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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 신사옥을 건축한 H&DM의 피에르 드뫼롱을 만나다

송은문화재단의 신사옥이 도산대로에 문을 열었다. 겉에서 보면 무뚝뚝해 보이는 이 건물은 가까이 갈수록 다정하고, 지적이며, 신비롭다. 이 공간을 만든 세계적인 건축사무소 ‘헤르조그 & 드뫼롱’의 피에르 드뫼롱과 이 프로젝트를 담당한 파트너 마틴 크누젤이 신사옥의 비밀에 대해 말했다.

BY박세회2021.11.07
 
Q. 건축에선 클라이언트가 중요하다고들 하죠. 좋은 클라이언트란 뭘까요?
피에르 드뫼롱(이하 ‘드’) 사실 정해진 레시피가 있는 건 아니지만, 아까 말한 것처럼 클라이언트가 매우 명확하게 요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과거 저희가 했던 작업들 그리고 모든 대규모 프로젝트들이 저희를 위해서 한 작업이 아니라 건축주가 필요로 하는 부분을 충족하기 위해 만든 것들이잖아요. 결국 사람들이 그 안에서 살고, 활동하게 된다는 뜻이죠. 좋은 건축물이란 그런 기능적인 측면과 (촉각, 시각 등의) 인지적 측면을 모두 충족하는 건물이죠. 건물을 편안한 공간으로 만드는 인지적 측면은 건축가들이 신경 써야 할 일이지만, 이 건물이 기능적으로 잘 사용되고 있다는 걸 ‘증명’하는 건 건축된 후 이 건물을 사용하는 클라이언트들 자신인 셈이죠.
마틴 크누젤(이하 ‘마’) 송은은 무척 명확하게 요구를 전달하는 클라이언트였습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클라이언트 측이 처음부터 명확히 한 부분 세 가지가 있어요. 첫 번째로는 공간의 다양성이었고, 두 번째로는 ‘파운드 스페이스’의 존재였습니다. 사람들이 방문했을 때 새롭게 뭔가를 발견하게 하는 디스커버리 공간을 말하죠. 세 번째로는 그 발견이 분절적이지 않고 연속적으로 이뤄지기를 원했죠. 이곳 로비에 도착해 계단에 다다르면 지하로 뚫린 공간이 보이는 동시에 시야에서 숨겨진 곳에 2층으로 통하는 계단이 있는 식이죠. 그러려면 공간 자체를 매우 플렉서블(flexible)하고 다변적으로 설계해야 했죠.
 
Q. ‘파운드 스페이스’의 개념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요즘에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면 프로젝트를 맡은 책임자나 관장들이 공통적으로 요구하는 게 바로 이런 ‘파운드 스페이스’입니다. 오래된 발전소를 재단장한 테이트 모던의 경우엔 그 안에 있는 터빈 홀 등이 바로 파운드 스페이스라고 할 수 있겠죠. 지금 송은의 경우를 보면, 지하 주차장에서 시작하는 램프의 구조가 파운드 스페이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램프 형태의 구조가 2층까지 연결되죠.
 
Q. 헤르조그 & 드뫼롱은 ‘촉각의 공간’으로 유명한 건축사무소지요. 이 공간이 갖고 있는 촉각적 특성에 대해서 또 외부와 내부의 촉각의 차이에 대해서 설명해줄 수 있나요?
이 신사옥의 외장은 소나무의 결을 거푸집으로 활용해 무늬 그대로 찍어낸 시멘트를 사용했어요. 자세히 보면 외장의 모든 패턴 문양이 각기 다른 것을 볼 수가 있지요. 이건 마치 단 하나밖에 없는 타투를 건물의 몸에 입힌 것처럼, 하나의 회화 작품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또 이 텍스처를 통해 건물 자체가 변모하는 느낌도 받기를 원했어요. (멀리서 보면) 하나의 거대하고 육중한 ‘매스’처럼 보였다가 또 (가까이 다가가면) 레이스 같은 섬유의 느낌, 하늘거리는 가벼움을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변모 말이죠. 노후의 모습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건물이 노후되고 외벽의 콘크리트가 더러워질 텐데요, 이 목질의 질감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견고해지고 강해질 거라 생각합니다. 당연히 이 패턴들이 주는 아름다움이 더 부각될 거고요.
촉각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하죠.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항상 두 가지의 세계, 디지털과 아날로그 세계가 공존할 겁니다. 가상과 실물의 세계죠. 촉각은 아날로그, 실물의 세계를 대변하죠. 우리가 아무리 뭐든 가상화할 수 있다고 한들 지금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이 테이블의 단단한 물리적 감각을 느끼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 그래서 이 감각, 특히 촉각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자크 헤르조그도 얘기했듯이 시각적, 청각적, 후각적인 감각을 인간이 실물 세계에서 계속 활용하는 일 자체가 매우 중요합니다. 어떻게 보면 인간은 감각을 사용하는 ‘인지 기계(perception machine)’라고도 생각하고요. 개인적으로 제가 연극과 음악 콘서트에 직접 가서 보는 걸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헤르조그 & 드뫼롱의 파트너인 마틴 크누젤(좌), 안드레아 프리(우)와 함께 선 피에르 드뫼롱. 드뫼롱은 이 위치가 건물의 복합적인 면을 가장 잘 보여준다며 〈에스콰이어〉의 포토그래퍼를 설득했다.

헤르조그 & 드뫼롱의 파트너인 마틴 크누젤(좌), 안드레아 프리(우)와 함께 선 피에르 드뫼롱. 드뫼롱은 이 위치가 건물의 복합적인 면을 가장 잘 보여준다며 〈에스콰이어〉의 포토그래퍼를 설득했다.

Q. 도미너스 와이너리(Dominus Winery)를 생각해보면 공간에 마법이 일어나는 순간이 있지요. 외벽을 쌓고 있는 돌무더기의 사이사이를 빛이 통과해 실내에 자연의 조명을 만들어낼 때가 바로 그렇습니다. 놀라운 광경이죠. 송은의 이 공간에도 마법 같은 지점이 있나요?
직접 그런 공간을 찾아보셔야 할 것 같군요. 저희가 ‘어디가 어디가 매지컬하다’라고 말씀드릴 수는 없을 것 같은데요?
 
Q. 질문이 너무 멍청했나요?(웃음)
사람들마다 가지고 있는 개인사적, 문화적 배경이 다르니까요. 각자가 찾을 수 있을 것이고, 사람마다 다를 게 분명해서, 직접 느껴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저희가 (사람들마다 다르게 느끼도록) 의도적으로 그렇게 설계하기도 했고요. 그리고 또 도미너스 와이너리에서는 개비온(gabion, 돌망태)을 사용했습니다. 사실 그건 토목이나 엔지니어링의 영역에서, 강둑 등을 만들 때 사용하는 것이죠. 그 망태 안에 돌을 잔뜩 채워 넣어 벽을 쌓았더니 볕이 비추면 그 벽에 스며들어 안으로 번지면서 마치 햇빛의 레이스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었지요.
 
Q. 이 건물의 경우엔 남쪽 벽이 거대한 파사드로 되어 있어요. 창은 최소한으로 뚫려 있고요. 서울에서는 좀 특이한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울 대부분의 건물은 남향으로 창을 내거든요.
좋은 질문이네요. 대로변을 좀 폐쇄적인 형태로 보이게 하는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습니다. 일단 폐쇄적으로 보이지만 그래도 오픈된 공간들이 있다는 점입니다. 정원으로 통하는 정면의 입구라든지 주차장으로 통하는 널찍한 램프 입구가 그렇죠. 또 저희 건물 옆에서 다른 건물들을 보면 전면이 유리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유리로 되어 있다고 해서 열린 공간으로 느껴지지는 않았어요. 이 건물은 (전면에 창이 많지는 않지만) 앞에 섰을 때 친절하고 상냥한 느낌을 주고, 분명히 주변에 더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달할 거라고 생각해요. 실용적인 부분들을 고려했기 때문이기도 해요. 이 건물은 뒤에서 앞면으로 올라가는 형태의 사선을 이루죠. 그래서 엘리베이터를 가장 높은 전면부 쪽에 설치해야 했어요. 또 보시다시피 우리가 지금 대화를 나누는 사무 공간도 전혀 어둡지 않죠. 사실 빛이 잘 들어오면서도 일을 할 때 블라인드를 칠 필요가 없는 정도죠. 뒤쪽에 난 테라스 공간으로는 잠시 나가 바람을 쐴 수도 있고요.
 
Q. 뒷면에 있는 각 층의 테라스 중에서는 어디가 뷰가 가장 좋던가요?
송은 회장님 사무실이 있는 층이 뷰가 가장 좋지요.(웃음) 아참, 그리고 남향에 관한 질문에 대해 답을 하자면, 저희도 중국에서 프로젝트 같은 것을 많이 진행해봤기 때문에 아시아 문화에서 풍수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이 건물의 메인 파사드가 그 반대편을 보고 있었다면 지금 같은 웅장한 느낌을 주지 못했을 것 같아요. 저희가 처한 환경, 갖고 있는 이 위치에서 최적의 솔루션을 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1층 로비에서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은 영상 감상 공간으로 언제든 변모가 가능하다. 이런 변화의 공간들을 발견하는 것이 이 건축물이 주는 즐거움이다.

1층 로비에서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은 영상 감상 공간으로 언제든 변모가 가능하다. 이런 변화의 공간들을 발견하는 것이 이 건축물이 주는 즐거움이다.

Q. 앞선 프로젝트들에 대해 설명하면서 파사드, 스트럭처, 그리고 스페이스가 개별적으로 나뉘는 게 아니라는 개념으로 ‘올인원’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어요. 헤르조그 & 드뫼롱의 프로젝트를 보면 통합적이고 유기적인 건축물이 많지요. 대표적으로 도쿄의 ‘프라다 아오야마’를 들 수 있는데요. 이번 송은의 신사옥도 마찬가지로 연장선에 있는지, 만약 그렇다면 이 건물의 그 세 가지 측면이 갖는 유기적 관계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말씀하신 것처럼 이번 송은의 신사옥 역시 저희가 의도한 대로 구현됐습니다. 방금 유기적이라는 표현을 해주셨는데, 종합적이고 일체적이란 의미로 저희는 ‘홀리스틱’이란 단어도 쓰지요. 기능(function)과 구조(structure)와 표현(expression)을 일체화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예로 들어준 ‘프라다 도쿄 아오야마’가 이것을 잘 보여주고 있지요. 저는 장식을 얘기할 때면 ‘데커레이션(decoration)’이라는 용어보다는 ‘오너먼트(ornament)’라는 표현을 더 좋아합니다. 어쨌든 이 건물이 스스로 뭔가를 표현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 ‘오너먼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이런 홀리스틱한 일체화, 앞서 말한 세 가지 요소의 일체화가 건축물의 (오너먼트적 측면의) 퀄리티를 좌지우지한다고 생각합니다. 송은의 신사옥은 구조, 기능, 형태를 비롯해 이를 허가받기 위한 규제 그 안에 활용되는 콘텐츠에 이르기까지 다 저희가 개입했고, (그렇기에) 종합적으로 일체화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프라다 도쿄 아오야마와 송은 신사옥의 유사점이 또 있다면, 건물과 도시 간의 교감과 조화를 중시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네요.
 
Q. 아까 콘크리트와 수명에 대해 잠깐 언급하셨죠. 수명이 긴 건축을 위해서 고려해야 할 것으로는 또 뭐가 있을까요?
수명을 위해서는 내구성이 가장 중요하겠지요. 특히 이 건물의 파사드 부분을 이루는 구조물은 내구성이 매우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주변의 다른 건물의  외장인 타일이나 유리보다는 수명이 길 거라고 봅니다.
사실 요즘 화두가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입니다. 그래서 다들 친환경 자재를 사용해야 한다, 최소한의 에너지를 사용해야 한다고들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지속 가능성도 나누어 생각해야 한다고 봐요. 심미적(aesthetic) 지속 가능성과 기능성(functional) 지속 가능성 이 두 가지가 모두 중요하기 때문이죠. 환경적으로 봤을 때 콘크리트는 지속 가능성이 가장 높은 자재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건물을 30년 안에 폐기할 계획은 아니잖아요? (미적 가치를 따지지 않고 기능적 가치만 따지면) 지속 가능성이 오히려 더 저하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죠.
 
Q. 이번 건축물은 수직적인 건축물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의도한 바가 따로 있을까요?
사실 저희가 최근 몇 년 동안은 수직적인 프로젝트를 좀 많이 진행했습니다. 수직적이고 수평적인 프로젝트들 각각이 갖는 특징들이 있죠. 예를 들면 수직적인 건물의 경우 맨 아래층부터 맨 위층까지 주거의 경험이 모두 다릅니다.  각 층마다 개성이 뚜렷하죠. 특히 이 건물의 로비에서 보이는 홀이 3개 층을 수직적으로 통합하고 있고, 이를 둘러싼 램프 형태의 자동차 경사로와 연결로가 4개 층을 연결하고 있지요. 그걸 따라 내려가면 동굴 같은 지하 공간이 나오고 거기서부터 연결로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입구로 이어지는 ‘수직적’인 경험을 제공하려 했어요.
오늘날의 대도시는 계속해서 밖으로 팽창해나가고 있어요. 하지만 무한하게 대도시의 권역이 팽창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지금 더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부분이 바로 ‘도심’입니다. 도심에 이렇게 수직적인 뮤지엄을 구현하는 게 당연히 쉽지는 않았지요. 그래서 아까 마틴이 말한 램프라든지 다양한 비주얼 요소들을 잘 통합시키려고 했던 것이죠.
 
전 세계에 있는 헤르조그 & 드뫼롱의 건축물들의 건축 모형을 모아둔 전시관 전경.

전 세계에 있는 헤르조그 & 드뫼롱의 건축물들의 건축 모형을 모아둔 전시관 전경.

Q. 헤르조그 & 드뫼롱은 과거 프로젝트의 특징을 향후 프로젝트에 차용해 재현하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곳에 두기 위해 다른 곳에서 가져온 것은 무엇이며, 또 송은에서 가져가 다른 곳에 적용할 것은 무엇인가?
사실 송은 신사옥(473번) 정원에 있는 조명은  저희의 164번 프로젝트였던 스페인의 카나리섬에 있는 ‘TEA(Tenerife Espacio de las Artes)’라는 복합 문화공간에서 차용한 것입니다. 그런데 저희가 프로젝트를 차용할 때는 ‘아 이걸 가져다가 여기에 써야 되겠다’라고 의도적으로 하는 건 아닙니다. 하다 보니 그렇게 되는 거지요. 그렇다고 해서 항상 새로운 것을 백지에서부터 만들어낼 필요는 없다는 생각도 해요. 우리가 불이나 바퀴를 새로 발명해야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검증된 것들은 필요에 따라 자연스럽게 차용하는 것이죠.
 
*이 인터뷰는 9월 28일 8명의 기자가 참여한 라운드 인터뷰를 재구성해 편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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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EDITOR 박세회
  • PHOTOGRAPHER 조혜진
  • ASSISTANT 송채연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