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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콰이어> 에디터들이 뽑은 이달의 책

중쇄를 거듭해 더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하는 책들을 <에스콰이어> 에디터들이 골랐다.

BYESQUIRE2021.05.03
 
 

More Copies, Please!

 
 

예술과 풍경

마틴 게이퍼드/ 을유문화사

마틴 게이퍼드/ 을유문화사

사진으로만 보던 ‘모나리자’를 실제로 봤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뭐야, 작네’였다. 강의실 빔 프로젝터 속 모나리자는 창백하고 눈썹이 없는 여자였을 뿐이지만, 루브르에 걸린 모나리자는 묘한 기품과 우아함이 느껴지는 귀부인처럼 보였다. 그저 기분 탓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책의 저자 마틴 게이퍼드는 “예술 작품 감상은 작품을 ‘두 눈에 직접 담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말한다. 책은 그가 예술품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 25년에 걸쳐 방문한 19개 장소에 대한 이야기다. ‘현대 추상 조각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콘스탄틴 브랑쿠시의 ‘끝없는 기둥’을 보기 위해 루마니아의 시골 마을까지 산 넘고 물 건너 가는 식이다. 오랜 미술평론 경험으로 얻은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난해하게 느껴질 법한 예술 작품을 쉽게 풀어 설명해준다. 재밌는 건 여정 중 접한 다양한 삶의 모습이다. 종일 툴툴거리는 어느 인도인 운전기사와 자꾸 신발을 벗으라고 하는 일본의 어느 미술관이 그렇다. 데이비드 호크니, 게르하르트 리히터 등 범접하기 어려운 유명 예술가와 나눈 시시콜콜한 수다도 읽는 재미를 돋운다.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책에 소개된 곳 중 하나로 여름휴가를 떠났을 지도 모르겠다. 박호준



 

베들레헴을 향해 웅크리다

조앤 디디온 / 돌베개

조앤 디디온 / 돌베개

조앤 디디온은 유독 국내에 덜 알려진 작가다. 소설, 수필, 보도 기사, 영화, 연극 등의 분야에 남긴 넓고 깊은 족적이나 80세에 셀린느의 뮤즈로 발탁된 특유의 캐릭터, 오바마 전 대통령으로부터 내셔널 휴머니티스 메달까지 받은 명망에 비하면. 넷플릭스에 올라와 있는 다큐멘터리 〈조앤 디디온의 초상〉이 그녀의 일대기와 천재성에 대해 꽤 성실히 다루긴 하지만 아무래도 그걸로는 부족하다. 조앤 디디온은 글로 세상을 놀라게 한 사람인데 국내 출간된 그녀의 책은 말년에 쓴 두 권이 전부이며 그마저 절판된 상태이니까. 〈베들레헴을 향해 웅크리다〉는 1968년에 출간된 그녀의 첫 논픽션이다. 잡지에 게재한 초기 기사와 에세이를 모은 선집인데, 읽다 보면 당대의 평가가 여전히 유효함을 알 수 있다. ‘소설만큼이나 유연하고 변통성 있는 새로운 방식으로 자신이 살아온 시대의 역사를 담았다.’ 히피 라이프스타일의 실체, 배우 존 웨인에 대한 회고, 자존감에 대한 단상, 고향인 새크라멘토 등 폭넓은 주제의 글이 느슨하게 묶여 있지만 덕분에 당대의 사회상과 그것을 대하는 한 인간의 태도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 책을 덮을 때면 이것이 그녀의 젊은 시절 ‘일부’일 뿐이라는 사실, 더 많은 저작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못내 설레기도 할 테고 말이다. 오성윤
 

 

철학의 욕조를 떠도는 과학의 오리 인형 

서동욱 엮음 / 사이언스북스

서동욱 엮음 / 사이언스북스

까마득한 옛날, 신입생 OT에서 있었던 일이다. 누군가 부모님 때문에 경영대에 입학하긴 했지만 사실 철학을 전공하고 싶었다는 말을 했다. “그럼 전과하든가. 취업은 너 알아서 하고.” 선배가 쏘아붙였고 그 아이는 조용해졌다. 그걸 보던 한 새내기는 깨달음을 얻었다. 철학적 성찰이란 밥벌이 앞에서 하등 쓸모없구나!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렇지 않았다. 가끔은 일 때문에 철학을 생각해야 할 때가 있다. 이번 호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한 ‘Ethics on the Edge’ 섹션을 위해서였다. 최첨단 윤리의 쟁점을 철학자와 함께 고민한다는 내용인데, 담당 에디터로서 오랜만에 철학서 한 권쯤은 읽어봐야겠다 싶었다. 책을 엮은 서동욱 교수는 근대 철학을 ‘욕조를 가득 채운 물’에, 과학은 ‘그 물 위를 떠도는 오리 인형’에 비유했다. 오리 인형이 부력을 얻어야 자유롭게 떠다닐 수 있듯, 과학은 과학 아닌 철학을 만나 더 멀리 퍼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귀여운 커버에 숨겨진 의미다. 쉬운 비유와 더불어 강연록을 바탕으로 한 9개의 챕터가 이해를 돕는데, 철학과 과학에 거리두기를 해왔더라도 나름 머릿속에 뭔가 들어오는 기분은 들 수 있을 것이다. Scientia est potential, 아는 만큼 보이는 건 덤이다. 김현유
 

 

식물이라는 우주

안희경 / 시공사

안희경 / 시공사

영국의 어느 지역 담벼락에서나 흔하게 자라는 작은 잡초가 있다. 냉이와 비슷하게 생겨서 혼동을 일으키는 이 식물의 이름은 ‘애기장대’다. 특별한 맛과 향도 없고, 쓸 데라곤 전혀 없어 보이는 이 풀이 처음 주목을 받은 건 20세기에 들어와서다. 독일의 식물학자 프리드리히 라이바흐가 식물학적 현상을 연구하는 데 적합하다며 애기장대 수집과 연구에 나서기 시작했다. 작은 만큼 좁은 연구실에서 많이 키우기에 적합하고, 씨가 많이 맺혀 출현 빈도가 적은 돌연변이를 찾아내기에 적합하고, 자가수정을 하기에 유전적으로 동일한 개체를 유지하기가 쉬웠다. 이 애기장대는 라이바흐를 거치고, 헝가리 출신 과학자 조지 레디를 거치고, 크리스와 쇼나 서머빌 부부를 거쳐, 급기야 ‘식물계의 초파리’라는 명성을 얻었다. 현재는 ‘다국적애기장대운영위원회’에서 활발하게 연례 보고서를 발표하고 있을 정도로 식물계의 슈퍼스타다. 분자 단위로 식물을 연구하는 식물학자이자 〈식물이라는 우주〉의 저자인 안희경 역시 애기장대로 식물적 현상을 연구한다. 저자가 애기장대를 중심에 두고, 분자의 단위에서 식물의 우주가 어떤 과정으로 움직이는지, 그 연구는 또 어떻게 진행되어왔는지에 대해 뚜벅뚜벅 쓴 글을 보자면 ‘예수의 계보’를 쓴 마태의 결연함이 느껴질 정도다. 박세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