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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기부전 유튜버 진용진'을 다루는 적절한 방법

진용진이 누군지도 몰랐다. 평소라면 클릭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발기부전’이라는 단어가 훅이었다.

BYESQUIRE2021.04.25
 
 

‘발기부전 유튜버 진용진’을 다루는 적절한 방법

 
"진용진, 여성 착취 논란에 ‘3년간 발기부전’ 해명".
내가 이 기사를 클릭한 건 우연이 아니었다. 선택이었다. 진용진이 누군지도 몰랐다. 평소라면 클릭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발기부전’이라는 단어가 훅이었다. 어떤 유명한 남자가 공개적으로 발기부전을 고백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뉴스감이다. 여성을 착취했다는 논란이 벌어지자 발기부전이었다고 고백한다면 그건 정말이지 오늘의 언론사 트래픽을 책임지는 뉴스감이다. 나는 여성을 착취했다는 수많은 논란을 지난 몇 년간 봐왔다. 혐의를 벗기 위해 ‘발기부전’이라는 키워드를 내미는 건 처음 봤다. 코너에 몰린 쥐가 마지막으로 고양이 코를 물듯이 세상에 마지막 카드를 던진 것이다. 이건 그에게 득일까 실일까를 고민하기 전에 도대체 진용진이 누구이고 이게 무슨 사건인지 짧게 설명을 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당신도 진용진이 누군지 모를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진용진은 200만 명 이상이 구독하는 유튜버다. 구독자가 많은 유튜버들이 그렇듯이 콘텐츠를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것을 알려드림'이라는 코너가 가장 인기다. 진용진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음지의 분야들을 직접 몸으로 파고든다. 이를테면 그는 성매매범이나 ‘문신돼지국밥충’(진용진의 표현이다)들을 직접 만나서 인터뷰까지 해낸다. 어둠의 ‘그것이 알고 싶다'라고 할 만하다. 진용진의 논란은 또 다른 유튜버 카광의 폭로로 시작됐다. 카광이 누구냐고? 그는 약 12만 명의 구독자를 지닌 유튜버다. 몸캠 피싱을 하는 등 과거가 밝혀지자 한동안 유튜브를 그만뒀다가 지난해 재개했다. 특기는 여성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것이다. 자, 이제 당신은 진용진과 카광이 누구인지 대충 알게 됐다(고 믿자). 문제는 다음이다. 카광은 ‘진용진의 실체'라는 영상을 업로드한다. 진용진이 여성을 착취하고 가스라이팅을 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그 여성은 진용진을 사랑했다. 성적인 관계를 가졌다. 돈까지 빌려줬다. 진용진은 반박에 나섰다. 연애 자체를 한 적이 없으며 당연히 성적인 관계도 없었다는 해명이다. 진용진이 반박에 나서자 여성이 직접 등판을 했다. 유튜버 이여름이다. 그는 네 번 정도 진용진과 관계를 가졌다고 말했다. 진용진은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발기부전을 고백했다. 그 뒤로 논란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는 직접 찾아보시라. 역시 이런 썰을 가장 잘 정리한 사이트는 ‘나무위키’다.
 
문제는 내가 진용진에 대한 기사를 처음으로 본 건 유튜브도 아니고 나무위키도 아닌 한국 최대의 미디어라는 사실이다. 나는 대체 왜 유명 유튜버가 발기부전이라는 사실을 한국 최대 매체의 기사로 알아야만 하는가. 나는 친구가 발기부전이라는 사실도 알고 싶지 않다. 그건 친구들끼리도 알 필요가 없는 과도한 정보다. 매체들은 진용진과 이여름의 다툼을 마치 오세훈과 박영선의 대결이라도 관전하듯이 기사로 만들어 유포했다. 어디에서도 ‘발기부전'이라는 단어는 빠지지 않았다. 트래픽이 나오기 때문이다. 트래픽이 많이 나오면 돈이 많이 벌린다. 고백하자면 나 역시도 이런 트래픽 전쟁의 원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크리에이터'라는 말을 처음 들은 것은 아마도 2015년 즈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갓 론칭한 뉴미디어에서 일하던 나는 한 인터넷 서비스 담당자를 만났다. 그는 “저희에게 많은 크리에이터가 있는데 함께 일을 같이해보면 어떨까 싶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어리둥절했다. 크리에이터가 뭐지? 그들은 ‘유튜버'였다. 유튜버라는 말 자체가 그렇게 널리 통용되던 시절도 아니다. 그러니 나는 유튜버란 10대들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연예인이라고 생각했다. 그 문화가 오버그라운드로 올라올 수 있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그렇다. 이건 순전히 내가 라떼이기 때문이다.
 
몇 년 뒤 아침 기획 회의를 하는데 기자들이 유튜버 이야기를 슬금슬금 발제하기 시작했다. “선배 양팡이 이런 일을 했대요” “선배 양띵이 이런 말을 했어요". 양팡은 누구고 양띵은 누구인가. 새로 데뷔한 자매 듀오인가? 혼란스러웠다. 유튜버라고 했다. 유튜버라고? 이름도 모르는 유튜버들에 대한 기사를 과연 써야 하는 것인가? 결심을 해야만 했다. 어차피 외신들도 ‘퓨디파이'나 ‘로건 폴’ 같은 세계적인 유튜버들이 벌인 기행에 대해서 기사를 쓰기 시작하던 시절이었다. 이것이 새로운 흐름이라면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내가 일하던 매체에서도 양팡과 양띵의 기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이름도 외우지 못하던 그들에 대한 기사는 엄청난 트래픽을 기록했다. 아프리카TV에서 활동하는 모 BJ가 특정 여성 BJ를 보면서 자위행위를 했다고 말한 기사는 폭발적이었다. 사실 이 기사는 내 매체에서 쓰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매체들이 이 사건을 두고 벌어들이는 트래픽은 가히 놀라웠다. 결국 우리는 뒤늦게 그 BJ의 사과를 기사로 내보냈다. 트래픽은 반응했다. 과할 정도로 반응했다. 내가 그 트래픽에 만족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여기서 질문을 던져보자. 매체는 대체 어디까지 기사로 써야 하고 어디서부터 그만둬야 하는가. 연예인 기사는 괜찮고 유튜버 기사는 안 괜찮은가? 연예인과 비연예인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이 글을 쓰는 와중에 놀라운 연예인 폭로 기사가 터졌다. 여성 배우가 사귀던 남성 배우를 사적인 감정으로 조종해서 드라마를 엉망으로 만들었다는 기사다. 나는 잠깐 고민했다. 조종? 누가 누구를 조종하지? 그렇다면 그 남자는 여자 친구가 키보드에 입력하는 대로 움직이는 일종의 인공지능 로봇인가? 무엇보다도 나는 그 매체가 인용한 카톡의 양이 영 신경 쓰였다. 사람과 사람은 항상 카톡을 주고받는다. 연인들이라면 시시각각 카톡을 주고받을 것이다. 두 사람이 사랑한 시간만큼 많은 양의 카톡이 존재할 것이다. 두 사람의 관계는 그 모든 카톡이다. 주고받은 카톡의 아주 일부분만을 도려내어 폭로하는 것으로 그들의 관계를 정의할 수는 없다. 그것이 한 인간을 무너뜨릴 법적 증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 모두는 우리와 사귀었다 헤어진 사람들에게 조금씩은 미친X였다. 우리는 서로를 아주 약간은 가스라이팅하며 살아왔다.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유튜버들의 폭로전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제시하는 증거는 경찰의 증거가 아니다. 그들은 스스로 ‘증거'라고 믿는 것을 아주 조금씩 까발리며 동영상을 업로드한다. 수천 개의 댓글이 달린다. 100만 뷰가 나온다. 다른 유튜버들이 달려들어 ‘해석' 동영상을 내놓는다. 매체들은 100만 뷰를 꿈꾸며 그 동영상들을 요약해서 기사화한다. ‘여성 착취' ‘가스라이팅' ‘발기부전' 등 클릭을 유도할 법한 단어들을 얹는다. 개인의 영역에서 끝날 수 있는 일은 이제 수백만 명에게 도달하는 기사가 된다. 모두가 모두를 폭로하는 시대다. ‘심판' ‘증거'라는 제목을 붙여 대중에게 판관이 되어주길 갈구한다. 개인의 영역에서 끝나야 할 일이 관계 바깥으로 기어 나온다. 불행히도 이런 대중 심판 시대는 쉬이 끝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항상 남을 추정한다. 재단한다. 판단한다. 우리 본성의 악한 악마다. 매체는 당신 본성을 안다. 당신이 그걸 클릭할 거라는 사실을 안다. 이제 당신이 할 일은 진용진, 카광, 이여름이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것뿐이다.
 
발기부전은 다행히 치료가 된다. 최근 의학 뉴스를 찾아보니 치료제를 매일 저용량으로 꾸준히 복용함으로써 근원적으로 치료한 케이스들이 있다고 한다. 나는 〈에스콰이어〉가 이 칼럼의 제목을 ‘발기부전을 겪는 유튜버 진용진에게 하는 제안’이라고 불이길 바란다. 제안이라고 할 것은 딱히 이 칼럼에 없다. 다만 발기부전이라는 단어를 기사의 제목에 집어넣는 순간 에스콰이어 온라인의 트래픽은 폭발할 것이다. 장담한다. 하지만 〈에스콰이어〉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이것 또한 장담한다.
 

 
Who's the writer?
김도훈은 글을 쓰는 사람이다. 〈씨네21〉 과 〈허프포스트〉에서 일했고 에세이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