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테스트를 두고 '학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불편한 나,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건가요?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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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테스트를 두고 '학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불편한 나,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건가요?

없던 윤리가 매일 새롭게 태어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에스콰이어 코리아>는 지금까지 크게 고민하지 않았던 최첨단 윤리의 쟁점을 철학자와 함께 고민해보려 한다.

김현유 BY 김현유 2022.01.05
 
Q. 얼마 전, 한 대선 후보가 로봇 박람회에서 복원 성능을 테스트하기 위해 4족 보행 로봇을 손으로 밀어 넘어뜨렸다가 ‘학대’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넘어진 로봇이 불쌍하고, 넘어뜨린 사람은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나왔죠.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미국 로봇업체 보스턴 다이나믹스가 2015년, 테스트의 일환으로 로봇 강아지를 발로 차는 영상을 유튜브에 공개했다가 수많은 항의를 받았죠. 그런데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그것들은 로봇이잖아요. 생물체가 아니고 심지어 유기물도 아니잖아요. 로봇을 테스트할 때 일부러 걷어차고 밀어서 넘어뜨리고 험난한 곳을 걷게 시킨다고 들었어요. 당연한 얘깁니다. 이런 걸 ‘로봇 학대’라며 집착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이상하게만 보입니다. 저도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걸까요?



로봇 제작자들은 로봇 기능 테스트가 로봇 학대 문제로 불거질지는 꿈에도 생각 못 했을 겁니다. 로봇 제작자들(기능론자)과 일반 시민(감정이입론자)의 시각이 엄청나게 달랐죠. 기능론자의 입장을 보죠. ‘넘어뜨리면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발로 차보자. 진로에 장애물을 두면 어떻게 대처할까? 가로막아보자.’ 그걸 본 감정이입론자는 이렇게 생각할 겁니다. ‘생명체처럼 움직이는 로봇을 발로 차거나 방해하는 건 학대 아닌가?’
 
기능론자는 반박합니다. ‘기계에 불과한 로봇에 감정이입을 해서 기능 테스트를 비난하는 건 지나치지 않나? 그럼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자동차 파괴 실험도 학대인가?’ 하지만 감정이입론자의 생각은 다릅니다. ‘기계는 맞지만, 본인 차는 애지중지하면서 로봇은 함부로 대해도 되나? 열일 해주는 감사한 이모님(로봇 청소기)을 테스트한다고 뒤집어놓거나 진로를 방해하면 기분이 좋을 리 없는데.’
 
양쪽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명확한 사실은 논쟁의 대상이 아니며, 논쟁은 인간의 판단에 따라 좌우되는 선악, 정의, 호오(好惡) 등의 영역에서 발생한다고 말합니다. 1+1=2라든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누가 정의로운가, 누가 미래 세대를 위한 바람직한 지도자인가에 대해서는 진영을 나누어 싸우는 것이죠.
 
로봇을 둘러싼 위의 논쟁은 이질적인 두 영역이 섞여 있습니다. 로봇을 기능적으로 테스트하는 건 사실의 영역입니다. 악조건 테스트는 로봇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의문의 여지없이 받아들여야 할 기초입니다. 이에 인간 정서를 대입할 필요는 없습니다. 수학 문제를 풀 때 감정을 개입할 필요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하지만 로봇이 테스트를 당하는 걸 보면서 정서적으로 반응하는 건 사실의 영역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사용하던 자동차를 폐차할 때 느끼는 안쓰러움, 아끼던 시계가 망가졌을 때 느끼는 애틋함을 불필요한 정서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 서로 다른 문제이기 때문에 로봇 테스트(학대)를 하지 말라고 할 필요도 없고, 기계 테스트인데 거기에 감정이입을 할 필요가 있냐고 반박할 필요도 없습니다.
 
사실, 로봇 논의는 양립 불가한 두 입장 사이의 논쟁이 아닙니다. 이 논쟁에서 등장하는 양 진영은 한 인간 안에서 나타나는 두 영역일 뿐입니다. 원래 싸울 사안이 아닌데 싸움의 프레임에 빠져 들어가는 건 감정 소모일 뿐입니다.
 
이 질문에는 논쟁적인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로봇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풀어야 할 철학적 문제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로봇이잖아요. 생물체가 아니고 심지어 유기물도 아니”라는 주장은 ‘생명체의 경우라면 감정이입의 가능성을 어느 정도 인정할 수도 있지만 무기물인 기계에 감정이입을 하는 건 필수적이지 않다’는 내용을 담고 있죠.
 
인간, 생명체, 기계가 다르다는 주장을 하려면 ‘생명의 본질은 무엇이고, 인간을 로봇과 가르는 가장 핵심적인 특징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성과 인간의 의미에 대한 현대적 질문에 답해야 하는 거죠. 로봇과 인간이 궁극적으로 다르다면, 인간을 인간 되게 하는 건 무엇일까요?
 
인간의 것으로 여겨졌던 영역에 인공지능(AI) 로봇이 발을 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세돌을 이긴 알파고는 또 다른 AI인 알파 제로에게 참패했고, 인간은 바둑에 관한 한 AI를 이길 수 없습니다. 아직 초보 단계지만 금융 분석, 판례 분석, 병리학, 소셜 서비스 등에서 AI는 나름대로 인정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해오던 업무를 이제는 인공지능도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로봇은 못하지만 인간만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요? 로봇의 출현, 특히 지능 로봇인 AI의 출현은 인간 스스로에 대한 재정의를 요구합니다. 우리가 ‘로봇에게 너의 정체는 뭐냐?’라고 물으면 로봇은 우리에게 되물을 것입니다. ‘너의 정체는 뭔데? 네가 할 수 있는 건 나도 할 수 있어. 우리는 못하지만 너만이 할 수 있는 건 뭐지? 너를 우리 로봇과 다른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게 하는 게 뭐야?’ 이런 질문에 우리는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요?
 

 
Who's the writer?
김귀룡은 충북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쳤고, 정년 후 산사(山寺)에서 삶의 수수께끼를 풀고 있다. 〈고대와 현대의 철학적 대화〉 〈그리스 논리사〉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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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DITOR 김현유
    WRITER 김귀룡
    Illustrator 양승희
    DIGITAL DESIGNER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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