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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NFT는 예술의 신세계를 열어줄 게임 체인저일까?

NFT라는 뜨거운 감자.

BYESQUIRE2021.04.29
 
 

NFT라는 뜨거운 감자

 
뱅크시(Banksy)의 그림을 불에 태웠다고? 또 시작이구나 싶었다. 그림이든 돈이든 뭘 태웠다는 뉴스라면 이제 무덤덤하게 반응할 수 있을 정도의 면역력은 생긴 모양이었다. 별의별 퍼포먼스와 쇼에 무뎌졌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지만. 그런데 이번엔 작품에 불을 지른 사람이 작가가 아니란다. 훑어보니 ‘Burnt Banksy'(불탄 뱅크시)라는 유튜브 계정에서 뱅크시의 그림 ‘멍청이들’을 불에 태웠다. 그러나 이 작품은 판매를 위해 이미 코드화되어 가상의 공간으로 옮겨졌으며, 그 가상 공간의 이미지가 경매를 통해 약 4억원에 낙찰됐다는 얘기다. 좀 더 살펴보니 작품의 실물을 가상의 공간으로 코팅해 옮기는 인젝티브 프로토콜(Injective Protocol)이라는 회사의 이름과 NFT(Non-Fungible Token, 대체 불가 토큰)라는 기술이 튀어나왔다. 예술 행위도 아니고, 사회적 대의를 위해서도 아니라 “물리적 원본이 남아 있을 경우 NFT화한 작품의 가치가 그것에 종속되기 때문”에 없앴다고 한다. 작품을 샀다고 저작권이 자동으로 따라오는 게 아닌데 마음대로 저래도 괜찮나? 무엇보다 그 ‘토큰’이라는 게 뭔데 이 난리를 피우는 건가 싶었다. 대체 이게 다 무슨 소리람? 당연히 떠올라야 할 의문이다.
 
NFT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가상 자산의 한 종류지만, 각 토큰에 매겨진 고윳값이 서로 달라 1:1 교환이 성립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가상 ‘화폐’로 거래가 가능한 비트코인 등과는 성격이 다르다. NFT는 디지털 세계에 존재하는 자산에 실물 가치를 부여하고 보증하며, 일종의 소유권을 인증해주는 ‘인증서’에 가깝다. 이때 자산이란 이미지, 영상, 음악, 텍스트, 게임 등 무엇이든 디지털 파일 형태로 옮겨진 것이다. 그 소유권(토큰)을 블록체인상에 저장해 위·변조를 막고 이더(Ether)라는 화폐단위로 마켓 플레이스에서 거래할 수도 있다. 거래가 이뤄진 후에도 콘텐츠는 누구나 보고 듣고 즐길 수 있다. 결국 사고파는 것은 창작물의 소유권이자 그것이 원본임을 ‘증명’할 수 있는 컴퓨터 파일이다.
 
난해한 미학 용어보다 더 난감한 NFT 관련 글들을 읽으며 겨우 그 개념을 이해했을 때쯤, ‘NFT 아트’라는 단어와 마주했다. 분명 익숙한 두 단어의 조합인데 미궁에 빠진 듯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이건 또 뭔가. 미디어 아트처럼 하나의 장르가 되겠다는 걸까, 보증서가 아니라 자체적으로 작품이 된다는 걸까? 잠시 아득해진 정신을 붙잡고 내용을 살펴보니, 디지털 아트의 일종으로 블록체인을 통해 유일성을 담보하는 작품을 일컫는 ‘크립토 아트(Crypto Art)’를 뭉뚱그려 ‘NFT 아트’라고 표현하는 모양이었다.
 
개념에 대한 이해가 약간은 됐으나 여전히 온갖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혹시 속 시원한 답을 얻을 수 있을까 싶어 작가, 큐레이터, 갤러리스트 등 주변의 미술인들을 붙잡고 물었다. “NFT라고 들어보셨어요?” 하지만 똑 떨어지는 대답 대신 질문이 되돌아왔다. “네! 들어는 봤는데 그게 도대체 뭐 하는 거예요?” 분명한 건 그들이 이 새로운 용어에 두 종류의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터무니없는 소리”라는 단호한 평가절하 또는 “좀 더 지켜봐야 하지 않겠냐”는 조심스러운 유보. 각각의 판단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미술시장 내부가 얼마나 보수적인데 그런 게 되겠냐는 의심과, 결과적으로 전통적인 영역에 있는 작품들도 어떤 변화를 꾀할지 모르므로 관망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었다. 동시에 소셜 미디어에는 NFT 토큰을 만드는 과정인 ‘민팅’에 성공했다는 신진 작가들의 홍보가 올라왔다. 데이미언 허스트(Damien Hirst), 우르스 피셔(Urs Fischer) 등 유명 작가를 비롯해 쾨니히 갤러리(Konig Galerie)와 페이스 갤러리(Pace Gallery) 등 굵직한 글로벌 갤러리가 NFT를 언급하는 피드가 눈에 띄게 부쩍 늘었다. 세계 3대 미술품 경매사인 소더비(Sotheby's), 크리스티(Christie’s), 필립스(Phillips)가 나란히 NFT 마켓에 뛰어들었고, 한국에서도 서울옥션이 이미 관련 사업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이쯤 되니 NFT는 현재적 사태이고 현상임이 틀림없어 보이긴 한다.
 
지난 3월, 크리스티 경매에서 6930만 달러에 낙찰된 ‘매일: 첫 5000일(Everydays: The First 5000 Days)’은 지금 이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비플(Beeple)이라는 작가가 2007년 5월 1일부터 2021년 1월 7일까지 매일의 기록을 담은 디지털 이미지를 콜라주한 고해상, 고용량의 JPEG 파일이 작품의 본체다. 이 작가의 본명은 마이크 윙클만으로,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애니메이터로 팝 스타들의 콘서트 비주얼을 만든 인물이다. 1981년생인 그는 등장과 함께 미술계를 혼란에 빠트렸는데, 일단은 제프 쿤스(Jeff Koons)와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에 이어 가장 비싸게 작품을 판 ‘생존 작가’ 3위라는 타이틀을 차지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해당 경매가 논란이 된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이 작품의 승부수가 주제이든, 들인 시간이든, 이도 저도 아니라 그래픽 효과인지는 모르겠지만 취향을 뛰어넘는 예술로서의 가치를 담보하는 작업인가에 대한 동의를 얻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다. 게다가 비플의 작품을 낙찰받은 이는 가상화폐 투자회사 대표인 것으로 드러났다. 앞서 뱅크시의 작품을 사서 잿더미로 만들어버린 무리가 블록체인 회사 관계자라는 사실도 어쩐지 수상하지 않은가? 그들이 자가 발전시킨 천문학적인 액수는 과연 납득할 만한 것일까? 돈과 아트, 어디에 강세를 찍느냐에 따라 의미는 완전히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NFT가 예술 창작, 향유 및 소유의 신세계를 여는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는 호들갑 역시 도통 와닿지 않는다. 물론 기존에 디지털 매체와 관련한 작업에 매진하던 작가들에겐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시류에 맞춰 갑자기 NFT용으로 기획한 작품들이 쏟아진다고 해서 신뢰를 얻을지도 의문이다. NFT는 미술계 바깥에서 갑자기 불어닥친 허리케인 같다. 눈에 보이는 것은 실체를 모르는 몇몇 현상뿐이다. 아직 담론과 토론은 없고, 낯선 이름과 숫자만이 가득하다. 예술이 언제나 스스로를 갱신하려 했던 무수한 시도들에 NFT가 유의미한 변화를 가져올지 묻는 목소리는 너무 작아 거의 들리지 않는다.
 
제대로 이해했다면, NFT는 작품의 ‘복붙’과 무한 스트리밍을 원천 봉쇄할 수 없다. 소유물이 진품이라고 보장해도 원본 파일은 유실의 위험으로부터 지켜주지 못한다. 지식재산권 범위에서도 논란의 여지가 남아 있다. 이슈마다 비관론과 낙관론이 공존할 수밖에 없지만 어떤 입장을 취하기가 애매할 만큼 NFT의 정체는 아직까지 충분히 밝혀지지 않은 셈이다.
 
솔직히 털어놓자면 유무형의 문화를 ‘자산’화해서 ‘거래’하는 특정 방식과, 거기에 관련된 자금의 규모로 사람들이 예술과 맺는 관계를 ‘측정’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사고방식을 언제까지 견뎌야 할지 버거울 때가 있다. 한 겹의 욕망과 그것을 그럴듯하게 만드는 두 겹의 피상적인 포장들, 예술이 그런 일을 위해 동원될 때 나는 예술이 좀 가엾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NFT라는 허리케인이 미술계를 쑥대밭으로 만들 만한 파괴력을 가졌을지, 요란한 예보와는 달리 조용히 빗겨 갈지 아무도 모른다. 당장의 재난만으로도 힘든 우리인 만큼, NFT는 1년 후쯤 다시 보는 게 좋지 않을까?
 
QR코드를 스마트폰 사진기로 인식하면 비플의 작품 ‘매일: 첫 5000일 Everydays: The First 5000 Days’이 업로드되어 있는 크리스티의 사이트로 곧바로 연결된다.

QR코드를 스마트폰 사진기로 인식하면 비플의 작품 ‘매일: 첫 5000일 Everydays: The First 5000 Days’이 업로드되어 있는 크리스티의 사이트로 곧바로 연결된다.

 

 
Who's the writer?
이가진은 동시대 미술 현장을 관찰하고 글을 쓴다. 서울과 파리를 오가며 다양한 매체에 기고했다. 예술과 가까워지고 멀어지기를 반복하지만 ‘그래도 예술’이라는 생각으로 돌아오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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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 김현유
  • Illustrator 이은호
  • WRITER 이가진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