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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세대가 말하는 386, X세대가 말하는 X세대

세대를 규정하는 시선이 있다. 때로 신통하게 맞기도 하지만, 그보다 자주 편협하고 부당한. 그 시선 아래 놓여본 당사자들이 자신의 세대를 말한다.

BYESQUIRE2021.08.29
 
 

당신의 세대

 
386과 486, 586이 가리키는 사람들
우석훈 (53/ 경제학자, 성결대학교 교수) 
 
2000년에 열린 16대 총선에서 DJ는 당시 30대였던 우상호, 이인영, 임종석 등 30대 운동권 출신 인사들을 대거 영입했다. 이렇게 젊은 나이에 국회의원이 되면서 정치를 시작한 사람들을 386이라고 불렀다. 첫 명명은 〈조선일보〉에서 했다. 당시 30대, 80년대 학번 그리고 60년대 출생이라는 세 가지 조건에 이 젊은 정치인들이 다 맞았다. 도스(DOS)라는 컴퓨터 운영체계에 따른 분류인데, 386은 당시로서는 윈도우 체계를 운영하기에 불편함이 없는 최신식 컴퓨터였다. 인텔의 CPU 분류 체계에서 혁명적이라는 286에 이어 386이 나왔다. 요즘 말로 하면 코어 i5나 i7 같은 용어였다. 그리고 486을 마지막으로 인텔은 더 이상 이 분류 체계를 쓰지 않게 되었다. 586은 나온 적이 없다.
 
386이라는 숫자로 표현된 지칭은 원래는 욕이었다. 젊고 싸가지 없고, 전통적 방식을 잘 모르는 전복적인 존재라는 그런 뉘앙스를 가지고 있었다. 당시의 30대 전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고, 운동권 중에서도 민주당에 영입된 엘리트 운동권 일부를 지칭하는 것이 원래의 의미였다. 2000년 총선 당시 나는 에너지관리공단에서 근무하다가 총리실에 파견근무를 나가 있었다. 당연히 나는 386이 아니었다. 현대그룹에서 일하다가 정부기관으로 자리를 옮긴, 그냥 월급쟁이일 뿐이었다. 그 시절에 386으로 지칭할 수 있는 사람은 몇십 명에 불과했다. 아무도 나에게 386이라고 하지 않았다. 그냥 기다리고 있으면 나에게도 차례가 올 것이라는 정도의 예의상 하는 얘기를 들었다.
 
386이라는 호칭은 30대가 나이를 먹어 40대로 넘어가면서 486이라는 용어로 바뀌었다. 그러면서 그 지칭 대상이 넓어졌다. 어느새 운동권 40대 전반을 가리키는 용어가 되었다. 또 시간이 흘렀다. 이제 50대가 되었다. 문재인 정부와 함께 집권 세력 전체 혹은 기성세대, 그리고 간혹은 ‘꼰대’를 대치하는 용어가 되었다. 내가 30대, 40대일 때는 나에게 386 혹은 486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지만 내가 50대가 되자 586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최근 여성가족부 폐지 문제와 관련해 MBC 〈100분 토론〉에서 토론을 했고, 한 매체에 양궁선수 안산의 쇼트커트 문제에 대해 비판하는 글을 썼다. 거기에는 이런 댓글이 달렸다. “586들은 세상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 얼마 전 인터파크에서 최근에 낸 팬데믹 책에 대한 인터뷰를 했고 그 동영상이 공개되었다. 담당자는 1020의 여성혐오 현상에 대한 코멘터리에 악플이 너무 많이 달린다고 댓글 처리 여부를 물어왔다. 그냥 두시라고 했다. 나는 평생 남들 듣기에 싫은 소리만 하면서 살았고, 욕먹는 건 그냥 습관이 되었다. 이렇게 해도 욕먹고, 저렇게 해도 욕먹는다.
 
〈88만원 세대〉는 30대 후반에 쓴 책이다. 그 책의 후반부에 나는 소위 386이었던 운동권들이 이제 사교육에 몰두하고, 원정 출산과 조기 유학 등을 이끌었던 것에 대한 비판을 했었다. 그때도 주변 사람들에게 욕을 엄청 먹었다. 한때 더 좋은 세상을 말했던 사람들이 생활인이 되고 나서 전혀 다르게 행동하는 것을 이해할 수는 있다. 그래도 칭찬 들을 일은 아니지 않은가?
50대와 60대는 전통적으로 보수 쪽이 훨씬 많았다. 그런데 586들이 50대가 되면서 이 지형이 점점 바뀌어 여러 지표에서 50대 남성이 20대보다 진보적 성격을 보이기도 한다. 우리는 우리의 세대와 세대 사이의 갈등이 특별한 현상이라는 생각에 피해의식에 사로잡히곤 한다. 좀 더 넓게 볼 필요가 있다. 세상이라는 것은 항상 묘하게 균형을 잡는데, 균형을 잡는 과정은 항상 마찰을 야기한다. 기압의 균형을 잡기 위해 바람이 생긴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라. 지금의 20대가 30년 전의 20대와 달리 보수에게도 기꺼이 표를 던진다는 건 특이한 현상이 아니다. 1990년대 이후 유럽에서는 청년 극우파가 등장했다. 68혁명을 이끌었던 당시의 20대 좌파가 집권 이후 결국 부패하면서 이에 반발한 극우파 정당이 생겨나고, 결국 대선 결승 투표에 오르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EU 의회에서는 극우파가 제1당이다. 한때 히피 혐오가 떠돌았던 미국의 흐름도 비슷한 맥락이다. 일본은 수십 년 동안 적어도 두 번의 극심한 ‘청년 우편향’ 현상을 겪었다. 우리에게도 비슷한 흐름이 생겨나는 것이라고 나는 무덤덤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반성은 남는다. 586과 MZ세대의 갈등이 전면적으로 벌어지는 곳은 정치의 현장이 아니라 직장이라고 생각한다. 1980년대 군인들과 싸우면서 386들 역시 군인처럼 진을 짜고 작전처럼 방어진을 쳤다. 여학우들은 보도블록을 깨서 돌을 가지고 오고, 남학우들은 백골단에게 던졌다. 이 순간을 너무 아름답게 생각했던 걸까? 586들은 직장에서 중간 상사가 되면서 기업은 군대 형태가 가장 효율적이고, 여성 차별은 성별 역할 분할이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이게 뭐야? 새로 직장에 들어간 20대들은 경악했을 것이다. 직장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가 늘어나면서 ‘라떼’는 욕이 되었고, 수직적 조직문화를 신봉하는 50대와 수평적 문화에 익숙해진 20대의 갈등이 직장에서 늘어났다. 한국이 선진국이 되어갈수록 수평적인 문화가 강해진다. ‘우리가 선’이라고 생각하던 1980년대의 20대들은 30년 만에 직장에서 공적이 되어버렸고, 퇴출되어야 할 원로 꼰대가 되었다. 군인들의 권위주의와 싸웠던 20대 초반 대학생들이 50대가 되면서 직장에서 권위주의의 상징이 되었고, 은퇴와 퇴출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 공격하던 사람의 입장에서 이제는 구태로 몰려 자신의 지위를 수비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슬픈 일이다.
 
 
누구의 후예도 아닌, 누구의 대부도 아닌 X
김도훈(45/ 칼럼니스트) 
 
이 운동이냐 저 운동이냐. 나는 1994년에 대학에 입학했다. 사람들은 우리를 X세대라고 불렀다. 어떤 선배들은 게스 청바지를 입고 가면 미제의 앞잡이라도 되는 듯 우리를 흘겨봤다. 그럼에도 운동권 선배들은 어떻게든 이 한심한 후배들을 운동의 마지막 불꽃으로 만들기 위해 애를 썼다. 키가 꽤 큰 같은 학과 친구는 원래도 사회운동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곧 운동권 선배들과 ‘공부'를 하고 다녔다. 당시에는 소리 내 말하는 것조차 금기시되던 5·18민주화운동 관련 시위가 가끔 열렸다. 최루탄 향기가 캠퍼스로 올라오는 일도 있었는데, 나와 주변 친구들은 얼른 후문으로 빠져나가 새로 생긴 카페에서 하루키 책이나 읽을 생각으로 가득했다.
 
운동을 하던 친구는 또 다른 운동을 하고 싶었다. 미식축구였다. 미식축구부는 꽤 선망의 대상이었다. 아마도 중요 부위 가리개가 툭 튀어나온 유니폼 덕분이었을 것이다(뭐 다른 이유가 있었을 수도 있다). 하여간 운동권 선배들과 운동을 시작한 친구는 미식축구부에도 가입을 신청했다. 그리고 곧 심문이 시작됐다. 선배는 말했다. “운동을 하는 사람이 미제국주의 스포츠를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친구는 항변했다. “운동이랑 미식축구랑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선배들은 겨우 포섭한 회원을 잃고 싶지 않았다. 친구는 개의치 않았다. 결국 미식축구 유니폼을 입었다. 선배들과 운동을 계속하던 학우 중 하나는 다음 해 단대 대표 후보로 나와 이렇게 말했다. “캠퍼스 자판기에서 코카콜라를 모두 없애겠습니다." 우리는 대자보를 보며 웃었다.
 
X세대는 운동을 버리고 자신을 선택한 세대였다. 집단보다 개인을 선택한 세대였다. 한국 역사상 처음이었을 것이다. 미디어는 X세대의 ‘개인주의'를 ‘이기주의'로 해석했다. 만약 당신이 당신의 세대에 대해 비아냥거리는 전 세대의 농담을 기분 나빠 하는 밀레니얼 세대라면 이미 X세대가 그 비아냥을 더욱 집단적이고 광적인 형태로 겪었다는 것을 이해해주시길 바란다. 그 시절에는 소셜미디어가 없었기 때문에 자료로 남아 있는 게 적을 뿐이다. 다만 다른 것이 하나 있다. 1970년대 중반에서 1980년 중반에 태어난 X세대가 국가에 충성할 줄 모르고 386의 운동을 존경할 줄 모르는 세대가 된 이유는 한국이 아주 잠깐 누린 경제적 풍요 덕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밀레니얼 세대를 “돈도 없는 주제에 비싼 아보카도 샌드위치나 먹는 것들"이라고 공격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우리는 원두커피 한 잔을 마시는 데에 3000원이라는 돈을 쓰기 시작한 첫 세대니까 말이다.
 
X세대는 늙었다. 40대가 됐다. X세대는 이제 X세대라고 불리는 것을 좀 겸연쩍어 한다. 더욱 겸연쩍은 단어는 ‘영포티'다. 몇몇 한국 미디어들이 40대가 된 X세대를 지칭하면서 쓰기 시작한 이 단어는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기만적이다. 밀레니얼 세대가 왜 ‘영포티'라는 단어를 내세운 기사를 그토록 공유하며 비웃었는지 충분히 이해한다. 그들에게 X세대는 조금 다른 형태의 꼰대다. 이를테면 대기업 부장으로 일하는 내 친구는 “밀레니얼들이 제일 싫어하는 건 X세대 꼰대"라고 증언한 바 있다. 586은 그냥 꼰대다. 그들은 어차피 당신들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해내라고 지시할 뿐이다. X세대 꼰대는 다르다. 그들은 당신의 기획안을 보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 기획안이 더 영하고 힙하지 않니?” 미안하다. 젊은 척하는 꼰대라는 게 얼마나 기분 나쁜 존재인지 나도 알고 그들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약간의 항변은 필요하다. 모든 세대가 자신이 ‘낀 세대’라며 한숨을 쉰다. X세대도 그렇다. 우리 세대는 중간 관리자급이 됐다. 그러나 X세대는 어디서도 보이지 않는다. 586은 서로 끌어주는 집단주의와 긴 정년을 무기로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모든 곳을 지배하는 세대가 됐다. 그들은 너무나도 오랫동안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데다 인구수도 압도적으로 많은 덕에 도무지 권력을 이양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586을 모시는 처지가 된 X세대는 리더가 되어본 적이 없다. 아마도 리더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X세대가 유일하게 뭔가를 해내는 것처럼 보이는 분야가 있다면 그건 문화다. 1975년생인 김태호와 1976년생인 나영석이 대표적이다. 그들은 새로운 예능의 시대를 열었다. 전 세대와 후세대가 모두 즐길 수 있는 오락의 포맷을 창조했다. 그리고 그들은 기회가 오자마자 독립했다. 간섭 없이, 간섭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일하는 길을 선택했다.
 
사실 그건 너무나도 X세대적인 선택이다. 나는 온라인 미디어 〈허핑턴포스트〉의 편집장이 되며 처음으로 관리자의 입장으로 밀레니얼 세대와 일했다. 그리고 X세대가 얼마나 관리자로서 적합하지 않은 세대인지를 뼈아프게 깨달았다. X세대 관리자들은 팀원들에게도 간섭하기를 꺼린다. 간섭을 가장 싫어했던 세대니 어쩔 도리가 없다. 밀레니얼 세대는 달랐다. 끊임없이 피드백을 원했다. 야단쳐주길 원했다. 육성해주길 원했다. X세대는 수능 첫 세대였다. 불타는 사교육의 세대가 아니었다. 치밀한 성적 관리 시스템과 수시(隨時)의 세대도 아니었다. 우리는 방임당한 세대다. 방임당한 세대는 계속해서 방임당하고 싶어 한다. 잔소리 듣지 않고 회사를 다니는 것이 최고의 목표다. 나는 잔소리를 해야 했지만 도무지 잔소리가 입에서 튀어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왜 이 친구들은 스스로 성장하려 하지 않고 성장시켜주길 바라는 걸까?’ 그렇다. 나는 지금 내가 최악의 관리자였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X세대의 진정한 문제는 여기서 출발해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스스로 리더의 길을 포기한 세대다. 586에 도전하지 않았다. 우리는 다르다고 소극적으로 외치기만 했다. 2인자로서, 혹은 독립적으로 일하는 것이 가장 편하다고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밀레니얼 세대의 코치로서 행동하는 것도 거부했다. 불편한 점을 모조리 드러내며 징징거리는 세대라며 고개를 돌렸다. 집단적 관행을 거부하고 목소리를 내는 밀레니얼 세대를 보며 우리는 고자질하듯이 서로에게 속삭였다. “386이 낳고 기른 세대라 그래.” 그러니 한 가지는 분명하다. X세대 대통령은 결코 나오지 않을 것이다. 지금 젊은 정치인으로 변화의 파도를 일으키는 것은 이준석과 류호정이다. 한국 정치는 386에서 X세대를 그냥 건너뛰고 밀레니얼 세대의 투쟁터가 됐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낀낀 세대'라고 한숨을 내쉬면서도 윗세대와 아랫세대의 연결고리가 되기를 포기했다.
 
왕가위의 〈중경삼림〉을 얼마 전 다시 봤다. 아직 쌍꺼풀 수술을 하기 전의 금성무가 말했다. “기억이 통조림이라면 영원히 유통기한이 없었으면 좋겠다. 유통기한을 꼭 적어야 한다면 내 사랑의 유통기한은 만 년으로 하고 싶다”. 나는 입으로 작은 비명을 내질렀다. 그랬다. 그토록 자기 속으로 침잠하던 X세대는 이토록 느끼한 중년이 됐다. 아마도 우리는, X세대는 이렇게 살다가 죽을 것이다. 어쩌겠는가. 영원히 철들지 않는 세대도 세상에 뭔가를 기여하기 마련이다. 아마도 유흥산업에? 여하튼 나는 운동 대신 미식축구를 선택한 친구가 멋지다고 생각했다. 연대 대신 자신을 선택한 그가 옳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직도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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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EDITOR 오성윤
  • Illustrator MYCDAYS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