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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물 쓰레기'가 아닙니다. 과학입니다

‘음쓰’가 아닙니다.

BYESQUIRE2020.12.07
 
 

‘음쓰’가 아닙니다 

 
 
옆 테이블 손님으로부터 특별 오더가 떨어졌다. 튀김우동에서 튀김을 따로 담아 달라는 것이다. 튀김우동은 우동 국물에 튀김을 담은 음식이다. 일반적으로는 그렇다. 나는 약간 긴장했다. 홀에서 넣은 주문이 간혹 주방으로 잘못 전달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왜 긴장하냐고? 여기는 우리 처갓집에서 운영하는 돈카츠 매장이니까. 잠시 후 옆 손님의 튀김우동 세트가 테이블 위에 차려졌다. 다행이다. 오더가 잘 전달된 모양이었다. 새우튀김, 고구마튀김이 접시에 따로 잘 담겨 나왔다. 카운터에서 일손을 돕고 있던 아내에게 다가가 슬쩍 물었다. “튀김 따로 달라는 사람 많아?” 아내는 가끔 있다고 답했다. 얼마 전 그런 손님의 요구를 무시했다가 짜증 섞인 핀잔을 들은 적도 있다고 덧붙였다. 바삭한 튀김을 먹고 싶었는데, 눅눅해졌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조금 이상하긴 하다. 튀김의 생명은 바삭함인데, 왜 국물에 담가서 눅눅하게 만드는 것일까?
 
문득 얼마 전 SNS에서 본 댓글 하나가 생각났다. 물냉면에 돈카츠가 올라간 음식 사진에 누군가 ‘음쓰(음식물 쓰레기) 같다’라는 댓글을 남긴 것이다. 그런데 사실 그건 ‘돈카츠 냉면’이란 이름으로 실제로 팔리는 음식이다. 누군가에게는 혐오와 저항을 불러일으키지만, 이처럼 튀김과 국물이 만나 하나가 된 요리는 의외로 흔하다. 아내가 핀잔을 들어야 했던 튀김우동이 그렇고, 또 국물에 돈카츠를 담가 먹는 가츠나베도 그렇다. 최근에는 돈카츠를 고명 삼아 국밥처럼 만든 ‘돈카츠탕’이란 메뉴도 개발되어 한 유명 식당에서 잘 팔리고 있다고도 한다. 국물 외에 소스까지 고려한다면 이런 일은 우리 주변에서 더 흔하게 관찰된다.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양념치킨이 그렇고, 부먹이냐 찍먹이냐를 놓고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 탕수육이 또 그렇다.
 
분명 국물과 같은 액체는 튀김과 상극이어야 한다. 튀김을 국물에 담그면 바삭한 식감은 사라지고 그토록 피하려 애썼던 눅눅함이 튀김을 뒤감기 때문이다. 온갖 정성과 수고를 들여 튀김의 바삭함을 구현했건만, 한순간 모든 것이 날아가버리는 것이다. 애써 쌓은 공든 탑이 그냥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무너트리는 격이다. 그런데도 이런 요리들이 나름 인기를 끄는 것은 분명 어떤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칭
진정한 튀김 애호가이며, 튀김에 관한 책까지 썼던 내가 이런 문제를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될 일이었다.
 
튀김은 매우 과학적이고 정교한 원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튀김의 특징인 바삭거리는 식감을 얻는 게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먼저 신중하게 고른 밀가루를 반죽해 튀김옷을 만들고 튀김 재료에 입힌다. 밀가루에는 글루텐이라는 단백질이 포함되어 있다. 이 글루텐 단백질은 물을 첨가하여 반죽하는 과정에서 탄력성 있는 막 구조를 형성하고 여기에는 수분이 고르게 포함된다. 튀김을 해본 경험이 있다면 잘 알겠지만, 튀김 재료를 뜨거운 기름에 넣으면 기름은 이내 보글보글 기포로 가득 찬다. 이 기포들은 튀김옷에 포함되어 있던 수분이 증발하여 기체로 바뀌면서 배출된 것들인데, 이렇게 수분이 빠져나간 튀김옷에는 곳곳에 구멍이 형성된다. 그런데 액체인 수분이 기체로 바뀌면 부피가 엄청나게 늘어나므로 이 구멍들은 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커진다. 마치 스펀지를 닮은 이 구조를 다공질 구조라고도 한다. 그리고 이 다공질 구조가 바로 바삭한 식감을 만들어낸다. 다공질 구조는 쉽게 부스러지는 특징이 있어 입에 넣고 씹었을 때 이 구조가 붕괴되면서 바삭거리게 되는 것이다. 참고로 스낵이 바삭거리는 것도 바로 이 다공질 구조 때문이다.
 
그런데 바삭함을 책임지는 이 다공질 구조가 국물을 만나면 전혀 뜻밖의 일이 벌어진다. 마치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많은 양의 국물을 순식간에 빨아들이는 것이다. 다공질 구조는 매우 복잡한 입체 구조다. 표면적이 넓어 그만큼 액체와 접하는 면적도 넓다. 그래서 다른 구조보다 액체를 더 많이 그리고 더 빠르게 흡수한다. 국물을 흡수한 다공질 구조는 더 이상 바삭거리는 식감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하지만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는 법. 비록 바삭거림은 잃었지만 튀김의 풍미는 한층 더 풍부해진다. 튀김 그 자체의 풍미에 더해 국물의 풍미까지 함께 더해지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면 요리가 맛있는 이유도 다공질 구조 때문이다. 면을 제조하는 과정에서 표면에 약간의 다공질 구조가 형성되는데 여기에 국물이 흡수되어 딸려오면서 다소 밋밋할 수 있는 밀가루 면의 풍미가 다채로워지는 것이다.
 
튀김을 자주 먹는 사람이라면 튀김 고유의 풍미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쉽게 싫증을 낼 수도 있다. 특히 맛에 민감한 미식가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튀김과 국물 또는 소스와의 만남은 새로운 즐거움을 준다. 입안이 따가울 정도로 바삭거리는 오리지널 프라이드 치킨에 매콤한 풍미를 더해주는 양념치킨, 심플한 고기튀김에 달콤 시큼한 화려한 맛을 더해주는 탕수육, 깊고 진한 국물의 가츠나베, 이 모든 요리는 평범함을 거부한다. 기존의 방식을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혁신을 시도한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혁신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나 또한 그렇다. 그래서 가츠나베가 아닌 돈카츠를 좋아하고, 튀김우동보다는 그냥 튀김을 좋아한다. 치킨은 오리지널 프라이드가 진리라 생각하고, 촉촉한 소스를 뿌린 프렌치프라이는 대단히 싫어한다. 하지만 한편으론 혁신가들을 존중한다. 바삭한 튀김을 그대로 국물에 담가버린, 그런 대담함이 때론 부럽기도 하다. 그런 혁신가들이야말로 요리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얼마 전 젊은 요리사 몇 명을 만났다. 프라이드 치킨을 연구하고 있던 친구들이었는데, 내게 시식을 부탁했다. 그런데 하필 그들이 내놓은 것이 모두 내가 싫어하는 양념치킨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그 치킨은 상당히 맛이 좋았다. 어떻게 하면 튀김에 소스가 더 잘 스며들 수 있을지 고민하고, 이를 위해 튀김옷의 다공질 구조를 새롭게 개선했다는 그들이 너무나도 대견하게 느껴졌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튀김의 바삭함이 좋다. 그러나 한편으론 국물에 튀김을 담가버린그런 대범함은 존중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취향 상대 그런 대범함은 존중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취향 상대주의와 가치 본연주의는 세상의 모든 영역에서 부딪히고 있다. 프라이드치킨을 사랑하면서도 양념치킨을 포용하는 마음, 찍먹을 사랑하면서도 부먹을 존중할 줄 아는 마음, 돈카츠를 경외하면서도 가츠나베를 얕잡아보지 않는 자세가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하다.
 
WHO`S THE WRITER?
임두원은 국립과천과학관에서 근무하는 과학자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 읽기〉 〈튀김의 발견〉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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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 김현유
  • WRITER 임두원
  • Illustrator 노준구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