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의 '어떻게 보면 무섭고 어떻게 보면 우스운'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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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의 '어떻게 보면 무섭고 어떻게 보면 우스운'

사진작가 박찬욱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그날 그 장소의 빛이 만들어낸 익숙하지만 낯선 우연을 찾아 렌즈를 들이밀고 기록한다고 말했다. 그건 감독 박찬욱의 일과는 전혀 다른 세계의 작업이다.

박세회 BY 박세회 2021.09.27
 
 

우연의 세계

 
10월 1일부터 부산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 제목이 〈너의 표정〉입니다.
(‘표정’이라고는 하지만) 사람은 거의 등장하지 않아요. 사물과 풍경들이죠. 그런데 그 사물과 풍경에서 어떤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그걸 꼭 ‘인간적’이라고 표현해야 할지 또는 뭐…인간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감정이나 생명을 지닌 것 같다는 그런 느낌, 그런 인상을 주는 피사체들이죠. 사람마다 느끼는 건 다르겠지만, 전시를 가이드하는 의미로 ‘표정’이라는 표현을 써봤어요. 그에 더해 좀 더 개인적으로 ‘사적인 나’와 피사체, 그리고 또 관객과 피사체 사이에 1 대 1의 관계를 맺는 느낌을 주고 싶어 ‘너’라는 말을 붙였죠.
 
블랙 실크 스트라이프 셔츠, 블랙 팬츠 모두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블랙 실크 스트라이프 셔츠, 블랙 팬츠 모두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저희가 미리 받아본 몇몇 작품 중에는 그냥 1차원적인 형상으로도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게 하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소파는 웃는 것처럼 보였고, 바위는 정말 사람의 얼굴처럼 보였습니다.
그렇죠. 근데 그게 꼭 사람의 얼굴이라고 볼 수도 있겠고, 뭐 각자 다른 거겠죠.(웃음)
2013년부터 현재까지 수많은 사진의 아카이브를 가지고 있으시다면서요. 이번 전시도 그중에서 골랐고요.
예, 맞아요. 디지털로 찍은 것들 중에서 8300여 장을 추렸고 그중에서 다시 1800장을 추렸죠. 이번 전시에는 걸리지 않지만 현장에서 찍은 배우들 사진이라든지, 꽤 오랫동안 저를 찍은 사진 시리즈도 있어요. 또 뮤지엄 시리즈라는 것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따로 분류하는 중이에요. 너무 여러 가지가 섞여 있으면 산만하니까요. 이것과 저것을 빼고 정물과 풍경 중에서 비교적 나의 세계가 잘 드러나는 것을 골랐습니다.
예전 사진집인 〈아가씨 가까이〉에도 배우들을 찍은 사진들 사이사이에 이런 장면들이 있었어요. 중간중간 영화 촬영 시기에 오며 가며 찍은 풍경 사진들이었죠. 라이카 전시와 겹치는 사진도 있고요. 어떤 감각으로 사진들을 묶는지도 궁금합니다.
〈아가씨 가까이〉는 기획 의도 그대로 영화 〈아가씨〉의 각본을 쓸 때부터 시작해 완성할 때까지의 기간 중에 〈아가씨〉라는 영화와 관련한 이미지들을 기록한 작품들이고 그렇게 골라 하나의 책이 나왔기 때문에 이번에는 그것과 겹치지 않게 했고요. 라이카 전시는 그룹전이니까 특별한 어떤 주제나 통일성 또는 콘셉트 같은 것 없이 마음에 드는 사진들을 골랐어요. 이번 전시는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좀 좁게 포커싱을 해서 풍경과 정물 중에 내 성격이 좀 드러나는, 사진작가로서의 성격이 드러나는 것들을 골랐죠. 어떤 건 유머도 있고, 어떤 건 전체적으로 초현실주의적인 그런 상황을 기록한 것이죠. 어떻게 보면 약간 무섭고 어떻게 보면 우스운 것들입니다.
 
‘Face 45’, 2015, Archival pigment print, 111 x 111cm

‘Face 45’, 2015, Archival pigment print, 111 x 111cm

〈아가씨 가까이〉에 실린 사진들을 보면서 빔 벤더스의 ‘인스턴트 스토리’ 시리즈가 떠올랐어요.
그분은 훌륭한 사진작가예요. 제 사진을 보고 그분이 떠올랐을 수도 있겠죠. 그분 사진에는 풍경이 좀 많죠. 주로 풍경들로 알고 있는데, (제 사진과 비교하면) 좀 더 와이드하게 잡고, 대개는 쓸쓸하고 황량한 그런 심상을 일으키는 것들이 제가 본 중엔 많았던 것 같아요.
벤더스 외에도 사진을 찍는 감독들이 종종 있나요?
안드레이 타르콥스키의 폴라로이드 사진집이 유명하고,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도 사진전을 한 적이 있죠. 데이비드 린치는 사진을 포함한 여러 가지 미술 작업을 하고, 또 거스 밴 샌트도 전문가처럼 사진을 많이 찍는다는 얘기를 그와 같이 일했던 사람에게 들었어요.
좀 아까 ‘초현실적’이라고 한 표현이 귀에 걸립니다. 작가님이 여러 인터뷰에서 좋아하는 포토그래퍼로 꼽은 외젠 아제가 사실 다큐멘터리 사진이 초현실적일 수 있다는 담론을 끄집어낸 계기가 된 작가기도 하잖아요. 외젠 아제 이후 수많은 사람이 외젠 아제의 사진이 왜 초현실적인지를 설명했듯, 박 작가님께서 직접 자신의 사진이 초현실적으로 보이는 이유에 대해 설명해볼 수 있을까요?
(웃음) 참말로, 이걸 어떻게 설명을 할까요. 그러니까 익숙한 사물인데 그게 어떻게 어떤 찰나에 낯설게 보이는 순간을 기록하죠. 특정한 앵글을 취해서 그렇게 보일 때도 있고, 특정한 광선을 만나서 그럴 때도 있어요. 그것을 어떤 눈으로 보느냐, 그에 따라서 ‘어, 갑자기 낯설어진다’라는 그 기분을 나는 표현하고 싶었거든요. 어떤 피사체를 보고 언뜻 첫인상에서 낯선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데, 이걸 또 들여다보고 음미하다 보니, 특별히 그럴 것도 없단 말이죠. 왜? 왜일까? 왜 그 피사체의 첫인상이 그로테스크하거나 우스꽝스럽거나 뭔가 좀 이상한 느낌이 들었을까? 그게 왜 나한테 그런 인상을 일으켰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하는, 그런 힘이 있는 작업을 하려고 하는데, 나는 그걸 ‘초현실주의적’이라고 말해본 거죠.
 
‘Face 107’, 2013, Digital C-print, 80 x 80cm

‘Face 107’, 2013, Digital C-print, 80 x 80cm

저 역시 이 사진들을 미리 받아보고 ‘왜 이리 낯설지’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포토그래퍼가 표현하고자 하는 그 상태 그대로 기록하는 기술도 중요할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이 파라솔 뒤 나뭇가지들은 분명 흔들리는 것 같은데 초점이 썩 잘 맞아 있잖아요.
뭐…글쎄요. 이런 경우는 좀 깊은 심도로 찍으려고 했죠. 제 사진이 다 그런 건 아니에요. 피사체와 나와 카메라 사이의 거리를 어떻게 유지하느냐, 어떤 종류의 몇 미리짜리 렌즈를 쓰느냐. 조리개를 조이는 정도와 셔터 스피드, 감도 등 기술적인 요소들이 결합돼서 만들어내는 효과죠. 이 경우에는 그렇게 해봤습니다.
그래서 마치 진공 상태에 전시돼 있는 오브제 같은 느낌이 들어요.
약간 떠 있는 느낌이 들죠. 이 아래쪽은 어두운데, 디지털 리터칭으로 낸 효과예요. 너무 인위적이지 않으면서 조금씩 강조하거나 어둡게 해요. 필름 시절에도 인화할 때 부분적으로 조금 더 어둡게 하거나 밝게 하는 효과를 냈는데, 그와 같습니다. 영화에서는 후반 작업이라 하고, 예전 필름 사진에서는 암실 작업이라고 했고요. 전 그런 작업을 아주 많이 하지는 않는 편이고, 리사이징하거나 리프레임 하는 일도 극히 드물죠. 전혀 안 하는 건 아니지만, 아주 조금씩밖에 안 해요. 만약 가로를 이만큼 크롭한다면, 세로 쪽도 같은 비율로 잘라내서 원래의 종횡비는 유지하는 편인데, 그나마도 잘 안 하죠.
 
*박찬욱 화보와 인터뷰 풀버전은 에스콰이어 10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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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FASHION EDITOR 고동휘/ 신은지
    FEATURES EDITOR 박세회
    PHOTOGRAPHER 김참
    PHOTO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HAIR & MAKEUP 이은혜
    ASSISTANT 이하민
    DIGITAL DESIGNER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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