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카우보이 비밥>과 '아니메 실사영화'의 실패

비밥바룰라. 넷플릭스가 <카우보이 비밥> 시즌2를 취소했다. 당신은 이 뉴스를 듣고 자기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BY김현유2022.01.04
 
비밥바룰라. 넷플릭스가 〈카우보이 비밥〉 시즌2를 취소했다. 당신은 이 뉴스를 듣고 자기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주인공을 연기한 존 조는 소셜미디어에 “I’m Ok”라고 썼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존 조가 “I’m fxxking great!”라고 쓰고 싶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난 10여 년간 일본과 할리우드는 망가와 아니메 원작을 바탕으로 실사영화를 만들어왔다. 성공한 작품도 있고 실패한 작품도 있다. 아, 다시 말해야겠다. 소수의 성공한 작품이 있고 다수의 실패한 작품이 있다. 〈카우보이 비밥〉은 후자다. 압도적 후자다. 이 시리즈는 ‘절대 일본 아니메를 실사화해서는 안 되는 이유’의 가장 중요한 증거로서 오랫동안 기록될 것이다.
 
왜 〈카우보이 비밥〉은 이 모양 이 꼴이 된 걸까? 1990년대 아니메 시리즈의 열렬한 팬이었던 사람들은 트레일러를 보며 실패를 어느 정도 예감했다. 나는 오래전부터 존 조의 팬이었지만, 〈카우보이 비밥〉의 첫 번째 트레일러가 나왔을 때는 근심이 앞섰다. 존 조가 스파이크 슈피겔을 연기하기에 지나치게 나이가 많아서는 아니다. 기럭지가 짧아서도 아니다. 배우가 아니메 캐릭터와 똑 닮아야 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존 조가 스파이크라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흉내’ 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었다. 본편이 나오자 걱정은 사실이 됐다. 존 조의 문제만도 아니다. 넷플릭스 〈카우보이 비밥〉은 모든 장면에서 1998년 작 아니메를 ‘흉내’ 내고 있었다.
 
현대적인 관점에서 일본 아니메의 실사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2000년대 이후라고 할 수 있다. CG의 발전 덕분이었다. 1990년대 본격적으로 할리우드에서 쓰이기 시작한 CG는 ‘블록버스터의 국제적 민주화’를 끌어내기 시작했다. 아날로그 특수효과와는 달리 CG는 조금 더 저렴한 자본으로 ‘만화적인 장면’을 창조해낼 수 있었다. 이건 일본 영화계에는 새로운 숨 쉴 구멍과도 같았다. 반세기가 넘도록 전 세계에 수십억 명의 팬을 만들어낸 아니메는 추락하는 일본 영화계를 살릴 소스가 될 수 있었다. 모두가 그렇게 믿었고 아니메 원작 영화는 2000년대와 2010년대를 관통하며 끝없이 만들어졌다. 블록버스터급 작품만 해도 다음과 같다. 〈데스노트〉(2006) 시리즈, 〈충사〉(2007), 〈도로로〉(2007), 〈크로우즈 제로〉(2007), 〈카이지〉(2009), 〈간츠〉(2010), 〈스페이스 배틀쉽 야마토〉(2010), 〈바람의 검심〉(2012), 〈기생수〉(2014), 〈아이 엠 어 히어로〉(2016), 〈은혼〉(2017), 〈진격의 거인〉(2017), 〈강철의 연금술사〉(2017). 원작 팬인 당신은 이 리스트를 보면서 다시 한번 PTSD를 겪고 있을지도 모른다. 〈데스노트〉 시리즈 첫 편과 〈바람의 검심〉 정도를 제외하면 ‘국제적인 스탠더드’에 걸맞은 영화는 한 편도 없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된 걸까.
 
일본 실사영화들의 문제는 복합적이다. 먼저 CG의 문제가 있다. 망가나 아니메가 보여주는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아바타〉급의 특수효과가 필요하다. 재미있게도 일본 영화계는 완벽한 CG에 대한 집념이 없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진격의 거인〉은 기술적인 부분에서 아직까지는 불가능한 프로젝트였다. 제작진도 그 사실을 알았을 테지만 허술한 CG로 어떻게든 영화를 만들어내고 말았다. 그리고 여기에는 ‘어차피 망가 원작이니까 CG든 연기든 좀 더 망가스러워도 된다’는 일본 영화계 특유의 기묘한 ‘내수용 정신 승리’ 같은 게 존재한다.
 
망가와 아니메를 보면서, 우리는 작가가 창조한 세계관을 군말 없이 받아들인다. 그건 현실과 아무런 관계도 없거나 아주 느슨하게 현실과 연결된 세계지만 받아들이는 데 크게 상관은 없다. 하지만 실사영화는 다르다. 인간 배우들이 등장하는 순간 관객은 지속적으로 ‘현실’과의 접점을 찾아내려 노력한다. 여기서 ‘각색’이 중요해진다. 일본이 제작한 실사영화에는 각색이라는 것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 영화들은 원작 캐릭터를 직설적으로 화면 위에 표현하는 것이 원전에 대한 존경이라도 되는 것처럼 군다. 그래서 일본에서 만든 실사판 영화들은 연기도, 캐릭터의 복장도, 특수효과도, 모든 것이 망가와 아니메를 흉내 내기만 한다. 일종의 ‘코스프레 영화’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라면 〈강철의 연금술사〉일 것이다. 영화 속 일본인 배우들은 아니메 속 캐릭터와 똑같이 만든 복장과 특수분장을 하고 스팀펑크 세계관 속 유럽인을 연기한다. 그 이질적인 부분이 아니메 원작답다고 여기는 팬들도 있을 것이다. 그건 곧 ‘영화답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양덕’이 아닌 일본 외 관객은 도무지 즐길 수가 없는 세계다.
 
다른 문제는 ‘제작위원회’다. 일본의 망가, 아니메 원작 영화들은 대개 영화사, 출판사, 방송사, 장난감 제작사 등 많은 회사로 구성된 ‘제작위원회’라는 주체를 통해 만들어진다. 이들은 함께 투자와 제작을 한다. 장점은 하나다. 안정적이라는 것이다. 같이 투자하니 각 회사가 떠안을 제작비나 리스크가 줄어든다. 안정적이라는 건 지루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 때의 약점은 도무지 모험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관련된 회사들의 요구를 모두 제작에 투영하다 보면 개성이 강한 영화는 나올 수가 없다.
 
일본의 망가, 아니메 원전 영화들이 망하는 것에는 이런 명확한 이유가 있다. 그렇다면 왜 할리우드조차 계속 실패하는 걸까. 〈카우보이 비밥〉이 넷플릭스의 자본, 배급 시스템과 결합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꽤 기대했다. 할리우드라면 이 명작을 되살릴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믿음은 처절하게 배신당했다. 문제는 〈카우보이 비밥〉의 제작자들이 지나치게 원작을 경배하는 ‘양덕’이라서 발생한 걸지도 모른다.
 
넷플릭스 〈카우보이 비밥〉은 각색이라는 걸 도무지 하지 않는다. 그저 원작을 재현할 뿐이다. 오리지널 아니메가 2020년대에 리메이크를 할 만한 작품인가? 와타나베 신이치로의 원작은 지금 다시 보면 꽤 빈 구석이 많다. 그리고 그 빈 구석은 의도된 것이다. 누아르, SF, 액션, 코미디 장르를 모두 품고 있는 우주적 모험담이지만 서사가 톱니바퀴처럼 잘 맞물리지는 않는다. 와타나베 신이치로는 서사의 빈 구석을 ‘분위기’로 채워낸다. 이건 ‘비밥 재즈’의 특성과도 같다. 〈카우보이 비밥〉은 마치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재즈 세션처럼 이야기와 액션을 만들어낸다. 그걸 실사로 만들기 위해서는 역시 과감한 각색이 필요하다. 원전의 허술한 내러티브를 좀 더 채워야 한다. 캐릭터들의 성격을 재구축해야 한다. 그래서 믿을 법한 세계를 창조해야 한다. 하지만 넷플릭스 〈카우보이 비밥〉은 어떤 것도 하지 않는다. 근사한 원작을 그대로 스크린에 옮기는 것으로 할 일을 다했다는 나태한 태도만이 가득하다.
 
할리우드는 망가, 아니메 실사화를 전 세계에서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곳이다. 그들은 이미 코믹스를 훌륭하게 실사화한 경험이 있다. 다만 원칙이 있다. 원전을 존중하되 실사영화에 걸맞은 비주얼과 이야기를 새롭게 창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적 슈퍼히어로 영화의 출발점이었다고 볼 수 있는 〈엑스맨〉(1999)을 예로 들어보자. 감독 브라이언 싱어는 원작 팬들의 엄청난 항의에도 엑스맨에게 검은 가죽 코스튬을 입혔다. 결과적으로 싱어의 선택은 옳았다. 코믹스와 실사영화는 다른 세계다. 오래된 코믹스를 현대적 블록버스터로 만들기 위해서는 때로 팬들이 배신감을 느낄 정도로 과격한 각색이 필요하다.
 
만약 당신이 일본 망가, 아니메를 원작으로 한 최고의 영화를 보고 싶다면 정답은 하나다. 박찬욱의 〈올드보이〉다. 박찬욱은 자신이 사랑하던 망가를 완벽하게 자신의 스타일로 해체하고 재조립해 역사적인 영화를 만들었다. 미네기시 노부아키의 〈올드보이〉와 박찬욱의 〈올드보이〉는 거의 관계가 없는 완전히 독립적인 예술품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정답은 있다. 당신이 존중하고 존경하고 숭배하는 망가와 아니메를 철저하게 박살 내라. 원작자와 팬들이 들고일어나도 철저하게 무시하라. 당신이 만들고 있는 것은 망가나 아니메가 아닌 영화다. 그러니 마지막 질문이 남는다. 과연 넷플릭스에서 실사로 만들고 있는 〈원피스〉는 〈카우보이 비밥〉의 실패를 넘어서는 망가, 아니메 영화의 역사적인 분기점이 될 수 있을까? 여기서 나는 어쩔 도리 없이 ‘샹크스’의 입을 빌려야겠다. 목숨을 걸어라. 피스톨을 뽑았다면 목숨을 걸라고!
 

 
Who's the writer?
김도훈은 글을 쓰는 사람이다. 〈씨네21〉 〈GEEK〉과 〈허프포스트〉에서 일했고, 에세이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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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 김현유
  • Illustrator VERANDA STUDIO
  • WRITER 김도훈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