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코로나 시대에 연애한 썰 푼다. 청춘남녀 11명의 펜데믹 러브 엿보기.

‘코로나19’의 시대에도 꽃은 핀다. 식물에게 전염되는 병은 아니니까. 그렇다면 사랑은 필 수 있을까? 어떻게든 틈을 비집고 나와 크고 단단한 꽃을 피우고 있을까? 11인의 청춘 남녀가 지난 1년 새 겪은 자신의 ‘특수한’ 만남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BYESQUIRE2021.02.27
 
 

Pandemic Love

 
1 오빠, 잘 지내?
우린 공평하게 서로 한 번씩 이별을 고했다. 처음엔 그녀가 나를 찼다. 사귀기 시작한 지 고작 한 달밖에 되지 않았을 때였다. 이유는 연락 빈도에 대한 의견 차이였던 걸로 기억한다.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붙잡았지만, 그녀는 붙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그로부터 3개월 후에 갑자기 이런 메시지가 왔다.
 
오빠, 잘 지내?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대꾸했고 우리는 빙빙 에둘러 긴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대충 요약하면 그녀가 연락한 건 다시 잘해보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이번엔 내가 찼다. 이미 새로운 여자 친구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다신 연락하지 말라고 매몰차게 말했고, 그걸로도 모자라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여자 친구와 찍은 다정한 사진으로 바꿨다. 2019년 하반기의 일이었다.
 
2020년 초 터진 코로나19는 내 삶의 여러 가지를 바꾸어놓았다. 나쁜 방향으로. 나는 재취업에 실패했고,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 우울하고 무기력했다. 자존감이 바닥을 쳤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훌쩍 여행을 떠나거나 친구들과 소주 한잔 기울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유일한 낙은 침대에 누워 인스타그램을 뒤적이는 것. 그러다 문득 무언가에 홀린 듯 ‘알 수도 있는 친구’에 뜬 전 여자 친구의 계정을 염탐했다. 그러다 실수로 팔로우를 눌렀다. 아니, 실수를 가장한 고의였다. 어떤 반응이 올까 잔뜩 긴장하고 기다리기를 한 시간. 아무 답도 없었다. 결국 그날 저녁 인스타그램을 삭제했다. 창피해서. 2020년 늦여름의 일이다.
 
생일을 하루 앞둔 11월의 어느 날이었다. “오빠 내 인스타그램 팔로했던데 ㅎㅎ 연락하지 말라 해놓고 뭐야~~ 내일 생일이지? 축하해!” 전 여자 친구였다. 찌질하게 팔로우를 누르고 도망친 나와 달리 그녀는 용감했다. 생일을 핑계로 약속을 잡았고, 우리는 곧 처음 사귀었을 때보다 더 빠르고 깊게 가까워졌다. “오빠를 만날 땐 뭔가 달랐어.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랄까?” 다시 손 내밀어준 이유에 대해 물었을 때 그녀가 내놓은 답이다.
 
최근에 나는 코로나 탓만 하며 손 놓고 있던 취업 준비를 다시 시작했다. 불규칙한 생활도 바로잡았다.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의 명대사가 떠오른다.
 
You make me want to be a better man.
- 손현준 | 31 | 무직 | 인천 미추홀구





2 사내에서 만났지만, 사내 커플은 아닙니다.
사내 커플은 되도록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배웠다.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너무 많다고. 매일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 사이에 관계가 틀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익히 알고 있던 바이기도 했다. 대학 시절, 급하게 군대에 입대한 친구들을 보면 열에 아홉은 CC였다가 헤어진 경우였으니까. 그도 아니면 휴학을 하거나. 18명 중 남자가 3명밖에 없는 ‘여초’ 직장인 것도 내가 사내 커플만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각오한 이유 중 하나였다.
 
문제는 겨우 ‘사회 초년생’ 티를 벗을 무렵 코로나 19가 창궐했다는 것이다. 일에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으니 이젠 연애를 해보고 싶다고 마음먹었지만 코로나 때문에 물거품이 됐다. 정부의 거리 두기 방침과 그보다 더 강력한 사내 거리 두기 지침 때문에 집과 회사 외에는 움직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쳇바퀴처럼 하루하루가 흘러갔다. 그때 그녀가 나타났다.
 
경력직으로 이직해온 그녀는 나이도 경력도 선배였다. 매사 일 처리가 야무졌고, 긴장을 많이 하는 나와 달리 발표도 막힘없이 진행했다. 멋있었다. 깔끔한 패션 센스와 당당한 태도도 그녀를 더욱 빛나게 했다. 명랑한 성격도 마음에 들었다. 맞다. 그녀는 그냥 내 이상형이었다. 업무 특성상 주말 출근이나 야근이 잦았는데 같이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호감이 커졌다. 하지만 개인적인 대화는 일절 시도하지 않았다. 어쭙잖게 다가섰다가 차일까 봐 두려웠다. 매일 얼굴 보고 일해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구설수가 생기는 건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지지부진하던 관계가 진전된 건 그녀가 일을 그만두고 난 후다. 인수인계를 핑계로 하루에도 여러 번 전화를 걸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연락을 주고받다가 처음으로 단둘이 식사도 하게 됐다. 하지만 설렘 가득했던 나와 달리 그녀는 썩 무덤덤해 보였다. 그저 전 직장 동료와의 식사 자리 정도로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결국 호감 표시는커녕 다음 약속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한 채 헤어졌고, 집에 들어와서도 잘 들어갔다는 말 외엔 딱히 연락할 말이 없었다. 흔한 짝사랑의 결말이었다.
 
그런데 나흘 후,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우리 또 언제 밥 먹어요?
 
흔한 하이틴 로맨스 영화의 결말처럼. 사귀고 난 후에야 알았지만, 그녀도 같이 일할 때 내가 자꾸 눈에 들어왔다고 한다. 역시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다. 인연은 멀리 있지 않다.
- 최정우 | 32 | 큐레이터 | 서울 서초구
 

 
3 틴더에 중독되는 과정
작년 초에 2년 동안 만난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 실연의 슬픔으로 얼마간 시간을 보냈고, 결국 다시 술자리를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연애가 하고 싶어서. 하지만 취준생 신분으로 갈 만한 술자리는 친구들과의 동네 술집 정도가 전부였기 때문에, 괜찮은 이성을 만날 기회는 무척 적었다. 입맛만 다시던 차에, 문득 20대 초반에 데이팅 앱을 사용했던 것이 떠올랐다. 나는 곧장 앱스토어에 들어가 ‘채팅’, ‘소개팅’ 따위의 단어들을 검색했다.

 
당시 다운로드한 앱은 미프, 탄탄, 심쿵, 틴더, 스와이프, 코코, 너랑나랑, 아자르, 당연시, 아만다, 커피미츠베이글 등이었다. 대충 기억나는 것만 이 정도고 한번 들어가보고 바로 삭제한 것들까지 합치면 20개는 족히 넘을 것 같다. 처음엔 소개팅 앱 자체가 너무 재밌었다. 누군가 그랬던가. ‘내 이상형은 처음 보는 여자’라고. 끊임없이 팝업되는 사진들을 보느라 눈이 아플 정도였다. 이때 스마트폰에 ‘Night Shift(휴대폰의 블루라이트를 차단해주는 기능)’라는 게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많은 앱을 써보면서 나는 점점 스스로가 어떤 앱에 어울리는 사람인지 대충 알게 됐다. 내가 주력으로 고른 앱은 틴더와 커피미츠베이글. 그 두 앱에 그나마 잘생긴 남자가 적었다.
 
틴더는 상대를 만났을 때 예상과 달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대화방을 삭제하고 연락을 끊기 편하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만났다. 이성에게 보내는 호감 표시인 ‘스와이프’의 가능 횟수가 정해져 있는데, 이를 소진한 뒤 다시 채워지는 데 12시간이 걸린다. 12시간의 쿨타임을 정확히 지키기 위해 시도 때도 없이 앱을 들어가 확인하곤 했다. 얼마나 진심으로 스와이프를 보냈던지 나중에는 시계를 보지 않고도 쿨타임이 끝나기 정확히 10초 전에 미리 앱에 들어가는 놀라운 생체리듬을 갖게 됐다. 탈퇴 후 재가입을 하면 매칭 확률이 더 높아진다는 걸 체감한 후에는 주기적으로 재가입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틴더를 통해 동갑내기 여자를 만난 적도 있다. 그녀와 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술잔을 기울이다가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하룻밤을 보냈다. 아마 내가 ‘틴더 신봉자’가 된 게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더 이상 상대방의 외모는 큰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빨리 술을 마시고, 빨리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을지만 생각했다. 취준생이었던 나는 돈을 아끼기 위해 되도록 1차에서 먼저 돈을 내려고 애썼다. 그러면 십중팔구 2차는 상대가 계산했으니까. 만약 술자리에서 스파크가 튀었다면 2차도 내가 냈다. 그래야만 다음 차인 모텔 숙박비를 상대가 내기 때문이다. 경험상 1, 2차를 다 계산해도 숙박비보다는 저렴하다.
 
이런 각고의 노력으로 꽤 많은 사람을 만났다. 한 번의 만남에 그치지 않고, 흔히 말하는 ‘FWB’로 지내는 사람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그 성공에는 언젠가부터 환멸이 뒤따랐다. 휘발적인 관계를 이어가는 것에도, 단돈 몇만 원을 아끼려고 궁상 떠는 나 자신에게도. 환멸이 극에 달할 때면 앱을 삭제하기도 했다. 물론 며칠 뒤엔 어김없이 틴더가 다시 깔려 있었다. 지금껏 틴더 재가입만 족히 서른 번은 한 것 같다. 지금은 또 정말 굳은 마음을 먹고 몇 달간 틴더를 끊은 상태다.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또 옛날 일들이 떠오르고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음, 코로나가 끝날 때까지만 사용하는 걸로.
- 장서현 | 27 | 무직 | 경기 고양시





4 인스타그램의 맛
코로나 이후 내 인생의 4할은 인스타그램이다. 여행 사진, 근사한 식당, 차려입고 찍은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시간이 금방 간다. 사실 다 고만고만한 거 같은데 뭐가 그리 재밌다고 보고 있는가 싶을 때도 있다. 가끔 ‘00님이 회원님의 사진을 좋아합니다’라는 알람이 뜨면 입꼬리가 올라간다. 하지만 곧바로 반응하진 않는다. 15분 정도는 뜸을 들여줘야 한다. 좋아요가 눌린 사진을 확인해보니 내 셀카다. 입꼬리가 한결 더 올라간다. 그제서야 상대방의 계정을 클릭한다.
 
그녀의 프로필 사진은 무엇을 찍은 건지도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난해하다. 손가락과 눈은 피드를 연신 내리며 얼굴 사진을 찾는다. 홍상수 영화 장면의 캡처, 인상 깊게 봤던 전시, 해시태그 없는 게시물 몇 개를 지나 햇살 가득한 곳에서 미니멀한 코트를 들고 적당히 핏한 카디건을 걸친 그녀의 모습을 발견한다. 이번엔 내가 하트를 누른다.
 
2시간 뒤, 또다시 그녀가 내 피드에 ‘좋아요’를 보낸다. 이번엔 팔로잉으로 응수한다. 맞팔의 기대감을 안고 기다린 지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그녀도 나를 팔로우하기 시작한다. 이제 온 신경은 그 계정에 쏠린다. 이번엔 그녀의 팔로잉 리스트를 슬쩍 확인한다. 함께 아는 사람은 없다.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하나 고민하던 차, 필름 카메라를 추천해달라는 스토리가 올라온다. 카메라는 내가 좀 알지. “저도 찾다가 봤는데 이거 괜찮은 거 같아요 ㅎㅎ”라고 쓰고 관련 링크를 함께 첨부해 보낸다. “어 저도 이거 봤어요.” 됐다. 이제 우린 서로의 사진을 보여주며 주저리주저리 떠든다. 대화를 자연스럽게 이어나가며 기회를 엿본다. 부담스럽지 않게, 친분을 쌓으며, 슬쩍 간단한 호구조사도 곁들인다.
 
이쯤 되면 만나도 좋지 않을까 싶어 약속을 잡는다. 행선지는 평소 눈여겨보고 있던 깔끔한 식당. 사실 인스타그램을 통해 알게 된 사람을 실제로 만나면 상당히 어색하다. 주도적으로 대화를 이어나가야 한다. 2차로 바에서 맥주를 마시며 음악을 듣는다. 좋은 노래를 들으며 자연스럽게 취향을 공유한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전부 기억에 남지 않아도 좋다. 중요한 건 그 간질간질하고 찌릿한 느낌이니까.
 
인스타그램에서의 만남이 성공할 확률이 소개팅, 데이팅 앱보다 높다는 게 내 지론이다. 인스타그램 게시글에는 관심사, 성격, 스타일 등 꽤 많은 정보가 담겨 있다. 여자친구도 처음 좋아요를 눌렀을 때부터 내 계정에서 끌림을 느꼈다고 한다. 이런 흉흉한 시국에도 사랑은 꽃필 수 있다. 낯간지럽다면 어쩔 수 없고.
- 강민용 | 26 | 유통업자 | 서울 중랑구





5 한잔 더 할래요?
남자 친구는 지인의 지인이었다. 우리는 한국에서의 코로나19가 소강 상태에 접어든 지난여름, 술자리에서 처음 만났다. 사뭇 태평스러운 시기였으나 공연계 종사자인 나와 무용가인 그는 코로나19에 대한 걱정이 유독 많았고, 둘이서 푸념과 전망을 두런두런 털어놓다 친해졌다. 아무렴 근심과 공감만큼 사람을 급속도로 가깝게 만들어주는 게 또 있으랴.
 
사귀기로 한 건 몇 번 더 만났을 때였다. 다시 또 함께 술을 마시던 밤에. 술집에 사람이 너무 많아 일찍 자리를 파하기로 하고 헤어졌는데, 집에 가는 길에 그에게서 카톡이 온 것이다.
 
혹시 둘이 한잔 더 할래요? 제가 자주 가는 조용하고 작은 라운지가 있는데.
 
훗날 듣기로 그는 그 라운지에서 나에게 반했다고 했다. 한껏 취해서 신나게 춤을 추고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밝은 모습에 끌렸다는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만약 우리가 다른 시기에 만났다면 지금과는 달라졌을까? 만약 내가 그날 ‘다음에 가자’라고 답장을 보냈다면 우리는 지금쯤 좀 다른 사이가 되었을까?’ ‘다음’이란 없었기 때문이다. 곧 2차 대유행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함께 라운지에서 술을 마시고 춤을 춘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우리는 6개월째 사귀고 있다. 하지만 그는 내가 화장한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나는 그가 일에 몰두해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프리랜스 안무가인 그는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았고, 연락을 하면 대부분의 경우 집에 있었다. 물론 그의 성실함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상황이 그랬을 뿐이다. 촉망받는 안무가라는 그의 전적은 마치 옛일처럼 전해만 들을 수 있을 따름이었고, 춤에 대한 열정이나 커리어에 대한 계획을 이야기하는 그의 말에는 점점 답답한 현실과 불투명한 미래의 암운이 짙어졌으니까. 물론 이런 시기에도 간간이 프로젝트가 들어오기는 했다. 성사 여부는 늘 불투명했지만. 불확실한 공연이나마 폐를 끼칠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가능성 때문에 사람 많은 곳을 돌아다닐 수도 없었고, 결국 우리는 대부분의 데이트를 그의 집에서 하게 되었다. 화장도 하지 않고, 늘 편한 옷차림으로. 여느 연애 초기 커플들처럼 같이 해보고 싶은 게 참 많았으나 모두 ‘다음에 해보자’라는 말에 그칠 뿐이었다. 지금 돌이켜봐도 그게 최선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각자의 상황을 배려하며 서로의 일에 도움이 되려고 많은 노력을 했던 것이다. 어떤 노력으로도 서로에게 환상이나 존경심을 갖기는 어려운 환경이었을 뿐. 그러니 나는 또 자주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만약 우리가 다른 시기에 만났다면 지금과는 달라졌을까?’
 
우리는 한 번 헤어졌었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은 이유로. 하지만 결국 다시 만났다. 재미있게도, 그 이유 역시 우리가 이런 시기에 이렇게 만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아주 빠른 시간 내에 오래된 연인처럼 편하고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내게 연애 상대가 이처럼 ‘남편’ 같은 뉘앙스가 된 건 그가 처음이다. ‘모든 것에는 장단점이 있다.’ 그렇게 생각해야 할까? 글쎄. 그렇게 끝을 맺기에는, 내가 여전히 너무 자주 그런 상상을 하기는 한다. 만약 우리가 다른 시기에 만났다면, 서로에게서 지금보다 더 많은 가능성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 서지원 | 35 | 공연업계 종사자 | 서울 서초구 
 

 
6 랜선 술자리에서 현실 연인으로
2020년은 코로나의 해인 동시에 제대 후 맞이한 두 번째 학기가 시작된 해이기도 해서, 개인적인 몇 가지 변화가 있었다. 동아리 회장이 됐고 졸업반이라 취업도 생각해야 했다. 연애는 포기할 생각이었지만, 다짐과 달리 동아리에 새로 들어온 신입생 한 명이 자꾸 눈에 들어오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하지만 복학생이 들이댄다고 생각할까 봐 전혀 티를 내지 않았다. 그냥… 가끔 그 친구에게 연락이 오면 혼자 몰래 설레어하는 정도?
 
한 해가 끝나갈 무렵, 그간 코로나19로 인해 자주 만나지 못했던 동아리 신입생들과 ‘랜선 회식'을 하게 됐다. 컴퓨터 앞에서 각자 술을 마시는 게 무슨 재미가 있을까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입학했을 때부터 이미 직접 만남이 어려웠던 20학번 후배들은 랜선을 통해 놀 수 있는 방법들을 개발해둔 상태였다. 야자타임부터 눈치 게임, 라이어 게임 등 랜선 술게임도 오프라인에서의 술자리만큼이나 재미있었다. 제법 술기운이 올랐을 무렵 누군가 ‘귓속말 게임'을 제안했다.
 
귓속말 게임은 코로나가 터지기 전에도 존재했던 술게임이다. 옆자리 사람에게 귓속말로 질문을 하고, 질문을 받은 사람이 큰 소리로 답을 한다. 어떤 질문인지 궁금한 사람은 술을 마시면 해당 질문 내용을 들을 수 있다. 줌을 통한 귓속말 게임은 순서를 정한 뒤 ‘갠톡'으로 질문을 주고 받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재미있는 질문이 오가다가, 평소 마음에 두고 있던 그 친구에게 내가 질문할 순간이 왔다. “대학에서 만난 사람 중 이상형이 있어?” 기대가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렇다고 내 이름이 나올 거라고 생각하고 한 질문도 아니었다. 그녀에게 갠톡이 왔다.
 
오빠라고 말해도 돼요?
 
술기운이 확 달아났다. 다음 날 나는 복학생 손준배가 아닌 남자 손준배로 그 후배에게 카톡을 보냈다. 결과는 그린라이트! 참, 사귀고서 알게 된 건데 그녀는 애초에 나 때문에 동아리에 지원했다고 한다. ‘도둑놈’이라는 놀림을 자주 받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 요즘이다.
- 손준배 | 25 | 대학생 | 서울 성동구



 
7 코로나가 허락해준 첫 헌팅
마스크로 가린 얼굴이 아직은 생소하던 5월의 어느 주말, 스물일곱 살의 두 남자는 저녁을 먹기 위해 만났다. 오랜만에 만난 두 친구는 으레 그렇듯 근황을 묻고, 또 자연스레 최근 각자의 머릿속을 헤집어놓는 것들을 풀어내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일단락된 대학 생활에 대한 감상, 커리어에 대한 계획, 궁상맞은 하소연 따위였다. 물론 여자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사람을 만날 일이 줄어든 시기라 이성을 만날 별다른 방법이 없었고, 연애 이야기란 거의 푸념이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두 사람의 푸념은 늘어놓을수록 기운을 더하더니 점점 의기투합으로 변모해갔다. 확진자 수가 현격히 줄어든 지금을 기회로 삼아 누구라도 좋으니 여자에게 말이라도 걸어보자는 것이었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다양한 시도를 해봐야 한다며. 한껏 달아오른 둘은 자리를 박차고 나와 이태원으로 향했다.
 
나와 친구는 그때 이야기를 하면 여전히 서로 어리둥절해진다. 아무 맥락도 없이 왜 그렇게 흥분했었는지 모르겠다고. 아무튼 이태원으로 향하는 길에 우리는 간단한 규칙도 정했더랬다. 첫째, 둘 중 한 명이라도 궁금하게 여기는 여성이 있다면 같이 가서 말을 건다. 둘째, 최소한 다섯 번의 시도는 한다. 택시가 목적지에 다다를 무렵 “오늘은 좋은 일이 벌어질 것만 같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5월의 이태원은 예상외로 꽤 붐볐다. 모두들 사람 만날 창구가 없었기 때문일까. 번화한 골목으로 들어선 우리는 테라스에 앉아 맥주를 마시는 미모의 두 여성에게 시선을 빼앗겼고, 찰나의 눈빛 교환만으로 서로의 의사를 확인했다.
 
실전은 연습한 것과 달랐다. 골목에서 숨을 가다듬고 나서야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말을 건넸다.
 
같이 놀래요?
 
초심자의 행운이었을까?  그들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우리는 잔뜩 부푼 마음을 최대한 숨긴 채 ‘필살 데이트 장소’로 점찍어둔 가게로 그들을 안내했다. 또래였던 그녀들과 밤새 기분 좋은 기류가 이어졌고 술잔이 계속 오갔다. 그리고 동이 트고 각자의 집으로 갈 택시를 잡으러 큰길로 나설 때, 난 이미 둘 중 하나와 무척 가까워져 있었다. 그 이후의 이야기를 굳이 늘어놓을 필요가 있을까? 스물여덟 남자 둘의 우스꽝스러운 결심이 실천된 날, 코로나 시대의 사랑은 그렇게 싹이 텄다. 우리가 지금 그토록 염원하는 ‘코로나 이전의 일상’이 잠시나마 허락된 날 같았다.
- 정진형 | 28 | 프리랜서 | 서울 광진구
 

 
8 늙은 하이에나의 해법
내가 솔로가 된 건 작년 3월의 일이다. 코로나19의 유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나, 그게 어떤 변화를 의미하는지는 아직 아무도 몰랐던 때. 나 역시 그런 시기에 솔로가 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뒤늦게야 알게 되었다. 바이러스는 인간이 인간을 두려워하도록 만드는 존재였고, 새로운 인연을 만들 기회는 요원했다. 예전에 가입해둔 데이팅 앱에 다시 접속한 것도 그래서였다. 다들 겁에 질려 있었던 때라지만 그 안에는 나 같은 사람들이 많았으니까. 두렵긴 하지만, 그보다 더 외로운 사람들.
 
데이팅 앱을 지운 건 작년 7월의 일이다. 당시에 나는 네 개의 데이팅 앱을 쓰고 있었다. 원나잇 상대를 만나는 앱 2개와 진지하게 만날 사람을 매칭해주는 앱 2개. 각각 2개씩 사용한 건 매칭 방식과 로컬라이징 수준, 유령 회원의 비율 등에서 차이가 있었기 때문인데, 아무튼 3~4개월 쓰고 나자 이것저것 할 것 없이 전부 한심스러웠다. 나는 남자 회원 백분위 평가 점수에 과하게 집착했고, 일하고 잠자는 시간 외에는 오직 그것만 들여다보고 있었으며, 더 많은 하트를 날리기 위해 일주일에 4만~5만 원을 쓰고 있었다. 결국 세 개의 앱을 탈퇴하고 (원나잇용 앱 하나만 남겨뒀다. 혹시 모르니까) 좀 더 클래식한 방식으로 돌아갔다. 소개팅. 지인들을 졸라 그때부터 여덟아홉 명을 소개받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소개팅에 대한 의욕도 좀 소원해졌다. 연달아 허탕을 치고 보면 그것도 에너지 소모가 꽤 큰 일이라서. 비용도 들고 말이다. 요즘에는 대신 좀 더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하고 있다. 취미 모임 앱의 러닝 클럽에서 괜찮은 사람을 찾아보는 것이다. 호감에는 역시 스포츠만 한 게 없으니까. 공통의 관심사가 있고, 함께 땀을 흘리며, 자연스레 다음 만남도 기약할 수 있다. 아직 뚜렷한 성과를 낸 건 없지만 말이다. 이 원고를 청탁한 에디터는 여기까지 듣다가 말을 끊고 대뜸 물었다.
 
중헌아. 나야 좋은데, 정말 그런 얘기를 써줄 수 있겠냐? 나야 네가 어떤 사람인지 맥락을 알지. 그런데 모르는 사람이 보면 여기저기 쑤셔보고 돌아다니는 36살 중년 남자, 늙은 하이에나로 보일 거 아냐.
 
나는 괜찮다고 답했고, 이렇게 구구절절 개인사를 쓰고 있다. 정말 괜찮았기 때문이다. 한때는 버스 정류장에 서 있기만 해도 옆에 앉은 여자애와 어쩌면 인연이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품게 되는 그런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그런 나이가 아니라는 걸 안다. 지금이 그런 시대가 아니라는 것도. 우연히 스치는 사람들, 그들은 나와 완전히 무관한 존재들이며 인연을 만들기 위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야 할 따름이다. 가능성을 높이고, 시행착오를 겪고, 배우고, 다시 활로를 개척하는 것. 이런 상황에서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따위야 솔직히 뭐 그리 중요한가 싶다.
- 김중헌 | 36 | 회사원 | 서울 관악구



 
9 우리는 지나치게 가까워졌다
2020년 봄의 뉴욕은 내 머릿속에 ‘21세기 출애굽기’ 같은 이미지로 남아 있다. 코로나19 감염자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었고, 트럼프 행정부는 외국인 거주자를 차별하고 내쫓는 정책들을 서슴없이 펼쳤으며, 한시바삐 떠나려는 사람들로 인천행 비행기 티켓은 몇 만 달러를 호가했다. 내가 그곳을 탈출할 수 있었던 것도 5월 말에 다다라서였다. 기적처럼 손에 넣은 2500달러짜리 편도 티켓으로. 그간 뉴욕과 서울을 오가며 살던 내게는 탈출마저도 비극적인 일이었으나, 그나마 다행인 부분이 있다면 내게는 사랑이 있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몇 달 전 사귀기 시작한 여자 친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 난리통 덕분에 비로소 우리는 교제 이래 처음으로 마음껏 붙어 지낼 수 있을 것이었다.
 
실제로 우리는 여한이라도 풀듯 자주 만났다. 주로 우리 집에서. 당시에는 바깥을 돌아다니는 연인을 죄악시하는 시선이 만연했고, 나는 그런 것을 모른 체하는 성격이 못 되었다. 큰마음 먹고 여행을 계획했다가도 지방발 폭발적 감염이 시작되면 취소하고, 호텔을 예약했다가도 인근 대학가 감염 확산이 터지면 취소하고,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다 보니 나중에는 아예 새로운 뭔가를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문제는 내가 차츰, 부정할 수 없는 크기로, 내 공간에 들여놓은 그녀를 불편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일상의 영역에서 지속하는 연애란 마치 이인삼각 달리기 같았으니까. 서로의 발을 한데 묶고 출발선에 설 때까지는 흥분되고 즐거웠으나, 달리다 보니 곧 힘들고 불편하다는 사실밖에 머릿속에 남는 게 없었다. ‘이걸 언제까지 계속해야 하지?’ 나는 너무 금방 넘어졌다. 그리고 그런 내 자신에게 놀랐다. 불편함 앞에 그동안 쌓아온 감정이 너무 빨리 소모되었던 것이다. 발을 한데 묶은 파트너가 그 변화를 눈치 못 챌 리 없었고, 우리는 결국 오래 못 가 헤어졌다.
 
사실 우리는 무엇이 우리의 연애를 지속시키는지 잘 알지 못한다. 물론 두 사람의 마음이 가장 중요한 요소겠으나, 때로 생각도 못 했던 것들이 그 사이 사이를 괴고 있기도 하다는 것을. 예를 들어, 장거리 연애를 성립시키는 요소 중 하나는 ‘멀리 떨어져 볼 수 없다’는 제약 자체일 수도 있다. 제약이 애틋함이 되어 서로의 마음을 더 단단히 만들어주기도 하니까. 어떤 사람에게는, 어떤 연애는 그렇다는 얘기다. 우리는 아마 그런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1만km의 거리를 견디고, 그걸 애틋한 마음으로 치환할 수 있는 연인. 다만 내가 몰랐던 건, 우리가 그 반대는 버티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너무 가깝다’는 간격을 말이다.
- 이재훈 | 36 | 자영업 | 서울 강남구



 
10 존버는 승리한다
‘5년 동안 -100%’. 주식 수익률이냐고? 아니다. 2015년 상경 이후, 나는 내내 싱글이었다. 연애가 뭐 하는 건지도 가물거릴 무렵 아는 언니로부터 소개팅이 들어왔다. ‘괜찮은 후배’와 함께 셋이서 술 한잔하자는, 이른바 ‘술개팅’이었다. 큰 기대는 없었다. 5년 동안 -100%였으니까. 여의도의 한 술집에서 그 ‘괜찮은 후배'를 만났다. 작은 얼굴에 놀라고, 소개팅에 촌스러운 체크무늬 재킷을 입고 나온 센스에 경악했다. 미적지근한 나와 달리 그는 적극적이었다. 그래, 한 번 보고 어찌 모든 걸 판단하겠어. 우리는 다시 만나기로 했다.
 
금요일 저녁의 홍대입구역 3번 출구는 인파로 북적였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 사람들이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그를 찾아내기 쉽지 않았다. 딱 한 번 본 사이인데 눈만 보고 어떻게 알아볼 수가 있으랴.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아! 찾았어요!
 
순간 눈알을 사방으로 굴리던 나에게 포착된 그 남자. 어제 본 그 사람이 맞나 싶었다. 검은색 피케 셔츠에 색이 예쁜 데님 팬츠, 컨버스 운동화까지. 내가 좋아하는 모든 걸 온몸에 휘감은 그가 내 앞에 있었다. 영화 〈늑대의 유혹〉 속 강동원의 첫 등장 신만큼이나 그가 빛나 보였다.
 
레스토랑에서 우리는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눴다. 운동을 막 시작했던 나는 헬스를 꾸준히 하고 있다는 그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물꼬를 튼 대화는 끝이 날 줄을 몰랐다. 이렇게 잘 통하는 사람이었다니! 우리는 다음 날에도, 그 다음 날에도 만났다. 다음 데이트에서는 우리가 연인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촉이 왔다.
 
그러나 운명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다니던 헬스장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는 비보가 들이닥친 것이다. 방문 시간대도 겹치지 않았건만, 어쩌다 검사 후 자가격리 대상에 포함되었다. 스스로가 코로나19에 감염되었을지 모른다는 것보다도, 이제 막 사랑이 시작되려던 차에 2주라는 긴 시간을 만날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이 더 크게 다가왔다. 5년 만에 찾아온 인연이 애매하게 끝나버릴지도 몰랐으니까.
 
아무 일 없을 거예요. 기다릴게요.
 
정작 전화기 너머 그의 목소리는 담담했고, 듬직했다. 다행히 결과는 음성이었고, 서로의 ‘존버’ 끝에 이뤄진 네 번째 데이트 이후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됐다. 코로나19 덕분에(?) 시작부터 좀 더 애틋했던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기억하자. -100%도 한순간 100%가 될 수 있다는걸. 존버의 승리다.
- 도혜민 | 32 | 허프포스트코리아 에디터 | 서울 은평구





11 코로나 확산에 따라 연애를 일시 중단합니다
2019년 가을, 롤러코스터 같던 연애를 끝냈다. 그땐 몰랐지. 그 똥차와의 연애가 인생 마지막 연애가 될 거라고는. 성인이 된 이후 6개월 이상 솔로였던 적이 없었다. 사실,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소개팅이니 미팅이니 합석이니, 기회는 늘 열려 있었다.
 
마지막 연애 후 한동안 애도(?) 기간을 가졌다. 오랜만에 만끽하는 싱글 라이프는 즐거웠다. 즐거움이 외로움으로 변해갈 무렵, 나는 다시 연애 FA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여전히 기회는 충분하다고 믿었다. 그게 2020년 2월의 일. 알다시피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덮친 그때였다. 모두가 ‘집요정’이 됐다.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새로운 개념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는 현저히 줄었다. 우연히 마주치는 모든 타인이 경계해야 할 바이러스 덩어리로 느껴졌다. 옷깃이 스치면 인연이 아닌 감염 경로라는 우려가 앞섰다. 나는 처음으로 FA 계약 체결에 실패했다. 죽어본 적 없던 내 연애 세포는 코로나 앞에서 장렬히 전사했다.
 
싱글 라이프가 1년째 접어들자 속절없이 외로웠다. 크리스마스마저 혼자 보낼 순 없다는 강박에 급히 소개팅을 잡았다. 카톡 프로필 사진 속 남자는 해사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제가 아는 곳이 있는데, 괜찮으세요?
 
그는 미소만큼 밝게 좋다고 답했고, 나는 동네의 파스타 집을 예약했다. 조명이 사기 수준으로 예쁘고, 다양한 수집품들이 있어 편하게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무엇보다도 번화가가 아닌 곳에 위치해 코로나 감염으로부터 안전할 듯했다. 잘 될 것 같았다.
 
[12월 11일 오후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가 방문한 사실이 확인되어 임시 휴업합니다.]
 
나와 소개팅남은 파스타 집 앞에서 서 있었다. 어젯밤 찍힌 부재중 내역이 가게의 예약 취소 안내 전화였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아무 곳에나 들어가서, 아무 메뉴나 시켰다. 마스크를 벗은 그는 프로필 사진만큼 밝게 웃고 있지 않았다.
 
최악의 크리스마스가 될 것이라 예상했던 솔로 크리스마스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트리를 꾸미고, 좋아하는 와인을 마셨다. 혼자인 채로도, 나 자신만으로도 낭만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다니, 오히려 좋았다. 새삼 남을 사랑하기만 했지 나 스스로를 사랑하는 시간엔 소홀했음을 깨달았다. 당분간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정의 내릴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근데 이렇게 마음 먹으면 꼭 새로운 사랑이 나타나던데…. 아무튼 두고 볼 일이다.
- 강예린 | 30 | 회사원 | 서울 관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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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 오성윤/ 김현유/ 박호준/ 윤승현
  • PHOTO 게티이미지스 코리아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