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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 갤러리 타데우스 로팍 디렉터가 말하는 '한국 진출의 의미'

70명의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소속된 글로벌 메가 갤러리 타데우스 로팍이 서울에 입성한다. 로팍의 입성을 책임진 황규진 서울갤러리 총괄 디렉터이자 아시아 지역 디렉터를 만났다.

BY박세회2021.09.29
 
 

로팍이 만들 변화

 
Q. 글로벌 미술계에서 ‘아시아의 아트 센터’라고 하면 보통 어떤 도시를 떠올리나요?
한 2~3년 전까지만 해도 당연히 홍콩이나 상하이였죠.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에서 제 역할은 원래 아시아 담당이었어요. 한국 담당이 아닌 아시아 담당이었기에 그 분위기를 잘 알죠. 홍콩, 상하이, 도쿄나 서울 순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서울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서울의 현대미술 시장 규모가 아무리 성장했다고 하더라도 마켓 규모 자체는 상하이나 홍콩보다는 아직 훨씬 작아요. 하지만 사회적인 상황도 좋고, 훌륭하신 원로 작가들과 젊은 작가들의 균형도 발전하는 분위기이고, 또 역사가 깊은 공공미술관 등의 아트 인프라가 좋아서라고 생각합니다.
 
Q. 특히 최근 한국 아트 마켓의 성장은 ‘폭발’이라 할 만하다고 봐요.
그런데 그 폭발이 팬데믹 이후 일순간에 일어난 일이라고는 생각 안 해요. 아까 말했던 예술 인프라가 오랜 기간에 걸쳐 조금씩 쌓였기에 이렇게 폭발할 수 있었던 거죠.
 
타데우스 로팍은 대사관이 즐비한 한남동 독서당로 ‘포트힐’에 자리를 잡았다.

타데우스 로팍은 대사관이 즐비한 한남동 독서당로 ‘포트힐’에 자리를 잡았다.

Q. 로팍이 입성할 때 고려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뭔가요?
마찬가지예요. 마켓, 작가, 인스티튜션이죠. 저희는 그 삼박자가 항상 맞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마켓만 너무 성장하면 경제위기가 오는 순간 붕괴해버려요. 그럴 때 분명히 사라지는 작가가 생깁니다. 그러나 인스티튜션-한국이라면 역사가 깊은 국공립미술관, 유수의 컬렉션을 자랑하는 사립미술관 등이 이겠죠- 이런 기관이 든든하게 받쳐주면 잠재력 있는 작가가 롱런하는 게 가능해요. 시장이 무너져도 미술관에서 소장해주고 대여를 해서 전시를 열어 작가가 끊임없이 활동하고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죠. 그런 기관의 노력이 결국 글로벌 갤러리가 입지를 고려하는 요소 중 하나일 수밖에 없어요. 시장 조사를 하다 알게 된 사실이지만, 한국의 컬렉터들의 수준 역시 무척 높아요. 특히 현대미술에 대한 조예가 깊고, 국제적 갤러리와 상호 신뢰 관계를 맺고 있는 탄탄한 컬렉터들이 매우 많아요.
 
Q. 참 좋은 얘기네요. 혹시 미술 관련 교과서에 나와 있는 말은 아니죠?(웃음)
(웃음) 아녜요. 제가 경험하며 느낀 바예요. 유럽의 아트 신에서 한 10년 정도 일해왔고, 당연히 경제위기가 온 적도 있었으니까요. 그런 때 작가들이 사라지지 않고 보이는 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기관의 힘이라는 생각을 늘 했거든요. 사실 갤러리스트라면 다들 공감할 거라고 생각해요.
 
Q. 지금 한국처럼 시장이 뜨거울 때는 갤러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죠.
맞아요. 소속 작가에게 관심이 쏠린다고 해서 작품을 빠른 시간 안에 시장이 원하는 대로 공급하는 건 좋은 갤러리의 행보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 작가의 미래를 망칠 수 있거든요. 특히 젊은 작가의 경우, 초석을 다지려면 대표가 되는 작품들은 미술관에 소장되도록 노력해야 하죠. 작가의 작품을 미술관이 소장한다는 건 마치 보험 같은 거예요. 위기의 순간 시장이 이 작가를 버릴지라도 이 작가에겐 ‘모마 소장 작가’,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작가’라는 거대한 이력이 남지요. 장기적으로 보면 그것이 해당 작가의 작품을 소장한 컬렉터를 보호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Q. 로팍은 어때요? 갤러리로서 작가를 보호하는 역할을 잘 하는 편인가요?
그 부분에 있어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저희 갤러리는 40년 됐는데 아직 소속 작가 중에 한 명도 나가신 분이 없어요. 이번에 타데우스 로팍 서울의 첫 전시인 게오르그 바젤리츠 같은 경우에도 35년 동안 저희와 함께했죠. 거의 바젤리츠의 커리어 중반부터 계속 함께해온 셈이에요.
 
10월 6일부터 열리는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가르니 호텔〉에 전시될 작품들. ‘Untitled 3’, Georg Baselitz, 2021

10월 6일부터 열리는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가르니 호텔〉에 전시될 작품들. ‘Untitled 3’, Georg Baselitz, 2021

Q. 이불 작가가 로팍 소속이잖아요. 갤러리 개관을 위해 제작한 소개 영상에서 그가 하는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로팍은 상업 갤러리로서의 한계를 넘는다. 로팍은 갤러리 역할을 할 뿐 아니라 그 선을 넘어서 인스티튜션이 해야 하는 역할까지 한다"는 취지였죠.
일을 하면서 저 또한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굉장히 많아요. 인스티튜션이라든지 작가에 대한 책임감이 굉장히 강한 갤러리라는 사실 말이죠. 그리고 그 부분이 가장 자랑스럽기도 해요. 저희 갤러리는 특히 젊은 작가의 경우엔 작품을 정말 신중하게 “Placement”합니다 . 웨이팅 리스트가 엄청나게 긴 작가의 작품 같은 경우엔 판매를 오픈하기 전에 오랜 시간 회의를 합니다. 작품을 소장하고자하는 컬렉터나 기관이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작품 소장 이력이 있는지, 이 촉망받는 작가의 작품을 왜 이곳이 소장해야 하는지를 공들여 토의를 하는 거죠. 보통은 젊은 작가 작품 판매 1순위는 미술관인데, 어느 나라나 공공미술관은 소장품 예산이 항상 넉넉한 건 아니거든요. 이런 경우, 가끔은 정말 작품을 원하는 컬렉터분들은 ‘내가 두 작품을 사서 한 작품은 꼭 필요한 미술관에 기증을 제안해보겠다’라고 먼저 제안을 하시기도 합니다. 저에게는 놀라운 경험이었지만, 유럽에서는 오래전부터 이런 전통이 흔했다고 하더라고요.
 
Q. 로팍이 들어오면 한국 기관과도 관계도 생기겠죠.
노력하고 있습니다. 기관에서 저희 소속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대여하거나 전시를 하면서, 맺어지는 갤러리와 기관의 관계들이 당장 작품을 판매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필요한 과정일 거라고 생각해요.
 
Q. 타데우스 로팍 대표가 창립자인데, 메가 갤러리의 창립자치고는 좀 젊지요.
로팍 대표는 1960년생이지만, 스물한 살의 나이에 일찍 갤러리를 시작해 업력은 벌써 40년이에요. 워낙 대표님 업력이 길다 보니 재밌는 일화가 많답니다.
 
10월 6일부터 열리는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가르니 호텔〉에 전시될 작품들. ‘Hotel garni’, Georg Baselitz, 2021

10월 6일부터 열리는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가르니 호텔〉에 전시될 작품들. ‘Hotel garni’, Georg Baselitz, 2021

Q. 가장 재밌는 건 뭐가 있나요?
요셉 보이스와 앤디 워홀이 등장하는 일화가 있어요. 로팍 대표는 열일곱 살 때 거장 요제프 보이스 작업실 어시스턴트였던 적이 있어요. 일종의 스승과 제자의 관계였던 셈이죠. 로팍이 스물한 살 때 코코슈카를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로 그의 도시 잘츠부르크에 갤러리를 차리고 요제프 보이스를 찾아가서 부탁을 했지요. 첫 전시로 앤디 워홀의 전시를 하고 싶다고, 뉴욕에 갈 테니 추천서를 하나 써달라고요. 실제로 뉴욕에서 앤디 워홀을 만났는데, 요제프 보이스가 워낙 거장이다 보니 워홀도 딱 잘라 거절하지는 않고 "나 말고 다른 젊은 아티스트 한 명을 추천해주겠다"고 하더래요. 그때 워홀이 추천해준 아티스트가 바로 장 미셸 바스키아였어요.
 
Q. 엄청나군요.
그러니까요. 타데우스 로팍은 그렇게 스물한 살의 나이에 바스키아의 작품 10점을 그야말로 손으로 직접 이고 지고 날라서 잘츠부르크에 돌아왔고, 전시를 열었죠. 그게 1983년이에요. 그리고 그 전시 도중에 바스키아가 갑자기 사망하게 되었죠. 저희 갤러리의 첫 전시가 바스키아의 유작전이 된 셈이에요. 그런데 공교롭게도 작품은 한 점도 팔지 못했대요. 아직 바스키아가 유럽에서 그렇게 유명하던 시절도 아니었고, 홍보를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는 판이었으니까요. 로팍은 결국 비싼 운송비를 치르고 작품을 돌려보내는 대신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서 그 작품을 전부 다 샀어요. 그리고 아직도 그 대부분을 로팍의 개인 재단 소장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후로도 저희 갤러리는 마스터급 작품은 웬만하면 팔지 않고 큰 전시가 있으면 대여해서 대중에게 공개하죠.
 
Q. 신념과 역사를 보여주는 일화군요. 지금은 서울을 제외하면 전 세계에 총 다섯 베뉴가 있죠?
맞아요. 유럽에만 다섯 군데 있어요. 오스트리아에 두 곳이 있고, 프랑스 파리에 두 곳, 런던에 하나가 있어요. 그중 20세기 초에 세워진 제철소를 개조한 파리 외곽 팡탕이라는 지역에 있는 갤러리가 가장 거대하죠. 5000m²에 달하는 면적에, 층고가 5m가 넘어서 미술관급 전시를 할 수 있는 곳이에요. 공간에 좀 목말라 했던 작가들을 위한 곳이죠. 아마 이불 선생님의 ‘갤러리로서 인스티튜션의 선을 넘는다’는 말씀에는 이런 의미도 들어 있을 겁니다.
 
Q. 서울 진출이 결정된 건 언제인가요?
완전히 결정된 건 작년 11월이에요. 2017년에 런던 갤러리가 생기면서 아시아팀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어요. 다른 메가 갤러리들에 비하면 아시아 진출이 좀 늦은 게 사실이긴 하죠. 상하이에도 계속 공간을 보러 다녔고, 홍콩은 거의 계약 직전까지 가기도 했어요. 그러나 그 후로 알다시피 홍콩의 정치적인 상황이 급변했고 코로나까지 터졌죠.
 
10월 6일부터 열리는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가르니 호텔〉에 전시될 작품들. 게오르그 바젤리츠와 그의 스튜디오, 2021© Elke Baselitz 2021

10월 6일부터 열리는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가르니 호텔〉에 전시될 작품들. 게오르그 바젤리츠와 그의 스튜디오, 2021© Elke Baselitz 2021

Q. 영향을 준 다른 사건은 없었나요?
한국의 작가들이 국제적으로 회자되고 관심이 뜨거워진 것도 계기가 되었고요, 또 2020년 아트 부산 또한 영향을 줬어요. 세계의 거의 모든 아트 페어가 취소되는 와중에 아트 부산이 열렸고, 저희도 참가를 했거든요. 그런데 반응이 정말 뜨거웠어요. 현장 반응도 좋았고 미디어 반응도 좋았죠. ‘한국은 이런 상황에서도 미술에 대한 열기가 이렇게 뜨거워?’ 하는 반응이었어요 (웃음).  위기가 기회라고 2020년 한창 팬데믹의 중심에서 모든 전시와 아트페어가 취소되고 다른 갤러리들은 규모를 줄이려 할때, 저희는 확장을 결정했어요.(웃음) 특이하게도 2017년 영국 브렉시트가 확정된 날 다른 갤러리들이 런던 아트 신의 미래를 걱정할 때, 저희는 런던 갤러리 오픈을 확장하는 기사를 내보냈어요. 그때도 지금과 상황이 비슷했습니다.
 
Q. 그러나 인연은 그전부터 있었죠.
맞아요. 로팍 대표는 코로나 전에는 한국에 꽤 자주 왔어요. 특히 미술관에서 바젤리츠나 알렉스 카츠, 하룬 파로키, 마르셀 뒤샹 등의 전시를 한 적이 있어서 관계도 좋았고요.
 
Q. 그런 점에서 바젤리츠가 개관 첫 전시인 건 필연 같아요.
맞아요. 2007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바젤리츠의 전시 〈잊을 수 없는 기억: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러시안 페인팅〉이 열렸어요. 한국에서 바젤리츠를 알린 첫 전시였죠. 그때 전시를 담당하셨던 분이 바로 김남인 학예연구사였어요. 김남인 학예연구사님이 15년 만에 한국에서 두 번째로 열리는 바젤리츠의 개인전이자 타데우스 로팍의 개관전 전시 도록 에세이를 맡아주시기로 했어요. 15년 만의 재회인 셈이죠. 김남인 선생님께서 2007년에 바젤리츠 전시를 준비하려고 유럽까지 가서 기차를 타고 가면서 타데우스 로팍 대표와 함께 바젤리츠를 인터뷰했었대요. 바젤리츠 작가도, 김남인 선생님도, 타데우스 로팍도 모두 어떤 종류의 감회가 있을 것 같아요.
 
Q. 바젤리츠가 서독으로 망명한 동독 출신 작가잖아요. 그도 의미심장합니다.
이번 전시를 위한 인터뷰에서 그 얘기를 했어요. 한국의 분단 상황과 가장 비슷했던 나라가 독일이었으니까요. 독일은 통일이 됐지만, 그래서 한국을 멀게 느끼지 않는다는 얘기를 하시더군요.
 
Q 바젤리츠라고 하면 보통은 '드레스덴의 최후의 만찬'을 떠올릴 겁니다.
그렇겠죠.
 
‘Untitled’, Georg Baselitz, 2021. 바젤리츠는 1960년대에 들어 그림을 뒤집어 그리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유명세를 탔다. 최근 작품은 초기의 강렬하고 선명한 구상성에서 꽤 멀어졌다.

‘Untitled’, Georg Baselitz, 2021. 바젤리츠는 1960년대에 들어 그림을 뒤집어 그리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유명세를 탔다. 최근 작품은 초기의 강렬하고 선명한 구상성에서 꽤 멀어졌다.

Q. 이제 이 전시에 걸리는 작품들은 전혀 다르죠?
예, 많이 달라요. '드레스덴의 최후의 만찬'은 1980년대에 아직 바젤리츠가 굉장히 강한 색채와 형상을 표현할 때의 작품들이죠. 2000년대, 2010년대로 들어서면서 바젤리츠의 모델은 간략화되고 추상적인 느낌으로 변해가기 시작해요. 이번에 나온 작품들은 모두 바젤리츠의 아내인 ‘엘케’를 뮤즈로, 또 모델로 한 작품들이에요.
 
Q. 그러나 바젤리츠의 그림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감상한 사람이 아마 꽤 될 겁니다. 흥국생명 빌딩 시네큐브에 영화를 보러 가면 바젤리츠의 ‘뤽팔(Ru¨ckfall)’을 만나게 되잖아요.
맞아요. 그 작품은 예전에 베니스 비엔날레에 전시됐던 시리즈 중 하나예요. 굉장히 크죠. 엄청 크죠. 거의 5m에 가까우니까. 예전 국립현대에서 전시했던 러시안 페인팅이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의 스타일이고, 뤽팔이 2010년대의 스타일이라면, 이번 전시에는 더 추상화된 최근 작품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전부 신작이거든요.
 
Q. 로팍이 한남동에 자리를 잡고 나니 아트 타운으로서의 한남-청담 벨트의 색이 더 확연해지는 듯해요.
맞아요. 리움삼성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을 비롯하여 페이스, 리만 머핀, 갤러리 바톤 바로 다리 건너 있는 쾨닉 갤러리, 곧 오픈한다고 하는 글래드스톤까지 글로벌 갤러리들이 주로 이쪽에 자리를 잡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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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EDITOR 박세회
  • PHOTOGRAPHER 조혜진
  • PHOTO 타데우스 로팍
  • HAIR & MAKEUP 스텔라심
  • assistant 윤승현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