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번역의 시대에 인간 번역가가 살아남는 법

기계번역 시대에 인간 번역가가 살아남는 법.

BYESQUIRE2021.03.11
 
 

기계번역 시대에 인간 번역가가 살아남는 법

 
미래 사회에서 사라질 직업 얘기가 나오면 심심찮게 등장하는 단골손님이 바로 번역가다. 사실 그런 이야기판이 벌어져도 막상 나 같은 번역가는 그날그날 해치울 일들이 있기에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끼어들고 자시고 할 겨를이 별로 없다. 게다가 미래를 내다보기엔 세상이 하루하루 너무 빠르게 바뀌고 있지 않은가. 이제 인공지능이 못하는 업무는 점점 줄어들고 있으니 번역가뿐 아니라 어느 직업이든 위태롭기는 매일반이다. 그럼에도 번역의 앞날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따지고 보면 누가 하든 예측이 제대로 들어맞는 일은 드물다. 운수가 좋으면 못해도 하나쯤 얻어걸릴 테니 넓게 저인망을 던지곤 한다.
 
복사기가 처음 나왔을 때 출판업계는 벌벌 떨었지만 사람들이 책을 안 사지는 않았다. 텔레비전이 나왔다고 라디오가 죽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전자책이 종이책을 송두리째 대체하지는 않겠고, 어쩌면 오디오북의 자리까지 함께 커질지 모른다. 물론 컴퓨터가 많은 영역에서 필수가 되면서 일어난 변화는 매우 컸다. 인터넷 덕에 생기거나 그 탓에 사라진 것도 무수히 많다. 번역 상황도 인터넷 이전 시대와 지금이 판이하게 다르다. 공간적 제약을 뛰어넘고 수많은 자료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시대다. 그렇다면 기계번역의 발전 탓에 번역가들의 일자리가 줄어들까? 단순한 문서 번역은 이제 굳이 사람 손을 거치지 않아도 되지만, 세상에는 온갖 종류의 텍스트가 있다. 인터넷이 처음 생길 때 그랬듯 과거와 양상이 달라지며 오히려 새로운 영역도 늘었다.
 
인터넷으로 생산되는 텍스트의 양이 엄청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게다가 과거에 비해 서로 교류하는 언어의 쌍은 더욱 늘었다. 그 모든 것을 번역하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절대량은 늘어났다. 이걸 모두 기계번역이 홀로 감당하며 글에서 기계 기름 냄새가 아닌 사람 냄새가 나도록 그럴싸하게 꾸미려다간 엔진에 불이 붙을 것이다. 번역의 문화적 맥락을 이해하고 업무를 진행하고 품질을 평가하고 관리하는 영역엔 결국 인간의 손이 닿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도 혹시 기존 일거리가 줄어들까 봐 걱정하는 번역가라면 다른 식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다. 수요가 많은 주요 언어들은 더더욱 기계번역의 도움을 많이 받을 테니 유럽이나 동아시아 언어보다 덜 번역되는 동남아시아, 인도, 중동, 아프리카 등지의 언어를 익히는 것이다. 물론 내가 이 말에 책임을 질 수는 없다. 실은 한때 제3세계 언어와 문학이 해방 또는 발전되면서 문학 번역량이 늘어날 거라는 장밋빛 전망도 있었다. 탈중심적 문화 다양성이 진행되리란 예측으로 독일 문예학자 프리트마르 아펠의 1983년 초판 문학 번역 입문서에 나온 이야기다. 다만 2003년 개정판에는 그 부분이 빠졌다. 초판 이후 20년을 보니 그 예측이 그다지 들어맞지 않았다는 판단이 섰을 것이다. 개정판 이후 17년 넘게 지난 지금도 아직은 비슷하다.
 
현재 인구가 가장 빨리 느는 동남아시아, 인도, 아프리카 등지의 언어들은 당분간도 특히 문학 텍스트 생산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문화 다양성을 추구하는 지금도 이들 지역의 작가나 작품은 도통 안 떠오른다. 좋든 싫든 그만큼 유럽 언어의 텍스트 축적은 엄청나고 동아시아 언어가 그나마 얼추 쫓아가는 형국이다. 아프리카 출신 작가나 예술가는 유럽 종주국 언어의 그늘이 매우 짙고, 유럽이나 미국서 태어났거나 활동하는 이의 영향력이 크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자.  K팝과 K드라마가 이렇게까지 발흥하리라고 과연 누가 예상했을까? 그런 의미에서, 유선전화와 PC를 건너뛰고 바로 휴대폰을 쓴 아프리카인들이 그들 고유의 언어로 텍스트 생산에서 또 다른 창의성을 발휘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단순히 기계번역이 아직은 상대적으로 덜 다루는 언어들이라고 해서 덤벼들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미 구글 번역이 제공하는 언어는 100여 개를 훌쩍 넘었고, 웬만한 사람들이 듣도 보도 못한 언어도 많다. 맨날 휴대폰만 멍하니 쳐다보는 인간들보다 머신러닝으로 학습하는 기계가 인간의 언어를 잘 지킬 거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인간이 기계의 도움으로 새로운 언어들을 익혀 지금보다도 훨씬 더 풍성한 문화 교류의 장이 펼쳐질 것이라고 순진하게 점쳐보고 싶다.
 
분야를 막론하고 아예 인간이 쓸모없어진다면 말짱 꽝이겠지만, 앞으로는 번역가도 기계번역 관련 지식 또는 이를 응용할 만한 기술이라도 갖추면 유리할 것이다. 기계번역에 인간번역이 자리를 내준다기보다는 기계번역 지식을 갖춘 인간이 자리를 차지할 것도 같다. 단순한 포스트에디팅을 넘어서 인공번역과 인간번역의 공생을 진지하게 생각해본다면 오히려 뜻밖에 언어문화적 다양성도 꽃피지 않을까.
 
인간번역과 기계번역을 제로섬게임으로 여겨 기계의 일이 늘면 인간의 일이 줄어든다고 넘겨짚기보다는 번역의 파이가 더 커질 때를 대비하는 게 나을 것이다. 영어가 사실상 유일한 세계 공통어 구실을 한다고 해서 다른 언어들을 배울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영어야 누구나 필수로 배운다고 쳐도 모두가 영어를 가장 잘할 필요도 없다. 영어는 그냥저냥 해도 일본어나 중국어를 더 잘하든지 독일어나 프랑스어를, 혹은 베트남어나 인도네시아어를 더 잘할 수도 있다.
 
중등교육 과정에서 제3외국어나 제4외국어를 배우도록 학생들의 선택지를 늘릴 수도 있다. 번역기나 통역기의 쓰임이 날로 높아지는 가운데 한가한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으나, 인간의 언어가 아예 기계에 종속된다면 몰라도 인간이 살아 있다면 여태 그랬듯 앞으로도 쭉 언어를 창조적으로 변용시킬 것이다. 물론 기계가 고장 날 때도 대비해야겠고. 인간은 기계를 써먹더라도 언어도 써먹을 테니 외국어들을 배우면 앞으로도 써먹을 데가 있을 것이다. 앞으로 더 많은 언어끼리 문화적 자산을 주고받는다면 중재자로서 번역가의 역할은 더 커질 것이다.
 
온전히 기계가 만든 작품을 두고 나쁘다고 욕을 하거나 좋다고 칭찬을 한들, 허공에 대고 소리치는 기분이 든다. 갈구는 것도 치켜세우는 것도 사람한테 해야 제맛이다. 인간인 우리가, 설령 완벽하게 만들어졌더라도 ‘기계’의 작품을 보고 감흥을 느낄까? 우리가 바라는 것은 과연 존재할지 의심스러운 단 하나의 완벽보다는 여러 가지 완벽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 완벽한 언어가 없듯이 완벽한 번역도 없다. 인간이 앞으로도 존속한다면 불완전한 언어를 끝없이 갈고닦는 불완전한 번역가의 모습에 매료될 것이다.
 
Who's the writer?
신견식은 저술가이자 번역가다. 〈콩글리시 찬가〉 〈언어의 우주에서 유쾌하게 항해하는 법〉을 썼고, 〈불안한 남자〉 〈다시 쓸 수 있을까〉 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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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 김현유
  • WRITER 신견식
  • illustrator 이은호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