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에스콰이어> 에디터들이 뽑은 이달의 책

중쇄를 거듭해 더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하는 책들을 <에스콰이어> 에디터들이 골랐다.

BYESQUIRE2021.06.01
 
 

More Copies, Please! 

 

① 리커버링

레슬리 제이미슨ㅣ문학과지성사
중독과 회복에 관한 책을 보면 으레 피로감부터 내비치는 사람들이 있다. “아, 그런 책. 그건 이미 읽었는데.”, “고통스러워하고, 더 빠져들고, 결국 회복했다는 그런 이야기겠지.” 레슬리 제이미슨 역시 오늘날 알코올 중독 수기가 차지하게 된 이런 위상을 잘 알고 있다. 〈리커버링〉의 첫 장에 묘사했을 정도로(이 소개글 첫머리는 그녀의 문장들을 가져다 살짝 변용한 것이다). 재미있는 건 그러면서도 〈리커버링〉이 그 전형적 레퍼토리, ‘탐닉-결핍-항복-재발-구원’의 구조를 따르고 있다는 점이며, 또 그러면서도 스티븐 킹과 록산 게이를 비롯한 무수한 작가들에게서 찬사를 받았다는 점이다. 무엇이 차이를 만든 걸까? 바로 필자가 그런 사람이라는 점, 통찰력과 솔직함과 균형감을 두루 갖춘 사람이라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라 할 만하다. 레슬리 제이미슨은 스스로도 왜곡하고 싶을 만큼 민망한 욕망과 사적인 사건을 맹렬히 파헤쳐 풀어놓으며, 동시에 그 어느 하나 현재의 관점에서 ‘어리석음’으로 치부하지 않는다. 그저 술과 한 개인의 관계를 집요하게 고찰할 뿐. 알코올 중독자였던 유명 작가들의 일화가 군데군데 흩뿌려져 있는데, 이 일화들이 만드는 〈돈키호테〉 같은 심상도 큰 매력이다. 웃기고 슬프면서 아름답다. 오성윤




②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

김기창ㅣ민음사
김기창의 소설집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은 이미 제목에서부터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를 숨기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그런데 주제를 알고 보는 소설에 재미가 있을까? 걱정 마시라. 한 문학기자가 ‘돔 3부작’이라 이름 붙인 ‘하이 피버 프로젝트’, ‘갈매기 그리고 유령과 함께한 하루’, ‘개와 고양이에 관한 진실’을 보자. 이 소설들에는 태양광 패널이 붙은 지붕으로 둘러싸인 ‘돔’이라는 근미래적 장치가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온난화로 인해 살인적인 더위에 휩싸여 죽어버린 세계를 그 바깥에 두고 만들어진 이 울타리는 3편의 소설 속에서 기후 갈등의 경계로, 계층 갈등의 경계로, 배제의 도구로 변주되며 훌륭한 멜로디를 만들어낸다. 소설가 정용준은 ‘기후 변화’라는 주제 의식이 간혹 ‘맞지만 지겨운 말’로 읽힌다고 서문에 썼다. 그러면서 그는 의미 있는 문제의식으로 자리 잡으려면 ‘지식의 앎이 아닌 감각의 앎’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김기창의 소설적 변주를 즐기는 사이 독자는 어느샌가 감각의 앎에 가닿은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박세회
 
 

③ 달까지 가자

장류진ㅣ창비
이상했다. 한 학기 등록금보다 많은 돈을 벌었는데도 표정이 어두웠다. ‘조금만 더 가지고 있다가 팔걸’이라는 말만 중얼거렸다. 그에게는 당장 손에 쥔 차익보다 매도 타이밍을 섣부르게 결정했다는 자책감이 더 컸다. 결국 그는 자취방 보증금까지 빼서 다시 가상화폐 세상으로 뛰어들었다. 5년 전 일이다. ‘달까지 가자’는 가상화폐 이더리움에 투자한 ‘미생’ 3명의 이야기다. 부서는 다르지만 ‘비(非)공채’ 출신이라는 동질감을 바탕으로 뭉친 그들은 점심시간마다 모여 도무지 해 뜰 날이 보이지 않는 자신들의 삶을 자조하는 재미로 하루하루를 버틴다. 점심시간으로 주어진 60분의 마지막 1분까지 꾸역꾸역 쉬어가면서. 그러던 어느 날, 평소 투자에 관심이 많던 은상이 가상화폐 투자를 시작하면서 평범했던 셋의 일상이 뿌리부터 흔들린다. 올인한 자와 망설이는 자 그리고 경계하는 자의 충돌이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단숨에 읽어 내려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2가지다. 실제 있었던 일을 옮겨 쓴 것만 같은 작가의 뛰어난 묘사력. 그리고 이더리움이 500만원에 육박한 현재 진행형 ‘결말’을 알고 있는 독자의 입장에서 과연 주인공이 일확천금에 성공할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이다. 만약 오늘 아침에도 “가즈아!”를 외쳤다면 이 책은 소설이 아니라 교과서가 될 테다. 박호준




④ 글자를 옮기는 사람

다와다 요코ㅣ워크룸
AI의 시대에 가장 먼저 없어질 직업으로 꼽히는 것 중 하나가 번역가다. AI의 번역 수준이 이미 높고 점점 더 발전해나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번역 어플에 ‘명작’을 뜻하는 인터넷 신조어 ‘띵작’을 입력했더니 알아서 ‘rnasterpiece’라는 초월 번역을 내놓았다는 이야기는 이미 유명하다. 하지만 그게 번역의 전부일까? 이 책은 제목 그대로 ‘글자를 옮기는 사람’, 즉 번역가인 주인공이 짧은 번역을 하기 위해 조그만 섬에 머물며 겪은 것들을 담았다. 사실 주인공이 겪는 일이라곤 거의 없다. 다만 주인공이 훑는 단어가 문법과 표현의 괴리로 여기저기 흩어지는 걸 보여줄 뿐이다. 글자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과정과 거기에서 느끼는 한계점, 결국 변하고 마는 원문에 대한 고뇌가 드러난다. 소설의 형식을 갖고 있지만, 저자가 실제 작가이자 번역가이며 독일어와 일본어가 능통한 바이링구얼이라는 점에서 이 글은 실제 번역가가 느끼는 고뇌를 담은 수필 같기도 하다. 그는 번역 과정을 “단어 하나를 조심스럽게 건너편 강변에 던지는 느낌”이라고 묘사했다. 그렇게 나온 번역물을 “단어와 이야기가 변신해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었는데, 마치 처음부터 그런 모습인 척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아무리 똑똑한 AI라도 이런 감정을 묘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김현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