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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자동차를 복원하는 방법

삼성화재교통박물관 복원 전문가 김광찬의 손을 거치면 죽었던 자동차도 다시 살아난다.

BY박호준2022.01.03
 
Q. 메르데세스-벤츠 300Sc를 복원하는 데 4년이나 걸렸다고 들었습니다.
쉽지 않았어요.(웃음) 보통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차마다 다르겠지만, 1년에서 1년 6개월 정도가 보통입니다. 300Sc가 유독 오래 걸린 건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첫 번째는 복원을 시작할 당시 차 상태가 상당히 좋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60년 전 만들어진 차여서 복원에 참고할 자료도 부족했고요. 두 번째는 복원에 사용되는 거의 모든 부품과 자재를 해외에서 구해서 그렇습니다. 복원에 필요한 부품이 수백 가지인데 바다 건너 오다 보니 주문하고 수령하는 데 짧게는 2~3주, 길게는 몇 달씩 걸리거든요.
 
Q. 엔진이나 변속기도 전부 복원한 거죠?
물론입니다. 자동차는 ‘이동성’이 본질이니까요. 아무리 겉모습을 근사하게 복원해도 시동이 걸리지 않거나 움직이지 않으면 차로서 가치가 없습니다. 300Sc도 예외는 아닙니다. 삼성화재교통박물관 유튜브 채널에 가면 300Sc의 주행 영상을 볼 수 있어요. 와이퍼나 헤드램프도 작동합니다.
 
Q. 그동안 손을 거쳐간 차가 몇 대나 되나요?
완전 복원만 세어보면 10대쯤 되는 것 같아요. 삼성화재교통박물관에서만 20년째 일하고 있거든요. 부분 복원한 것까지 세면 훨씬 더 많고요.
 
Q. 특히 기억에 남는 차가 있을 것 같은데요.
모든 차가 특별하지만,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재현 작업한 ‘시-바ㄹ’이 기억납니다. 차 이름처럼 ‘시-바ㄹ’은 우리나라 최초의 차예요. 문제는 남아 있는 오리지널 시발 자동차가 없었다는 겁니다. 자료도 턱없이 부족했죠. 제대로 재현할 수 있을지 막막했습니다. 나중엔 차를 만들었던 창업자의 후손을 만나 조언을 듣기까지 했어요. 고생한 만큼 보람이 컸습니다. 앞서 말한 300Sc도 같은 맥락에서 기억에 남습니다.
 
Q. 일반 자동차 정비와 복원은 어떤 지점에서 다른가요?
저도 원래 일반 자동차 정비를 10년 정도 했어요. 속된말로 ‘날아다닌다’라고 할 만큼 실력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처음 박물관에서 일하게 됐을 땐 자신감이 넘쳤어요. 그러다 큰코다쳤죠. 다시 학생이 된 기분이 들 정도로 새로웠어요. 예를 들어 볼게요. 카센터에선 찌그러진 차가 들어오면 다시 편평하게 펴주면 끝이에요. 기계를 사용하건 일일이 손으로 두드리건 결과물만 말끔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복원은 ‘이 찌그러진 부분을 펴는 게 맞나?’라는 질문부터 시작해요. 때론 부품 자체를 아예 새로 만들어야 하고요. 전체를 볼 줄 알아야 하는 것도 일반 정비와 달라요. 한번 복원 작업에 들어가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손봐야 하니까 찌그러진 부분 말고도 다른 부분까지 고려해 작업 순서를 효율적으로 그릴 줄 알아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디테일까지 신경 쓰는 건 물론이고요.
 
Q. 완전 새로운 분야였다는 뜻이군요.
맞아요. 뭣 모를 때였죠. 오죽하면 박물관 앞에 세워진 백남준 선생님의 작품을 보고 복원해야 하는 차인 줄 알았으니까요. 잘 알지도 못하고 포드 클래식카의 보닛을 건드렸다가 완전히 망쳤던 기억도 나네요. 결국 선배가 나서서 해결해주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도 아찔합니다.
 
Q.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복원한다는 건 조금 놀랍네요.
입사 초기에 독일로 파견 교육을 갔다 온 적이 있어요. 선진 복원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요. 복원 프로세스나 장비 운용 방식, 복원에 대한 철학 등을 몸소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였죠. 그런데 정작 제가 가장 인상 깊게 느낀 건 ‘디테일의 중요성’이었어요. 다른 건 몰라도 세밀하고 오밀조밀한 디테일만큼은 그들보다 우리가 더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어요. 클래식카 복원은 사실 명품 가방이랑 비슷합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티가 나지 않는 스티치 하나까지 일정한 간격으로 수놓는 정성을 들이는 게 명품이잖아요. 최대한 꼼꼼하게 원형을 복원해야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행위가 의미를 갖습니다.
 
Q. 복원과 보존의 차이도 궁금합니다.
쉽게 설명하면, 생명을 연장하는 건 보존이고 다시 생명을 불어넣는 게 복원입니다. 둘 다 중요하죠. 박물관에서 항온·항습 환경을 아무리 철저하게 지키더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차는 변형이 될 수밖에 없어요. 열에 강한 재료가 있고 약한 재료가 있는데 자동차에는 전부 같이 조립되어 있으니까요. 하지만 보존 작업을 거치면 훼손 정도를 최소화할 수 있어요. 복원에 들어가는 건 보존으로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을 때입니다.
 
Q. 복원 과정을 간략하게 설명해본다면요?
완전 복원을 기준으로 말씀드릴게요. 학예파트에서 자료조사를 끝낸 후 복원 여부가 결정되면 가장 먼저 하는 건 분해입니다. 뼈만 남겨두고 전부 걷어내는 작업이죠. 그래야 부식이나 크랙을 제대로 확인하고 대응할 수 있어요. 분해하기 전엔 몰랐던 데미지가 발견되기도 해요. 그러고 나선 다시 살을 하나하나 붙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자동차 공장에서 차를 만들 때와 과정이 비슷해요. 차이점이라면 공장에는 부품이 많고 저희는 없다는 거죠.(웃음) 없는 부품이나 자재를 만들거나 공수해서 조립합니다. 모든 단계마다 꼼꼼하게 기록을 남기는 건 필수입니다.
 
짙게 묻은 손때에서 알 수 있듯, 김광찬 수석이 가장 자주 사용하는 도구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해머링(망치로 철판 모양을 잡아가는 작업)은 빼놓을 수 없다.복원을 위해 분해한 포니2의 문짝들이다. 복원 전문가에게 자동차 문을 분해하는 것 정도는 식은 죽 먹기다.복원 전후를 보여주기 위해 나란히 전시된 브레이크 캘리퍼.레고 조립을 할 때도 조립 설명서가 필요하다. 3만 개가 넘는 부품이 들어가는 자동차는 더 하다. 복원 작업에 없어선 안 될 중요한 자료다.
Q. 오랫동안 차를 뜯어보면서 생긴 직업병은 없나요? 이를테면 차를 살펴볼 때 제일 먼저 엔진룸을 본다거나.
특정 브랜드를 밝힐 순 없지만, 겉보기엔 멀쩡한데 뜯어보면 엉망인 차가 종종 있어요. 그런 차를 보면 좀 안타깝죠. 저는 차를 볼 때 차체 형태를 주의 깊게 봐요. 어떻게 철판을 구부리고 연결했는지요. 개인적으로 각진 모양보단 둥글게 볼륨감 있는 디자인을 선호합니다. 둥근 디자인이 복원하기 더 어렵긴 한데 그래도 좋아요.(웃음)
 
Q.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차는 총 몇 대인가요?
전시하고 있는 차가 80여 대이고 복원 과정 중인 차를 더하면 그보다 조금 더 됩니다. 드물지만 박물관에 차를 기증하는 분이 계시기도 하고요. 기증받은 차는 기증을 받았다는 안내를 덧붙이고 있습니다.
 
Q. 수십 대의 차들 중 복원할 차를 결정하는 기준이 있나요?
손상 정도를 봅니다. 주기적인 일상 점검을 통해 손상 정도를 항상 체크하고 있어요. 응급 환자를 먼저 수술대에 올리는 것처럼 손상 정도가 심한 차를 복원 우선순위에 올립니다. 그 후에 희소성을 따집니다. 복원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판단하는 거죠. 그렇다고 해서 바로 진행 되는 건 아닙니다. 학예파트에서 자료조사 과정을 거쳐요. 이때 설계도와 정비 지침서의 유무, 부품 수급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합니다. 기껏 복원을 시작했는데 도중에 부품이나 자료가 없으면 낭패이니까요.
 
Q. 참고할 자료가 전혀 없을 때도 있지요?
그런 일이 빈번합니다. 최대한 뒤져야죠.(웃음) 지구 끝까지 쫓아가요. 농담처럼 한 말이지만, 정말 지구 반대편까지 가요. 해외는 클래식 자동차 문화가 일찍 꽃핀 덕에 역사와 전통, 전문성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깊어요. 미국 페블비치에서 열리는 콩쿠르 델레강스(Concours d'Elegance)가 대표적입니다. 거기 가면 전 세계에서 모인 클래식카 전문가, 딜러, 컬렉터, 관련 업체가 전부 있어요. 거기서도 필요한 정보를 얻지 못했다면 마지막 방법으론 다른 차를 참고합니다. 자동차 설계와 디자인에도 맥락이 있거든요. 복원하려는 차와 같은 시대에 만들어진 모델 또는 같은 브랜드의 차를 살펴보면 유실된 부분의 구조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1950년대 등장해 마세라티의 눈부신 모터스포츠 역사를 써 내려갔던 주인공 ‘250F’를 어린이용으로 축소한 모델이다. 복원이 아닌 보존 작업 중이다. 관련 영상은 삼성화재교통박물관 유튜브 채널에서 만나볼 수 있다.

1950년대 등장해 마세라티의 눈부신 모터스포츠 역사를 써 내려갔던 주인공 ‘250F’를 어린이용으로 축소한 모델이다. 복원이 아닌 보존 작업 중이다. 관련 영상은 삼성화재교통박물관 유튜브 채널에서 만나볼 수 있다.

Q. 부품까지도 예전 것을 그대로 사용해야 진정한 복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어요. 70년 전 자동차 시트를 고치려면 70년 전 가죽을 사용해야 한다는 식이죠.
가장 애매한 부분이죠. 자동차 복원 원칙 중에는 ‘원형 존중’이라는 대목이 있어요. 가능하다면 당연히 차가 만들어진 당대의 부품이나 원자재를 사용하려고 노력합니다. 작은 볼트 하나까지도요. 하지만 불가능한 상황이 훨씬 많아요. 70년 전 가죽이 남아 있을 리 만무하죠. 설사 남아 있더라도 사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상태가 나쁠 겁니다. 어쩔 수 없이 요즘 가죽을 사용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콩쿠르 델레강스처럼 전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단체에서 인정한 업체의 것을 사용하면 70년 전 가죽이 아니라 2021년산 가죽을 사용했더라도 ‘오리지낼리티’를 인정하는 게 전 세계 클래식카 업계의 일반적인 관행입니다. 복원의 완성도는 복원에 쓰인 소재가 몇 년산인지가 아니라 얼마나 정교하게 원형에 가까운 퀄리티를 구현했는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유달리 복원이 까다로운 브랜드나 차가 있나요?
특정 브랜드의 차가 더 어렵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남아 있는 자료나 부품이 많은 차가 수월하고 그렇지 못한 차는 어렵죠. 예를 들어, 메르세데스-벤츠는 오래전부터 인기가 많고 많이 팔린 브랜드라서 그만큼 대체 가능한 부품이나 참고할 자료가 많이 남아 있어요. 어떻게 고쳐야 할지 정해져 있고 필요한 부품이 있으면 그다음은 일사천리죠. 그 정반대가 우리나라 차입니다. 남아 있는 자료나 부품이 없어요. 우리나라 차를 복원하기 위한 자료 대부분을 외국에서 얻는 상황입니다.
 
Q. 일부러 복원을 하지 않는 경우는 없나요? 어느 자동차 박물관은 차에 누유가 발생해도 고치지 않고 놔둔다고 하더라고요. 조금씩 낡아가는 모습마저도 그 차의 역사라고 보는 거죠.
복원에 대해 여러 가지 견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미술품 중에선 복원을 하지 않고 놔두는 게 오히려 가치를 지키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희 박물관은 다릅니다. 무조건 복원에 착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여건상 복원할 수 없는 차를 제외하면 말이죠. 터무니없는 복원이 아닌 이상 복원을 거친 차의 가치가 더 높습니다.
 
Q. 복원한 차를 다시 복원한 적은요?
50년쯤 지나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아직까진 없습니다.
 
Q. 일을 시작한 20년 전과 비교했을 때 기술의 발달이 복원에 미친 영향이 있다면요?
장비가 발달하면서 복원에 걸리는 시간이 줄었어요. 20년 전엔 정말 ‘한땀 한땀’ 망치질로 철판을 다듬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요. 팔이 많이 아팠어요.(웃음) 그런데 최신 장비가 등장하면서 밀리미터 단위로 철판을 자르고 구부릴 수 있게 됐습니다. 가죽도 마찬가지고요. 여전히 마무리 단계에서 망치를 사용하긴 하지만 과거에 비해 그 빈도가 확연히 줄었습니다.
 
Q. 지금 작업하고 있는 차가 궁금합니다.
새한자동차의 ‘맵시’입니다. 1982년 출시된 차예요. 참고로 새한자동차는 대우자동차의 전신이에요. 2020년 9월부터 복원을 시작했어요. 원래는 2021년 10월 완성이 목표였는데 조금 늦어졌죠. 올 상반기 내에는 작업을 끝내고 공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대자동차 ‘포니2’는 이제 막 시작했어요. 한 번에 한 대의 차만 복원하는 건 아닙니다. 포니2는 12월 완성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Q. 자동차 복원 전문가가 되기 위한 방법은요?
좀 미쳐야 합니다.(웃음) 자동차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기본입니다. 그다음부턴 현장에서 직접 닦고 조이고 기름 치면서 몸으로 배우는 방법밖에 없는 것 같아요. 결국은 손으로 하는 일이니까요. 저도 20년째 복원에 매진하고 있지만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제가 막내 시절에 함께 일한 자동차 복원 1.5세대 선배들은 정말 자동차 한 대를 시작부터 끝까지 만들 수 있을 정도의 풍부한 지식과 손재주를 가지고 있었어요. 그만큼 숙련된 손기술과 연륜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팀워크가 무엇보다 중요해요. 혼자선 절대 할 수 없습니다. 복원 프로세스에 따라 엔진 파트, 도장 파트, 판금 파트가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가야 하죠. 장인 기질이 발동해 혼자 계속 붙들고 있으면 진행이 안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아, 요즘은 박물관 유튜브 채널 활성화를 위해 영상 촬영도 열심히 하고 있기 때문에 언변이 뛰어나면 플러스 점수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웃음)
 
Q. 박물관을 찾는 관람객이 복원된 자동차에서 어떤 인상을 받아 가길 바라나요?
‘멋있다’라는 감흥도 중요하지만, 다음 세대에 물려주어야 할 유산이자 작품이라는 인식을 얻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자동차가 상업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졌고 매일같이 보는 흔한 일상 도구에 가까운 물건이지만, 복원을 통해 박물관에 전시된 차는 조금 달라요. 고리타분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과거가 있어야 미래가 있지 않을까요? 자동차 디자인을 이야기할 때 항상 ‘헤리티지’라는 말이 빠지지 않잖아요. 클래식카는 멋진 차를 만들어내기 위한 좋은 교보재입니다. 훌륭한 예술가가 되기 위해 이전 시대 다른 거장의 예술 작품을 배우는 것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