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신기록을 보유한 프리다이버 김정아가 수심 88m를 찍고 돌아온 비결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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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신기록을 보유한 프리다이버 김정아가 수심 88m를 찍고 돌아온 비결

프리다이버 김정아는 숨을 한 번 쉬고 수심 88m를 찍고 돌아왔다. 차가운 수온과 성난 조류와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을 뚫고서 말이다. 아시아 최고 기록을 세운 그녀는 여전히 바다가 좋다고 말했다.

박호준 BY 박호준 2022.04.30
 
© Kohei Ueno

© Kohei Ueno

 
작년 여름, 바하마에서 열린 ‘버티컬 블루(Vertical Blue)’ 대회에서 88m를 잠수하며 아시아 여자신기록을 세웠어요.
테니스 선수에게 윔블던이 있다면, 프리다이버에겐 버티컬 블루가 있어요. 전 세계 모든 프리다이빙 선수들이 버티컬 블루에 참가하는 걸 꿈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처음 프리다이빙을 시작할 때부터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버티컬 블루 대회 영상을 무수히 봤어요. 버티컬 블루는 세계 랭킹 1~10위인 선수들에게 초대장을 보내는데, 2019년에 드디어 저한테도 기회가 왔어요. 그런데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2020년 대회가 취소되면서 마음고생을 많이 했죠. 다행히 2021년에는 개최가 됐고 심기일전하는 마음으로 참여했는데 좋은 결과가 있어서 무척 기뻤어요.
상금도 많이 받았어요?
아니요. 버티컬 블루는 상금이 없었어요.(웃음) 원래 있었다는데 작년엔 없었죠. 얼마 전 키프로스에서 열린 월드 챔피언십 메달을 땄을 땐 500유로 받았네요.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대회에 나갔을 땐 현금 다발을 받은 적도 있어요. 몇몇 대회를 제외하면 상금보단 다이빙 장비를 부상으로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수심 88m는 어떤 모습일지 감이 오지 않네요.
바다마다 조금씩 다른데 버티컬 블루가 열린 ‘딘스 블루홀(Dean’s Blue Hole)’은 많이 어두운 편이에요. 다른 바다에서 연습했을 땐 수심 80m 정도 내려가도 어느 정도 빛이 있었는데 딘스 블루홀은 깜깜했어요. 헤드 랜턴을 착용하고 수중 드론이 빛을 쏴주는데도 그랬죠. 평소 물에 대한 공포가 없는 편인데 너무 어두우니까 약간 긴장이 되더라고요. 처음 들어가보는 낯선 바다라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어떤 종목으로 참가한 거죠?
신기록을 달성한 건 ‘CWTB(Constant Weight with Bi-fins)’라는 종목이에요. 양발에 핀을 신고 물에 들어가 하강 로프(로프를 활용하는 종목도 있다)를 잡지 않고 다이빙을 하는 방식이에요. ‘CNF(Constant Weight without Fins)’라고 핀 없이 내려가는 종목도 있어요. 아무래도 핀이 없으면 체력 소모가 더 심해서 깊이 내려가기 어려워요. CWTB로는 88m를 기록했지만, CNF 기록은 그 절반 수준입니다.
잘하는 종목만 출전하는 게 일반적인데 정아 씨는 그렇지 않더라고요.
재밌어서 그래요.(웃음) 몸을 혹사하는 거 아니냐고 걱정해주시는 분들도 있는데, 대회에선 선수 보호 차원으로 하루에 한 번만 다이빙을 할 수 있어요. 버티컬 블루 같은 경우 쉬는 날도 정해져 있고요.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각 종목마다 쓰는 근육이 조금씩 달라요. 줄을 잡아당겨도 되는 ‘FIM(Free Immersion)’은 상체 근육을 많이 사용하고, ‘모노 핀(mono fin)’을 착용하는 종목은 코어 근육을 주로 쓰거든요. 귀한 시간과 돈을 들여 해외 대회까지 나갔으니 가능한 한 많은 경험을 쌓고 싶었어요. 특히 버티컬 블루는 수중 드론을 사용해서 실시간 중계를 해요. 웨이트트레이닝은 거울을 보며 자세 교정을 할 수 있지만, 프리다이빙은 물속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스스로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런 큰 대회에 참가해 영상들을 얻는 것도 제 다이빙에 큰 도움이 돼요.
바다에는 변수가 많잖아요. 위험하진 않아요?
아주 변화무쌍하죠.(웃음) 그게 매력이기도 하고요. 프리다이빙은 평정심을 유지해야 유리한 스포츠예요. 잡생각이 많거나 불안하면 몸이 더 많은 산소를 소모하거든요. 그래서 수온, 조류, 바다 환경에 민감해요. 수심 20m까진 수온이 따뜻했는데 21m부터 갑자기 물이 차가워질 수도 있는 게 바다예요. 조류도 마찬가지인데 아침에 들어갔을 때랑 오후에 들어갔을 때가 달라요. 안전을 위해 줄로 몸을 연결해놓긴 하지만, 갑자기 몸이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떠밀리는 경험이 유쾌할 수는 없죠. 프리다이빙이 단순히 숨을 오래 참는다고 능사가 아닌 이유입니다. 다른 선수와 몸을 부대끼는 스포츠가 아니라서 골절 같은 부상은 발생하지 않아요. 기껏해야 블랙아웃 정도?
 
 
기절할 수도 있다는 말을 너무 담담하게 말하는 거 아닌가요?
7년 동안 다이빙을 하면서 딱 한 번 경험했어요. 올라가려고 방향을 바꾸는데 ‘아,블랙아웃 오겠다’라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보통은 즐거운 마음으로 올라오는데 그날은 좀 달랐어요. 생각도 많고 몸도 너무 무거웠죠. 아니나 다를까 올라가는 도중에 정신을 잃었어요. 근데 안전해요.(웃음) 만약 80m를 내려간다고 치면 세이프티가 상승하고 있는 선수를 위해 미리 내려와요. 30m, 20m, 10m에 각각 한 명씩 배치되어 있는 식이죠. 블랙아웃이 오더라도 즉각 대처해줄 동료들이 있어서 두렵진 않아요.
들어갈 바다를 미리 파악하는 게 중요하군요.
물론이죠. 축구선수나 야구선수도 큰 대회가 있으면 미리 전지훈련을 가잖아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요. 프리다이빙도 똑같아요. 제주 바다와 필리핀 바다가 다르고 바하마 바다는 또 다르기 때문에 대회가 열리기 한 달 전부터 적응을 위한 훈련을 시작해요. 수온은 어느 지점에서 변하는지, 조류의 세기는 어떤지 등을 사전에 체크하고 그 바다를 알아야 전략을 짤 수 있어요.
무슨 전략이요?
예를 들어 급격한 수온 변화에 대한 신체적 또는 정신적 준비를 할 수도 있겠죠. 몇 mm짜리 다이빙 슈트를 입고 착용할 웨이트(납)의 무게를 정하는 것도 전략의 일부예요. 두꺼운 슈트를 입으면 차가운 수온으로부터 체온을 지킬 수 있지만 부력이 강해져요. 이 부력을 상쇄하기 위해 웨이트를 착용하는데, 무겁게 차면 내려갈 때 힘을 덜 들일 수 있지만 올라올 때 그만큼 더 많은 힘이 필요하죠. 힘이 좋은 선수들은 웨이트를 무겁게 착용하고도 쭉쭉 잘 올라오기도 해요. 결국 자기 자신의 장단점을 이해하고 그걸 바다에 맞춰 최적의 장비 세팅을 할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한 셈이죠.
 
모노 핀은 추진력이 강해 속도를 내기 유리하다.

모노 핀은 추진력이 강해 속도를 내기 유리하다.

 
프리다이빙에 유리한 체형도 있어요?
음, 아무래도 폐가 크면 좋겠죠. 공기를 많이 저장할 수 있으면 더 깊은 곳까지 도달할 확률이 높아지니까요. 그렇지만 절대적인 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요. 저는 오히려 폐가 조금 작은 편에 속하거든요. 무호흡 트레이닝이나 러닝, 요가를 꾸준히 하면 좋아요. 어떤 다이버는 매일 1시간씩 명상을 한다고 해요. 물속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한 훈련 개념으로요.
훈련은 주로 어떻게 해요? 매번 바다로 나가긴 현실적으로 어렵잖아요. 우리나라엔 가장 깊은 인도어 풀도 26m밖에 되질 않고요.
사실 우리나라는 프리다이빙을 즐기기에 썩 좋은 환경은 아니에요. 삼면이 바다지만 수온이 많이 낮은 편이에요. 저는 인도어 풀보다 바다를 선호하는 편이라 되도록 바다로 나가려고 노력해요. 한국에 오더라도 주로 제주도에 머물러요. 깊이도 그렇고 인도어는 바다에 비해 답답해요. 등산도 그렇잖아요. 깊은 산에 오르는 것과 방 안에서 스텝밀 머신(stepmill machine)을 오르는 게 천양지차이인 것처럼요. 물론 ‘이퀄라이징(equalizing)’같이 수중에서의 압력 평형을 위한 기술이나 ‘덕다이브(duck dive)’같이 프리다이빙에 필요한 자세를 익히는 데에는 인도어가 도움이 돼요. 최근 몇 년 사이 프리다이빙을 위한 공간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기도 하고요.
최근 몇 년 새 프리다이빙의 인기가 급격히 높아진 이유는 뭘까요?
인스타그램?(웃음) 프리다이빙을 즐기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어요. 저처럼 기록에 도전할 수도 있고, 바닷속 산호초를 감상하거나 스피어 피싱을 즐기기도 하죠. 물속에서 멋진 사진을 찍는 걸 목적으로 하는 사람도 많아요. 수심 10m, 20m라고 하면 엄청나게 깊어 보이지만, 남녀노소 누구나 집중해서 배우면 충분히 도달할 수 있는 수심이거든요. 덩달아 국내에서 인도어 대회도 굉장히 많이 열리고 있어요. 국제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프리다이빙 협회인 ‘AIDA(Association International for the Development of Apnea)’에 등록된 여자 선수가 가장 많은 나라가 우리나라예요. 해외에 나가면 외국 선수나 관계자들이 관심을 보일 정도죠.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갑자기 몸집이 커지면 문제가 생기기도 쉽죠. 예를 들면 프리다이빙 강사의 자질 문제 같은 것들이요.
다른 강사들을 평가하고 싶진 않아요. 프리다이빙을 잘하는 것과 강습을 잘하는 건 분명 다른 영역이기도 하고요. 뛰어난 실력을 가진 강사도 많아요. 다른 운동도 마찬가지겠지만, 돈벌이로 프리다이빙을 대하는 사람은 경계해야 해요. ‘제가 이렇게 많은 수강생을 배출했습니다’라고 홍보하는 사람을 종종 보는데 그게 다가 아니거든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강사는 강습만 하는 게 아니라 꾸준한 트레이닝을 통해 자신의 커리어를 밟아나가는 사람이에요.
그런 면에서 강사 제의를 많이 받을 것 같은데요? 
(웃음) 제안을 받는 건 사실이지만 아직은 제 기록에 충실하고 싶어서 정중히 사양하고 있어요. 세미나 형태로만 몇 번 진행했죠. 바다랑 프리다이빙이 너무 좋아서 원래 하던 일까지 그만뒀는데 강사가 되면 다시 일로 돌아가는 거잖아요. 기록에 대한 욕심도 나요. ‘100m를 찍겠다!’가 아니에요. 88m를 기록한 2021년도보다 조금 더 발전한 제 모습을 보고 싶어요. 그렇게 조금씩 기록을 늘려가다 보면 100m까지 늘릴 수도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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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박호준
    PHOTOGRAPHER 조혜진
    ASSISTANT 송채연
    ART DESIGNER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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