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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불친절의 도시 베를린에서 돌아와 한국의 과잉 친절을 생각하다

손님이 왕인 시대는 없었어야 했다.

BYESQUIRE2020.10.09
 

손님이 왕인 시대는 없었어야 했다 

 
8개월 만에 서울에 왔다. 모두가 아는 그 이유로 발이 묶여 못 들어오다가 얼마 전 인생 첫 에세이 〈동미〉를 내고 출간 홍보차 들어왔다. 8개월 넘게 비워두었던 집의 허전함을 채워보고자 자가 격리가 끝나자마자 동네 꽃집으로 달려갔다. 꽃집 언니가 나를 반겼다.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꽃 이름을 알려주고, 정성스레 백합을 포장해줬다. 그렇게 살가울 수 없었다. 그래, 서울은 이렇게 친절한 도시였지! 감동마저 일었다. 그동안 베를린 날씨처럼 우중충하고 무뚝뚝한 베를린 사람들만 봐서 더 그렇게 느꼈으리라. 베를린 동네 꽃집에선 갈 때마다 무시당하는 기분도 든다. 베를린의 꽃집이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유명 꽃 체인점인 블루메 2000(Blume 2000)에서는 직원들이 모두 독일어만 쓴다. 영어를 못하는 걸 수도 있다. 문제는 태도다. 애초에 들을 생각도, 대화할 마음도 없어 보였다. 손짓, 발짓을 해가며 겨우 물어도 언제나 돌아오는 건 퉁명스러운 한마디 “나인(Nein)!”. 아니 내가 뭘 물어본 줄 알고 맨날 아니라는 거야? 꽃을 다루는 사람이 얼마나 무뚝뚝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면 “네, 블루메 2000으로 오시죠”라고 말해주고 싶다.
 
독일 사람들이 대체로 무뚝뚝하긴 하다. 그 특유의 무뚝뚝함은 극동아시아 친절의 나라에 익숙한 내게는 자주 낯설고 때론 상처가 되었다. 그냥 지나가는 행인이라면 상관없지만 물건을 사러 들어간 숍에서, 혹은 음식을 먹으러 간 레스토랑에서 퉁명스럽고 불친절한 서비스를 받을 때면 어쩔 수 없이 타지인의 설움이 밀려온다. 문화 차이인지 인종차별인지 헷갈릴 때도 많다. 베를린에서 불친절의 끝판왕은 역시 관공서다. 영어 한마디 안 통하는 관공서에서 ‘어버버버’거리다가 그냥 포기하고 왔다는 친구들이 부지기수다.
 
나는 바에서 문전 박대를 당했다. 들어가보지도 못하고 문 앞에서 퇴짜를 맞았다. 거리를 지나다 상점처럼 꾸며놓은 한 유리창에 홍학 한 마리(나중에 알고 보니 미술 작품이었다)가 세워져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숍이라 하기엔 뭔가 어정쩡하고 독특한 구석이 있었다. 구글로 찾아보니 ‘벅 앤드 브렉(Buck And Breck)’이란 이름이 떴다.
 
아! 벅 앤드 브렉이 여기구나!”
 
‘꼭 한번 가봐야지’ 마음먹은 바였다. ‘월드 베스트 바 50’에 최근 몇 년간 계속 이름을 올린 바를 우연히 만나다니!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상점이지만, 벨을 누르면 들어갈 수 있는 스피크이지(미국 금주령 시대에 밀주를 팔던 위장 불법 영업점) 스타일이라 찾으려면 힘 좀 들었을 테다. 문에는 휴대폰 금지, 사진 촬영 금지, 신용카드 금지, 권총 금지 등의 표시가 붙어 있었다. 먼저 벨을 눌러두고 밖에서 유리문에 그려진 금지 표시를 사진으로 찍고 있는데 때마침 안에서 사람이 올라왔다. 그도 내가 사진 찍는 걸 봤다. 갑자기 독일 말로 뭐라뭐라 하더니 다시 내려가려 했다. 독일 말이지만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었다. ‘너 지금 사진 찍어서 못 들어와.’ 독일 사람인 남자 친구가 황당하다는 듯 다시 물었다.
 
밖에서 찍는 것도 안 돼요?”
네, 안 돼요. 미안.”
 
그걸로 끝이었다. 고백도 못 해보고 차인 느낌. 내부를 찍은 것도 아니고, 밖에서 금지 표시를 찍었을 뿐인데 입장을 거부당했다. 우리는 집까지 투덜거리며 돌아왔다.
 
오죽하면 독일을 ‘서비스의 사막’이라고 부르겠어?”
 
남자 친구가 위로하듯 말을 꺼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독일 사람은 서비스에 대한 생각 자체가 다르다는 것도 알았다. 한국에서는 손님이 우리 가게의 물건을 사러 와줬으니 손님을 왕처럼 대하는 것이 당연한 문화이지만, 독일에선 ‘손님이 원하는 걸 내가 가지고 있으니 우리는 동등한 위치다’, 심지어 물건의 가치에 따라서는 손님이 고마워해야 한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그러니 손님에게 물건을 파는 것 이상의 친절함을 굳이 베풀 이유가 없다. 손님은 사고, 나는 팔고. 끝.
 
베를린에선 서러웠지만 한국에 오니 과도한 친절이 부담스럽다. 예를 들면 상담원이 전화를 끊을 때 “더 궁금하신 건 없으실까요?”라고 극존칭으로 묻는 것. 자연스러운 친절이 몸에 밴 사람들에겐 매번 감사하면서도, 과도한 친절을 당연시하고 강요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 속에 내가 있지 않나 되돌아보게 됐다. 같은 인간임을 망각하고 마치 노예 부리듯 막 대하는 사람들의 행태는 어쩌면 이 과잉 친절의 문화가 만들어낸 부작용일 것이다. 그 부작용은 사회 곳곳에서 ‘갑질’이란 병으로 드러나고 있고.
 
연이은 소식이 들려온다. 마스크를 쓰라고 말하는 버스 기사를 폭행하고, 아파트 경비원에게 폭행과 폭언을 일삼다 죽음에 이르게 하고, 청소 노동자들이 화장실에서 밥을 먹게 하고, 콜센터 직원들이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 하는 일. 이런 소식을 듣는 게 일상이다 보니 이 사회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 싶어 절망스럽다. ‘돈을 주는 나에게 너는 응당 이렇게 해야 한다’라는 왜곡된 인식이 보이지 않는 전염병이 되어 세대를 거쳐 사람들의 뇌에 계속 알을 까는 것 같다. 손님이 왕인 시대는 끝나야 한다. 아니, 손님이 왕인 시대는 없었어야 했다. 동등한 위치의 사람과 사람이 있을 뿐인 세상을 꿈꾼다.
 
WHO'S THE WRITER?
이동미는 여행 작가다. 〈다시 베를린〉 〈방콕 홀리데이〉 〈싱가포르 홀리데이〉와 로맨스 에세이 〈동미〉 등의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