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루이쌍끄', '유면가'의 셰프 이유석 "식당이 아닌 플랫폼을 만듭니다"

압구정의 터줏대감, 셰프들의 아지트로 불리던 ‘루이쌍끄’의 오너 셰프였던 이유석은 벌써 ‘유면가’의 미래를 그려두고 있다.

BYESQUIRE2021.01.25
 
 

“식당이 아닌 플랫폼이거든요” 

 
유면가는 식당이 아닌 플랫폼이에요. 오픈당시 ‘30년 동안 면을 뽑겠다’라는 마음으로 만든 건 아니거든요. 식당의 기능도 있지만, 공간으로 보면 면을 연구하는 랩이면서, 새로운 면을 공개하는 쇼룸이고, ‘유면가’라는 이름은 그 브랜드인 거죠. 제 면을 찾으려고 몇 개월을 계속 혼자 만들어보며 공부를 했는지 몰라요. 일본이나 중국의 면처럼 간수를 쓸 것인지 말 것인지, 쓴다면 어느 정로도 쓸 것인지를 정하는 데만도 참 많은 걸 고려해야 하거든요. 간수를 많이 쓰면 맑은 계열의 국물은 간수 향이 면에서 우러나서 덮어버리는 경우가 생겨요. 또 예를 들자면 달걀흰자를 말린 남백분이라는 게 있어요. 이걸 쓰면 면발의 탱글탱글한 식감을 살릴 수 있는 반면, 면이 국물을 머금지 않게 되죠.
 
지난해 초에 루이쌍끄가 문을 닫았잖아요. 얼마나 실망했는지 몰라요. 마지막에 워크인으로 방문했을 때만 해도 만석이었는데.
그때 매출이 사실 꽤 잘 나오긴 했어요.
루이쌍끄를 생각하면, 터번이나 메추리 등의 시그너처 메뉴와 함께 정말 친절했던 소믈리에님이 생각나요. 그분 덕에 한동안 알자스 리슬링에 푹 빠져 살았죠.대체 그 좋은 가게를 왜 닫았어요?
아! 송해나 매니저 말이군요. 송 매니저는 지금 미국에 있는데, 아직도 가끔 연락이 와요. 몇 달 전에는 특별한 일이 있기도 했어요. 루이쌍끄의 오랜 단골분들이 제가 보고 싶다며 유면가를 찾아오신 적이 있어요. 간단한 요리를 몇 개 내어드렸는데, 때마침 연락이 닿은 송 매니저가 미국에서 원격으로 와인을 페어링해줬어요. 송 매니저가 단골들의 취향을 다 아니까 가능했던 일이죠.
대체 그 좋은 가게를 왜 닫았어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요. 루이쌍끄를 9년 동안 운영하면서 술이 문제가 됐죠. 그 시간에 술을 마실 수 있는 프렌치 식당이 없다 보니 아지트처럼 되어서 근처 업장에서 문을 닫은 셰프님들도 자주 찾아주시고, 오랜 단골도 많아졌어요. 저 역시 같이 술을 마시곤 했죠. 술을 너무 마셔서 건강이 안 좋아진 것도 있고 무엇보다 인생의 두 번째 도전을 하고 싶었어요. 사실 루이쌍끄 하면서 10년간 잘되기만 해서, 뭘 해도 초대박이 날 거라 자만했나 봐요. 하루는 제 아내가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당신 이 일 하면서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는 거 같다. 돈 적게 벌더라도 낮에 일하고 밤에 쉬는 일을 하면 좋겠다”고요. 아들과 시간을 더 많이 보내고 싶은 생각도 있었어요. 그러던 차에 저와 4~5년 함께했던 주요 스태프들이 떠나게 됐어요. 유학을 준비하는 친구도 있었고, 건강이 많이 안 좋아진 친구도 있었죠. 결단의 순간이었어요. “우리 박수 칠 때 떠나자”고 말했죠. 다만 루이쌍끄는 훗날 은퇴 전에 다시 열 생각이에요.
루이쌍끄를 닫고 ‘유면가’를 시작했죠. 프렌치 셰프가 면 요리에 도전한 게 좀 이례적이었어요.
루이쌍끄를 하면서도 한 달에 한 번씩은 일본에 라멘을 먹으러 갔어요. 제가 좋아하는 라멘집에만 가면 힐링이 되더라고요. 그러다가 나중에는 라멘 기관을 찾아서 수업을 받기 시작했고, 소바랑 라멘 만드는 걸 배웠죠. 그게 당시에는 낙이었어요. 가게를 닫을 때 두 번째 인생의 주제는 면으로 해보자는 생각이 들더군요. 나는 면을 세상 무엇보다 좋아하니까, 면을 만들어보자. 때마침 저와 함께 면을 만들고 싶다는 친구도 있었고요.
공교롭게도 지금은 식당들이 다들 힘든 상황이죠.
유면가는 식당이 아닌 플랫폼이에요. 오픈 당시 ‘30년 동안 면을 뽑겠다’라는 마음으로 만든 건 아니거든요. 식당의 기능도 있지만, 공간으로 보면 면을 연구하는 랩이면서, 새로운 면을 공개하는 쇼룸이고, ‘유면가’라는 이름은 그 브랜드인 거죠. 그게 제가 그린 유면가의 미래였어요. 코로나19 상황 전에도 유면가의 메뉴들이 계속 바뀐 이유는 이곳이 실험 공간이었기 때문이에요. 지난 1년 동안 마켓컬리와 막국수 밀키트를 내고, 고잉메리와 협업해 인스턴트 라면을 내면서 유면가를 사실상 ‘플랫폼’화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봐요. 본의 아니게 코로나 상황이 본격화되면서 플랫폼화를 가속화할 기회가 오히려 많이 찾아온 것도 같아요. 그런데 정말 놀라울 정도로 많은 셰프들이 면가를 하고 싶어 해요. 라멘집이나 평양냉면집을 하는 게 셰프들에겐 일종의 로망 같아요. 제가 유면가를 연다고 했을 때 일반인들은 공감을 못 했는데, 셰프들 중에는 많은 사람이 되게 부러워했어요.
그러고 보니 임정식 셰프, 박찬일 셰프 등이 국물에 먼저 뛰어들었죠.
그 두 형님이 가게 열 때 조언을 제일 많이 해줬어요. 제일 많이 뜯어말리기도 했고요.
뭐라고 뜯어말렸나요?
두 분 다 대중적인 면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많다며 말렸죠. 그러면서도 육수는 어느 고기, 어떤 부위로 빼는 게 좋고 양념은 어떤 식으로 하라며 충고도 해줬고요. 한 3개월 해보고 나서야 왜 뜯어말렸는지 알겠더라고요.
어떤 점에서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식을 아끼면서도 가장 저평가하는 경향이 있어요. 한식은 비싸면 안 되는 요리잖아요. 특히 한국 면 요리는 감히 비싸면 안 되는 존재죠. 게다가 다들 한국 면 요리에는 일가견이 있어요. 익숙하니까요. 평양냉면이든 막국수든 본인의 기준에 맞는 최고의 집이 이미 있는 상태로 업장을 비판하기 마련이죠. 양양, 인제, 속초 등등 유명한 집을 말하면서 ‘가서 배워오라’는 소리도 들었어요.
아무래도 한국 사람은 한국 면을 맛있게 먹어본 경험이 많다 보니 미각의 기준도 엄청 세분화되어 있고, 복잡하기 마련이죠.
맞아요. 미국의 버거와 비슷하죠. 우리가 보기에는 크게 다를 게 없지만, 미국인들은 까다롭게 따지거든요. 상추는 어느 위치에 있어야 하고, 패티는 소고기와 돼지고기의 비중이 어때야 하고, 빵이 수분을 먹지 않으려면 치즈는 어디에 넣어야 하고 등등 말이죠.
일본은 라멘, 우동, 소바가 그렇죠. 국민 식습관에 익숙한 음식을 하다 보면 참 가혹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막국수 하면서 정말 괴로웠어요. 괴로워서 다신 안 하려고 했을 정도죠. 그렇게 막국수에선 손을 떼려 했는데 마켓컬리에서 제품을 내자는 제안이 왔어요.
마켓컬리의 유면가 ‘명태 비빔 막국수’ 말이죠?
마켓컬리를 통해 유통하려면 유면가의 메뉴에 넣어야 한다기에 하기 싫었는데 한 거예요.
막국수랑 평양냉면은 정말 무서운 미식가들이 많은 영역이죠.
사실 막국수 대신 소바도 생각했는데, 반일 감정이 강할 때라 접었어요. 평양냉면도 할까 싶었는데 평양냉면은 단가가 안 나와요. 아무리 MSG를 쓴다고 해도 소고기가 어느 정도 들어가야 육수 맛이 나더라고요.
저도 집에서 가끔 해보는데, 고기로 육수를 내는 건 정말 힘들고 재밌죠. 사태, 양지, 내장 무엇을 넣느냐, 얼마나 끓이느냐에 따라 육수 맛이 확확 달라지잖아요.
부위나 끓이는 시간에 따라서도 달라지지만, 온도에 따라서도 정말 많이 변해요.
그래요? 시간과 부위만큼 온도가 중요한가요?
돈코츠 라멘의 육수를 예로 들면, 보통은 뼈를 넣고 끓이면 뽀얀 국물이 나온다고 생각하잖아요? 피를 제대로 빼지 않은 등뼈를 높은 온도에서 끓이면 하얀 국물이 나오죠. 그런데 하룻밤 동안 흐르는 찬물에 담가 피를 쫙 뺀 다음에 손을 넣을 수 있을 정도의 뜨끈뜨끈한 온도로 10시간 정도 끓여내면 갈비탕 같은 맑은 국물이 나와요. 돼지고기인데 맑은 국물을 내는 곳의 육수는 아마도 그렇게 끓여낼 거예요.
수비드 같은 느낌인가요?
티죠. 티백에서 우려내는 것처럼 천천히 우려내는 거예요. 육수를 내는 다양한 방식이 있어요. 토리파이탄이라고 해서 닭백탕면 라멘의 국물을 낼 때는 불을 세게 해서 주걱으로 바닥을 거칠게 저어줘야 뽀얀 국물이 나와요. 그런데 토리쇼유라멘의 국물처럼 맑은 국물을 내려면 낮은 온도에서 핏물을 제거한 뼈를 우려내죠.
조만간 〈에스콰이어〉와 ‘육수의 과학’ 특집 기사 한번 내요.
저요? 저야 좋죠.
누군가 제대로 된 육수에 대한 책을 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우리나라 국물을 셰프님이 지금 한 말처럼 체계적으로 정리해둔 책은 찾기 힘들더라고요.
저도 한 번 정립하면 좋긴 할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한식 국물에 가장 많이 쓰는 멸치만 해도, 보통은 35분에서 40분 정도 끓이거든요. ‘똥’이라고 하는 내장을 제거하고 말이죠. 그런데 내장과 머리를 모두 제거하느냐, 머리만 제거하느냐, 둘 다 그대로 두느냐에 따라 또 이걸 어떤 온도로 국물을 우려내느냐에 따라 육수 맛이 다 달라요.
너무 재밌네요. 이런 얘기는 정말 하루 종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근데 면도 육수만큼 어렵잖아요.
면이 재밌으면서도 정말 어렵죠. 면이 힘든 이유는 취향이 천차만별이라서죠. 대한민국이나 일본의 남자 분들은 다들 면 요리에 대한 부심이 있거든요.
자신만의 면을 찾으려면 정말 많이 뽑아봐야 하잖아요.
제 면을 찾으려고 몇 개월을 계속 혼자 만들어보며 공부를 했는지 몰라요. 일본이나 중국의 면처럼 간수를 쓸 것인지 말 것인지. 쓴다면 어느 정로도 쓸 것인지를 정하는 데만도 참 많은 걸 고려해야 하거든요. 간수를 많이 쓰면 맑은 계열의 국물은 간수 향이 면에서 우러나서 덮어버리는 경우가 생겨요. 또 예를 들자면 달걀흰자를 말린 남백분이라는 게 있어요. 이걸 쓰면 면발의 탱글탱글한 느낌을 살릴 수 있는 반면, 면이 국물을 머금지 않게 되죠.
정말 면의 세계는 너무 복잡한 것 같아요. 이유석이 찾은 면의 결론은 뭔가요?
제가 제일 감동적으로 먹은 면이 있긴 해요. 작년 초에 일본 센다이라는 지방엘 갔어요. 센다이에서도 무라야마시라는 한적한 시골 동네를 찾았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경기도 외곽 정도의 느낌이 나는 곳이었죠. 공장과 논밭이 섞인 느낌이 딱 그랬어요. 할머니 두 분이 운영하는 소뼈 베이스에 맑은 간장라면 식당이 있어서 정말 어렵게 찾아갔는데, 거기서 먹은 면이 제가 먹어본 것 중엔 최고였어요. 면이 너무 가늘지도 않고, 쫄깃쫄깃하고, 탱글탱글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웨이브가 진 느낌이었죠. 그건 기계로 넣은 웨이브가 아니라 면을 뽑아 손으로 조물조물해서 만든 굴곡이었어요.
수타 웨이브군요?
그렇죠. 사실 웨이브를 만드는 것 자체는 어린애들도 할 수 있는 수준의 기술이긴 하지만, 그 점이 정말 좋았어요. 한국에 돌아와서 그 면을 구현해보려고 계속 실험해서 85%까지는 성공했는데, 그 이상은 힘들더라고요.
그 외에 또 영감을 준 면이 있어요?
북해도 중심부 쪽에 있는 제면소가 기억나요. 기차를 세 번 갈아타고, 버스도 한 번 갈아타 찾아갔죠. 눈이 많이 오는 날이었는데 손님도 저밖에 없었어요. 솔직히 맛은 없었어요. 맛은 정말 없었는데, 거기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어요. 면에다 여러 가지 재료를 배합하더라고요. 예를 들면 다시마 같은 걸 으깨서 면에 넣기도 하고. 거기서 영감을 받은 걸로 이제 곧 현대에서 제품을 출시할 예정이에요.
현대백화점이요?
예. 현대몰이랑 현대백화점에서 다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주옥의 신창호 셰프님과 컬래버레이션을 한 제품이에요. 신창호 셰프가 수프 맛을 잘 내니까 양념을 맡고, 저는 면을 맡았어요. 두 셰프의 협업 밀키트 제품은 처음이 아닌가 싶어요. 주옥×유면가, 신창호×이유석의 작품인 셈이죠.
그사이 뭔가를 정말 많이 했네요.
사실 외식 기업 서너 군데의 고문도 맡고 있어요. 오전에는 참치로 만들 수 있는 메뉴가 뭘지 고민하고 오후에는 피자 도우를 만지작거리는 게 일상이 됐어요. 대부분의 연구는 이곳 유면가에서 이뤄지고 있고요.
유면가는 내가 개발하는 메뉴들의 플랫폼이라는 말이 진짜군요.
한 기업체에서 버추얼 레스토랑을 운영한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어요. 그걸 보고 “나도 여기를 버추얼 레스토랑처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면 제 이름과 ‘유면가’의 이름을 걸고 특정 메뉴를 가상의 레스토랑에 올려두면 유통망을 통해 원하는 날짜에 배달되는 식도 가능하죠. 비건푸드를 반년 째 자체 개발 중인 이유도 마찬가지예요. 비건 푸드에 비전 있는 기업만 있다면 꼭 유면가의 매장이 아니라도 유면가의 이름으로 낼 수 있으니까요. 제가 생각하는 미래 시대에는 꼭 셰프가 자기 매장을 갖고 현장에서 지휘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가상의 공간에서도 존재할 수 있는 크리에이터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이제 유면가는 식당이 아닌 플랫폼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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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EDITOR 박세회
  • PHOTOGRAPHER 송시영
  • HAIR & MAKEUP 권호숙
  • ASSISTANT 윤승현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