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사진전 <사진에 관한 실험>에서 볼 수 있는 '그 밖의 사진들'

사진전 <사진에 관한 실험>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특정한 장면으로서의 사진이 아니다. 결과물보다 과정, 사진가 김규식과 사진이라는 매체의 씨름이다. 하지만 그 내막을 알고 보면 이 수학적 형상들에서 서정성도 발견할 수 있다. 한 미술가의 굳고 깊은 애정. 이 기사는 당신도 함께 그것을 감상했으면 하는 의도로 쓰였다.

BYESQUIRE2021.06.26
 
 

그 밖의 사진들 

 
김규식 작가가 직접 만든 하모노그래프 장치.

김규식 작가가 직접 만든 하모노그래프 장치.

아래 장치는 하모노그래프harmonograph다. 하모노그래프란 통상 진자 운동을 조합해 기하학적 이미지를 만드는 기구를 뜻하는데, 사진가 김규식이 만든 이 모델은 그걸 사진으로 구현한다. 회전하는 막대 끝에 펜이나 붓 대신 레이저 포인터를 달아 암실에서 인화지에 빛으로 그림을 그리도록 한 것이다. 오른쪽 사진이 일련의 과정으로 얻은 결과 중 하나며, 이것이 김규식 사진가의 ‘진자운동실험’ 연작의 작업 방식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설명이다. 이미지를 보며 정리된 설명문을 읽으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사실 누구나 한 번 듣고 선명히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필름 사진의 메커니즘, 진자 운동, 인화지의 속성에 대한 이해가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 하니까. 설명하는 사람도 와중에 자신감을 잃기 십상이고, 어물어물 말끝을 흐리면 사람들은 십중팔구 이렇게 물었다. “그래서 이게 사진이라는 거지?” 〈에스콰이어〉 편집장과 아트 디렉터도 같은 질문을 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답했다. “네, 사진입니다.”

 
진자운동실험_pendulum movement #19201-07, 50x40cm, gelatin silver print, selenium toned, 2019.

진자운동실험_pendulum movement #19201-07, 50x40cm, gelatin silver print, selenium toned, 2019.

그러나 또 한동안은 나 역시 그런 질문에 쉽게 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취재를 준비하며 문득 인터넷 검색창에 ‘사진’을 쳐본 후에는. 베낄 사(寫)에 참 진(眞)을 쓰는 ‘사진’이라는 단어가 지시하는 건 ‘실제를 본뜨는’ 매체다. 그러나 앞서 설명했듯 ‘진자운동실험’은 현실 세계의 무엇도 본뜨지 않는다. 아니, 그전에 이 작업의 무엇도 렌즈나 필름,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카메라 장치를 통과하지 않는다. 다만 사진이라는 매체의 기술적 근본을 더듬을 때 이 작업은 확실히 그에 속한다. ‘감광판이 빛에 조응하는 물리적 효과’라는 근본. ‘진자운동실험’이 사진(寫眞)이 아니라면 그건 ‘빛의 그림(photography라는 표현은 그리스어 빛(phos)과 상(graphê)의 조어에서 유래한다)’이라는 의미를 모두 담아내지 못한 번역어의 한계 때문이라는 뜻이다. “사진의 역사 초창기를 보면 이 매체의 기술적 신비로움에 기반한 작업이 많았어요. 저는 그 자체도 굉장히 경이로운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사진이 너무 평면화되고, 사진작가의 무슨 ‘혼’ 같은 게 담겨야 아름답다고 여기게 된 것 같아요. 그건 회화적인 측면이잖아요. 저는 회화성이 사진의 한계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분명 그걸 넘어서는 기술적 측면의 가능성이 있고, 다만 우리가 간과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사진전 〈사진에 관한 실험〉의 오프닝 날, ‘진자운동실험’ 작품들 앞에서 김규식 작가가 말했다. 필름을 사용하지 않았기에 오직 하나의 판본을 가진 실물 작품들은 그것을 스캔한 디지털 파일로 볼 때보다 훨씬 오묘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감광지에 빛의 운동이 남긴 궤적이 종이에 펜으로 그린 것과 다를 거라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었으나 그런 입체감 내지는 인력(引力)을 갖추고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것이 하모노그래프에 중력이 끼친 영향일지, 인위가 없는 순수한 수학적 이미지인 리사주 곡선(Lissajous Curve)이 주는 현기증일지 가늠하려 빤히 들여다보고 있자 김규식 작가가 말을 이었다. “처음 하모노그래프의 작업 결과물이 나왔을 때 그런 생각을 했어요. ‘너무 아름답지 않은가?’ ‘이게 왜 아름다운 거지?’ 결국 이건 작가의 개입이 없어도 생겨나는, 사진이 가진 고유의 아름다움에 대한 질문인 거죠. 인간만이 아름다운 게 아니라 빛이, 자연이, 세상이 아름다운 거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는 거예요.”

 
진자운동실험 작업 일부.

진자운동실험 작업 일부.

전시 〈사진에 관한 실험〉은 김규식 작가가 그간 개진해온 동명의 연작 속 네 가지 작업, ‘진자운동실험’, ‘추상사진’, ‘논픽처’, ‘원근법실험’을 소개한다. 다만 빠르게 다음 작업에 대한 설명으로 넘어가기 전에 좀 다른 이야기부터 풀어놓을 필요가 있겠다. 사진의 작동 원리, 특히 흑백 네거티브 필름 카메라의 원리에 대해서. 우리가 셔터를 누를 때 카메라 내부에서는 렌즈와 필름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막이 열린다. 앞에 놓인 물체들에 반사된 빛을 설정해놓은 시간 동안 받아들이는 것이다. 필름의 감광물질은 그 빛의 반사가 구현하는 형태에 반응해 모양을 갖추고, 다른 빛을 받아들이기 전에 암실에서 현상하면 그대로 고정된다. 이때 네거티브 필름에는 색상과 명암이 반전되어 기록된다. 어두운 부분은 밝게, 밝은 부분은 어둡게. 그래서 필름을 확대기에 걸고 감광하면 어두운 부분과 밝은 부분의 입자가 빛을 투과하며 인화지에서 본연의 명암을 구현한다. 김규식의 ‘추상사진’ 연작은 이 과정에서 현상 전의 모든 것, 즉 촬영을 생략한다. 아무것도 촬영하지 않은 필름을 그대로 현상한 후 확대기에 걸어 인화하는 것이다. 그 대신 빛을 적절히 조절하고 차단해서. “인화지에게 사진이 무엇인지를 묻는다면 인화지는 그저 농도가 다른 입자를 감광하는 행위라고 답할 것이다. 그 빛이 어디에서 왔는지, 무엇인지를 알 방법도 관심도 없다.” 김규식 작가의 작업 노트에 쓰인 설명이다. 그는 실제 세계의 재현 외에 인화지를 감광하기 위한 빛의 정보를 만들어내고자 했고, 그걸 “인화지를 속이는 행위”라고 표현했다. 그 표현이 유독 재미있게 느껴졌던 건 우리가 바라보고 있던 ‘추상사진’ 연작 바로 맞은편에 ‘논픽처’ 연작이 걸려 있기 때문이었다. 구획이나 별도의 설명도 없이 천연덕스럽게. 미리 작업에 대한 자료를 꼼꼼히 읽어본 관람객이 아니라면 결과물만 보고 그들이 다른 작업임을 깨닫기는 어려울 터였다. 김규식 작가는 ‘추상사진’ 작업을 이어오던 중 꼭 필름을 쓰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에 이르렀고, 결국 필름 대신 스프레이 페인트를 뿌려 입자를 만든 투명 유리판을 걸고 인화를 하기 시작했다. ‘논픽처’는 사진의 범주를 한층 벗어난 대신 그 제목처럼 한층 더 선명한 질문이 된 것이다. “대체 무엇이 사진인가?” ‘추상사진’과 ‘논픽처’ 연작을 양쪽에 두고 서 있을 때, 김규식 사진가가 속이고자 한 것이 인화지뿐만은 아닌 것 같다는 의심은 합리적으로 느껴졌다.

 
원근법실험_Square I(a pyramid on square), 17x17cm, gelatin silver print, selenium toned, 2018.

원근법실험_Square I(a pyramid on square), 17x17cm, gelatin silver print, selenium toned, 2018.

그러나 김규식 작가의 작업들은 누군가를 속이려는 의도를 품고 있지 않다. 그것이 관람객을 향한 특정한 의도를 가졌다고 여기는 것 자체가 오해다. 김규식 작가는 자신의 작업이 보는 사람을 염두에 두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는 성격의 작업이라 판단해 이를 의도적으로 배제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전시를 둘러보고 나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심상도 작가와 사진이라는 매체 둘 사이의 고독한 씨름이다. 만약 감상 중에 교란의 의도를 느꼈다면 그건 그가 너무 과묵한 탓일 것이다. 작업의 성격에 비하면 수상할 정도로. “김규식 작가의 작업은 이해하기 쉽지 않아요. 그의 사진을 지탱하는 개념적 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단 이게 가벼운 트릭 아트처럼 보이는 틀을 돌파해야 하고, 사진 기술에 대한 이해도 있어야 하는데, 작가 자체가 작업 뒤에 숨겨놓은 것들을 잘 이야기하지 않으니까요.” 전시를 기획한 보스토크 프레스 김현호 대표의 설명이다. (글로 옮기고 보니 볼멘소리처럼 보이는 구석이 있지만, 사실 작가의 그런 태도를 전시에 그대로 옮겨놓은 게 김현호 대표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원근법실험’은 김규식 작가의 작업 중에서도 유독 오해를 많이 사는 작업이다. 평면적 이미지로 입체감을 주는 트릭 아트와 표면적으로 닮았기 때문이다. 다만 이 사진들이 품은 건 전혀 다른 접근법이다. 작가는 투명한 아크릴판에 정삼각형과 정사각형을 그려 카메라 뷰파인더 앞에 두고, 뷰파인더로 보이는 선에 따라 바닥에 놓인 목판을 톱으로 재단했다. 카메라의 시선으로 보기에는 정삼각형이나 정사각형이지만 만들어진 목판 도형은 다른 모양이 되는 것이다. 카메라와 목판이 놓인 바닥의 각도에 따라 뷰파인더 속 정삼각형의 한 모서리 60도는 실제로 39도가 될 수도, 65도가 될 수도 있을 테니까. 그는 화면 내에서 소실점을 제공하지 않는 대신 피라미드 모형, 못, 각 모서리의 각도 표시 등을 놓고 촬영해 원근법적 인지를 배반하는 요소를 만들었다. 궁극적으로 또 하나의 질문을 만든 것이다. “우리는 왜 원근법이 완벽한 것이라 착각할까?” “하나의 관점과 투시점을 기준으로 가까운 것을 크게, 먼 것을 작게 표현하는 방식은 사실 3차원 세계를 2차원 세계로 옮기기 위한 하나의 도구일 뿐인데, 오늘날 우리는 왜 그것에 우리의 눈을 동일시하고 있을까?” ‘원근법실험’은 ‘사진에 관한 실험’ 연작에서 유일하게 통상의 카메라를 사용해 촬영한 작업이기에 유독 돌출되어 보이기도 한다. 다만 사진이 만들어지는 과정 각각의 요소를 따내서 실험하고, 그 개별 실험들이 다시 모여 ‘사진에 관한 실험’ 연작의 전체 구조가 완성되는 체계를 이해할 때 위화감은 사라진다. 작가의 건강 문제로 예정보다 일찍 전시가 치러지면서 궁극적으로 지향했던 균형을 보여주지 못한 부분이 있겠지만 말이다. (그 부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사진에 관한 실험’이라는 작업 세계를 이해하는 데에 자칫 왜곡된, 감상적인 이해를 만들 수 있기에 해당 기사에서 생략한다.)

 
논픽처_non-picture series n-24, 45x45cm, gelatin silver print, 2019.

논픽처_non-picture series n-24, 45x45cm, gelatin silver print, 2019.

사실 이 원고를 쓰는 내내 걱정했던 부분이 하나 있다. 개념적인 영역에서 설명이 많이 필요한 작업이라, 혹시나 기사가 그의 작품에 대한 ‘해설’처럼 보이는 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대부분의 문장이 작업을 이해하기 위한 제반을 설명하는 데에 할애되었으니 우려가 현실이 된 것도 같다. 너무 난해한 요소는 생략하고 넘어갔으니 해설적 기능에나마 충실할지도 의심스럽고 말이다. 어떻게 되었든 지금 주목할 만한 작가와 그 작업 세계를 소개하는 일이 무의미하지는 않을 터. 다만 그렇게 합리화하자면 〈사진에 관한 실험〉 전시장에서 일순간 느꼈던 막연함이 떠오른다. 김규식 작가에게 실컷 질문을 던진 후 고개를 들었을 때, 문득 이 작업들이 낯설게 보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건 극히 아카데믹한 성격의 작업, 사진계에 몸담은 사람들에게나 유효성을 가진 작업인 것 아닐까? 과연 이게 〈에스콰이어〉 독자에게 소개하기에 적절한 맥락의 작품일까?’ 물론 그건 한순간의 기우였다. 평론가 유운성이 ‘김규식론: 도래할 사진을 위한 에스키스’에서 말했듯 김규식은 “필름이나 인화지의 물질성 자체에만 천착하는 매체탐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오직 개념적인 증명을 하고자 했다면 전압기가 연결된, 인화지 지지판까지 세 개의 축이 돌아가는 하모노그래프를 개발하거나 ‘추상사진’의 개념으로 무수한 형태를 만들어볼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가 이 작업 전반에서 견지한 태도는 ‘작가의 미적 감각을 배제하는 것’이었다지만 그게 아름답지 않은 작품을 만들고자 했던 건 아니라는 뜻이다. 그는 배제를 통해 사진이 가진 고유의 아름다움을 좇고자 했다. 이 사진들은 그 치열한 추구의 결과다. “사진이라는 건 어쨌든 시각적인 매체이니까요. 저는 각자가 이 사진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 속에 숨어 있는 것들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개념을 이해하길 바랐던 것 같아요. 설명이 쓰여 있거나 도슨트가 와서 알려주면 ‘아 그런 개념이구나’ 하고 더 이상 사진을 들여다볼 이유가 없게 되잖아요. 하지만 아무 설명 없이 혼자 아름다움의 근원을 좇다 보면 그 안에 사진의 중요한 속성들이 담겨 있다는 걸 알게 될 수도 있는 거죠.” 김규식 작가는 그게 작가 자신이나 전시가 가진 과묵함의 이유라고 했다. 100명이 자신의 작업 개념을 아는 것보다 10명이라도 그렇게 의미를 찾아내는 게 더 의미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그는 자신의 사진처럼 말을 할 때도 담백하고 확실한 표현을 고르는 사람이었고, 스스로의 작품에 깃든 마음을 드러낸 것은 1시간여의 인터뷰 동안 그때가 거의 유일했다. 아니, 한순간이 더 있긴 했다. ‘사진에 관한 실험’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일종의 비관이었는지 물었을 때.

 
추상사진_Combination of circles n2, 36.4x36.4cm, gelatin silver print, selenium toned, 2019.

추상사진_Combination of circles n2, 36.4x36.4cm, gelatin silver print, selenium toned, 2019.

전시를 기획한 김현호 대표는 오늘날 사진계에 ‘사진이라는 매체의 예술적 가능성이 소진된 것 아닐까’ 하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는 것 같다고 했고, 나는 상업 사진을 비롯 전방위로 활동해오던 사진가 김규식이 10여 년 전 그 모든 입지와 테크닉을 떠나 ‘사진에 관한 실험’ 작업을 하기 시작한 게 그런 위기감과 관련한 건 아닌지 궁금했다. 그리고 그는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렇게 답했다. “저는 엄청난 애정을 갖고 만들었죠.” 김규식은 사진을 굉장히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 매체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분과, 흑백 필름 사진이라는 분과가 사라져가는 것을 의아하게 여겼다고 했다. 분명 아직 그걸로 할 수 있는 게 더 있을 것 같았다고. 적어도 자신에게는 더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답을 들을 때 내 머릿속에는 잠깐 ‘진자운동실험’의 형상이 다시 스쳤다. 그 작품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느꼈던 기묘한 인력이 어디서 유래하는지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