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에스콰이어> 에디터들이 뽑은 7월의 책

중쇄를 거듭해 더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하는 책들을 <에스콰이어> 에디터들이 골랐다.

BYESQUIRE2021.07.05
 
 

More Copies, Please! 

 

① 끈이론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ㅣ알마
태양의 열기에 아스팔트가 살짝 녹아내리는가 싶을 때쯤, 테니스의 계절은 시작된다. 6월 초의 롤랑가로스(프랑스 오픈)를 시작으로 7월 초엔 윔블던, 8월에는 US오픈이 줄지어 열린다. 염천의 하늘 아래 개인 구기종목 선수들 중 평균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신체를 가진 남신과 여신들이 괴성을 지르며 뛰어다니는 걸 보다 보면 심장에 땀이 차는 것만 같은 흥분에 빠지곤 한다. 라켓을 불끈 쥐고 동네 테니스장에서 로저 페더러의 백핸드를 그리며 스트로크를 때려보기도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연약한 내 신체에 대한 냉소뿐이다. 그럴 때 나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집어 드는 책이 바로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끈이론〉이다. 서른 여덟 살에 세상을 떠난 월리스가 생전 〈에스콰이어〉US, 〈뉴욕 타임스〉 등에 기고한 테니스에 관한 산문을 엮은 이 책의 마지막 장에는 2006년 윔블던 결승에서 나달과 맞붙었던 젊은 로저 페더러에 대한 글이 실려 있다. ‘살과 빛의 몸을 입은 페더러’라는 제목의 이 글은 단 한 명의 운동선수에 대해 쓴 글에 순위를 매긴다면 반드시 메달을 받아야 할 만큼 절묘하다. 서브 앤 발리 스타일의 선수들이 코트를 지배하던 시절부터 파워 베이스라이너들의 전성시대에 이르기까지 테니스라는 경기의 승패를 좌우하던 요소들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망라하며, 파워 베이스라이너들이 득세한 21세기에 올라운드 플레이어 로저 페더러라는 남자의 현신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더는 정확하게 써낼 수 없을 만큼 집요하게 적어냈다. 박세회 
 
 

②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김금희ㅣ창비
제목을 읽는 순간 2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부끄럽게도 그동안 페퍼로니를 ‘페페로니’라고 제멋대로 발음하고 있었다는 것과 혹시 페퍼로니라는 지역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었다. 호기심의 연쇄 폭발이 ‘혹시 페퍼로니와 치즈, 올리브에 비유한 사회 풍자 소설은 아닐까? 마치 〈동물농장〉처럼 말이야’까지 뻗고 나서야 간신히 첫 장을 넘겼다. 물론, 전혀 아니다.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는 지난해 ‘이상문학상’ 수상을 거부해 화제가 됐던 김금희 작가의 단편소설 7개를 엮은 소설집이다. 2004년 이라크 전쟁과 2005년 황우석 사건같이 굵직했던 사회 이슈를 살짝 버무리긴 했지만, 그 어느 것도 그녀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핵심은 아니다. 취재를 위해 전 남친을 만나러 가야만 하는 PD, 제자와 사랑에 빠져 일과 가정을 저버린 교수, 캠퍼스에서 배추밭을 가꾸는 것으로 차별 반대 시위 참여를 대신한 일본인 등 ‘있을 법한’ 인물이 주인공이지만, 그 인물들 역시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는다. 독특한 소재와 설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결말에 이르기까지는 담담한 전개. 능수능란하게 시점(時點)을 오가며 이야기를 버무려내는 작가의 솜씨가 어쩌면 이 소설에서 우리가 읽어내야 할 진짜 주제인지도 모르겠다. 소설가 김금희의 장점은 소위 말하는 ‘순문학’의 카테고리에 있으면서도 어렵지 않다는 점이다. 무협소설보다 빠르게 읽어 내려갈 수 있고, 장르 소설보다 깊게 빠져들 수 있다. 박호준




③ 사이언스 고즈 온

문성실ㅣ알마
어느새 국내에서도 1차 이상 백신 접종자가 1000만 명을 넘었다. 일각에서 나온 백신 무용론보다는 당연히 집단면역이 형성 중이라는 해외 데이터에 믿음이 가긴 했으나, 백신이 처음 등장했을 때 들었던 의문 한 가지는 계속됐다. 1년여 만에 효과가 보장되는 백신을 개발하는 게 가능한 것일까? 불과 몇 년 전의 메르스나 사스 같은 질병이 유행하던 시절에는 ‘백신’이 큰 이슈였던 적이 없었기에 더욱 그랬다. 그런 의문을 품은 사람이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이렇게 의심 많은 시기에 이 책이 나온 건 정말 다행이다. 미국에서 바이러스와 백신을 연구하는 미생물학 박사인 필자는 스스로를 ‘바이러스와 싸우는 엄마 과학자’라고 소개한다. 제목과 필자의 소개만 보면 문과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과학 도서일 것만 같지만 이 책은 에세이집이다. 바이러스와 백신에 대한 글로 시작해 한국 토박이 외국인 노동자, 엄마, 여성이라는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과학자의 삶으로 이야기의 반경을 넓혀간다. mRNA 백신의 원리나 항원제시 세포에 포함되는 세포 종류를 전부 이해하려 들 필요는 없다. 외국인 노동자의 수기, 엄마의 에세이, 한 여성의 수필로 받아들이면 된다. ‘대단한 과학’이 아닌 ‘일상의 과학’이 가진 힘을 느껴보자. 김현유




④ 한낮의 우울

앤드루 솔로몬ㅣ민음사
〈한낮의 우울〉의 원제는 ‘한낮의 악령The Noonday Demon’이다. 어두운 밤 깊은 골짜기에 숨어 길 잃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악령이 아니라, 한낮의 일상 속에 불쑥 찾아오는 악령. 앤드루 솔로몬이 처음 우울증에 걸린 건 스스로의 삶이 꽤 순조롭게 돌아간다고 생각할 때였다. 그 후 몇 번의 삽화도 길을 걷거나 저녁을 먹는 일상의 순간에 찾아왔다. 불현듯, 그러나 격렬하게. 우울증은 단순한 비관적 사고와 달리 “우리를 벼랑 끝 너머로 보내는 것이라기보다는, 벼랑 끝으로 바싹 끌어당겨 너무 멀리 갔다는 생각에 공포에 젖어 현기증으로 균형감각을 완전히 상실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통찰력 넘치고 진솔한 칼럼니스트 겸 임상심리학과 교수의 수기만으로도 분명 풍부한 이야기가 되었을 터. 다만 그는 5년여 간의 인터뷰와 취재를 통해 이 병을 1000페이지에 달하는 책으로 풀었다. 그 결과물에서 배울 수 있는 건 우울증이라는 질병과 우울증 환자를 대하는 현대적 자세, 그리고 인간의 마음이 작동하는 복잡하고도 미묘한 방식이다. 국내 출간 17여 년 만에 나온 개정판에서는 또 하나의 층위도 읽을 수 있다. 새롭게 추가된 100여 페이지 분량의 챕터 ‘그 후’는 그렇듯 연약함에도 결국 절벽 끝자락에서 희망을 상상할 수 있게 되는 인간의 강인함을 보여준다. 오성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