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뉴트로 시장들 충무로 인현시장 편

요즘 시장은 세대 구분 없이 놀러갈 수 있는 놀이터가 됐다.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중구 충무로 일대의 사랑방이 돼 줬던 인현시장을 소개한다.

BY이충섭2020.12.29
후하다 못해 넘치는 인심 통나무집
통나무집통나무집통나무집통나무집통나무집통나무집통나무집
통나무집의 후한 인심에 대해선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마침맞게 인현시장 편을 쓰기로 결정하면서 통나무집을 소개할 수 있었다. 1979년부터 약 40년의 세월 동안 한 자리에서 늘 한결같이 푸짐한 음식을 대접하는 이곳의 주력 메뉴는 왕소문 기절초풍 메뉴 ‘주인 맘대로’다. 10여가지가 함께 나온다는 ‘주인 맘대로’ 메뉴에는 머리 고기를 시작으로, 꼬막, 석화, 무말랭이, 콩자반, 순대, 묵은지 어묵탕, 달걀찜, 고기전, 고추 옥수수전, 김치전, 두부전, 맛살전, 생선전, 부추전, 햄전, 허파전, 호박전 등이 나오는데 사실상 20여가지라고 봐도 무방할 만큼 어마무지하다. 이 모든 것이 단돈 2만원이라니 말 그대로 ‘왕소문 기절초풍’이었다. 다양한 음식을 내주지만 그렇다고 음식 맛이 소홀하지 않고 하나하나 괜찮았다. 묵은지 어묵탕의 경우 김치 특유의 신맛과 함께 얼큰하면서도 달콤한 어묵을 먹을 수 있었고, 허파전은 쫄깃했으며, 고추 옥수수전 역시 어린 시절 케첩에 찍어먹던 달걀말이가 떠오를 만큼 괜찮았다. 혼자 온 내가 신경이 쓰였는지 앉아있는 내내, 말을 건네주시던 주인 할머니. 괜히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가 한번쯤 이곳에 머물다 가지 않으셨을까’란 생각이 들어 코끝이 뭉클한 가게였다.
주소 서울 중구 마른내로6길 16 문의 02-2275-9184
 
집에서 먹던 LA갈비 용강식당
용강식당용강식당용강식당용강식당
충무로 인현시장에서 PJ호텔 쪽으로 길을 건너면 LA갈비를 구워서 파는 가게들이 길따라 줄지어 있다. 이곳을 충무로 LA갈비 골목이라고 부른다. 현재는 가게 저마다의 레시피에 따라 숯불, 가스불로 굽지만 용강식당은 예전 그대로 연탄불을 고집한다. 4개 남짓의 테이블이 겨우 들어가는 작은 공간이기 때문에 주인이 요리하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볼 수 있는데 그 느낌이 정겹다. 그럼에도 고기만큼은 모두 밖에서 굽기 때문에 실내에서 고기 타는 연기를 맡을 일은 없어서 안전하다. 고기가 굽는 것을 기다릴 동안 국과 찬만으로도 밥 반 공기를 먹었다. 콩나물 김치국 맛은 따로 말할 게 없이 맛있고, 콩나물무침, 마늘잎 짱아치, 어묵 볶음 등도 수준급이었기 때문이다. LA갈비를 맛있게 먹기 위해서 가까스로 남긴 밥 반 공기는 갈비가 나오고 얼마 안 있어서 동이 났다. 밥 한 숟가락에 고기 한 점, 반찬 한 점 올려서 먹는 맛이 좋아서 몇 번 더 먹다 보니 밥 한 공기를 다 먹은 것이다. 다시 LA갈비를 묘사해 보자면 방금 연탄불에 구워서 겉으로 보기에도 열기가 그대로 느껴지는 것이 신기했다. 전체적으로 불그스름한 열꽃이 핀 것처럼 보이는 고기는 군데군데 조금씩 그을려 있어서 먹음직스럽게 느껴졌고 특히 그 향이 달콤했다. 고기 한 점을 떼서 입에 넣으니 아주 부드러웠고 달콤하면서도 적절히 불맛이 나는 게 별미였다. 밖에서 LA갈비를 먹은 건 처음일 만큼 흔한 식당 메뉴가 아님에도 집에서 먹던 경험이 우러나와서 그런지 어색하지 않았다. 큰 살점을 먹고 나서 뼈를 잡고 휘휘 돌리며 작은 살점을 발라 먹는 것도 그대로 했다. 아무리 익숙한 음식이라고 해도 맛이 없다면 굳이 뼈째 잡고 먹을 이유가 없었다. 용강식당의 LA갈비는 집에서 먹던 습관 그대로 마지막 갈비까지 즐길 수 있었다.
주소 서울 중구 인현동2가 92-8 문의 02-2266-5801
 
뽀얀 쌀밥의 생선 구이 잊지마식당
잊지마식당잊지마식당잊지마식당잊지마식당잊지마식당잊지마식당
잊지마 식당은 백반 맛집으로 잘 알려져 있다. 삼치 구이를 주문하고 나서 가게를 둘러보는데 곳곳에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는 점에서 집밥 맛집이겠거니 생각은 떠올랐지만 무엇보다 강력히 확신할 수 있었던 건, 사람들이 계산하는 대신 노트에 무언가 적고 오가는 모습을 보면서부터다. 아마도 식당 주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월 식사권을 끊어놓고 가게 장부에 이름을 적고 먹는 것일터. 월 식사권을 많이 끊는 식당에서 밥이 맛없다는 말은 그 자체로 어불성설이다.
뽀얀 쌀밥과 우거지 된장국, 신안에서 올라온 돌김과 참기름 간장, 김치, 콩나물 무침, 멸치 볶음, 시금치가 순서대로 나왔다. 평소 하루 삼시 세끼 쌀밥을 먹어야 한다보다는 한 번 정도만 먹어도 충분하다 주의인데 이곳 인현시장에서 다년간 쌓아온 식습관이 다 무너져 내린다. 어느새 흰 쌀밥을 돌김에 올리고 돌돌 말아 간장에 살짝 찍어 먹고 생김치를 하나 쭉 찢어서 먹는다. 지척에 또다른 집밥 맛집 충무로 청국장은 간이 전체적으로 슴슴해서 큰 그릇에 반찬을 넣고 밥을 넣은 다금 고추장, 참기름에 비벼서 먹는 비빔밥에 잘 어울린다면 이곳 잊지마식당은 간이 센 편이어서 반찬 가지가지가 모두 밥 도둑에 가깝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짜다고 느낄 만큼은 아니고 오히려 평범한 가정에서 먹는 맛이 있다면 충무로 청국장 보다는 잊지마식당의 맛이 더 가깝다 볼 수 있다. 밖에서 이제 막 구운 삼치가 나왔다. 육안으로 봐도 어디 하나 탄 곳 없이 고르게 잘 익어서 나왔고 실제로 살점을 발라서 먹어봐도 그렇다. 보통 생선 구이라 하면 가운데 살코기 부분은 어디에 가도 맛있지만 바깥쪽, 그러니까 등 부분, 꼬리 부분은 보통 살점이 없어서 타서 오는 식당이 많다. 어릴 때 부모님과 함께 식사를 하면 가운데 살점을 내주시고 바깥쪽은 그냥 버리거나 혹은 직접 드시는 경우를 떠올려 보면 이해하기 쉽다. 그런데 잊지마식당의 생선 구이는 바깥쪽까지 살점이 많아서 쫄깃했고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부분을 타지 않게 잘 구워서 손님에게 내주낟는 점이었다. 워낙 역사가 깊은 오랜 식당이다 보니 의도치 않게 오픈형 주방이 돼 있는데 식사를 하는 동안 주인 어머니, 할머니의 설거지소리마저 정겹다고 느껴졌다. 모든 건 잊지마식당의 밥맛, 음식맛이 좋아서였을 것이다.
주소 서울 중구 퇴계로41길 47 문의 02-2265-4328
 
오랜 추억의 자장면 금성루
금성루금성루금성루금성루
금성루는 충무로역 8번 출구에서 인현시장 들어가는 입구 주변에 위치해 있다. 인쇄소 골목으로 더 잘 알려진 충무로에서도 수십년간 배달 음식점의 명맥을 이어가는 노포 중국집이다. 시간이 멈춘 듯, 빛 바랜 간판에 이끌려 가게를 들어가서 메뉴판을 보니 자장면 5천원, 짬뽕은 6천원이다.  여전히 부담 없는 가격이지만 2인 기준 세트 메뉴와 3인 이상의 알뜰 메뉴는 1인분 음식보다 더 저렴한 것이 눈에 띈다. 간자장면과 이집의 인기 메뉴 군만두를 주문했다. 단무지와 양파, 김치가 먼저 나왔다. 개인적으로 자장면을 먹을 때 단무지보다는 김치를 더 선호하는 편인데 둘 다 나온 점이 좋았다. 간자장면은 채소와 돼지 고기를 적절히 볶아서 채소 특유의 단맛과 고기의 감칠맛이 느껴졌고 잘 삶은 면과 어울리는 음식이었다. 만두피와 만두소 사이 적절히 공기가 들어가도록 조리한 군만두는 겉이 바삭하고 속이 촉촉했다. 사실, 대단히 거창한 메뉴의 맛집은 아니었으나 어린 시절 누구나 있을 법한 자장면의 추억을 그대로 떠올리기에 충분한 식당이었다.
주소 서울 중구 충무로2길 25 문의 02-2267-5400
 
만물상 술집 부루스타호프
부루스타호프부루스타호프부루스타호프
부루스타호프는 ‘만물상’이다. 통상적으로 가게 이름에 호프가 들어가면 1970~80년대부터 치킨, 골뱅이 무침, 노가리처럼 꽤 유력히 정해진 메뉴와 맥주, 소주를 마시기 좋은 곳을 뜻하지만 부루스타호프는 크지 않은 가게에서 치킨, 짬뽕탕, 나쵸, 생률 그리고 연어까지 육해공에서 나는 음식중 없는 것 빼고는 다 갖춘 느낌이기 때문이다. 사실, 더 재미있는 것은 부루스타호프의 각 메뉴는 시대상을 반영한다는 점이다. 40여년 한 자리를 지키면서 그 시절 젊은이들에게는 치킨과 맥주가, 기성 세대들에게는 생률과 포가 주 메뉴였을 것이고, 이어서 1990년대 들어서 짬뽕탕, 나쵸 등의 메뉴가 생겨났고 최근 2000년대 들어서 비교적 구하기 쉬워진 연어가 등장했을 것이다. 꽤 즐거운 유추가 끝났을 때쯤 이곳의 주력 메뉴인 치킨이 나왔는데 기본기가 괜찮은 편이었다. 바삭바삭하고 크게 느끼함은 없었으며 간장 치킨 특유의 짭조름하면서도 달콤함이 느껴졌다. 조금 전 잊지마식당과 용각식당에서 밥을 먹고 왔음에도 흥미로운 모양의 햄치즈에 끌려서 안주 하나를 더 주문했다. 햄, 치즈, 오이, 토마토를 이쑤시개로 끼운 가벼운 메뉴였는데 스페인의 타파스처럼 솔 한 모금 마시고 베어물기 딱 좋았다. 인현시장의 마지막 취재 장소라서 그런지 더없이 아쉬운 밤이었다.
주소 서울 중구 충무로2길 33-1 문의 02-2266-40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