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리얼돌뿐만 아니라 리얼돌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도 거부감이 드는 나, 예민한가요?

없던 윤리가 매일 새롭게 태어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에스콰이어 코리아>는 지금까지 크게 고민하지 않았던 최첨단 윤리의 쟁점을 철학자와 함께 고민해보려 한다.

BYESQUIRE2021.05.25
 
 

Ethics on the Edge

 
Q 평범한 30대 남성입니다. 최근 들어 ‘리얼돌 체험방’이 학교 근처나 주택가에 생겨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는 기사를 봤는데, 굉장히 거북스럽더군요. 사람과 흡사하게 만든 사물로 성욕을 해소한다는 점에서 성매매나 유사하게 느껴졌어요. 그런데 한 회사 후배는 “똑같이 도구를 이용해 자위하는 건데, 텐가 등의 성인용품과 뭐가 다르냐”고 하더군요. 캐나다의 한 로봇 성매매 업소는 “돈으로 사람을 사는 성매매를 근절하자”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고요. 리얼돌이 차라리 성매매보다 윤리적이라는 표현이겠죠. 그럼에도 리얼돌 체험방에 가는 사람과 가까이 지내고 싶지 않고, 심지어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리얼돌 체험방에 간다는 사실만으로도 불편한 저. 너무 예민한 건가요?
 
A 앞으로 상당히 많은 사람이 부딪혀야 할 문제 중 하나로 ‘리얼돌’을 꼽을 수 있을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불편하게 느끼거나 심지어 화를 내는 문제지만, 거꾸로 어떤 사람들은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실제 여러 문제들이 얽혀 있는 갈등입니다. 우선 성매매를 둘러싼 갈등이 있고, 많든 적든 어쩔 수 없이 젠더 갈등이 관여되어 있으며, 더 나아가면 인간과 인공지능 로봇을 구별하는 갈등이 교차되지요.
 
우선 성매매를 둘러싼 갈등이 있는데, 그 문제에 대해서는 여러 형태의 태도가 가능합니다. 여성의 기본권이 훼손된다며 분노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물론 기본권은 중요하지요. 그러나 기본권만으로 사회의 여러 복합적인 갈등이나 문제를 파악하거나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실정법으로 성매매를 금지하는 나라도 있지만, 성 노동(Sex Work)을 최소한 불법으로 여기지 않거나 합법적인 노동으로 여기는 나라도 있습니다. 그런 나라에서는 인신의 착취나 노동의 불법성만을 형법의 대상으로 삼지요. 성매매를 무조건 여성의 성이나 기본권을 착취하는 나쁜 일이라고 여긴다면, 성 노동을 하는 여성들의 권리를 아예 부정하게 되는 셈입니다. 이런 다양한 태도의 차이와 더불어 실태의 괴리를 생각하면, 성매매를 불법으로 삼고 성을 사는 사람뿐 아니라 파는 사람 모두를 범죄자로 취급한다고 해서 그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다음으로 성매매의 문제와 결합돼 있는 젠더 갈등의 문제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 사회에서는 여성이 남성보다 성매매뿐 아니라 리얼돌을 부정적으로 본다고 여겨집니다. 성매매가 불법이 되며 그런 분위기는 더 강화되었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러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성매매를 하는 여성의 권리가 최소한으로 인정되어야 한다면, 이것은 단순히 젠더 갈등으로만 볼 문제는 아닙니다. 게다가 남자들도 리얼돌을 불편하게 여기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사연을 보내주신 분처럼 불편하게 여기는 남자도 적지 않고, 상당수 남자는 그게 멋있는 일은 전혀 아니라고 생각할 겁니다. 다만 그것을 불법으로 취급해야 한다고 선뜻 여기지 않을 뿐입니다. 그렇기에 리얼돌 문제에 대해 여자는 부정적이고 남자는 긍정적이라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젠더 문제가 어느 정도 개입되어 있지만, 아주 단순하게 남녀의 경계선을 따라 그것에 대한 태도가 결정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사회적으로 능력 있을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노멀’에서 아주 벗어나지 않는 남성은 가능하면 인간 여성과 에로스를 나누고 싶어 하지 인형을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어떤 이유로든 ‘노멀’하지 않은 남성들이 인간 여성이 아닌 리얼돌과 관계를 가지는 경향이 있다고 볼 수 있지요. 이렇게 보면 이것은 젠더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계급의 문제이거나 ‘정상적인’ 관계에 관한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리얼돌과 성관계를 맺는 남성을 쉽게 비웃고 조롱할 일은 아닐 겁니다. 진짜 여성과 성관계를 맺는 남성과 리얼돌과 성관계를 맺는 남성 사이의 구별이 사회적 권리와 지위의 문제와 결부되는 순간 문제는 복잡해집니다.
 
인간이 로봇이나 인형과 성적인 관계를 가지는 것에 대한 인간주의적 반감이나 불편함이 끼어드는 것도 새로운 점이지요. 인간이라는 생물학적 종의 관점에서는 인간과의 교제 대신 인형과 성적인 교감을 나누는 사람을 ‘변태’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의 젠더 갈등을 보면, 인간끼리의 교감이나 교제가 점점 요원해지고 있다는 인상도 지울 수 없습니다.
 
물론 ‘인간 성매매를 근절할 수 있다’는 리얼돌업체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순 없습니다. 그런데 그냥 로봇이 아니라 인간과 구별되기 힘든 외형뿐 아니라 인간 못지않은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을 생각해보면, 그런 반감이나 경멸 또는 불편함이 앞으로 마냥 당연하지는 않겠지요. 이 점에서 인간과 로봇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에로틱한 대상인 인공지능은 점점 문제가 될 듯합니다.
 
사람을 닮은 인형을 성적으로 가까이하는 행동은 불편할 수 있는 일이긴 합니다. 그렇지만 ‘불편한 진실’들은 사실 여기저기 널려 있습니다. 불편한 감정은 최소한 옳고 그름의 구별이나 선함과 악함의 구별만으로 재단하기는 어렵습니다. 각자가 세심하게 관찰하고 살펴야 할 감정일 것입니다.
 

 
Who's the writer?
김진석은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인하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사회비평〉 편집주간, 〈인물과 사상〉과 〈황해문화〉 편집위원을 역임했으며, 〈초월에서 포월로〉, 〈기우뚱한 균형〉, 〈니체는 왜 민주주의에 반대했는가〉, 〈더러운 철학〉, 〈우충좌돌 중도의 재발견〉, 〈소외되기 소내되기 소내하기〉, 〈강한 인공지능과 인간〉 등의 저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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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 김현유
  • WRITER 김진석
  • Illustrator 양승희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