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트에 입문하기 전 당신이 알아야할 거의 모든 것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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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트에 입문하기 전 당신이 알아야할 거의 모든 것

타본 놈, 따본 놈, 사본 놈 그리고 좀 멀리까지 가본 놈이 들려주는 요트 라이프.

박호준 BY 박호준 2022.05.08
 
© 세일링 서울

© 세일링 서울

 
요트를 탄다는 것
시작은 고무보트(IBS)였다. 〈강철부대〉에서 특수부대원들이 머리에 지고 달리던 바로 그 배. 훈련병 6~8명이 한 조가 되어 노를 저었는데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는커녕 파도에 밀려 제자리를 유지하는 것도 버거웠다. 언젠가 보았던 영화 〈벤허〉의 주인공이 목숨을 걸고 노예선에서 탈출했던 심정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그 후 “동강에 래프팅하러 갈래?”라고 말하는 친구와는 거리를 두며 살았다. 사실 고무보트는 수상레포츠 중 굉장히 역동적인 쪽에 속한다. 사양에 따라 다르지만, 모터를 사용하면 최고 시속이 60km에 육박한다. 무게가 가벼워 파도를 만나면 선체가 잠시 공중에 뜨는 진귀한 경험도 할 수 있다. 영화 〈007〉 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가 머리를 휘날리며 몰던 2인승 요트부터 영화 〈테넷〉에 등장한 헬리콥터가 이착륙할 수 있는 4층짜리 요트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요트 혹은 보트라고 하면 심적으로 멀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지만, 한강에서 누구나 탈 수 있다. 여의도에 위치한 ‘서울 마리나’와 반포에 위치한 ‘골든블루마리나’가 대표적이다. 다양한 형태의 보트가 준비되어 골라 타는 맛이 있다. 한강을 따라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감상하고자 사방이 훤히 뚫린 ‘리무진 보트’에 올랐다. 최대 11명까지 탑승 가능한데 평일 낮이라 선장을 포함해 고작 5명이 전부였다. 참고로 배는 탑승객이 1명뿐이라도 예정대로 출발한다. “멀미약을 미리 먹어야 하나요?”라는 질문은 고이 접어두길 바란다. 잔잔한 강물 위에선 멀미를 느낄 일이 없다. 체험 프로그램은 약 30분간 정해진 코스를 운항한다. 해 질 녘 보트 위에서 바라보는 한강이 얼마나 예쁜지 설명하던 리무진 보트 선장은 프러포즈나 기업 행사를 위한 프라이빗 렌털도 종종 있다고 귀띔했다.
동승만으론 성이 찰 리 만무했다. 직접 몰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법적으로 5마력 이상의 동력이 있는 배는 면허 없이 조종할 수 없다. ‘결국 면허를 따야 하는 건가?’라고 체념할 즈음 ‘세일링 서울’의 임대균 선장을 만났다. 자초지종을 들은 그는 흔쾌히 “언제 오실래요?”라는 짧지만 긍정적인 답변과 함께 이렇게 덧붙였다. “근데 세일링 요트(sailing yacht)예요.”
모터가 아니라 돛으로 바람의 힘을 이용해 움직이는 배를 세일링 요트라고 부른다. 엔진이 달려 있긴 하지만 바람이 아예 없는 무풍지대를 지나거나 배를 접안할 때만 사용한다. “아무리 초보여도 배에 오르는 순간 크루(crew)입니다. 스키퍼(skipper) 지시에 잘 따라주세요. 로프 밟지 마시고요.” 요트에선 선장을 스키퍼라고 부른다. 김포 아라 마리나의 갑문을 통과해 본격적으로 한강에 들어서자 갑판 위가 분주하다. 돛을 올리고 바람에 따라 방향을 맞추는 일련의 과정 전부 두 손으로 직접 줄을 당기며 조정한다. 대신 한 번 바람을 타면 말 그대로 ‘순풍에 돛을 단 배’처럼 쭉쭉 나아간다. 엔진 소리가 요란한 모터 요트와 달리 세일링 요트는 펄럭이는 돛과 잔잔한 물살이 내는 소리가 전부다. 그물이나 부유물이 없는 안전한 구역에서 방향을 조절하는 틸러(tiller)를 잠시 쥐어볼 수 있었는데 손끝으로 느껴지는 배의 움직임이 꽤 직관적이다. 틸러를 급하게 다루면 요트가 눈에 띄게 기울지만 괜찮다. 요트는 120도까지 기울어져도 전복되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다. 박호준
 
돛을 접고 펼 때 사용한 ‘윈치’라는 장치다. 한쪽 방향으로만 돌아간다.

돛을 접고 펼 때 사용한 ‘윈치’라는 장치다. 한쪽 방향으로만 돌아간다.

 
합법적 요티(Yachtie)가 된다는 것
면허를 따기 전에 운전부터 했다. 무면허 운전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우리나라가 아닌 스페인 마요르카였기 때문이다. 지중해에 위치한 마요르카섬은 연중 온화할 날씨와 에메랄드빛 바다로 유명한 휴양지다. 그곳에선 면허의 유무와 상관없이 누구나 보트를 몰아볼 수 있다. 반나절 사용하는 데 150유로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직접 보트를 몰고 사람이 많은 해변을 벗어나 바다를 위를 달리는 경험은 전에 없던 자유로움과 해방감을 선사했다. 눈부신 지중해 바다를 바라보며 ‘한국에 돌아가면 반드시 면허를 따겠다’고 다짐했다. 2017년 7월의 일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2020년 5월 일반조종 2급 면허를 땄다. 5마력 이상의 동력수상레저기구를 조종하기 위해선 해양경찰청에서 발급하는 일반조종 면허 또는 요트 면허를 취득해야 한다. 일반조종 면허는 1급과 2급으로 나뉘는데 다른 사람을 감독할 일이 없다면 2급으로도 충분하다. 요트 면허는 돛이 달린 세일링 요트를 다루기 위한 면허다. 굳은 다짐을 하고도 면허 취득까지 약 3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이유는 면허를 따기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바빠서…’로 시작하는 허약한 의지 탓이다.
과정은 이랬다. 스페인에서 실전 경험(?)을 쌓고 돌아왔으니 학원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잘못된 생각이었다. 필기시험의 문턱조차 넘지 못했다. 30분만 공부해도 통과할 수 있다는 자동차 면허 필기시험과 달리 일반조종 면허의 필기시험은 낯선 용어와 개념이 잔뜩이었다. 탈락의 고배를 맛보니 오기가 생겼다. 문제은행 파일을 다운받아가며 공부했고 한 달 만에 재시험을 통과했다. 2018년 7월이었다.
참고로 필기시험 합격 유효기간은 1년이다. 그러니까 2018년에 필기시험을 통과했는데 2020년에 면허를 땄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앞서 말한 ‘바빠서…’가 재발한 탓이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유효기간이 만료될 때까지 보트 운전대를 만져보지도 못했다. 코로나19가 터지고 각종 모임과 약속이 끊기고서야 다시 보트 생각이 났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이번엔 ‘면제 교육 과정’에 등록했다.
운전면허학원과 비슷하다. 일반조종 2급을 기준으로 이론 20시간, 실습 16시간을 이수하면 별도의 시험 없이 면허를 취득할 수 있다. 교육 비용은 80원 정도다. 돈만 있으면 누구나 딸 수 있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과정이 허술한 건 아니다. 호수나 강이 아닌 바다에서 교육을 받아 실습 과정이 더욱 험난했다. 실습 교육은 10가지 미션을 반복 숙달하는 것으로 교관이 ‘좌현 90도 변침’이라 외치면 나침반을 확인하며 왼쪽으로 90도 꺾는 식이다. 팁은 ‘부드럽게, 천천히’다. 자동차와 달리 보트는 조향을 했을 때 한 박자 늦게 움직인다. 이때 마음이 급해 운전대를 더 꺾으면 90도가 아니라 유턴을 해버리는 실수를 범하기 쉽다. ‘눈길에서 차의 엉덩이를 미끄러뜨리며 탄다’는 느낌으로 보트를 다루면 적응이 빠르다. 차간 거리나 차선 유지를 신경 써야 하는 차와 달리 보트는 비교적 빨리 바다로 나아갈 수 있다. 면허가 있어도 보트가 없다는 게 문제지만 말이다. 마요르카와 달리 우리나라는 ‘보트 체험’은 많아도 ‘보트 대여’는 드물다. 있더라도 1시간에 30만원 수준으로 무척 비싸다. “이럴 바엔 그냥 한 대 사는 게 낫겠다”는 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정주식(회사원) 
 
© 민선윤

© 민선윤

 
요트를 산다는 것
자동차처럼 요트도 제조 국가에 따라 특징이 다르다. 영국에서 만든 요트는 디자인이 화려하고 독일 요트는 만듦새가 뛰어나며 미국 요트는 같은 크기라도 공간이 더 널찍한 편이다. 이탈리아, 네덜란드, 일본의 요트로 눈을 돌리면 선택지는 더욱 넓어진다. 외국에 사는 친척 집에 놀러 갔다가 요트의 매력에 눈을 뜬 이후 시간만 나면 ‘파쏘’라는 중고 요트 거래 사이트를 들락거리며 요트 구매의 꿈을 키웠다. 가격이 적게는 수천만 원, 많게는 수억 원에 달하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도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만 했는데 가격이 괜찮으면 오래된 연식이 걸리고 디자인이 예쁘면 사이즈가 작아 망설여지는 식이었다.
몇 달을 ‘눈팅’만 하다가 지인을 통해 부산에 괜찮은 매물이 떴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독일의 ‘바바리아(BAVARIA)’라는 브랜드가 만든 2017년식 요트였는데 크기도 46피트(약 14m)로 넉넉하고 관리 상태도 좋았다. 바바리아같이 규모가 큰 제조사가 만든 요트를 ‘프로덕션 요트’라고 부르는데 비교적 부품 수급이 수월하고 관련 정보가 많다는 장점이 있다. 결정적으로 4년 동안 133시간밖에 운행하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자동차에 누적 주행거리가 표시되어 있는 것처럼 요트는 엔진을 돌린 시간을 확인할 수 있다. 지체할 겨를이 없었다. 혼자 살피긴 무리라고 판단해 경험 많은 요트 전문가를 섭외해 함께 내려갔다. 엔진 룸을 열어보며 면밀하게 살핀 것은 물론 바다에 나가 테스트 세일링까지 진행했다. 그것도 모자라 배를 띄워 물에 잠겼을 땐 보이지 않는 하부까지 살폈다. 유별나다 싶을 수도 있겠지만 출고가가 5억, 중고 가격도 3억원이 훌쩍 넘는 물건을 사게 된다면 누구든지 나와 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구매 후 부산에 있는 요트를 서울로 가지고 오는 것도 일이었다. SUV 뒤에 매달아 끌고 올 수 있는 수준이 아니기 때문에 바다로 이동해야 했는데, 이제 막 배를 산 초보 선장이 감당하기엔 벅찬 길이다. 결국 또다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다. 배를 옮겨주는 ‘딜리버리 캡틴’을 초청해 그의 지시에 따라 부산에서 인천까지 이동했다. 총 3박 4일이 걸렸는데 어찌나 힘들었던지 인천에 도착하자마자 링거를 맞았다.  
요트를 구매한 후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우와! 언제 한번 태워줘”가 아니라 “그래서 얼만데?”였다. 재벌들만 요트를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구매비용과 유지비용을 간략하게 나열하면 이렇다. 요트의 취등록세는 3억원을 기준으로 세율이 달라진다. 3억원 이하는 2.02%, 이상은 10.2%다. 만약 4억원짜리 요트를 산다면 취등록세로만 약 4000만원을 내야 한다. 승용차는 가격에 상관없이 일괄 7%인 걸 생각하면 유독 요트에만 잣대가 엄격한 게 아닌가 싶다. 재산세 역시 3억이 넘는 요트에는 5%가 부과된다. 세금에 비하면 유지비용은 그나마 귀여운 수준이다. 영종도의 왕산 마리나의 경우 요트를 세워놓는 데 월 80만원이다. 여기에 자잘한 소모품 비용이 연간 200만원 정도다. 고장 났을 때 드는 부품값과 공임비는 또 다른 이야기다.  강치성(가명) 
 
망망대해에서 나침반은 목숨과도 같다. 외부 충격과 자외선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커버가 있는 것이 특징.

망망대해에서 나침반은 목숨과도 같다. 외부 충격과 자외선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커버가 있는 것이 특징.

 
항해를 떠난다는 것
뱃사람들끼리 하는 말 중 “진짜 친구인지 확인하고 싶다면 함께 배를 타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검증하려면 1박 2일이나 2박 3일로는 부족하다. 인천에서 제주도까지 2박 3일 정도 걸리는데 경험상 그 정도는 불편하거나 탐탁지 않은 구석이 있어도 견딜 만하다. 일주일이 넘어가는 원양 항해는 다르다. 오키나와에서 출발해 일본 최남단 섬인 이시가키(石垣)를 거쳐 필리핀 수빅(subic)까지 열흘간 약 1900km를 항해하며 느꼈던 건 ‘이래서 선상 반란이 일어나는구나’였다.
일단 몸이 힘들다. 멀미는 차치하더라도 피부가 아플 만큼 강렬한 태양을 견디며 돛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과정은 중노동과 다르지 않다. 열기를 막기 위해 두꺼운 이불을 요트 위에 덮어놓을 정도다. 땀을 뻘뻘 흘렸는데 물이 귀해 마음껏 씻을 수 없으니 짜증이 몰려온다. 해가 져도 힘들긴 매한가지다. 돌아가며 불침번을 서야 한다. 연안에 비해 먼바다엔 암초나 그물은 없지만 종종 큰 배에서 떨어진 부유물이나 다른 배가 불쑥 튀어나오는 아찔한 경우가 있어서다. 체력과 정신력이 바닥을 치는 순간 스스로도 알지 못했던 본성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기 시작한다. 과도하게 공격적 또는 방어적인 성향을 보이는 것이다. 평상시라면 아무렇지 않게 넘어갔을 농담도 잔뜩 예민해진 상황에선 싸움의 도화선이 되기 십상이다. 45피트(약 14m)짜리 요트라고 해도 실제 거주 공간은 원룸보다 조금 넓은 정도라서 불화가 생기더라도 계속 얼굴을 마주 봐야 한다.
사서 고생인데도 끊임없이 항해를 꿈꾸는 까닭은 먼바다에서만 볼 수 있는 자연의 아름다움 때문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발광 플랑크톤을 만난 밤이다. 평소와 달리 요트가 가르는 물살이 초록빛을 내길래 처음엔 항해등이 비친 줄 알았다. 알고 보니 발광 플랑크톤이었다. 요트가 만들어낸 물살을 따라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빛깔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마치 하늘의 오로라를 한 움큼 떼어다가 바다에 풀어놓은 것처럼 말이다. 그 모습이 아름다워 무려  5시간 동안 멍하니 바다 위만 바라봤다. 해가 뜰 때와 질 때 시시각각 바뀌는 하늘과 바다의 색을 보는 것 역시 가슴을 먹먹하게 혹은 뭉클하게 만든다.  
긴장과 감동의 롤러코스터를 타며 도착한 필리핀 수빅에선 당황스러움을 감추기 어려웠다. 이유는 두 가지다. 대놓고 뒷돈을 요구하는 ‘CIQ(Coustoms, Immigraion, Quarantine)’ 담당자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간단하게 끝나는 입국 심사다. 간단한 서류 몇 장과 여권만 있으면 끝이다. 비행기를 탈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엑스레이 검사도 없다. 다른 나라에 도착하면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관광을 즐기는 게 보통이지만, 요트를 이용한 항해는 조금 다르다. 우리가 정박 후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코인 빨래방이었다. 임대균(세일링 서울 대표) 
 
© 세일링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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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DITOR 박호준
    PHOTO 게티이미지스코리아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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