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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100년 전에 만들어진 오디오를 두고 오디오의 '최고봉'이라고 믿는 이유

근 100년 전에 만들어진 대극장용 오디오들. 이 골동품들이 어째서 사람들로 하여금 이토록 거대한 꿈을 품게 하는 걸까?

BYESQUIRE2021.07.28
 
 

웨스턴 일렉트릭을 찾아서 

 
“잠깐만요. 그럼 일단 오디오 전원 좀 올려놓고 올게요.”
콩치노 콘크리트 오정수 대표는 인터뷰 중에 갑자기 생각난 듯 자리를 박차고 나섰다. 질문 중에 ‘음질’이라는 표현이 나왔을 때. 진공관 앰프를 쓰는 빈티지 오디오는 제 소리를 내기 위해 충분한 예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콩치노 콘크리트 메인 홀의 한 면을 차지한, 높이 3m는 됨직한 세 대의 웨스턴 일렉트릭 스피커 뒤편으로 사라졌다. 그 광경은 이상하게 설레는 것이었는데, 아마도 공연이 시작되기 직전 객석 맨 앞줄 구석에 앉아 커튼 뒤 어른거리는 기척을 바라보는 감흥이 그와 비슷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 오정수 대표가 스피커 너머로 물었다. 혹시 이쪽 뒤편도 한번 둘러보겠느냐고. 스피커 구성에서부터 앰프에 이르기까지, 거기에도 자랑스레 선보일 것이 많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빈티지 오디오에 조예가 깊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저 까만 목판과 기계 뭉치로 보일 뿐인 광경이었지만. 눈길을 잡아 끄는 요소가 하나 있긴 했다. 모노반 전용으로 사용한다는 정중앙의 웨스턴 일렉트릭 M2 스피커 위에 거대한 돌덩이가 얹혀 있었던 것이다. 어느 신화 속의 봉인된 존재처럼.
 
“무게중심을 맞추려고 얹은 거예요. 워낙 무거운 스피커라서 앞으로 넘어가버릴 수도 있거든요.”
그건 마치 빈티지 스피커라는 취미를 표상하는 존재처럼 보였다. 극도로 섬세하면서도 이토록 아날로그적인 취미라니. 돌은 어디서 났느냐고 묻자 오정수 대표는 콩치노 콘크리트 건물을 짓던 당시 옹벽을 쌓던 돌이라고 답했다. 지난 5월 파주에 개관한 콩치노 콘크리트는 빈티지 오디오를 위한 공간이다. 오디오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포노그래프를 비롯해 온갖 진귀한 오디오 컬렉션, 1만 장에 달하는 바이닐 레코드와 2000여 장의 축음기 판까지 갖추고 있다. 하지만 백미는 역시 웨스턴 일렉트릭과 클랑필름의 오디오 시스템이다. 1920~1930년대 미국과 독일에서 만들어진 극장용 오디오 시스템들. 콩치노 콘크리트는 애초에 이 오디오들을 제대로 들을 수 있는 공간을 염두에 두고 설계된 공간이며, 이름 뒤에 ‘뮤지엄’이 아니라 ‘콘서트홀’이라는 호칭이 붙은 것도 그런 이유다.
 
“오디오라는 취미는 다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거죠. 저마다의 아름다운 세계를. 그런데 가장 어려운 게 공간 확보거든요. 기계야 욕심이 생기면 그냥 사버릴 수 있는데, 공간은 그러기가 힘드니까요. 다만 웨스턴 일렉트릭의 이런 스피커 같은 경우는 당대 최고의 오케스트라와 협업해 설계한 제품이에요. 음향산업이 국방산업과 더불어 최고의 산업이던 시대여서 웨스턴 일렉트릭에 근무한 직원 중에 박사급만 2000명이었다고 해요. 저 M3 스피커 한 대가 800~1500명, M2 스피커가 2000~3000명이 들을 수 있는 공간을 위해 설계된 스피커거든요. 그에 걸맞은 공간이 없으면 그들이 무엇을 의도했는지 제대로 알기 힘들다는 뜻이죠.”
오정수 대표가 이런 극장용 오디오를 수집하기 시작한 건 10년도 더 넘은 과거의 일. 하지만 그도 콩치노 콘크리트가 지어지기 전에는 자신이 수집한 것들의 소리를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인터뷰 날 그가 웨스턴 일렉트릭 시스템으로 틀어준 첫 곡은 차이콥스키의 ‘슬라브 마치’였다. 대규모 오케스트라가 ‘행진곡’이란 이름에 걸맞은 웅장한 소리를 만들고, 전개가 드라마틱하게 계속 바뀌며, 그 틈틈이 다양한 악기의 존재감이 잘 드러나는 곡. 도입부가 나올 때 소리를 가장 잘 들을 수 있는 위치, 소위 ‘스위트 스폿’을 찾아 이동해야 하나 잠깐 고민했으나 옆자리의 오정수 대표는 앉은자리에서 그대로 이미 감상에 돌입한 듯했다. 그러고 보니 그가 이곳에서 가장 좋아하는 위치는 2층 끝 쪽 창가 자리라고 했다.
 
콩치노 콘크리트의 로고가 되기도 한 웨스턴 일렉트릭 26A혼. 콩치노 콘크리트에서는 웨스턴 일렉트릭의 미러포닉 M2 시스템, M3시스템, 15A 혼 시스템, 클랑필름의 유로노 주니어 등 90여 년 전 미국과 독일의 대극장에서 사용되었던 오디오의 소리를 들어볼 수 있다.

콩치노 콘크리트의 로고가 되기도 한 웨스턴 일렉트릭 26A혼. 콩치노 콘크리트에서는 웨스턴 일렉트릭의 미러포닉 M2 시스템, M3시스템, 15A 혼 시스템, 클랑필름의 유로노 주니어 등 90여 년 전 미국과 독일의 대극장에서 사용되었던 오디오의 소리를 들어볼 수 있다.

콩치노 콘크리트는 층고가 9m에 달하는 250평 규모의 대규모 홀이다. 오직 소리를 위해 중앙을 넓게 비우고 그 맞은편에 층을 내어 오페라극장의 발코니석 같은 구조를 만들었는데, 그 역시 소리가 막히지 않고 잘 흐르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4층의 두꺼운 벽면 뒤 임진강을 조망하는 좌석에서도 소리가 깨끗하게 잘 들리는 건 그런 구조 덕분이라고. “이 공간 자체가 제가 들인 궁극의 오디오인 거죠.” 오정수 대표가 말했다. 농담 섞인 표현이지만 소리가 공간과 공명하며 만들어진다는 걸 생각하면, 이 공간이 거대한 울림통인 셈이니 꽤 그럴싸한 설명이기도 했다.
 
“제가 추구할 수 있는 오디오의 정점은 여기라고 생각해요. 이젠 비워내기 시작해야죠. 물론 콩치노 콘크리트의 소리는 오디오와 공간이 조응하면서 앞으로 더 좋아지겠지만요.”

이런 종류의 음악 감상 공간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하나 있다. 파주의 카메라타다. 역시나 웨스턴 일렉트릭과 클랑필름 오디오 시스템이 중심인 곳인데, 무려 17년 전 문을 연 선구적 공간임에도 해당 오디오의 특성과 공간에 대한 깊은 고민이 녹아 있다. 오너인 황인용 전 아나운서는 워낙 오디오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며, 조병수 건축가는 명실상부 국내 건축계의 거장이자 그 역시 클랑필름 우퍼를 구매해 직접 스피커를 짤 만큼 빈티지 오디오 애호가이기 때문이다.
 
“제가 몬태나주립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했는데, 거기 커리큘럼이 수업 시간에 음향설계 같은 걸 잘 가르쳤어요. 카메라타를 설계했을 때는 당시 교수님께 도면을 보여드리기도 했죠. 숙제 검사 받는 기분으로. 음향이나 환경 방면에서 강연을 많이 하셨던 탐 우드라는 분이었는데, 보시더니 리버버레이션 타임(reverberation time, 잔향 시간)이, 에코가 적당하게 나고 괜찮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는 이 공간의 내부 벽면을 별도의 마감재 없이 노출 콘크리트로 처리하기로 했다. 적은 예산 때문이기도 했지만 음을 반사시키는 특성이 오히려 적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미송 합판 거푸집을 줄톱으로 잘라 콘크리트에 거친 표면을 만들었고, 소리가 난반사되며 저절로 흡음재 역할을 하도록 했다. 톱으로 켜서 자잘한 흠을 낸 천장의 나무 구조재도 흡음재 역할을 한다. 조병수 건축가는 이런 구성이 그가 웨스턴 일렉트릭이나 클랑필름의 오디오들에서 떠올린 이미지, 창고나 동굴 같은 이미지와도 연관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그 스피커들 자체도 보면 철로 만들어져 있고, 목판에 새까맣게 칠해져 있고, 물성만 살아 있잖아요? 표피적으로 뭔가를 표현했다기보다는 기능성에 주목한 모양인 거죠. 그래서 공간도 어둡고 썰렁한 창고 같은 모습이 통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했던 것 같아요. 그런 공간에 있으면 저절로 차분해지기도 하니까요.”
 
콩치노 콘크리트 내부의 오정수 대표. 콩치노 콘크리트는 콘크리트를 주요 소재로 하면서도 대극장용 오디오의 소리가 틈과 틈으로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설계됐다.

콩치노 콘크리트 내부의 오정수 대표. 콩치노 콘크리트는 콘크리트를 주요 소재로 하면서도 대극장용 오디오의 소리가 틈과 틈으로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설계됐다.

KCC의 정몽진 회장 역시 오디오를 위한 공간을 만들고 있다. 2023년 서울 서초구 내곡동에 오픈할 예정인 소리박물관이 그 주인공이다. 서전문화재단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 공간은 ‘150년 음향기기 발전사를 체계적으로 정립하고 관련 자료를 수집, 보존, 전시하는 전문 박물관’을 표방하는데, 오디오 마니아들은 이곳이 웨스턴 일렉트릭 오디오 시스템의 소리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성지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정몽진 회장이 바로 세계 최고 수준의 웨스턴 일렉트릭 오디오 컬렉터이기 때문이다. 보유량 측면에서든, 컬렉션의 희귀성 측면에서든(서전문화재단이라는 재단법인 이름도 웨스턴 일렉트릭(西電)에서 따온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실제로 현재까지의 계획안으로 보자면 박물관 2층에 웨스턴 일렉트릭 시스템을 사용한 두 곳의 감상 홀을 조성할 예정이다. ‘소리박물관’이라는 시설을 건립하며 청취 홀 두 개를 모두 웨스턴 일렉트릭으로 꾸미는 게 그리 별난 일이 아니라고 여겼다는 뜻이다. 이 기사의 출발점은 이런 공간들에 대한 의문이었다. 왜 웨스턴 일렉트릭일까? 어째서 만들어진 지 100년 가까이 된 이 오디오들이 이런 힘을 발휘하는 걸까? 그것들이 어째서 아직까지도 음악 애호가들로 하여금 열망을 품도록 하고, 자신을 위한 공간까지 짓도록 만드는 걸까?
 
“골동품으로서의 의미도 무척 중요하죠.”
웨스턴 일렉트릭 오디오의 가치에 대해 물었을 때 빈티지 오디오 튜닝 전문가인 아날로그 클리닉 박준후 대표는 이렇게 설명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 그때의 오디오가 오히려 오늘날의 것보다 낫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죠. 1940년대에 이미 오디오 기술은 끝났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그의 설명은 콩치노 콘크리트 오정수 대표의 행보와도 겹치는 부분이 있었다. 오정수 대표는 일찍이 마크레빈슨, 골드문트, 자디스 등을 두루 거친 하이엔드 오디오 애호가였다. 그러다 빈티지 오디오 세계에 입문하며 모두 처분했고, 결국 1920~1930년대 극장용 오디오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본디 상향 곡선을 그리며 발달하는 게 기술의 본성이라 생각하는 시대의 일원으로서는 선뜻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이지만, 빈티지 오디오라는 취미의 규모만 가늠해봐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둘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들이 말하는 역행의 핵심은 쓰임새의 변화다. 가정용 오디오 시장이 등장하면서 작은 크기로도 풍부한 저음역을 낼 필요가 생겼고, 곧 오디오를 인클로저에 넣고 출력을 극단적으로 높이는 식으로 발전해온 것이다. 웨스턴 일렉트릭 같은 거대 극장용 오디오는 출력도 굉장히 높을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이런 옛날 오디오들의 앰프는 5~10W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오늘날의 가정용 하이엔드 오디오가 몇백, 몇천 와트의 출력을 구가하는 것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스피커의 작동 원리는 자석 주변에 코일을 감아서 그게 음악 신호에 따라 움직이도록 하는 거예요. 옛날에는 이 코일이 자석에 굉장히 가깝게 붙어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못 하죠. 출력이 높으니까. 열이 많이 나면 자석의 힘도 떨어져버리거든요.”
박준후 대표가 생각하는 큰 차이 중 하나는 결국 이 자석과 코일 사이의 거리다. 둘 사이가 가까우면 그만큼 아주 미세한 신호, 미세한 떨림도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튜닝 전문가인 아날로그 클리닉의 박준후 대표. 그는 다양한 시대의 빈티지 오디오를 두루 취급하지만, 오디오 기술의 정점은 1940년대 이전에 있었다고 믿는다.

튜닝 전문가인 아날로그 클리닉의 박준후 대표. 그는 다양한 시대의 빈티지 오디오를 두루 취급하지만, 오디오 기술의 정점은 1940년대 이전에 있었다고 믿는다.

“만약에 허공에 손바닥을 펼쳐서 이렇게 보이는 걸 음악이라고 생각해봐요. 그런데 사실은 이 손가락 사이사이로 저 뒤편에 보이는 것까지도 다 음악이라고 볼 수 있는 거거든요. 당시의 오디오는 그것들을 다 표현해줬어요. 자석과 코일 사이의 거리뿐 아니라 다양한 요소가 그런 소리를 만든 거죠. 그래서 요즘 세대가 이 소리를 좋게 감상하기 위해서는 적응 시간이 필요할 거라고 봐요. 익숙하지 않으니까. 뭔가 소란스럽고 번잡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는 다만 빈티지 오디오 자체의 소리가 실제로 나쁜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세월도 세월이거니와 이런 오디오의 대부분은 극장에 설치되어 영사기에 돌리는 필름 신호를 증폭해서 소리를 만드는 데 썼던 기기들이니까. 오늘날의 환경과 음원 기기에 맞는 세밀한 세팅과 튜닝이 필요한데, 그에 노력을 들여야 한다는 인식이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는 것이다. ‘험(hum, 웅웅거리는 소리)’ 같은 소리도 그의 기준에서는 튜닝을 통해 제거해야 하는 소음이지만 그걸 ‘그 시대의 소리’로 해석해 남겨두는 경우도 많다. “저도 빈티지 오디오를 튜닝할 때는 오리지낼리티를 지키는 걸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요. 하지만 그건 말처럼 쉬운 개념이 아니에요. 생각도 다 다르고, 일단 웨스턴 일렉트릭 오디오 정도 되면 그 소리를 들어본 사람이 거의 없으니까요. ‘네가 그 시대의 소리를 들어봤냐?’ 그러면 할 말이 없죠. 그 소리를 들어본 분이 지금껏 생존해 계신다 한들, 제대로 기억이나 하겠어요?”
 
물론 그도 웨스턴 일렉트릭 이후로 오디오 기술에 아무런 발전이 없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예컨대 트위터 같은 경우에는 오늘날의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가청 주파수 밖의 것까지 표현하는 고성능 트위터 덕분에 하이엔드 오디오가 공간에 대한 표현력 같은 부분은 더 빼어나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치기 어린 호기심이 솟을 수 있겠다. 그렇다면 옛것과 오늘날의 것을 합쳐서 더 좋은 오디오를 만들어낼 수 있는 건 아닐까?


“물론 그럴 수 있죠. 하지만 이런 오디오의 애호가들이 바라는 건 그때의 소리를 재현하는 것이니까요. 그렇게 임의로 개조를 할 때 박물관적 요소도 사라져버릴 거고요.”
박준후 대표는 빈티지 오디오에 좋은 트위터를 접목해 잘 조정하면 분명 더 좋은 소리를 낼 수 있긴 할 거라고 했다. 하지만 예건플라자 예병수 대표의 생각은 좀 달랐다. 아니, 같은 말을 조금 다르게 했다고 해야 할까. 그는 그 시대의 오디오들이 이미 저마다의 완성도 높은 세계를 구축했고, 거기에 다른 뭔가를 붙여서 개조하는 건 그 근본을 망치는 일이라고 했다.
 
“같은 18세기에 살았다고 해도 독일 작곡가와 프랑스 작곡가가 만든 음악이 달랐잖아요. 소리도 마찬가지예요. 그들이 추구했던, 그들의 정서가 반영된 특정한 소리가 있었던 거죠. 개량하면 분명히 나아지는 부분도 있을 수 있겠죠. 하지만 그렇게 소리를 약간 개선하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있는 거예요.”
취재를 하러  그의 사무실에 방문했을 때, 녹음기를 켜자마자 그가 대뜸 늘어놓기 시작한 이야기도 웨스턴 일렉트릭이라는 브랜드가 나오던 당시 미국의 시대상이었다. “촛불 켜고 살다가 갑자기 전구가 나오고, 자동차가 대중화되고, 그야말로 신세계가 열렸겠죠.” 그 역시 웨스턴 일렉트릭이 오디오의 최고봉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무려 100여 년 전, 오디오 역사의 초창기에 벌써 그런 업적이 나올 수 있었던 이유 역시 시대상에서 찾았다.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는 비전에 사로잡힌 시대였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으레 음향산업으로 모여 비용 효율 따지지 않고 오디오를 개발하던 시대였기 때문에.
 
예건플라자 예병수 대표가 복각한 웨스턴 일렉트릭 16A 혼 스피커. 오리지널 16A 세 대를 분해해 각 파트를 실측, 제작하는 방식으로 복각했다.

예건플라자 예병수 대표가 복각한 웨스턴 일렉트릭 16A 혼 스피커. 오리지널 16A 세 대를 분해해 각 파트를 실측, 제작하는 방식으로 복각했다.

예병수 대표는 웨스턴 일렉트릭 16A 혼을 복각해 세계적 주목을 받은 기술자다. 특히 그의 복각판은 웨스턴 일렉트릭의 본산지인 미국에 역수출되기도 했는데, 그 저력은 특유의 집요함이었다. 그는 정몽진 회장의 도움으로 16A 혼 오리지널 세 대를 분해해볼 수 있었고, 각 파트를 세세히 측정하는 방식으로 복각을 진행했으며, 완성한 후에는 오리지널과 소리를 비교해보는 과정까지 거쳤다. 말로 들으면 언뜻 간단해 보이지만 빈티지 오디오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으면 불가능한 과정이다.
 
“세 대의 치수가 조금씩 다른 경우가 있었어요. 예를 들어 하나는 157cm인데 다른 건 159cm인 식으로. 그때야 장인들이 두들겨서 만들었으니 그런 오차가 생겼을 텐데, 일반적인 상식선에서는 그럼 158cm로 만들면 될 거라고 하겠죠. 하지만 아니에요. 엔지니어의 가치관을 더듬고 음향 이론에 비춰서 원래 몇 cm를 의도한 건지 생각해야 하는 거죠.”
그는 노트북을 켜고 제작 당시 사진을 하나하나 보여주며 설명을 이었다. 흥분을 숨기지 못하면서. “드라이버의 이 다이어프램을 만드는 게 무지하게 어려웠다”는 식의 이야기를 할 때는 지치고 슬펐던 당시 감정까지 되살려가면서. 자문을 구한 여러 사람이 예병수 대표를 인터뷰이로 추천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그는 복각 빈티지 오디오를 ‘싼 맛에 즐기는 명기’ 따위로 생각하는 인물이 아니니, 분명 들어볼 만한 이야기가 있을 거라는 것이었다. 예병수 대표는 자신의 겨냥점 역시 더 많은 사람이 웨스턴 일렉트릭을 좀 더 쉽게 접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분명 차이는 있었다. 그의 설명은 ‘이미테이션’보다는 ‘유물 견본’의 역할에 가까운 의미였으니까. 박물관에 진귀한 유물을 계속 전시해놓을 수 없으니 똑같게 만들어두는 견본. 예병수 대표는 그런 물건을 떠올리며 이 오디오를 만들었다고 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웨스턴 일렉트릭이라는 회사는 음향 발전에, 나아가 문명 발전에 큰 이정표를 남겼어요. 그럼 이걸 잘 보존해서 다음 시대에 유산으로 물려줘야 할 필요가 있는 거죠. 그걸 갖고 뭘 할지는 그 세대의 문제이고, 우리는 어쨌든 우리가 즐겼던 걸 전해야 할 의무가 있는 거예요. 하이엔드 오디오와 구별되는 그 음색까지 그대로 구현해서.”
‘100년 전의 오디오가 왜 사람들로 하여금 이런 거대한 프로젝트들을 벌이게끔, 열망을 품게끔 하는 걸까.’ 이 기사의 출발점이었던 질문을 채 던지기도 전에, 그는 대뜸 답을 돌려줬다. 흥미로운 점은 그 답변의 주체가 ‘우리’였다는 것인데, 마치 이런 전제를 품고 있는 듯이 들렸다. 웨스턴 일렉트릭 같은 오디오를 사용하다 보면 사명감은 저절로 생겨나는 거라고. 이런 오디오를 만지고, 천재들의 시대를 더듬고, 소리까지 듣다 보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