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의 우연과 필연의 세계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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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의 우연과 필연의 세계

사진작가 박찬욱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그날 그 장소의 빛이 만들어낸 익숙하지만 낯선 우연을 찾아 렌즈를 들이밀고 기록한다고 말했다. 그건 감독 박찬욱의 일과는 전혀 다른 세계의 작업이다.

박세회 BY 박세회 2021.09.27
 
 

우연의 세계

 
그런데 사진은 우연에 기대는 매체죠.
전 스튜디오에서 조명을 설치하고 찍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전적으로 우연에 기대요. 그래서 영화와 다르게 언제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하고 어디를 가도 카메라를 가지고 있고 항상 주변을 보고 나를 놀라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는지를 살펴야 하죠. 내가 연출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연이지만, 그것을 그냥 발견할 수는 없거든요. 넋을 놓고 지나가다가 만난다고 해서 사진의 순간이 포착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다른 사람이 그곳을 지나갔다면 발견하지 못했을 것을 내가 발견하는 그런 행위라는 측면에서는 순전히 우연이라고만 볼 수는 없는 요소가 있는 거예요. (영화와 사진) 양쪽 모두 그런 요소가 조금 섞여 있긴 하지만, 그래도 단순하게 비교하자면 확실히 우연과 필연으로 말할 수 있겠죠.
 
블랙 스트라이프 재킷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블랙 스트라이프 재킷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멋진 말이네요. 언제 우연을 기록하세요?
어, 일단은 놀라야 하죠. (놀라려면) 놀랄 준비가 돼 있어야 하는 거고요. 항상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건 그런 뜻입니다. 어제 지나갈 때는 못 본 것이 오늘 오후 5시에 이 광선에 보니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보이거나, 또는 지난겨울에는 못 봤는데 여름이 되니까 이렇게 바뀌었다 싶은 것들. 그런 것들을 딱 마주칠 수 있어야 해요.
우연을 기다리기도 하시나요?
기다린다라…뭐 그럴 때는 있죠. 햇빛을 기다릴 때는 있어요. 한 시간쯤 더 지나면 어떻게 될까, 그때가 됐을 때 어떤 모습이 될지 궁금해질 때가 있죠. 한 시간 후에 다시 와봐야 되겠다고 생각하면서 다른 데로 갔다가 다시 오고 그래요.
 
‘Face 106’, 2016, Archival pigment print, 124 x 124cm

‘Face 106’, 2016, Archival pigment print, 124 x 124cm

예전에 영화를 찍다가 며칠 비를 기다렸다는 내용의 글을 본 적이 있어요.
영화 찍다가? 아, 맞아요. 네 그런 적이 있어요. 너무 넓은 범위를 찍어야 하는데 우리가 인공적으로 뿌리는 물을 가지고는 도저히 커버가 안 될 것 같더라고요. 그때 마침 장마철이고 해서 기다렸다가 비가 오는 장면을 찍은 적이 있어요. 그 영화가 〈복수는 나의 것〉입니다. 그때 달동네가 완전히 와이드하게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비가 폭포같이 내리고, 송강호(동진 역) 씨가 동반 자살한 기주봉(팽 기사 역) 씨 가족 중 아들이 살아 있는 걸 알고 그 아들을 업고 막 뛰어내려가는 장면인데, 그렇게 비를 기다려서 찍었죠.
 
‘Face 6’, 2016, Backlit film, LED lightbox, 110 x 75cm

‘Face 6’, 2016, Backlit film, LED lightbox, 110 x 75cm

지금 제게 한 ‘나도 모르게 처음에 사진을 찍을 때부터 끌리던 방향이 있었다’, ‘우연히 만난 것을 기록한다’라는 말들이 시인들이 시상이나 시어에 대해 하는 말과 매우 비슷하네요.
맞아요. 시에 가깝죠. 영화는 산문적이고 소설 같은 거라면, 사진은 시에 가깝죠.
 
블랙 포 버튼 코트, 링 모두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블랙 포 버튼 코트, 링 모두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이번 전시에서는 본인의 사진을 보고 관객들이 어떤 감각을 느끼길 원하시나요?
사진마다 다 다를 테고, 달라야 하죠. 각자가 살아오면서 쌓아놓은 기억이 이 사진으로 어떻게 건드려지는지를 살펴보면 좋겠어요. 이미지의 어떤 한 부분일 수도 있고 전체일 수도 있고, 구석에 놓인 어떤 물건일 수도 있고, 그런 것이 자신의 기억을 건드려서 마치 거품이 퐁 하고 수면 위로 올라와 탁 하고 터지듯이요. 상상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사진들을 보면서 프레임 바깥에는 무엇이 있을지, 셔터가 터진 125분의 1초 앞뒤로는 어떤 일이 펼쳐질지를 상상해보면 더 좋죠.
 
*박찬욱 화보와 인터뷰 풀버전은 에스콰이어 10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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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FASHION EDITOR 고동휘/ 신은지
    FEATURES EDITOR 박세회
    PHOTOGRAPHER 김참
    PHOTO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HAIR & MAKEUP 이은혜
    ASSISTANT 이하민
    DIGITAL DESIGNER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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