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위키피디아는 광고도 없이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위키피디아가 20주년을 맞았다. 한 달에 56억 페이지뷰를 자랑하는 세계 최다 방문 빈도의 지식 창고는 어떻게 살아남았는가?

BYESQUIRE2020.12.07
 
 

우리가 동의한 지식 

 
 
매년 여름이면 위키피디아 직원들은 가장 열렬한 컨트리뷰터들과 닷새 동안 콘퍼런스를 갖는다. 위키마니아라는 이름의 이 행사는 똑똑하고 꼼꼼한 사람들의 레슬매니아라 칭할 만하다. 자기 성찰, 한 가지 주제에 대한 골똘한 생각, 각자의 미래에 대한 예측이 난무한다. 공격세를 늦출 때도, 불을 뿜듯 말을 토해낼 때도 있다. 무엇을 넣고 무엇을 뺄 것이냐, 어떤 것을 내세울 것이냐, 무엇에 주목해야 하느냐, 어떤 문구를 인용할 것이냐 등을 주로 다룬다. 에디터의 고민, 사용자의 책임과 권한 강화, 오픈 소스 운영 시스템 ‘우분투’(Ubuntu) 등의 활용에 대해서도 논한다. 놀랄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행사는 순식간에 매진된다.
 
작년에는 스톡홀름에서, 2년 전에는 케이프타운에서 열렸다. 위키피디아가 20주년을 맞는 내년에는 방콕에서 열릴 예정이다. 물론 팬데믹 상황에서도 개최할 수 있다면 말이다. 일단 방콕이 어떤 도시인지 위키피디아의 몇 줄을 살펴보자. 타이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이자 수도인 방콕은 ‘끄룽텝 마하나콘(Krung Thep Maha Nakhon, 천사들의 위대한 도시)’, 또는 그냥 ‘끄룽텝’이라고도 불린다. 타이 중부의 짜오프라야강 삼각주에 위치한 이 도시의 면적은 1568.7km2이며, 타이 인구의 12.6%가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쾨펜의 기후 분류에서 ‘열대 사바나’에 속하는 방콕은 15세기 아유타야 왕국 때에는 교역이 이루어지는 작은 마을이었으나, 지금은 대도시로 성장했다. 이런 잡다한 지식들이 위키피디아에는 다 모여 있다.
 
텍스트로 이루어진 거대 기업 위키피디아와 마찬가지로 위키매니아는 모든 스펙트럼을 훑는다.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참가자들은 밝은 노란색 티셔츠를 받고, 몇 분 만에 ‘위키는 나비를 좋아해’, ‘세르비아는 세르비아에 사는 위키피디언을 좋아해’,  ‘템플릿의 작동 방식을 완전히 바꿔보자!’는 등의 그룹으로 나눠진다. 이 콘퍼런스에서는 이사회도 열리고, 젠더와 인종 다양성 이슈를 내년에는 좀 더 잘 다뤄보자는 다짐도 오간다. 올해의 위키미디언을 발표하기도 하는데, 가나의 위키미디어 사용자 그룹을 조직하고 이끄는 데 일조한 샌디스터 테이(Sandister Tei)가 뽑혔다. 그리고 해가 저물어갈 때쯤이면, 술을 즐기는 사람은 전 세계 지식의 게이트키퍼들이 테킬라 베이스의 위키 샷을 마시며 자신의 ‘열정 프로젝트’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하는 자리에 낄 수도 있다.
 
위키피디아는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다. 어느 조직보다 야심이 크고 유례가 없는 규모를 갖추고 있다. 300명에 달하는 직원과 외주 계약자들은 “우리의 작은 기업이 현실에서 작동한다는 사실에 신에게 감사드립니다. 이론상으로는 절대 작동할 수 없으니까요”라는 말을 좋아한다. 이론상으로 위키피디아는 재앙이어야 했다. 아나키스트, 사소한 것에 집착하는 사람들, 크리에이터, 공공 기물 파손자, 세계의 전문가들, 세계의 아마추어들, 문법에 집착하는 사람들, 엄청난 괴짜들, 특정한 가치만을 옹호하는 다종의 지상주의자들 등 온갖 별종들이 전 세계에서 수십만 명이나 모여들고, 각자 서로를 조금씩은 의심한다. 구글 번역을 기발한 방식으로 사용하는 이들도 있고, 각자 나름의 궁극적 진실이 모여 있는 다중 우주에서 일종의 우위를 점하려고 싸운다. 이게 되겠는가? 듣기만 해도 잘 풀리지 않을 법한 매듭이 아닌가? 위키피디아는 태생부터 의심스러웠다. 그럼에도 거의 모든 시도마다 대단한 것을 만들어가고 있으며, 정도에서 벗어난 정보가 교환되는 커뮤니티가 바로 위키피디아다.
 
2001년 1월에 탄생한 위키피디아는 세계 최대의 온라인 참고 사이트로 성장했다. 매일 5억 건 이상의 PV, 매달 10억 명의 UV가 발생한다. 이들은 매달 총 56억 번을 방문하고, 평균 4분 동안 머무른다. 300개 이상의 언어로 5300만 건 이상의 아티클을 서비스한다. 2020년 9월 8일 오후 5시 기준으로, 영어 글은 615만5156개가 있었으며 편집은 9억7268만4694번 이루어졌다. 위키피디아는 구글, 유튜브,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중국 검색 엔진 바이두에 이어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방문자가 많은 사이트다. 데이터 분석 기업 ‘시밀러웹’에 따르면 위키피디아는 체코의 ‘X비디오스’와 공동 7위이며, 키프로스에 기반한 폰허브에는 심지어 앞선다. 참고로 영국에서는 이베이와 BBC에 밀려 9위다. 궁금해하고 있을 테니 알려주자면, 영국에서 가장 순위가 높은 포르노 사이트는 폰허브로 13위를 기록했다. 데일리 메일 온라인 바로 아래다.
 
위키피디아는 그 어떤 사이트보다도 더 많이 논쟁을 잠재우고 또한 시작하게 하는 곳이다. 위키피디아에서 모르는 것을 클릭하다 보면 그 끝을 알 수 없는 토끼굴에 빠져드는 심정이다. 그 굴이 얼마나 깊은지 위키피디아 창을 닫을 때면 숨을 헐떡이며 다른 사람들이 나보다 먼저 안 사실, 나는 잘 몰랐으나 다른 사람들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적어둔 팩트에 너무나 놀라 어안이 벙벙해진다. 위키의 수많은 서브 페이지가 학생들의 숙제(위키버시티), 결혼식 연설(위키쿠오트), 일기와 프레젠테이션(위키미디아 커먼스), 온라인 관광과 여행(위키보이지), 스펠링(윅셔너리)을 도와준다. 다른 여러 위키의 사이트들이 당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현대적·역사적 맥락 속에서 당신의 삶의 위치를 찾아준다. 식자층들만 알 만한 상세한 내용, 저속한 헛소리들을 전부 합쳐놓았다. 당신이 한 번도 이름을 들어본 적 없고 앞으로도 들어볼 일이 없을 밴드의 세 번째 앨범에 있는 네 번째 곡의 길이, 잉글랜드 중부 지방의 교회 보존 단체가 지키고 있는 교회 74곳의 명단, 다윈의 논문 ‘난초가 곤충에 의해 수정되는 다양한 방식’의 전문, 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잠무와 카슈미르 지역에서 악명 높은 반군 열 명 안에 드는 수학 교사 리야즈 아흐마드 나이쿠(주바이르)에 대한 소개도 위키피디아에서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라고 해서 중요한 문제가 묻히는 것은 아니다. 작년 말에 COVID-19가 처음 터진 이후 7개월 뒤 전 세계적으로 정점에 달할 때까지, COVID-19 페이지가 점점 깊어지고 진지한 분석이 들어가며 확장되는 것을 놀라운 감정으로 지켜보았다. 위키피디아의 COVID-19 페이지는 팩트, 트렌드, 이론이 등장할 때마다 성실하게 수정되며 하나의 생물처럼 성장해왔다. 이렇게 차분하고 종합적이며 세계적인 접근은 어디에도 없었다. 일반 독자들이 과거의 여러 치명적 전염병들을 간결하게 비교한 내용을 읽어볼 곳 역시 없었다. 7월 말 기준으로, 위키미디어는 6만7000명 이상의 에디터들의 협업으로 COVID-19 관련 글 5000건 이상이 175개의 언어로 작성되었다고 밝혔다.
 
위키피디아가 온라인에서 가장 가치 있는 사이트이며, 인터넷이 선한 쪽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걸 꾸준히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존재라는 주장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위키피디아는 템플릿이 돌아가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퍼포먼스에서는 민주주의를, 영향에서는 중립성을 추구한다. 광고와 팝업, 쿠키가 없으며 무료다. 인간이 돈에 좌지우지된다는 생각이 틀렸음을 입증하며 우리의 천성 중에서 보다 나은 부분에 어필한다.
 
래리 생어와 함께 위키피디아를 세운 지미 웨일스는 자신의 예상이 크게 빗나간 지점이 있다고 말한다. 위키의 발달 초기 단계에서 그는 큰 결정을 하나 내렸다. 다수의 인터넷 서비스들이 사용자 정보를 수집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반면 위키는 사용자 정보를 수집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지미 웨일스는 그 결정이 얼마나 큰 파급력을 가지고 있는지 전혀 몰랐다. “나는 내가 ‘병적인 낙관론자’라고 자주 말하지만, 이런 나조차도 우리가 갖게 될 영향력의 깊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사용자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공유하고 또 판매하는 데 반대하는 결정을 내린 것이, 인터넷에 대한 불만이 쌓여가는 이 세상에서 우리를 근본적으로 차별화하리라고는 분명 예상하지 못했죠.” 웨일스가 내게 이메일로 전한 내용이다.
 
(사용자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판매하는)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테크 기업에 대한 대중의 심리적 반발은 거셌다. 그러나 위키피디아는 별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보다는 오래전부터 받아온 비난과 단점이 짐이다. 웨일스는 이는 “인간 행동에 대한 어려운 질문”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인간이고, 사람들은 언쟁을 벌이죠. 그리고 ‘백과사전을 만들 재목이 아닌 사람들’이 나타나 자신의 어젠다를 밀어붙이고, 트롤링을 하거나 괴롭혀요. 이런 경우들에 대처하려니 차분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려야 할 때가 아주 많아요. 강력한 제도와 메커니즘을 만들어야 하죠. 위키피디아 재단이 SNS들처럼 대처한다면, 즉 잘못된 행동에 대한 감시가 커뮤니티 안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트위터처럼 될 거예요. 가늠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쓰레기통이 될걸요.”
 
물론 위키피디아에는 위키피디아 설립자인 웨일스의 항목도 있다. 웨일스에게 자신의 위키피디아 엔트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 엔트리에는 그의 별명(‘짐보’), 금융 부문에서 일한 경력, 성인 콘텐츠 전문 온라인 포털과 관련한 것까지 매우 자세한 사실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는 “미디어 중에서 가장 정확하게 나를 설명한 엔트리예요. 내가 열정적인 셰프라는 점이 적혀 있지 않아 아쉬워요. 하지만 그건 매체에 보도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당신이 여기에 대해 써주면 엔트리 내용이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요?”라고 대답했다.
 
현재 웨일스는 위키피디아 재단의 명예 이사다. 현재 이 제국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 묻자, 그는 예상치 못한 비유를 들었다. “나는 영국 사람들이 다른 곳의 사람들보다 더 잘 이해할 거라고 생각해요. 나는 내 역할이 영국의 현재 왕실과 아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실제 권력은 없지만 나는 자문 역이 될 권리가 있고, 격려하고 경고할 권리가 있죠.”
 
톱텐 차트를 장식한 인터넷업계의 선구자들처럼 억만장자가 되지 못한 걸 후회하지는 않을까 궁금했다. 위키피디아를 돈벌이에 사용하지 않은 걸 후회한 적은 없을까? (“광고를 조금만 했다면, 그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을지 생각해본다면…” 하고 떠보았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아니, 나는 지금 우리의 위치에 만족해요. 500년이 지나도 위키피디아는 사람들에게 기억될 것이고, 우리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안전을 잘 지켜낼 수 있다면 그때도 대중에게 정보를 전할 거예요. 업계 동료들 상당수는 그때까지 버티기는커녕 사람들의 기억에도 남아 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소설가 니컬슨 베이커는 2008년에 뉴욕 리뷰 오브 북스에 기고한 글에서 위키피디아의 초기 방법론을 재미있게 요약했다. ‘위키피디아는 모든 구성원이 정원 관리인이라는 직함을 달고 있는 거대한 커뮤니티에서 벌이는 낙엽 청소 프로젝트와도 같다. 아주 멋진 전문가용 금속 갈퀴를 가져온 사람, 등에 메고 바람으로 낙엽을 날리는 장비를 가져온 사람도 있었다. 발로 낙엽을 차서 날리거나 트레이닝복 상의 주머니에 낙엽을 한 줌 집어 넣는 어린애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가져와 쌓은 모든 낙엽은 소중히 여겨졌다. 낙엽 더미는 점점 커졌고, 모두 그 속에서 껑충껑충 뛰며 즐겼다.’
 
그렇지만 문제가 있었다. 위키피디아가 무르익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불거졌다. ‘낙엽 더미를 지키는 사람이라고 자처하는 이들, 의심을 품은 사람들, 반대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당신이 내미는 한 줌의 낙엽을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젓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당신이 가져온 낙엽이 너무 구겨졌다, 축축하다, 흔해빠졌다며 옆으로 던져버렸다.’
 
무엇이 가치 있는 지식이고 아닌지, 어떻게 보여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지는 역대 모든 백과사전 에디터들의 골치를 썩여온 문제였다. 
 
사전 에디터들의 골치를 썩여온 문제였다. 디지털 세상의 완벽주의자들, 엘리트주의자들, 까다로운 사람들, 남을 괴롭히는 사람들까지 이 프로젝트에 끼어들면서 혼돈에 빠졌다. 낙엽 더미의 유용성과 가치를 지키기 위한 정책과 가이드라인이 생겼고 낙엽을 둘러싼 거대한 커뮤니티는 진화해왔다.
 
자유 형식, 오픈 액세스는 아직 위키피디아의 정신으로 살아 있다. 누구나 새 글을 쓰고, 예전 글을 편집할 수 있다. 그러나 새 글이 사이트에 올라가려면 1000명 이상의 경험 많은 ‘관리자’가 승인해야 한다. 예를 들어 당신의 교사나 상사가 당신이 보기엔 정신박약자 또는 멍청이라 해도, 그걸 글로 써서 대뜸 올릴 수는 없다. 위키피디아에 올라 있는 온갖 정신박약자들에 대한 내용, 정신박약자의 역사, 멍청이(moron)이라는 단어가 고대 그리스어에서 나왔다는 설명에 대한 하이퍼링크가 당신의 글에 달리기를 기대할 수도 없다. 다만, 출판된 증거가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애초부터 위키피디아는 자체 생산한 글을 올리지 않기로 결정한 바 있다. 다른 곳에서 출판된 정보에 기대기로 한 것이다. 중립성과 신뢰성 덕분에 위키피디아는 읽을 만한, 생명력 있는 사이트의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위키피디아가 독자들을 트래킹하지 않는(그러므로 독자들의 정보를 팔지도 않는) 비영리단체라는 점은 위키피디아가 어떻게 지속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유지를 위해서는 서버와 엔지니어가 많이 필요하고, 샌프란시스코의 본부와 스태프들도 있어야 한다. 자선 재단도 운영한다. 위키피디아 재단의 캐서린 마허 CEO가 최근 내게 보낸 이메일에서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의 일부를 찾을 수 있었다. 이 이메일의 제목은 ‘사이먼, 이런 부탁을 하기는 좀 어색하네요’였다. 마허는 내게 미소 짓고 있는 자신의 사진과 함께 기부금을 좀 내달라고 부탁했다.
 
2년 전, 나는 위키피디아가 훌륭한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2파운드라는 거금을 보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더 달라고 하다니. “우리 독자들 중 98%는 돈을 보내지 않습니다. 그저 고개를 돌릴 뿐이죠. 잠재 기부자를 찾기가 힘드니, 당신과 같은 기부 경험자들에게 다시 부탁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전에 위키피디아에게 너그럽게 기부했듯, 다시 도와주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내가 다시 기부하지 않는다면 위키피디아가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마허는 우려했다. “당신은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위키피디아의 운명은 당신 손안에 있고, 우리는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기지 않을 생각입니다.”
 
나는 그 메일을 무시했다. 한 달 후, 캐서린 마허는 다시 메일을 보냈다. 마허의 다른 사진이 들어 있었다. 여전히 미소 짓고 있는 모습이었지만, 메시지는 더 어두워졌다. 이메일의 제목은 ‘할 만큼 했습니다’였다. 위키피디아가 광고를 받아라, 정보를 판매해라, 유료화 벽을 만들어라는 등의 압박을 매년 받고 있으며, 늘 그에 맞서고 있다는 게 자랑스럽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마허는 “우리는 세일즈맨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서, 기록 보관 담당자, 정보 중독자들입니다. 우리는 독자들의 기부에 의지해왔고, 18년 동안 우리의 방식은 성공을 거뒀습니다.” 캐서린 마허는 내가 2파운드를 더 내길 원했다. 물론 20, 35, 50파운드를 기부하는 버튼도 있긴 했다.
 
물론 이건 개인적으로 보내온 메일은 아니었다. 수만 명이 똑같은 메시지를 받았다. 하지만 나는 마허를 만나서 개인적으로 더 자세히 물어보고 싶었다. 우리의 만남은 화상 채팅 서비스인 줌을 통해 간략하게 이루어졌다. 그녀가 샌프란시시코의 집 부엌에서 스크램블드에그와 그녀의 파트너가 만든 사워 도우를 먹는 모습까지 볼 수 있었다.
 
마허는 37세다. 그녀의 이름은 차(car)와 라임이 맞는다. 그녀는 대학생이던 2004년에 위키피디아 에디팅을 시작했다고 한다. 중동에 대한 글이었는데, 위키피디아에 별로 오래 남아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고 한다. 그녀는 유니세프에서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를 맡았고, 디지털 저작권 기업에서 일한 다음 2014년에 위키미디어 재단의 홍보 담당 임원이 되었다. 2016년에 CEO가 된 직후, 다소 황당한 일을 겪기도 했다. 위키피디아에 생긴 그녀의 페이지에서 그녀의 직책과 커리어 초반 활동을 자세히 설명한 내용이 삭제 대상으로 올라왔던 것이다. “‘그녀가 재단을 운영한다고 해서 예전에 대단한 일을 한 사람이라는 건 아니야’라는 저의였죠.” 그녀가 내게 한 말이다. 마허는 당시의 논란 중에 성별에 따른 요소가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계속 진행 중인 싸움을 이야기했다. “위키피디아가 다른 인터넷 서비스처럼 명백하게 괴롭힘 문제가 불거지는 사이트는 아니지만, 새로운 사람들이 접근하기 쉬운 환경은 아녜요. 여성들이 접근하기 쉬운 환경도, 소수자, 소외 계층이 접근하기 쉬운 환경도 아니죠.”
 
마허는 위키 생태계에 유해하다고 생각하는 에디터들에 대해 공격적인 접근 방식을 취해 때로는 ‘엄청난 반발’을 사기도 한다. 작년에는 자기가 보기에 “글을 많이 쓰긴 하지만 생산적이지는 않고 다른 에디터들을 쫓아내는 행동을 일삼은” 한 에디터의 편집을 금지해버렸다. 엄청난 반발이 일었다. 위키피디아를 운영하는 데는 장기적으로는 추가적인 수입원이 필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가 다른 이들을 언짢게 하기도 했다. 기계 학습과 AI 때문에 비싼 새 툴이 필요할 것이다. 위키피디아 사이트는 효율적이긴 하지만 외관을 손볼 필요가 있다. 점점 20세기적인 느낌이 강하게 들지 않나? 그리고 아프리카 등에서 부상하고 있는 커뮤니티들로 확장해가려면 새로운 자원이 필요할 것이다.
 
몇 주 뒤 다시 대화를 나누었을 때는 철학적인 이야기가 나왔다. “저는 위키피디아가 진실을 대변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가 그 시점에서 아는 것, 혹은 동의하는 것을 대변한다고 생각해요. 부정확하다는 말은 아니고, 진실의 개념은 좀 다른 울림을 갖고 있다는 뜻이죠. 지식이 무엇인가 생각해보면… 위키피디아가 제공하는 것은 맥락이에요. 비슷한 데이터나 연구 원본도 물론 우리에게 아주 중요하지만, 우리를 차별화하는 게 이점이죠.”
 
 
뉴스사들은 연구 원본을 매일같이 실어낸다. 마허는 위키피디아가 영국에서 BBC보다 신뢰도가 높다고 나온 2014년의 유고브 설문조사를 언급한다. “‘멋지군, 우리가 경쟁자들을 이겼어’라고 생각할 기업들이 많을 거라 생각해요. 내 반응은 ‘첫째, BBC는 경쟁자가 아니다. 둘째, 전혀 멋지지 않다’였어요. 우리가 의존하고 있는 정보 공급처인 BBC가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면, 궁극적으로는 우리에게까지 그 불신이 미치게 되죠. 우리에겐 생태계에 대한 신뢰가 필요해요.”
 
마허는 자신이 포용론자라며, 위키피디아가 아주 지적이어야 한다는 사람들을 반대한다. 위키가 수정되고 배워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이 도움 된다는 주장이다. “당신이 좋아하는 발리우드 스타나 대중가수가 없다면 우리 사이트를 찾았다가 금방 떠나게 될 거에요. 당신의 삶과 관련이 있는 걸 볼 수가 없을 테니까요.”
 
마허에게 차가운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은 오히려 사회적으로 유명한 이들이다. 마허는 최근 한 콘퍼런스에서 저명한 여성 과학자 두 명 옆에 앉아 있던 때를 떠올린다. “내 소개를 했죠. 보통은 내 소개를 하면 ‘오, 연단에 서게 될 여성이 또 있군요. 멋지네요’라는 식의 대화가 이어지죠. 그래서 내가 위키피디아 재단을 운영한다고 말했더니 그들이 가장 먼저 한 말은 ‘우린 우리에 대한 글이 마음에 안 들어요’였죠. 그들은 또 ‘이봐요, 내가 한 연구는 글이 처음 올라온 뒤로도 아주 달라졌는데, 이 분야에 대한 나의 가장 최근의 생각들에 맞춰 업데이트되지 않았어요’라고 항의했어요. 정당한 우려기는 해요.”
 
최소한 마허에게 항의한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엔트리를 가지고 있기라도 했다. 캐나다 과학자 도나 스트리클랜드는 눈 수술 등 의학적 레이저 적용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는 처프 펄스 증폭 연구로 2018년 10월 2일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그러나 발표 다음 날에도 위키피디아에는 그녀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스트리클랜드에 대한 내용이 없다는 것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스트리클랜드에 대한 엔트리가 준비되어 있긴 했지만, 2차 소스에서 가져온 레퍼런스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에디터들에게 거부당했다. 즉 그녀는 물리학계에서만 유명했고 대중적인 매체에서는 예전에 다뤄진 적이 없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백과사전에는 이름을 올릴 수가 없다는 의미다.
 
이 문제를 가장 날카롭게 지적한 사람은 마허였다. 스트리클랜드의 엔트리가 드디어 등장하자마자, 마허는 2019년 10월 초 기준으로 위키피디아의 인물 정보 중 여성에 대한 것은 17.82%에 불과하다는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 그녀는 이 수치를 개선하기 위해 여성들이 모여 하루 종일 에디팅을 한다는 걸 자랑스럽게 여기고, 위키피디아가 여성의 건강과 흑인 디아스포라의 역사에 대한 글들을 개선하고 확장하는 데 최근 집중하고 있음을 널리 알렸다. 위키의 세계에는 여러 불균형이 존재한다. “전함에 대한 글은 너무 많고, 시에 대한 글은 부족해요.”
 
또 다른 문제도 있다. 에디터가 위키피디아에 올라와 있는 누군가의 프로필을 그 사람의 마음에 맞게 바꿔주는 게 ‘아예 하나의 산업’이 됐다. ‘블랙 햇 에디팅’이라고 불리는데, 위키피디아 커뮤니티에서는 아주 싫어하는 행위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그러지 말라고 권해요. 그랬다간 보통 들통이 나기 마련이죠. 자신의 위키피디아 페이지를 좋은 내용으로 바꾸다가 걸리면 볼썽사납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선거로 뽑힌 공직자들에게 늘 이렇게 말해요.”
 
최근에는 보리스 존슨마저도 이 어려움을 깨달은 듯했다. 6월에 명예가 실추된 인물들의 동상을 파괴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며 존슨은 “우리가 기록을 말소하고, 우리와 관점이 같지 않은 모든 이들의 이미지를 삭제한다면 우리는 거대한 거짓말, 우리 역사의 왜곡에 가담하는 것입니다. 마치 몰래 자신의 위키피디아 엔트리를 에디팅해서 자기를 더 근사해 보이게 하는 유명인과도 같습니다.”
 
마허와 나는 두 번에 걸쳐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사이에 마허는 줌 임원 회의를 열었다. 퍼포먼스 리뷰, 재정 부족, 확장, 확장이 없다는 이야기 등 평범한 임원 회의에서 나올 법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하지만 좀 더 구체적인 이슈도 있었다. 1월에 위키피디아 20주년을 어떻게 기념할 것인가? 또한 사람들이 콘텐츠를 흡수하고 에디팅을 할 때 작은 화면이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논의도 계속되고 있다. 작은 화면으로 위키피디아를 쓰는 사람이 늘어나는 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것이 숙독을 방해할까, 아니면 접근성을 크게 늘려줄까? 둘 다다. 2020년 3월에서 5월까지, 위키피디아에 들어온 유저의 43%는 컴퓨터, 57%는 모바일 폰을 사용했다.
 
위키피디아가 열어젖힌 새로운 지식의 개념을 이해하려면 과거에 우리가 ‘시실’이라 받아들인 지식이 어떻게 정리되고 기록되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실 백과사전이라는 콘셉트는 고대 그리스 때부터 존재했다. 현대인에게 가장 익숙한 ‘고전적’ 형태의 백과사전은 아마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한국으로 치면 웅진백과사전)일 것이다. 어린 시절 집집마다 한 질씩 가지고 있던 바로 그 백과사전 말이다. 따로 정보를 생산해내지 않는 위키피디아는 최초의 아티클 상당수를 저작권이 만료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 가져왔다. 물론 그 이후 수많은 편집을 거쳤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고전적 형태의 백과사전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1768년에 만들어졌으며, 사전을 책 형태로 낸 것은 2012년이 마지막이었다. 브리태니커는 지금도 온라인에서 학습 목적으로 사랑받는다. 깊이 있는 ‘프리미엄’ 지식을 읽으려면 한 해에 65파운드를 내면 된다(광고는 없고 대부분 학자들이 쓴 글이다). 2020년 3월에서 5월까지 위키피디아 방문 수는 168억3000만이었던 데 비해, 브리태니커의 홈페이지(britannica.com)는 같은 기간 1억2470만을 기록했다. 비교했을 때는 작아 보이지만, 책 형태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보던 사람들의 수보다는 훨씬 많은 수치다.
 
책으로 나온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부피가 컸고, 보는 이들을 주눅 들게 했으며, 인간의 지식의 신성한 최고봉을 확고하게 정의하는 것으로 보였다. 학교와 공공 도서관에는 모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 있었고, 열성적인 세일즈맨이 팔러 다니면 야망을 품은 부모가 있는 성실한 가정에서는 다들 구입했다(연감도 따라온다. 할부금을 다 갚았다 싶을 때쯤이면 연감이 날아왔다). 2012년에 나온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총 32권이었고 두께를 다 합치면 4.5m가 넘었다. 가격은 1200파운드(현재 환율로 약 177만원)였다.
 
선불교 같은 느낌의 책등(배설-기하학, 지형학-면역, 형이상학-노르웨이)은 이 사전의 목적을 완벽하게 정의해준다. 여기에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있으며, 이 사전을 집어 들 때마다 당신이 모르고 있는 게 얼마나 많은지, 또한 앞으로도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 깨닫게 될 것이다. 나는 그런 고전적 세대 안에서 자라났다. 브리태니커는 우리 거실에서 귀하고도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다들 말을 잘 걸어주지 않는데도 집에서 나가지 않고 버티는, 자상하고 덩치가 큰 삼촌 같았다.
 
출판된 백과사전들이 다 그렇듯, 브리태니커는 뒤처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인류는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1929년에 열네 번째 에디션의 초판 저작권 등록이 된 지 나흘 뒤에 미국 주식 시장이 폭락하며 전 세계적 대공황이 일어났다. 이 판의 후쇄는 아돌프 히틀러가 수상으로 당선되었다는 사실을 담지 못했다. 독일이 폴란드를 공격한 해에 다른 에디션이 나왔다. 1945년 7월, 얇은 인도산 반투명 용지에 인쇄되어 나온 에디션은 아슬아슬한 시간 차이로 최초의 원자폭탄 투하를 담을 수가 없었다.
 
그 이후로 새로 나온 에디션들이 스푸트니크 발사 몇 주 전, 최초의 인간 달 착륙 며칠 전에 가정과 학교, 도서관에 배달되었다는 설명은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걸 아주 운이 나빴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징크스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 브리태니커의 1973년 에디션 담당자는 한숨을 쉬며 용기 있게 이를 인정했다. 세상은 출판 과정보다 더 빨리 진보하는 성향이 있다는 게 그의 말이었다.
 
위키피디아에는 이런 문제가 없다. 유명인이 세상을 뜨면 그들의 사인이 장례식 전에 이미 올라온다. COVID-19가 터진 첫 달, 위키피디아의 ‘라이브’ 보도는 수만 번 에디팅되었다. 요즘 위키피디아에 올라오는 악의 없는 실수와 고의적 장난은 놀라울 정도로 빨리 적발되고 수정되는 듯하다. 이 일은 로봇과 인간이 나눠 맡고 있다. 지미 웨일스는 잘못된 판단이 지금도 일어나고 언어적 테러리즘이 가끔은 퍼지기도 하지만, 위키피디아는 일부의 생각처럼 아나키 상태와는 거리가 멀다고 말한다. 유명한 사람이나 중요한 주제에 대한 ‘웃긴 이야기’를 집어넣는다 해도 그게 반영될 가능성은 낮다. 아주 사소한 잘못도 오래 남아 있지 못한다.
 
브리태니커는 물론 그렇지 못하다. 참여자들은 화려하다. 영화 프로덕션에 대해서는 히치콕이, 마술에 대해서는 후디니가, 시공에 대해서는 아인슈타인이 글을 썼다(아인슈타인은 쉽게 쓰려고 노력했겠지만, 쉽게 읽히는 글은 아니다). 덜 유명한 전문가들이 잘못된 내용을 쓰거나, 글을 괴상하게 쓰거나, 가끔은 무서울 정도로 인종차별적인 내용을 넣기도 했다. 특히 초기 에디션들이 그랬는데, 이에 대한 증거는 넘쳐난다. 예를 들어, 결핵을 치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혼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치료법은… 매일 승마를 하는 것이다.’
 
백과사전은 아이가 이가 날 때 아프면 두 귀 뒤에 거머리를 붙이면 된다고 장담했다. 당시 의학 교과서에서는 거머리를 만병통치약처럼 이야기했다. 1875년부터 1889년까지 한 권씩 출간된 아홉 번째 에디션에서는 독자들에게 뱀파이어가 되는 방법을 설명했다. 고양이가 누군가의 시체를 뛰어넘으면 뱀파이어가 된다고 한다. 30년 뒤에 나온 열한 번째 에디션에서는 “‘바나나(콩고) 사람들’ 중 늑대인간이 발견되었다”고 나와 있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 쓴 진실이라도 시대에 따라 상대적이다.
 
위키피디아에서 ‘바나나 사람들’을 찾아보았더니 “‘바나나 사람들’ 페이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제목이 ‘바나나 사람들’인 문서를 새로 만드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전에 먼저 아래 검색 결과 내에서 비슷한 내용을 다룬 문서가 있는지 확인해보세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검색 결과에는 바나나, 바나나 리퍼블릭, 바나나 잎, 바나나 피시, 바나나 케첩, 스피치 바나나, 바나나 요시모토, 그리고 모두가 좋아하는 바나나 빵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바나나 사람들’ 페이지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엔트리를 작성했다. “‘바나나 사람들’은 늑대인간을 발견할 수도 있는 장소라고 한다.” “늑대인간에 대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열한 번째 에디션(1910~1911), 브리태니커 250주년 컬렉터스 에디션(2018)에 언급됨”이라고 주석을 달았다.
 
큰 기대는 갖지 않았다. 수락을 기다리는 다른 새 엔트리 2160개 중 하나가 되었을 뿐이었다. 이 중 114개는 위키피디아 관리자들이 승인하거나 거절하기까지 5주 동안 대기하고 있었다(최근 새로 들어온 신청 중에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제목들도 있었다. ‘독 풀러 dog puller’, ‘IBTS 그린하우스’, ‘버그 뮤직’ 등이었다).
 
관리자는 아마 바나나 사람들에 대한 내 엔트리가 검열을 통과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거절할 것이다. “이 토픽이 중요하지 않고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라고 가이드라인에 나와 있다. 내 엔트리가 거부될 수 있는 이유는 34개의 세부 카테고리로 나뉘어 있었다. ‘저작권 침해’, ‘중요하지 않은 영화’, ‘장난’, ‘중립적 시각으로 쓰지 않았음’, 그리고 궁극적인 이유, ‘위키피디아에 적합하지 않음’.
 
그러나 거의 모든 희망이 사라졌을 때, 내가 검색을 잘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콩고민주공화국에 있는 바나나라는 곳에 대한 엔트리가 짧지만 존재하고 있었다. 바나나 사람들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나 늑대인간 이야기는 없었다. 하지만 나는 바나나가 바나나만에 있는 아주 작은 항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바나나만은 콩고강이 바다에 흘러 들어가는 지역의 북쪽 둑에 있는 약 1km 너비의 지역으로, 길이 3km, 너비 100~400m의 곶 너머에 바다가 있다.
 
이 글에는 위키피디아의 모든 글과 마찬가지로 자체 ‘히스토리’ 페이지가 딸려 있다. 이 페이지를 정확하고 규칙과 위키피디아 스타일에 맞게 만든 보이지 않는 편집의 기록들이다. 이들이 꼼꼼하게 작성한 글 자체보다 이 제작 과정 이야기가 더 흥미로울 때가 많다. 이 글의 경우 덴마크의 컨트리뷰터인 모르텐 블로비야가 ‘헨리 모턴 스탠리’에 ‘헨리’를 더했다(스탠리는 1879년에 바나나를 원정의 기점으로 삼았다). 블로비야처럼 본명을 쓰는 에디터는 비교적 소수다. 바나나 페이지에 참여한 다른 에디터들의 이름은 전쟁의 꿈, 휴브리스 왕자, 테이블탑이었다.
 
블로비야가 에디팅한 것은 2005년 7월이었다. 2004년에 생긴 이 페이지는 비교적 변경이 적었지만, 2007년에는 바나나가 항구냐 흑인 거주 지역이냐를 놓고 작은 소동이 일었다. 블로비야에 대해서는 그가 현재 오덴세에 살고 있지만, 미델파르트 근처의 작은 마을 스트리브에서 1973년에 태어났다는 걸 알 수 있다.
 
위키피디아는 살아 있는 생물과도 같다. 그게 매력이다. 인류의 모든 형태를 모두 담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우리 모두가 끝장날 때까지는 끝장나지 않을 것이다. 혹은 무언가가 샌프란시스코, 버지니아, 텍사스, 암스테르담, 싱가포르에 있는 위키피디아의 서버, 전 세계 모든 미러 사이트들, 그리고 인터넷 그 자체와 인터넷을 복구할 우리의 능력까지 파괴하지 않는 한 존재할 것이다.
 
위키피디아의 보안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역할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그렇지 않다면 어떤 위험이 도사릴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20년 전에 처음 생겼을 때는 위키피디아의 존재가 이렇게 중요해지리라곤 생각할 수 없었다. 관리자들 역시 위키피디아의 미래, 우리가 앞으로 진화하면서 정보를 얻고 이해하게 될 방식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다. 캐서린 마허는 “구조화된 지식과 구조화되지 않은 지식의 통합”을 이야기한다. 이를 통해 우리가 새롭고 농축된 학습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한다.
 
“나는 늘 위키피디아는 백과사전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이건 정보 생태계죠. 그래서 정보를 연관 짓고 연결시키면, 우리가 생각하는 위키피디아로 얻을 수 있는 이상의 기회가 생겨요. 모든 콘셉트를 현존하는 모든 정보 생태계에 연결 짓고 넷으로 보낼 수 있다는 의미죠.”
 
“의회 도서관은 전 세계의 위대한 박물관들, 영화 스튜디오들과 연결되어 있어요. 내게 이건 미래의 비전이죠. 세계의 지식을 쌓아가고 엮는 방법이고요. 위키피디아에서는 이건 프로토콜일 뿐이죠. 기준, 이런 일을 이미 해오고 있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장소일 뿐입니다. 이를 확장해 다른 사람들이 참여하고, 전 세계 지식을 모두 모을 수 있게 하는 방법이 뭘까요? 그러니 해야 할 일은 앞으로도 늘 계속 생길 거예요.”
 
“위키피디아가 진실을 대변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가 그 시점에서 아는 것, 혹은 동의하는 것을 대변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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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 박세회
  • WRITER SIMON GARFIELD
  • Illustrator ADAM SIMPSON
  • TRANSLATOR 이원열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