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을 바꿔 여행을 떠나는 자극적인 프로그램을 욕하면서 보고 있는 나, 비윤리적인가요?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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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을 바꿔 여행을 떠나는 자극적인 프로그램을 욕하면서 보고 있는 나, 비윤리적인가요?

없던 윤리가 매일 새롭게 태어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에스콰이어 코리아>는 지금까지 크게 고민하지 않았던 최첨단 윤리의 쟁점을 철학자와 함께 고민해보려 한다.

ESQUIRE BY ESQUIRE 2021.08.25
 
 

Ethics on the Edge 

 
Q. 30대 여성입니다. 몇 년 전, 일반인들이 출연한 연애 예능 프로그램을 참 재미있게 봤습니다. 드라마와는 달리, 서로 알아가는 단계에서 느끼는 설렘이나 질투 등 출연진의 감정이 직접적으로 느껴졌거든요. 얼마 전, 그와 비슷하면서도 좀 다른 또 다른 연애 예능을 만났습니다. 권태기가 온 일반인 커플들이 여행을 떠나, 그곳에서 서로 연인을 바꿔 지내보고 최종적으로 마음이 가는 사람을 선택하는 프로그램이었어요. 자극적인 만큼 출연진이 느끼는 감정이 생생했고, 동시에 무척 불편했습니다. 비윤리적인 상황 조장도 그렇지만, 감정의 위기를 겪는 사람의 모습을 콘텐츠로 이용하는 게 옳지 않다고 느꼈어요. 하지만 눈을 뗄 수 없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과연 이런 방송이 전파를 타는 게 맞는 걸까요? 또 인간의 마음을 소재로 쓰는 프로그램을 소비하면서 비판하는 저는 비윤리적인 사람인 걸까요?
 
A. 오래전에 싱글들이 출연해 짝을 찾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는데, 권태기에 접어든 일반인 커플들이 연인을 바꿔서 데이트를 하고 더 나아가 연인을 바꿀 수도 있는 프로그램을 본 적은 없었습니다. 내용이 추측되고 별로 보고 싶지는 않았지만, 검색해서 보았지요. 조금씩 건너뛰면서요. 사실 저는 막장 드라마처럼 관계를 꼬아놓는 연출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어쨌든 예상은 했지만 자극적이고 선정적이더군요. 권태기에 빠진 커플들이 ‘익숙함과 설렘 사이에서’(위의 프로그램이 내건 홍보 카피) 갈림길에 도달했다는 설정 자체가 이미 문제적이지요. 한 출연자는 설렘이 없는 익숙한 관계는 싫다고 하더군요. 그 감정들은 그 자체로 양자택일해야 할까요? 연애 초기에는 그럴지도 모르죠.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함(또는 친밀함)이 무거워질 겁니다. 그렇다고 나이 든 커플들에게 애정을 둘러싼 긴장이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익숙한 관계도 새로운 문제를 유발하니까요.
 
애인과 헤어질 수는 있지만, 애인 바꾸기를 게임처럼 연출하는 것은 자극적이고 선정적입니다. 실제 생활에서도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의 불륜이나 로맨스가 많이 일어나는 것이 사실이니 아예 있을 수 없는 연출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일탈을 조장하는 또는 ‘관종’을 위한 프로그램이라는 비판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관종으로 사는 사람은 그것이 무슨 문제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윤리적으로 그것을 혐오하는 태도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더욱이 애인을 바꾸는 관종 프로그램이라니! 사실 연예 방송은 기본적으로 ‘관종적’ 시스템이지요. 또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행위를 모방하거나 보는 일은 도덕성과는 거리가 멀겠죠. 그렇지만 옛날부터 있어온 일이고, 단순히 비도덕적이라는 기준으로 뿌리 뽑을 수는 없을 겁니다. 따지고 보면 예능 프로그램의 많은 부분은 감정을 과도하게 드러내고 서로를 모방하는 인간의 모습을 연출하는 경향을 피할 수 없이 가지니까요. 물론 대중매체 콘텐츠들 가운데는 도덕적인 것도 얼마든지 있지요. 그러나 대중매체가 특히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주제나 사건을 많이 다룬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런 자극적인 프로그램을 소비하는 개인은 “나는 윤리적인가?”라는 물음을 던지게 되지요.
 
그런 프로그램을 생각 없이 지속적으로 소비하거나 즐겨 본다면, 윤리적이진 않겠지요. 그러나 욕망에 흔들리는 인간의 마음을 소재로 이용하는 프로그램을 어쩌다 호기심으로 소비하고는 “내가 이런 걸 봐야 하나?”라고 자문한다면, 오히려 윤리적인 태도와 연결될 겁니다. 현재 사회에서 사람들이 겪는 다양한(과거 관점에선 있을 법하지 않거나 한심한) 갈등을 무조건 모른 척하거나 비도덕적이라고 쉽게 비판하는 일이야말로 무감각하거나 위선적일 수 있는 태도일 테니까요. 답답하거나 짜증 나는 점은, 이런 방송에 대해 일반적으로 옳고 그름의 구별을 적용하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대중매체는 자체에 내재하는 코드에 따라 매일 돌아가고 있지요. 그 코드는 옳음과 틀림의 구별이 아니라, 관심을 끄는 것과 아닌 것의 구별에 의존합니다. 그러니 “이런 자극적인 콘텐츠가 전파를 타는 게 올바른 걸까요?”라는 물음은 애초에 무력합니다. 방송의 자극적인 연출 방식은 도덕성에 비추면 바람직하지는 않겠지만, 또 단순히 옳고 그름으로 재단할 대상도 아닙니다.
 
이 코너에서 반복되는 주제이기는 하지만, 윤리와 비윤리의 구별은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적용되기는 어렵지요. 사회에서 통용되는 도덕의 기준이 칭찬 또는 비난할 만한가라는 구별에 따른다면, 윤리는 그런 도덕과는 다르다고 봐야 합니다. 제가 보기엔, 윤리에서는 ‘성찰적인’ 관점이 중요합니다. 대단한 것은 아니고, “이 문제에 대해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지는 일이죠. 답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고, 상황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겠죠. 말하자면, 도덕은 사회적으로 공인되는 기준을 따르는 반면 윤리는 그것보다는 훨씬 개별적이며 구체적인 상황을 고려한다고 할 수 있죠. 사회나 국가가 일률적으로 정답을 줄 수 없거나 ‘아직 주지 않고 있는’ 문제나 상황과 관련해서 윤리적 물음이 생긴다고 볼 수 있죠. 보통의 현대인의 감정과 욕망은 불법도 아니고 부도덕한 행동도 아닐 수 있지만, 끊임없이 윤리적 물음을 일으키는 문제 덩어리입니다.
 

 
Who's the writer?
김진석은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인하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사회비평〉 편집주간, 〈인물과 사상〉과 〈황해문화〉 편집위원을 역임했으며, 〈초월에서 포월로〉, 〈기우뚱한 균형〉, 〈니체는 왜 민주주의에 반대했는가〉, 〈더러운 철학〉, 〈우충좌돌 중도의 재발견〉, 〈소외되기 소내되기 소내하기〉, 〈강한 인공지능과 인간〉 등의 저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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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김현유
    WRITER 김진석
    Illustrator 양승희
    DIGITAL DESIGNER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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