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생리학자가 말하는 걷기의 과학에 대하여 | 에스콰이어코리아
LIFE

운동생리학자가 말하는 걷기의 과학에 대하여

과학은 걷기에 대해 무엇이라 말하는가? 운동생리학자의 눈으로 본 걷기의 과학에 대하여.

ESQUIRE BY ESQUIRE 2022.05.01
 
 
걷기란 무엇인가? 언뜻 별 다른 대답이 필요치 않아 보이는 이 질문에 과학은 좀 다르게 대답한다. 먼저, 걷기는 위대한 진화의 산물이다. 1859년 찰스 다윈이 집필한 〈종의 기원〉의 원제는 ‘자연선택에 의한 종의 기원, 또는 생존 경쟁에서 유리한 종족의 보존에 대하여(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Selection, or the Preservation of Favoured Races in the Struggle for Life)’이다. 이 책의 핵심은 ‘자연선택’보다 ‘돌연변이’에 있다. ‘자연선택에 따른 진화’란 무엇인가? 프랑스 생물학자 자크 모노는 데모크리토스의 말을 빌려 “우연과 필연”이라고 간략히 말했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인류는 다섯 단계의 큰 변화를 겪었다. 1단계는 최초의 조상들이 유인원에서 갈라져 나와 똑바로 서서 걷는 두 발 동물로 진화했다. 2단계는 그 후손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주식인 과일 외의 다양한 음식을 찾아 먹기 위한 적응들이다. 3단계는 약 200만 년 전에 호모속의 초창기 종들에서 현대적인 몸과 약간 더 큰 뇌를 가진 최초의 수렵 채집인의 등장이다. 4단계는 고인류 수렵 채집인이 번성해서 구세계 대부분의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그들의 뇌는 더 커졌고 몸도 크게 성장한다. 5단계는 언어·문화·협력을 위한 특별한 능력을 지닌 현생 인류가 나타났다. 전 지구로 빠르게 퍼졌고, 지구상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인류 종이 되었다.
다윈은 자연선택이 어떻게 두 발 보행을 선호했는지 설명하지 못했다. 왜 자유로운 손이 도구 제작, 인지능력, 언어에 대한 선택을 일으켰는지 몰랐다. 인간은 두 발로 서서 걷고 뛰면서 두 손을 이용할 수 있었지만, 손을 자유롭게 사용하기 위해 두 발로 서지는 않았다. 과학적 근거들은 식량을 효율적으로 채집할 수 있고, 걷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줄이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실제로 인간의 2족 보행이 침팬지의 4족 보행에 비해 4배 정도 효율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인류는 두 발로 걷게 되면서 네 발 보행의 속도, 힘, 민첩함을 포기하는 대신 발목 염좌, 요통, 무릎 통증 같은 전형적인 질병을 겪게 되었다. 그러나 환경에 대한 적응은 인간이 네 발 보행을 포기하고 도구 제작자로 거듭나는 계기가 됐으며, 결과적으로 오래 달리기를 통한 ‘끈질긴 추적 사냥(Persistence hunting)’에 적합한 진화 등을 거쳐 새로운 우연과 도전에 직면케 했다.
걷기는 매우 정교한 메커니즘이다. 걷기는 우리 몸을 구성하는 600개가 넘는 근육과 200여 개의 뼈가 모두 동원되는 몸짓이자 조화로운 움직임의 결정체다. 뇌의 운동 피질은 전두엽 뒷부분에 위치하여 수의 운동과 불수의 운동을 일으키는 근육 활동을 조절한다. 척수와 말초신경을 통해 전달된 정보는 근육으로 하여금 필요에 따라 수축하고 이완하도록 명령한다. 걷기 시에 운동 피질은 정밀하게 조정된 동작 순서를 운동신경이 전달하는 자극으로 빠르게 내려보낸다. 고관절, 슬관절, 족관절과 관련된 근육들은 동작 패턴의 연속적인 명령을 수행하며 신체를 이동시킨다.
근육과 뼈뿐만이 아니다. 걸을 때 우리 몸은 간, 근육, 지방세포에 저장되어 있는 에너지를 꺼내게 만드는 호르몬(글루카곤, 코르티솔 등)을 생산한다. 이 호르몬들은 운동하는 동안 인슐린의 작용을 일시적으로 막고, 운동 이후 최대 16시간 동안 세포의 인슐린 민감성을 높인다. 걷기를 통한 유산소 운동은 심장을 튼튼하게 만들어줄 뿐 아니라 간과 근육을 포함한 온몸에서 지방이 저장되고 분비되고 연소되는 것을 조절한다. 또 걷기는 동맥의 염증 수치를 낮춘다. 동맥 염증은 죽상 동맥경화증을 유발하는 주범이다. 일반적으로는 걷기 운동의 지속성이 운동 강도보다 더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규칙적인 걷기는 심장병이나 뇌졸중에 걸릴 확률을 절반으로 줄인다. 심장 기능을 좋게 하고 장기적으로 혈액순환을 향상시키며, 그 어떤 약물보다 혈압을 낮추는 작용이 뛰어나다. 수축기 혈압은 최소 10~15mmHg, 이완기 혈압은 5~8mmHg 정도 낮출 수 있다.
걷기는 또한 인간과 자연을 잇는 행위다. 인간은 자연과 함께하기를 갈망하며, 자연과 단절되면 고통을 느낀다. 햇볕을 쬐며 걸으면 심박수를 안정시키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를 낮춰준다. 수면호르몬인 멜라토닌 분비를 억제하고 면역체계를 강화시키며 뼈를 성장, 강화하는 비타민 D를 합성하게 돕는다. 우리 몸은 사용하지 않으면 잃도록 진화했다. 규칙적인 걷기는 엉덩이 근육을 중심으로 한 신체 중심부 근육(코어)을 키운다. 근력을 발휘하는 근육을 키우는 것보다, 오랫동안 균형 있게 움직일 수 있는 근육을 키우는 것이 건강한 삶의 질을 유지하는 데 더 큰 도움이 된다.
걷기는 스포츠다. 스포츠에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자세다. 걷기가 진자운동이라는 걸 이해할 필요가 있다. 발과 팔을 들어 무게중심을 높여 위치에너지를 저장하고 저장된 위치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바꿔주는 게 걷기 운동의 핵심이다. 이상적인 걷기는 가능한 한 제동력이나 상하 진동을 최소로 해서 앞으로 이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시선은 약 10~15m 전방을 보며, 해부학적 중력중심선이 귀와 어깨, 허리, 발목의 복숭아뼈까지 일직선을 이루는 바른 자세로 복부와 엉덩이에 힘을 주고 양팔을 몸통의 회전에 맞춰 리드미컬하게 흔들면서 걷는 것이 좋은 걷기 자세다. 얼마나 걸어야 하는지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 2017년 3월 영국 워릭대학 연구팀은 하루 1만 보보다는 1만5000보 이상을 걸어야 심장질환을 예방하고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하루에 1만5000보 이상을 걷기 위해서는 시간당 6.4km의 빠른 속도로 2시간 이상 걷는 노력과 계획이 필요하며, 일상생활에서의 실천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전 연구에서는 한꺼번에 많은 시간의 운동을 주장했지만, 최근 연구들은 짧은 시간 간헐적 운동이어도 총 목표 시간을 채우면 비슷한 운동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밝혔다.
걷기에도 다양한 방식이 있다. 걷기의 방식 중엔 ‘스트롤링 걷기’라는 게 있다. 저강도의 운동을 수행하기 위해 느린 속도로 걷는 걸음으로 심박수가 올라가지 않을 정도로 낮은 강도의 걷기다. ‘완보’와 ‘산보’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둘째는 ‘파워 워킹’이다. 팔을 90도 정도 굽히고, 가볍게 달리는 자세로 활기차고 빠른 속도로 걷는 것으로 ‘속보’와 ‘급보’에 해당된다. ‘에슬레틱 워킹’은 경주와 걷기를 병행하므로 걸으면서 심박수를 높이는 방법이다. ‘급보’와 ‘강보’가 여기에 속한다. ‘경보’는 육상종목으로 강도가 매우 높고, 고관절과 슬관절, 발목 관절 등에 스포츠 상해를 입을 수 있어 일반인이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보폭 넓혀 걷기’는 자신의 적정 보폭(신장-100)에 10cm를 더 넓게 걷는 것으로 빠르게 걷기를 하면 보폭은 자연스럽게 넓어진다. ‘인터벌 걷기’는 30분을 기준으로 3분은 빠르게 걷고, 2분은 보통 속도로 걷기를 6회 반복하는 방법으로 일반적인 30분 걷기보다 칼로리 소모가 많은 장점이 있다.
걷기의 단계를 속도로 구분하면, 완보는 대략 50~60m/m, 3~3.5km/h, 산책이나 명상을 목적으로 천천히 걷는 산보는 60~70m/m, 3.5~4km/h 정도의 속도다. 속보는 활기찬 동작으로 걷는 80~90m/m, 5~5.5km/h, 이보다 빨리 걷는 급보(100~110m/m, 6~7km/h)부터는 기술이 필요하다. 일반인이 걷는 가장 빠른 속도인 강보는 120~130m/m, 7~8km/h지만, 육상종목인 경보는 15km/h에 달한다. 재활 치료나 심신의 안정을 위해서는 완보와 산보를 추천하고, 체중 조절이나 운동 효과를 목적으로 할 때는 속보와 급보가 좋다. 모든 운동은 연령 및 건강상태, 체력 수준, 걷기의 목적에 맞게 선택했을 때 가장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보폭은 성인 남성 기준 약 74cm, 성인 여성 약 64cm로 남성의 보폭이 약 10cm 정도 더 크며 신장과 비례한다. 보폭 계산 방법은 ‘신장-100cm’를 가장 많이 사용한다. 일반 속도의 걷기에서는 ‘신장×0.37’, 빨리 걷기는 ‘신장×0.45’라는 계산식을 이용하며, 일반적인 걷기 속도는 정상 성인의 경우 초당 1.2~1.4m이다.
신발은 걷기 위해 기능적으로 발전했다. 대부분의 등산화나 러닝화의 밑바닥은 족궁(아치)의 모양에 따라 활처럼 휘어져 있어 인대와 근육에 가해지는 힘을 덜어준다. 신발 밑창은 발가락 쪽이 위로 휘어져 있는데, ‘발가락 스프링’이라고 부르는 이 굴곡은 발가락들이 땅을 밀 때 근육이 힘을 내도록 도와준다. 대부분의 러닝화 뒤꿈치에는 탄성이 있는 물질로 만든 두툼한 쿠션이 갖춰져 있다. 이러한 신발은 최대 충격력이 전달되는 속도를 늦춰 뒤꿈치 착지를 더 편하게, 덜 아프게 돕는다. 신발 구입은 저녁 이후가 바람직하며, 끈을 맨 상태에서 걸어봐야 한다. 발가락 끝은 5~10mm의 여유가 있는 것이 좋고, 발등 부분에 압박감을 느끼지 않는 신발이 좋다. 가장 중요한 점은 발바닥의 족궁이 자신의 발과 맞는 신발을 선택하는 것이다.
적당한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가 걷자. 머릿속이 복잡할 때면 걸어야 한다. 기원 전 400만 년 전, 두 발로 걷는 유인원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출현했다. 즉 보행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보다 길다. 20세기 초, 보행을 자기 철학의 중심 주제로 삼은 현상학자 ‘후설(Edmund Husserl)’은 걷기를 통해서 우리는 세계와 관계하는 우리의 육체를 이해한다고 주장했다. 루소는 〈고백록〉에서 “나는 걸을 때만 사색할 수 있다. 내 걸음이 멈추면 내 생각도 멈춘다. 내 두 발이 움직여야 내 머리가 움직인다”고 말했다. 형상(形象)은 본질을 반영한다. 두 철학자의 말이 걷기의 본질은 아닐지 모르지만, 걷는다는 것은 보편적 행동에 특수한 의미를 부여하는 의식의 확장이다. 한곳에 머물기보다 혼자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의 이미지를 떠올려보라. ‘인간’의 의미가 더 강렬하게 다가오지 않는가? 승리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운동화 끈을 질끈 묶고 걷자. 때론 단순한 걷기가 답이다. 건강뿐 아니라 모든 것의 답일 수도 있다.
 
WHO’S THE WRITER?
김석환은 “진실한 장소는 결코 지도 위에 있지 않다”는 신념으로 현장에서 뛰고 있는 운동생리학자다. 현재 광주스포츠과학연구소장으로 엘리트 선수들의 스포츠과학 지원을 전담하고 있다.

Keyword

Credit

    EDITOR 송채연
    WRITER 김석환
    ILLUSTRATOR MYCADAYS
    ART DESIGNER 주정화
팝업 닫기

로그인

가입한 '개인 이메일 아이디' 혹은 가입 시 사용한
'카카오톡, 네이버 아이디'로 로그인이 가능합니다

'개인 이메일'로 로그인하기

OR

SNS 계정으로 허스트중앙 사이트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회원이 아니신가요? SIGN 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