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길어진 혼자만의 시간에 대처할 시집 4

그대여, 아무 걱정하지 말고 우리 함께 시를 읽읍시다.

BY남윤진2020.12.24
“라일락을 쏟았다
올겨울, 눈과 나비가 뒤섞여 내리겠다”
〈구름과 집 사이를 걸었다〉는 2012년 겨울, 그러니까 딱 9년 전 이맘때 출간한 박지웅의 2번째 시집이다. 아득히 펼쳐진 자연 풍광 사이를 거니는 듯한 총 62편의 시를 찬찬히 읽다 보면, 어느새 고즈넉한 분위기의 외딴 휴양지를 찾은 것 같은 안락함을 느끼게 된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평범한 옛 일상 속 바로 그때의 기분 말이다. 책 말미에 쓰여진 정병근 시인의 해설처럼 박지웅 시인의 작품은 ‘견딤의 시학’을 다룬다. 그리고 오랜 견딤 끝에 마침내 다가올, ‘구름과 집 사이를 걸을 순간’을 향한다. 
박지웅의 〈구름과 집 사이를 걸었다〉

박지웅의 〈구름과 집 사이를 걸었다〉

  
“인간의 권리를 위한 그녀의 투쟁을 기억하며
마틸데 우루티아에게 바친다”
파블로 네루다의 대표 시집 〈너를 닫을 때 나는 삶을 연다〉를 처음 접하는 이는, 알 수 없는 단어들의 연속적 조합에 금방 어려움을 느끼고 말 테다. 목차에 빼곡히 적힌 ‘~를 기리는 노래’라는 작품들 제목처럼, 그의 시는 세상을 이루는 온갖 만물들에 대해 내내 읊조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풍겨오는 강렬한 에너지를 알아차리고는, 현 상황과 맞닿은 이야기에 집중해 어떠한 고무적 기운을 얻는다. “마냥 앉아 있을 수는 없다. 잘 가. 내일 보자.” 책 속 〈빛살을 기리는 노래〉의 단호하지만 낭만적인 문장들이 말하듯, 파블로 네루다의 언어를 통해 독자들은 한 줄기 빛이나 다름없는 희망을 찾는다.
파블로 네루다의 〈너를 닫을 때 나는 삶을 연다〉

파블로 네루다의 〈너를 닫을 때 나는 삶을 연다〉

 
“여기는 마지막이 아닌 것 같습니다. 어찌할 수 없음을 다시금 생각해봅니다. 모두의 다행(多幸)을 빌며, 감사합니다.”
‘되어간다’는 것. 이영재의 첫 시집 〈나는 되어가는 기분이다〉는 모든 되어갈 수 있는 것들의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이전에는 쉽게 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는 것. 개인이 될 수 있는 범위와 한계를 떠올리며 꾸준히 탐구해왔던 지난날의 기억. 길을 잃은 것처럼 혼란스럽기만 한 오늘날 모두의 마음속 고민에, 그의 시는 과감히 화두를 던져 함께 사유하길 제안한다. 자유로운 상상이자 현실, 실험적 표현이자 도전으로 가득 찬 〈나는 되어가는 기분이다〉의 작품들은, 우리의 기존 인식을 전환시켜 새롭게 ‘되어가는’ 기분이 들게 하는 기묘한 힘을 지녔다.
이영재의 〈나는 되어가는 기분이다〉

이영재의 〈나는 되어가는 기분이다〉

  
“잊지 않으리
어젯밤 창밖의 기침 소리”
요즘처럼 오늘을 잘 모르겠는 때가 있었나 싶다. 심보선의 시집 〈오늘은 잘 모르겠어〉를 골라 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다 허를 찔린 듯 자신의 심정을 대변하는 제목에 자연스레 이끌리곤 한다. 이윽고 ‘나도 잘 모르겠다’고 털어놓는 그의 겸허한 태도를 작품마다 마주하면서, 현재 누구나 느끼는 깊은 우울감을 마찬가지로 직면하게 된다. 하지만 분명 내 마음과 꼭 닮은 어두운 빛깔의 책 속에는, 온통 슬픔을 초월하는 희망적 상상과 반짝이는 생동감의 단어들뿐이다. 마치 푸른 안개가 걷힌 뒤 더욱 선명히 보일 눈앞의 경치를 기대하는 것처럼, 그의 시는 어제를 잊지 않되 오늘은 그저 잘 모르겠다고만 말해두기로 한다.
심보선의 〈오늘은 잘 모르겠어〉

심보선의 〈오늘은 잘 모르겠어〉

 
 
_프리랜서 박소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