래도 좋고요. 코리 하트(Corey Hart)의 ‘Sunglasses at Night’.
모델들이 그냥 걸어가는 게 아니라 립싱크를 하잖아요. 연기하듯이 카메라도 보고. 그래서 확실히 몰입력이 있더라고요. 뮤직비디오 보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옷은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매번 보던 발렌시아가적인 옷인데, 스타일링을 워낙 잘하니까….
 
여자 옷은 좀 예쁘지 않았어요?
네. 여자 옷이 더 예뻤어요.
난 좀 심심했어. 메인 시즌 옷이라기엔 스프링이나 폴 컬렉션 같은 느낌? 좀 더 기괴하고 쇼킹한 옷이 나왔으면 했는데.
이번 컬렉션의 90% 이상이 다 업사이클링 소재로 만들어졌대요.
 

 
보테가 베네타 컬렉션은 런던의 발레 전문 극장인 ‘새들러스 웰스(Sadler’s Wells)’에서 진행했다고 하는데요.
컬렉션 이름도 2021 S/S가 아닌 ‘살롱 01’로 바꿨고. 시즌에 구애받지 않겠다는 의지이겠지?
그렇게 시즌을 지우고 이름을 붙이는 게 요즘 트렌드인 거 같긴 한데, 거기에 큰 의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옷 자체에 특이점이 있거나, 뭔가 특징적으로 기억에 남는 건 없었어요. 세부적인 건 컬렉션마다 격차가 커서 모르겠지만, 다니엘 리가 컬렉션 자체를 이미지적으로 예쁘게 잘 만드는 건 확실해요. 이번 쇼도 영상과 스틸 사진이 너무 예뻤고요.
맞아. 옷 자체보다 옷을 찍은 사진이나 캠페인이 참 예뻐요. 브랜딩과 비주얼라이징 능력이 뛰어난 것 같아.
매번 하는 얘기지만 남성복보다 여성복을 더 잘 만드는 디자이너 중 한 명.
 
니트 종류는 집에서 쓰는 카펫 소재로 만들었대요.
액세서리나 아이템을 항상 후킹한 걸 만들잖아요. 이번 시즌에서는 확 끌리는 아이템은 없었던 것 같아요.
이전 시즌 워드로브 컬렉션에서 썼던 신발이나 가방 아이템을 많이 썼대요.
난 액세서리들 예쁘던데. 아, 새로운 점은 패턴과 프린트를 사용한 거? 핑크색 니트 이런 것도 좀 맘에 들고. 프레젠테이션 능력도 좋고 캠페인, 스타일링도 잘하고.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여성 컬렉션에 비해서 남성 컬렉션이 늘 조금씩 아쉽다는 거. 매 시즌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게 되는데 언제까지 기대를 할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좋아하는 브랜드와 디자이너여서 더 엄정하게 보는 거 같기도 해.
확실히 다니엘 리의 옷을 보면 남성보다 여성의 실루엣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거 같긴 해요. 그렇지만 피비 파일로의 팬들을 재빠르게 흡수했고, 브랜딩도 잘했고, 이런저런 이유로 보테가가 요즘 제일 잘나가는 브랜드 중 하나라는 데 이견은 없으니까요. 가방이나 스몰 레더 굿도 엄청 잘 팔리고 있고….
갑자기 생각난 건데, 이번에 갑자기 보테가 베네타가 운영하던 소셜 미디어를 다 없앴잖아요. 왜 없앴지?
브랜드 계정은 소셜 미디어에 홍보할 콘텐츠를 포스팅해 마케팅 효과를 노리잖아. 보테가 베네타는 이걸 없애고 자발적으로 바이럴이 되고 어떤 것이 반응이 좋고 나쁜지 파악하겠다는 의도라는 얘기가 있더라고. 그냥 SNS 디톡스 중이라는 말도 있고. 뭐 브랜드만 알겠지.
 

 
구찌도 캘린더를 바꿨잖아. S/S랑 F/W가 ‘오버추어(Ouverture)’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는데 입에 참 안 붙어.
네. 크루즈와 프리폴 시즌은 ‘에필로그(Epilogue)’예요. 참 헷갈리네요.
이번 시즌 구스 반 산트가 만든 영상 보셨어요?
재밌었요. 7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미니시리즈 모두 로마를 배경으로 해서 그런지 구찌 컬렉션과도 너무 잘 어울리고. 개인적으로 브랜드 영상 중 가장 영상미도 뛰어나고 지루하지도 않았어요. 사실 이렇게 집중해서 보게 되는 경우는 잘 없잖아요.
 
빌리 아일리시, 해리 스타일스 같은 셀러브리티 보는 재미도 있었고요.
해리 스타일스 룩이 제일 예뻤어.
전 이번 컬렉션이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만든 컬렉션 중에 제일 웨어러블하지 않나 생각해요. 물론 그 전 컬렉션도 보는 재미는 있지만, 사실 입기엔 어려웠잖아요. 여기는 입을 수 있는 게 많은 거 같아요. 다 너무 귀여워요. 코로나 시대에 사람들이 많이 입는 이지 앤 캐주얼 무드의 옷들도 적절히 섞인 거 같고.
 
구찌는 근데 이런 걸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요? 장식적이고 복잡한 맥시멀리스트의 옷…. 어쨌든 웨어러블하다고 해도 복잡다단한 건 여전하니까요. 몇 년째 이런 옷을 보다 보니 이게 언제까지 ‘먹힐지’, 유행의 선두에 서 있을지 좀 궁금해진달까.
근데 이건 계속되지 않을까 싶은 게 이런 컬렉션도 취향의 한 종류로 느껴져서. 그리고 미켈레는 강약을 조절하면서 영특하게 이끌고 가겠지.
 

 
특별히 더 좋았던 브랜드는 뭐였어? 꼭 빅 하우스 브랜드가 아니더라도. 나는 셀린느, 프라다, 와이프로젝트, 루도빅 드 생 세르넹, 헤드 메이너 정도.
저도 셀린느랑 와이프로젝트요. 웨일즈 보너도 좋았어요. 피어 오브 갓은 제냐와 협업 이후 훨씬 좋아진 거 같고.
피어 오브 갓. 웅희 선배 말처럼 제냐 협업 이후 테일러링도 훨씬 좋아졌고 스타일링이라든지 이런 것들도 되게 우아해졌어요. 또 마르니, 마린 세르, GmbH.
구찌, 프라다, 카사블랑카요.
언택트로 진행한 패션위크는 어땠어?
확실히 현장감이 떨어져서 그런지 집중이 안 되고 별로 재미도 없었어요.
아무래도 우리한텐 더욱 그렇지. 패션 에디터들은 매 시즌 직접 쇼를 봤으니까.
지금까지의 패션쇼라는 게 프레스와 바이어, 인플루언서, VIP 등 한정된 대상들을 위한 비교적 폐쇄적인 콘텐츠였는데, 코로나19 때문에 디지털로 진행하다 보니 대중도 동등하게 참여하게 됐잖아. 앞으로 점점 이런 식으로 가닥을 잡아갈 거 같고.
긍정적인 부분을 생각해보자면 오로지 디지털을 위한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하다 보니 각각의 브랜드들이 다양한 방식을 모색한 점이 흥미롭긴 해요. 패션쇼를 촬영해서 업로드하는 방식이야 기존에도 있었지만, 좀 더 접근법이 다채로워졌달까… 각자 색깔에 맞는 디지털 콘텐츠가 어떤 것일지 고민한 흔적이 느껴지는 경우도 있고요. 그런데 바이어들에게는 이게 또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궁금하기도 해요. 옷의 두께, 촉감, 미묘한 색감, 짜임, 이런 것들은 직접 마주해야만 느껴지는 거니까요. 단순히 디지털로만 보여주는 데 분명 한계가 있을 것 같은데.
어떤 브랜드들은 원단을 직접 보고 만져본 뒤 바잉할 수 있도록 스와치를 보내준대요.
그것도 힘들겠다. 하나하나 만져보고, 상상하고, 비교해봐야 하니까.
그게 아니면 VR로 면밀히 볼 수 있게 하고요.
아무리 VR을 정교하게 만든다고 해도 한계는 분명히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신생 브랜드에게는 기회일 거 같기도 해. 쇼를 어떻게 할 건지, 옷을 어떻게 보여줄 건지 아이디어 싸움이 된 상황이라. 반면에 실망스러운 브랜드도 분명 있을 거고.
아직 해외 패션위크를 가보지 못한 저로서는 너무 아쉬워요. 현장은 단지 쇼뿐만이 아니라 바이브라든지 사람들과의 교류도 느낄 수 있는 축제 같은 거잖아요. 브랜드는 물론이고 관객들도 크리에이티브한 것들을 얻어갈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점은 확실히 아쉽죠.
전 궁금한 게 코로나가 끝난 후예요. 많은 브랜드가 이미 한 번 언택트 쇼를 진행했잖아요. 얼마나 많은 브랜드가 다시 오프라인 쇼를 열까. 오프라인 쇼라는 게 앞으로의 시대에 어떤 의미를 가질까.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쇼를 한 번 제대로 하려면 엄청난 예산이 투입되어야 하는데, 브랜드 입장에서 효율성을 따지면 이게 과연 그만큼의 가치가 있나 생각해볼 것도 같아요. 쇼를 크게 여는 대신 간단한 프레젠테이션과 디지털 쇼로 대체하고, 일부 프레스나 바이어에게만 쇼룸을 통해 실물을 보여주는 방식이 될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패션쇼가 없어질 것 같진 않아.
저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어쨌든 오프라인 쇼를 통해서만 보여줄 수 있는 판타지가 있으니까요. 또 어떤 곳은 빅 브랜드로서의 자존심이 있으니까 유지하는 곳도 있겠죠.
단순하게 생각하면 공연이나 스포츠도 비슷한 맥락이지 않을까? 패션쇼 역시 집에서 휴대폰으로 볼 수 있지만 현장감이 무척 중요한 행사니까. 브랜드의 가치가 농축된 그 현장을 관객들과 공유하는 게 지금 생각하면 엄청 순수한 마케팅처럼 느껴지기도 해. 그리고 패션위크가 파리, 밀라노, 런던, 뉴욕의 중대한 도시 사업인 걸 염두에 두면 사라지지 않을 거란 확신이 더 들어.
생각처럼 아쉬워하기보다는 이 상황을 즐기는 입장도 많은 것 같더라고요.
브랜드 입장에서는 해야 할 과제가 줄었잖아요.
줄었다기보다는 더 어려워진 거 같은데.
많은 브랜드가 어떻게 영상과의 인터랙션을 만들어낼지, 새로운 방식은 무엇일지 고민하고 있더라고요. 제냐를 예로 들면 첫 번째는 전부 워킹을 하고 룩 하나하나 프레젠테이션을 했다면, 두 번째는 필름 형식이었잖아요. 스스로 발전을 거듭하는 상황이에요.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관성적으로 해오던 것들을 점검하기에 좋은 시기인 것 같아요.
이런 현상에서 무엇을 얼마나 새롭게 만들어 보여주느냐, 이게 브랜드를 평가하는 새로운 기준이 되는 것 같기도 해.
동시에 VR 쇼핑도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어요. 매장을 증강현실로 만들어 가상으로 쇼핑하는 여정을 그려내잖아요. 구현이 잘되는 건 좋은데 증강현실로 봐서는 촉감을 느낄 수 없으니까 굳이 이 작업에 비용을 투자하는 것이 맞나 싶었어요.
옷을 많이 접해본 우리야 제품 사진만 봐도 입었을 때의 실루엣이 어떨지 비교적 정확하게 상상할 수 있고 브랜드마다 다른 사이즈 기준도 가늠할 수 있지만 소비자들은 그게 쉽진 않으니까요. 그렇지만 동시에 쇼핑을 하는 방식이 아주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지금의 어린 세대들이 우리가 경험했던 것과 다른 방식으로 옷을 경험하고 있고요. 지금 당장은 아니어도 10년 뒤에는 디지털로 판매하는 비율이 훨씬 높아질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렇기 때문에 한눈에 봐도 알 수 있는 쉬운 옷이 많아지겠지. 사진과 영상으로 봐도 충분히 짐작 가능한 입을 수 있는 옷들. 실제로 보고 만져보고 따져봐야 하는 옷들은 점점 줄어들 테고.
그러다 보면 디자이너가 커머셜한 작업만 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흥미로운 옷은 줄어들 수도 있어요. 사실 브랜드라는 건 한 명의 디자이너가 아니라 회사, 그러니까 거대 자본이 움직이는 거잖아요. 디자이너가 얼마나 창조적인 작업을 하는가보다 매출 압박에 팔릴 만한 디자인이 주를 이루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 지금도 옛날보다 옷이 많이 단순해졌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특이한 것을 입고 싶은 사람들은 쿠튀르로 눈을 돌리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암담한 얘기하다 보니 갑자기 좁은 의자에 엉덩이 겨우 걸치고 땀 뻘뻘 흘리면서 쇼 보고 싶다.
밥도 못 먹고 화장실도 못 가고 시차에 허덕여도 좋으니깐.
그래서 언제 다시 오프라인 쇼를 직접 볼 수 있을까요?
모든 것은 지긋지긋한 코로나19가 종식된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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