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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R, 망설일 이유가 없다

VAR, 망설이지 마세요

BYESQUIRE2021.02.02
 
 

VAR, 망설이지 마세요

 
손흥민은 지난 1월 2일 리즈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한 프리미어리그 16라운드 홈 경기에서 자신의 토트넘 홋스퍼 100호 골의 기념비를 세웠다. 올 시즌 환상의 파트너로 거듭난 해리 케인의 패스를 그대로 슈팅으로 연결해 골망을 흔든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 골은 그가 토트넘에서 기록한 101호 골이 될 뻔했다. 지난해 12월 23일, 스토크시티와의 카라바오컵 8강전에서 넣은 골이 오프사이드 판정으로 취소된 바 있기 때문이다. 그 판정은 오심이었다. 손흥민은 상대 수비 라인보다 뒤에 있었지만 부심의 판단 미스를 주심이 그대로 존중하는 바람에 한 골을 빼앗기고 말았다.
 
기념비적인 100호 골이 상대 수비가 아닌 오심에 저지당하자 토트넘의 무리뉴 감독은 당연히 판정을 ‘저격’했다. “VAR이 있었다면 손흥민의 득점은 인정됐을 것이다.” 영국 국영방송 BBC도 “손흥민과 스토크시티 수비수의 위치는 매우 타이트했다. 왜 판독이 필요할 때 VAR은 없는가?”라고 아쉬움을 남겼다. 사라진 골은 프리미어리그와 카라바오컵의 규정 차이가 빚은 결과였다. 프리미어리그는 지난 2019-2020시즌부터 VAR을 전 경기에 도입하고 있는 반면, 카라바오컵은 대회 4강전부터 VAR 장비를 도입했다. 손흥민의 골을 훔쳐간 오심이 벌어진 경기는 하필 8강전이었다.
 
VAR은 판정에 대한 비디오 판독 시스템인 ‘비디오 어시스턴트 레퍼리(Video Assistant Referee)’의 줄임말이다. 그 이전에도 골라인 통과 여부에 대한 비디오 판독인 호크 아이(Hawk Eye)가 있었지만 VAR은 그것을 뛰어넘는 기술의 능동적 개입이다. FIFA(국제축구연맹) 주관 대회 기준 12대의 카메라 앵글로 잡은 장면을 VAR 조정실에 있는 2명의 심판이 다양한 각도로 확인한다. 거기서 분석한 장면이 심판에게 전달되고, 심판이 육안으로 보지 못한 문제를 확인했다고 판단하면 결정을 번복할 수 있다. 경기장 내에 설치된 심판 전용 모니터를 통한 온필드 리뷰도 가능하다. 경기장 전광판을 통해서는 어떤 내용에 대한 판정이 진행 중인지를 텍스트로 관중에게 안내한다.
 
2017년 3월 FIFA가 축구 규정을 총괄하는 IFAB(국제축구평의회)의 승인을 받아 VAR의 활용을 천명한 것은 축구 규정의 일대 혁명으로 평가받는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오프사이드 도입 이후 축구의 방향성을 가장 크게 좌우할 변화’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동안 축구는 ‘오심도 축구의 일부’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심판의 영역에 첨단 테크놀로지가 개입하는 것을 거부해왔다. 하지만 세계 축구의 축제인 월드컵 개막전부터 심각한 오심이 발생하며 내부 갈등이 심화되고, 판정에 대한 불신이 짙어지자 FIFA가 ‘명백한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전면적 비디오 판독 시대를 연 것이다.
 
FIFA는 ‘최소 개입에 의한 최대 효과’를 목표로 VAR을 득점 여부(골라인, 라인 아웃, 오프사이드, 파울 등), 페널티킥, 다이렉트 퇴장, 경고에 한해서만 적용 중이다. 하지만 효과는 확실하다. IFAB는 “VAR이 여전히 잡아내지 못하는 파울이 있기는 하지만, VAR 도입 후 오심이 80% 감소한 것은 분명하다”는 분석으로 지지를 표했다. 2017년 한국에서 열린 20세 이하 월드컵에 처음 도입된 뒤 FIFA 주관 대회에는 VAR을 전면 도입한 상태다.
 
VAR은 경기의 희비도 가른다. 지난달 끝난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정상에 오른 울산 현대는 VAR의 덕(?)을 톡톡히 봤다. 비셀 고베(일본)와 준결승전, 페르세폴리스(이란)와의 결승전 모든 중요한 순간에 VAR이 등장해 울산의 실점을 지우거나 득점을 이끌었다. 혹자는 울산을 가리켜 바르셀로나(VARcelona) 축구라고 부를 정도였다.
 
반대로 상대 팀들은 불만을 쏟아냈다. 특히 준결승전 상대였던 비셀 고베가 극렬히 반발했다. 고베는 아시아 정상 등극을 외치며 최근 3년간 세계적인 스타들을 불러모았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의 경우 고베에서 연봉만 320억원을 받는데, 이는 K리그 상위권 팀 1년치 운영비와 맞먹는다. 이 결정적 기회를 잡기 위해 엄청난 돈을 쏟아부은 구단주 미키타니 히로시 라쿠텐 회장은 트위터를 통해 “솔직히 판정에 의문이 남는다. 관계자들과 상의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싶다”며 결과에 불복했다. 일본축구협회는 맞장구를 치며 AFC에 항의 서한을 보냈다. 하지만 AFC는 논란의 여지조차 없는 정심이라며 이런 ‘음모론’을 일언지하에 제압했다.
 
고베가 음모론을 제기한 판정은 후반 30분 추가 득점이 취소된 장면이다. 다이주 사사키가 울산의 골망을 흔들었지만 VAR 판독 결과 하프라인 부근에서 울산 신진호에게 파울을 가한 야스이 다쿠야의 플레이를 지적하며 주심이 득점을 인정하지 않았다. 고베 측은 이미 수십 미터를 전진하고, 몇 초가 지난 플레이를 취소하느냐고 주장했지만 VAR 규정상 득점 취소는 공이 끊기지 않고 전달된 전체 맥락에서의 파울 여부를 확인한다. 고베 구단과 일본축구협회가 VAR에 대해 무지했을 뿐, 음모론이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만약 K리그 팀이 챔피언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더라도, 구단이나 대한축구협회가 VAR에 대한 음모론을 제기했을 가능성은 적다. K리그는 지난 2017년 여름부터 VAR을 조기 도입했다. 당초 2017년에는 시범 운영을 하고, 2018년부터 전면 도입할 계획이었지만 2017 시즌 개막 후 결정적인 오심이 연쇄적으로 발생하자 과감히 도입을 앞당겼다. 과거 승부조작 사태와 심판 매수 사건의 전력이 있던 터라 리그 전체에 대한 신용을 잃지 않기 위해 강도 높고 진보적인 혁신을 택한 것이다. 계획보다 1년 가까이 앞당긴 도입이 완벽했던 것은 아니다. VAR 전담 심판 확보부터 애를 먹었지만 FIFA 강사진을 빠르게 투입하여 시즌을 치를수록 오심 빈도를 줄여가는 중이다. 2020 시즌이 끝난 지금, K리그에서 VAR은 정확한 판정을 위한 기술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상황은 다르다. 이웃 나라인 일본과 중국의 경우 VAR 도입은 차일피일 미뤄지거나 도입해도 제 효과를 못 보고 있다. 이유는 다르다. 중국은 양질의 심판 부족이 원인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중국축구협회는 지난 시즌 한국 심판진 일부를 임대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일본은 특유의 보수적이고, 극단적인 조심성이 VAR 도입에 방해가 됐다. 전자서명 대신 여전히 도장과 팩스 문화가 통용되는 ‘아날로그 공화국’의 이미지가 축구에도 드리워져 있는 셈이다. 실제 J리그는 2020 시즌까지도 VAR 도입을 망설였다. 2019년 하반기에 시험 운영을 했지만, 2020 시즌 도입 계획을 취소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밀폐된 VAR 조정실에 대한 방역 문제로 도입을 연기했다고 밝혔지만 같은 조건에서 K리그는 단 1건의 문제 발생 없이 VAR과 함께 시즌을 마쳤다. 문제 해결에 가장 도움이 되는 진보적 기술의 도입을 두고 양국 축구협회가 택한 정반대의 선택이 아시아 챔피언을 결정짓는 무대에서도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닐까. 망설임의 결과는 명백한 오심과 의미 없는 ‘음모론’으로 이어질 뿐이다.
 
Who`s the writer?
서호정은 프리랜스 축구 크리에이터다. K리그 해설자 겸 축구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유튜브 채널 〈썰호정〉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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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 김현유
  • WRITER 서호정
  • Illustrator 노준구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