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21세기의 LP 붐은 Z세대의 '패션'일까?

바이닐 레코드는 Z세대의 ‘패션’이 되고 있는 걸까?

BYESQUIRE2020.12.25
 
 

뉴 레코드 제너레이션 

 
〈레코드 284〉의 전시 작품 ‘Ever Green’. ⓒ 장수인

〈레코드 284〉의 전시 작품 ‘Ever Green’. ⓒ 장수인

폴리염화비닐 소재 음반을 ‘LP판’이라고 부르는 세대가 있다. 그렇게 발음할 때 그들의 머릿속은 십중팔구 묵은 기억을 뒤적일 것이다. 꽤 감상적인 무드로. 어쩌면 음반 위에 카트리지가 내려앉을 때의 ‘칙’ 하는 소리까지 재생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반면에 해당 음반을 ‘바이닐’이라고 부르는 세대도 있다. 아마도 LP보다는 훨씬 경쾌하고 매력적인 뉘앙스를 띨 것이다. 일반화라고 욕할지 모르겠으나,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만 해봐도 그렇다. 검정 일색인 ‘LP’에 반해 ‘바이닐’을 치면 알록달록 온갖 색상과 무늬의 음반 이미지가 뜨니까. (LP는 ‘Long Play’ 음반을 뜻하는 협소한 개념이며 바이닐은 멸칭에 가깝다는 견해가 있다. 해당 기사에서는 편의상 PVC 소재 모든 규격의 레코드를 바이닐 레코드로 통칭한다.)
 
바이닐 레코드는 수년 전부터 새삼 재조명받고 있는 매체다. 2020년은 그 분수령으로 기록될 한 해였다. 미국에서는 바이닐 레코드 매출이 34년 만에 CD 매출을 역전했고, 영국 내 매출은 1억 파운드를 돌파할 것으로 관측된다. 안타깝게도 국내에서는 집계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있지만, 비슷한 분위기인 듯하다. 전 공정을 직접 소화하는 국내 유일의 바이닐 레코드 제조사 마장뮤직앤픽처스는 2020년 주문량이 2019년의 3배에 달한다고 했다. 규모에 더해 앞서 언급한 후자의 부류가 이 인기를 이끌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 대다수는 일찍이 바이닐 레코드를 접해본 적이 없을 테니까. 그러니 이 현상은 ‘복고’가 아니다. 젊은 층이 이 거추장스러운 포맷을 음악의 새로운 매체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해석해야 옳다. 낡은 문화를 새로운 세대가 향유한다는 건 물론 반가운 현상일 터. 문제는 그들의 새로운 향유 방식을 미심쩍어하는 시선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레코드숍 김밥레코즈의 김영혁 대표 역시 2020년이 국내 바이닐 레코드 시장에 의미 있는 한 해였다고 생각한다. 매출 측면보다도 저변이 넓어졌다는 점에서. “저희 매장은 본래 손님의 평균 연령이 그렇게 높지 않아요. 하지만 최근 들어 더 낮아지긴 했어요. 10대가 많아졌으니까. 올해 상반기에 백예린 씨가 1집을 레코드로 냈잖아요. 저는 그 전후가 많이 다른 것 같거든요. 10대가 레코드의 재미를 알게 됐다기보단 10대가 좋아하는 가수들이 레코드를 내면서 대폭 유입되는 느낌인 거죠.” 그의 견해가 유독 무게감 있게 들리는 건 그가 국내 최초의 레코드 페어인 서울레코드페어를 기획하고 진행해온 인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쏟아지는 칭송 앞에서 그는 그저 레코드라는 매체가 고사 직전이었고, 목마른 자 우물 파는 심정으로 시작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이토록 크게 성장한 건 예상 밖이었다고. 2011년에 열린 1회 행사의 관객 수는 2000명 남짓이었으나 재작년에 열린 9회는 3만 명 가까운 관객을 동원했다. 그러나 부정적인 시선 역시 늘어난 관객의 속성을 두고 나왔다. 4회 때쯤 만난 한 오디오 애호가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사람이 정말 많았어요. 그런데 힙하다니까 그냥 구경 온 사람이 많고, 듣자니 음반을 산 사람 중에도 동봉된 MP3 다운로드 쿠폰을 사용하거나 그냥 고이 모셔두는 경우가 태반이라더라고요.” 풍문에 기반한 비아냥이기는 했으나 해외 매체들의 트랜드 조사 결과를 보기에 아예 신빙성이 없는 얘기도 아니었다. 2015년 런던의 ICM 언리미티드 리서치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당시 바이닐 레코드 구매자 중 3분의 1 정도는 턴테이블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고 답했다. 하지만 김영혁 대표는 그런 비판이 너무 보수적인 시각인 것 같다고 말한다. ‘음반을 샀으면 반드시 들어야 한다’는 것 자체가 20세기적인 발상이라는 것이다. “그때는 음반이 있어야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잖아요. 음반의 존재 가치도 시대 변화에 따라서 달라지는 거죠. 누군가에게는 그게 만족을 위해 집에 가져다놓는 소장품일 수도 있는 거고요.” 동시에 그는 그 높은 수치가 과도기적 현상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일례로 김밥레코즈에서 판매하는 턴테이블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계속 동이 난 건 2020년이 처음이었다고 말이다.
 
보수적인 시각은 바이닐 레코드의 존재 가치가 ‘음질’에 있다는 믿음에 기반할 것이다. 그러나 정작 레코드 애호가 중에도 바이닐 레코드의 음질이 디지털 음원보다 낫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드물다. 마장뮤직앤픽처스의 기술 담당자인 백희성 이사도 마찬가지다. 비트레이트니 정보량이니 하는 질문을 잔뜩 던지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들어보실래요?” 방금 커팅한 레코드 원판과 그 원판에 기록한 본래 음원을 비교해 재생한 것이다. 그렇게 들어보면 누구나 두 소리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사실 음량이나 다이내믹 레인지는 바이닐 레코드가 CD에 못 미쳐요. 하지만 담을 수 있는 정보량으로 따진다면 저 같은 경우에는 레코드의 손을 들죠. 한 면에 쓰인 20분 분량의 소리골을 일렬로 놓으면 6~7km가 될 거라고 하거든요.” 그는 애써 눈높이에 맞춰 설명을 해준 뒤에도 ‘그런 수치적 비교가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이라는 단서를 붙였다. 관전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깨끗한 판정을 내리고 싶어 하겠지만, 아무튼 숫자로는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특히나 지금까지 우리가 알아낸 숫자들로는.
 
그가 재생한 것이 디지털 음원, 그리고 그 디지털 음원을 바탕으로 커팅된 원판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실 오늘날 녹음, 마스터링, 매체까지 모두 아날로그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AAA’ 바이닐 레코드는 극히 드물다. 아날로그 작업이 가능한 스튜디오를 갖춘 마장뮤직앤픽처스만 해도 AAA 음반은 작년에 나온 〈신중현 헌정 기타 기념 앨범〉 정도가 전부다. 장비를 갖추기도 어렵고 제작 과정도 까다로울뿐더러, 그게 ‘품질’을 판가름하는 변수라 여기지도 않기 때문이다. 소리에 대한 ‘취향’이라면 모를까. 같은 디지털 음원이라도 어느 매체에 담느냐에 따라 소리의 성질이 달라진다. 물론 그게 CD나 MP3에 맞춰 마스터링된 음원을 그대로 바이닐 레코드에 집어넣어도 무방하다는 뜻은 아니다. 취재를 위해 만난 많은 전문가가 요즘 나오는 바이닐 레코드의 품질이 예전 같지 않은 것 같다고 토로했는데, 대체로 그 ‘우겨넣는’ 풍조를 원인으로 의심했다. 마장뮤직앤픽처스의 하종욱 대표는 방향성의 문제인 것 같다고 답했다. “사실 생산 시설이라든지 기술력이라든지, 제작 공정을 따지자면 예전보다 진화한 부분이 많거든요. 저는 단지 예전 시대의 음악에 바이닐 레코드와 잘 맞는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작업을 했으니까요. 조금 틀리더라도 합주 당시의 느낌이나 에너지를 중시하는 식의 좀 '문학적'인 과정이었잖아요. 그에 비하자면 오늘날의 음반 작업은 굉장히 ‘수학적’인 과정이 된  거고요.” 새로운 레코드 수요층이 사운드 퀄리티에 관심이 적기 때문에 대충 만든 레코드가 많아졌다는 의혹, 그는 그것이 오해라고 단언했다. 단지 ‘얼버무린 부분까지 모두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바이닐 레코드의 특성을 염두에 두고 곡 작업을 하는 시대가 아니기에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물론 다른 견해도 있다. 김밥레코즈 김영혁 대표는 바이닐 레코드 제작이 노하우가 굉장히 중요한 분야라는 지점을 짚었다. 산업의 쇠락과 재부흥 사이에 공백이 있었기에 처음부터 쌓기 시작하는 생산 기반이 많을 거라는 얘기다. 하종욱 대표도 동의하는 바가 있었다. 국내의 모든 레코드 공장이 사라진 지 7년 만에 공장을 세운 마장뮤직앤픽처스도 자사 레코드가 4~5년 전에 비해 몇 배는 품질이 나아졌다고 했다. “그때는 만조인 줄 알았는데, 지나고 보니 간조였더라고요.” 발전할 여지는 앞으로도 많다는 말처럼 들렸다.
 
커팅한 바이닐 레코드 원판을 검수 중인 마장뮤직앤픽처스 백희성이사. ⓒ 박기훈

커팅한 바이닐 레코드 원판을 검수 중인 마장뮤직앤픽처스 백희성이사. ⓒ 박기훈

취재를 위해 방문한 날, 마장뮤직앤픽처스 공장에서는 자사 최초의 스플래터반(표면에 독특한 문양을 가진 바이닐 레코드) 테스트가 한창이었다. 하종욱 대표는 1980년대에도 컬러반에 대한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본격적으로 디자인 실험이 시작된 건 불과 6~7년 전이라고 설명했다. 시대에 맞춰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바이닐 레코드의 외관뿐만 아니라 레코드를 둘러싼 문화 전반이 바뀌고 있다. 회현지하상가 레코드숍들만 돌아봐도 알 수 있다. 다들 이어폰을 끼고 음반을 뒤적이는 내내 쉴 새 없이 뭔가를 검색한다. 표지와 크레딧만 보며 보물찾기를 하는 시대는 끝난 것이다. 숨은 보물을 염가에 사던 시대도. “처음 디스코그스(레코드 정보를 공유하는 앱)가 나왔을 때는 거부감이 컸어요. 모든 음반에 평가가 매겨지고 그걸 기반으로 가격이 형성되고… 재미가 없잖아요. 하지만 대신에 누구나 양질의 정보를 얻게 되긴 한 거죠. 그냥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시대가 변했으니까.” DJ 소울스케이프의 말이다. 이름난 레코드 수집가이자 턴테이블리즘 문화를 국내에 정착시켰다는 평을 받는 뮤지션인 그는 레코드 문화의 변화에 대해 대체로 초연한 태도를 취했다. 그가 대뜸 그 태도의 정체를 설명하기 시작한 건 이야기의 주제가 ‘바이닐문’까지 흘러갔을 때였다. 바이닐문은 투고 받은 인디 뮤지션들의 음원으로 매달 믹스테이프 격 레코드를 제작해 보내는 미국의 구독 서비스다. 시대상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개념이긴 하나 레코딩 품질 측면에서 바이닐 레코드의 본질적인 무엇을 추구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테다. “저는 지금 나오는 현상들에 일일이 옳고 그르다 비평을 하는 게 무의미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해외에서 우리나라 카페 문화를 독특하게 생각하잖아요. 한국이 커피 원산지도 아니고 역사가 깊은 것도 아닌데, 어딜 가나 카페가 있고 거의 밥값에 가까운 걸 다들 사 마시니까요. 하지만 어떻게 바라보든 사람들의 선택지가 넓어졌다는 건 좋은 일이죠. 어떤 면에서는 좋은 커피에 대한 논의의 기반이 되기도 한 거고요. 만약 잠깐의 유행이라고 해도 남겨지는 부산물이 있을 거라고 봐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서울레코드페어는 2020년 행사를 건너뛰었다. 대신 행사 무대인 문화역284에서는 전시 〈레코드 284 : 문화를 재생하다〉가 열렸다. ‘레코드를 단순한 음악 저장 매체를 넘어 일상 속 창작의 원동력이자 영감의 매개체로 바라보자는 메시지를 담았다.’ 보도 자료에 쓰인 기획 의도다. 전시를 주관한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은 레코드 전문가들의 작업으로 러닝포인트를 주고, 디자이너의 작업물들을 통해 일상의 맥락에서 관객이 직접 사용해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삼았다고 했다. “기획 단계에서 현재의 레코드 문화를 주도하는 20~30대를 대상으로 서베이를 진행했어요. 그런데 턴테이블이 없는데도 레코드를 사는 사람, 아예 포장도 뜯지 않고 보관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추상적인 예술 형태로 보여주는 게 큰 의미가 없겠다는 결론에 도달했죠.” 권정민 기획자의 설명이다. 그 역시 바이닐 레코드가 오늘날 매체의 본성과 좀 다른 방향으로 소비되는 풍조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걸 마냥 부정적으로 볼 것인가는 또 다른 문제라고도 했다. “그렇다고 단순히 한때 유행이라고 말하기에는 굉장히 ‘깊은’ 문화잖아요. 많은 역사와 이야기가 담겨 있으니까, 유행처럼 한번 사본 거라도 그 감각을 잊지 않으면 분명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해요. 어쨌든 소장하고 있으면 언젠가 틀어볼 수 있잖아요. 그럼 알게 되겠죠. 그게 새로운 경험이라는걸. 주체적으로 음악을 틀며 스스로를 위해 좋은 시간을 썼다는 그 느낌을 말이죠.” 마장뮤직앤픽처스 하종욱 대표는 더 재미난 표현을 썼다. 방금 찍어본 스플래터 음반을 들여다보다가 무심코 이렇게 말한 것이다. “이 시대에 레코드가 음악 감상 수단으로만 전락하지 않고….” 레코드가 본연의 기능을 잃는 것도 전락이겠지만, 오직 재생 수단으로만 사용되는 것도 전락이라는 뜻이었다. “물론 바이닐 레코드가 가진 제1의 존재 가치는 음악을 감상하는 거죠. 하지만 옛날에도 재생 도구에 그친 물건은 아니었어요. 오늘날에는 그 기능과 가치가 더 확장되고 있고요. 새로운 생명이 부여되고 있는 거죠.” 바이닐 레코드는 음악 재생 수단이면서 가로 세로 30cm 크기의 아트 피스이고, 음질을 따지는 것만큼이나 그것을 다루는 인간의 경험 측면이 중요한 매체라는 것이다. 예전에도, 오늘날에도. 다만 오늘날에는 꼭 이것을 턴테이블에 올리지 않아도 음악을 듣는 게 가능해졌을 뿐이다.
 
기사의 첫머리에서 던졌던 질문은 다음과 같다. ‘바이닐 레코드는 Z세대의 패션이 되고 있는 걸까?’ 업계에 큰 분기점이 될 2020년을 스케치하기에 용이한 논조라고 판단해 다소 위악적인 어투를 택했다. 옹호의 방향으로 흘렀다 해도 결국 부당한 표현일 것이다. 기사 말미에나마 그 반대 시선, 즉 ‘뉴 레코드 제너레이션’의 시선도 보여주며 끝내면 어떨까? 만약 당신이 MP3나 스트리밍 서비스로 음악을 들어온 세대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음악이라는 게 ‘물리적 실체를 가진 무엇’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슬리브 속의 알맹이를 턴테이블에 올리고 표면의 패턴을 미세한 바늘로 긁으면 그전까지 없던 세계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것이 예술 작품 같은 오라를 갖거나 당신에게 포만감을 안기는 건 단순히 표면의 그림이 예뻐서가 아니다. 속에 품고 있는 그 가능성 때문이다. 물론 언젠가 소리를 실제로 들어보기도 할 것이다. 선물 받아 쟁여둔 질 좋은 와인처럼 좋은 날, 좋은 기회가 닿으면. 갖춰야 할 것도, 알아야 할 것도 참 많기도 하니 당분간은 계속 스트리밍 서비스로 음악을 듣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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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 오성윤
  • COURTESY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문화역서울 284
  • ASSISTANT 윤승현
  • DIGITAL DESIGNER 이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