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에스콰이어> 에디터들이 꼽은 이 달의 책
중쇄를 거듭해 더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하는 책들을 <에스콰이어> 에디터들이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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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스탠퍼드 대학교의 초대 학장이자 수십 년 동안 어류 표본을 모아온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1906년 엄청난 혼돈과 맞닥뜨린다. 캘리포니아 지역에 지진이 덮쳐, 그가 수십 년간 수집한 수백 개의 표본이 들어 있는 유리 단지들이 바닥에 떨어져 박살 났다. 대다수가 처음 발견한 종의 완모식표본이라 뭘 찾아볼 수도 없었다. 이름을 만들고 주석 이름판에 적어 에탄올 용기 안에 아무렇게나 넣어두었기 때문이다. 이름표는 이름표대로, 표본은 표본대로 나뒹구는 절망적인 상황.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자신이 찾았더라도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종은 과감하게 버렸다. 이름이 기억나는 종은 이름표를 적어 물고기의 목에, 배에, 눈에 꿰매 붙였다. 다시는 지진 따위에 이름표를 잃지 않도록 말이다. 그러나 이 책의 주제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이 아니다. 이 책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일생을 책으로 읽은 한 과학 기자의 인생에 관한 이야기다. 과학 서적이라고 생각하고 이 책을 펼친다면 실망할 것이다. 한 친구와 오랜 시간 인생을 집어삼키는 혼돈과 그에 맞서는 태도에 대해 얘기해본다고 생각하고 책장을 펼쳐보자. 박세회

Hi-Fi: 오디오 라이프 디자인
‘정보’란 산재한 데이터 중 의미 있는 것을 선별한 것을 말한다. ‘지식’은 그 의미 있는 점과 점이 연결된 선이며, ‘인사이트’는 그 무수한 선의 총체가 작동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배움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실수, 그건 선을 긋다가 신이 나서 임의로 선택한 점들로 유니콘 형상을 그려놓는 것이다. 설마 싶겠지만 오디오 같은 분야에서는 꽤나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문외한이 구분하기 힘든 미묘한 차이에 대해 무수한 신화가 만들어져 있으니까. 뉴욕의 오디오 컨설턴트 기디언 슈워츠가 세계적 아트북 출판사 파이돈과 함께 만든 <Hi-Fi>는 그런 견지에서 추천할 만한 책이다. 이 책은 하이파이 오디오의 역사를 망라한다. 연대별로 구획된 6개의 챕터가 각 연대의 핵심적인 화두들을 제시하고, 그 하위 분류로 전설적 오디오 제조사들이 각각 어떤 시도를 했고 그 결과로 무엇이 탄생했는지 밝힌 것이다. 일말의 신화화 없이 담백하게, 그러나 위대한 성취와 아름다운 디자인을 제대로 조명하면서. 튼튼한 뼈대라는 점에서 추천할 만한 입문서며, 동시에 오디오 애호가가 소장하기에 좋은 아카이브다. 오성윤

나는 매일 죽은 자의 이름을 묻는다
인간의 몸은 200여 개의 다른 이름을 가진 뼈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우리의 눈으로 직접 뼈를 보는 일은 흔하지 않다. 법의인류학자이자 저자인 수 블랙은 그런 뼈들을 관찰하고 연구하면서 삶의 대부분을 보냈다. 그녀는 자신의 일을 이렇게 소개한다. “우리는 뼈로 그 사람의 사연을 알아내고 죽은 자에게 이름을 되찾아줄 수 있다.” 신원 미상의 사건은 케이스가 성립하지 않는다. 신원 미상의 시체는 아직 법의 테두리 바깥에 있다. 블랙과 같은 법의인류학자들이 이 시체에 이름을 찾아 사법의 테두리 안으로 밀어 넣으며 정의가 시작된다. 실종 신고도 되어 있지 않은 부패된 시신의 신원을 확인하고 시신의 다리뼈에서 학대의 흔적을 발견하는 저자의 업무는 그래서 정의의 세계에서 죽었던 자를 살려내는 듯한 인상을 준다. 여행 가방 속에 구겨진 채 들어가 있는 여성의 시체를 생각하면 블랙의 말대로 법의인류학자는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선택하지 않을 직업’이다. 왜 아니겠는가? 한국을 비롯해 대부분의 국가가 법의인류학자 부족에 시달리는 이유고, 이 책을 펼칠 때 일말의 감사함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송채연

제가 변호사가 되어보니 말입니다
판사가 나무망치를 내리치려는 순간, 법정 문이 열리며 의문의 사내가 뛰어와 증거를 건넨다. 이윽고 변호사는 화려한 언변으로 재판을 뒤집는다.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이지만, 전부 허구다. '법봉'은 반세기 전에 사라졌고 느닷없이 법정에 들어섰다간 경위에게 바로 제압당한다. 변호사의 말이 조금만 길어지면 판사는 “서면으로 제출하세요”라며 자르기 일쑤다. 오광균 변호사가 자신을 ‘키보드 워리어’라고 부르는 이유다. 매일같이 30장이 넘는 글을 ‘주일상목행(주체, 일시, 상대방, 목적물, 행위 순서)’에 맞추어 작성하는 게 주 업무이기 때문. 예약 상담 ‘노쇼’를 당하거나 무작정 수임 비용을 깎아달라는 의뢰인 때문에 난감해하는 모습을 보면 ‘변호사도 그저 직장인일 뿐이다’라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글의 대부분은 대형 로펌 소속이 아닌 1인 변호사 사무실이 어떻게 운영되는지에 대한 소소한 일상이지만, 663만 4344건의 소송을 3000명 남짓의 법관이 소화하는 구조(2019년 기준) 탓에 누군가에게는 인생이 걸린 문제가 30초 만에 약식으로 결정되는 현실을 꼬집기도 한다. 박호준
Credit
- EDITOR 오성윤
- PHOTOGRAPHER 정우영
- ART DESIGNER 김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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