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렁거리니까 조금만 천천히 가자.” 옆자리에 앉은 포토그래퍼가 시트에 몸을 한껏 늘어뜨리며 말했다. 멀미가 날 땐 창문을 여는 게 도움이 되지만, 해가 조금씩 넘어가기 시작하는 어스름한 시간에 깊은 산속에서 창문을 열면 온갖 벌레와 마주할 각오를 해야 한다. 철원과 양구 사이에 위치한 화천 광덕산의 굽이치는 산길을 거슬러 올라갈 때 벌어진 일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광덕산은 연속된 코너와 빼어난 경치로 많은 라이더가 즐겨 찾는 ‘와인딩 성지’ 중 하나다. 갑자기 높아진 고도 때문에 먹먹해진 귀를 뚫기 위해 마른침을 연거푸 삼키고 나서야 목적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북한산 꼭대기보다 더 높은 해발 1010m에 위치한 조경철천문대 말이다. 높이 위치한 덕에 날이 좋을 땐 직선거리로 약 80km 떨어진 잠실 롯데타워와 약 110km 떨어진 송도 포스코 타워가 육안으로 보인다.
“오늘 별이 잘 보일까요?” 인사차 던진 질문인데 조경철천문대의 송정우 연구원은 대답을 주저했다. 혹시 천문대에선 별이 잘 보이냐는 질문이 금기어인가 싶어 눈치를 살폈지만 불편한 기색보단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하나 고민하는 얼굴이었다. “별을 관측하기 위해선 여러 가지 요소를 복합적으로 따져봐야 합니다. 대기의 움직임, 달빛의 정도, 투명도, 습기, 미세먼지, 광해(光害) 같은 것들이죠. 하루 종일 내리던 비가 그치면서 약간 개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조금 더 두고 봐야겠네요. 굳이 망원경이나 컴퓨터를 보지 않더라도 주변 지형지물을 이용해 시상(視像)을 가늠할 수 있긴 해요. 예를 들어, 저 멀리 북한군 초소 불빛의 일렁임이 심하면 시상이 별로라는 뜻이죠. 어떻게 보이나요?” 먼 거리라고 해봐야 출퇴근길 한강 다리 너머를 보는 게 전부인 흔한 도시인에게 20km 넘게 떨어진 곳의 불빛을 가늠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운전을 오래 했더니 눈이 침침하네요”라는 하나 마나 한 혼잣말로 대답을 갈음했다. 참고로 천문학 용어인 시상은 지구 대기의 흔들림 때문에 천체가 흐릿하거나 깜빡이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을 가리킨다. 지상에서 보기엔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이라도 높은 하늘에서 기류가 빠르게 흐르고 있다면 시상이 나쁘다.
“그럼 은하수는요? 이맘때가 잘 보인다고 들었는데요.” 알은척하며 말했지만, 앞선 질문과 달리 간결한 대답이 돌아왔다. “오늘은 안 보입니다. 달이 너무 밝아요.” 우문현답이었다. 해가 밝아 달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달이 밝으면 별빛이 힘을 잃는다. 송 연구원은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갈 무렵 은하수가 잘 보인다고 알려진 것에 대해서도 말을 보탰는데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별을 보기 좋은 계절은 겨울이다. 여름에 비해 밤이 길고 습도가 낮으며 청명한 날이 많다. 별을 볼 수 있는 관측 일수(3등급 이상의 별이 육안으로 보이는 날)가 잦다는 뜻이다. 그러나 날씨가 좋은 것과 별개로 은하수는 보기 어렵다. 은하수와 지구의 위치 때문이다. 은하수를 본다는 건, 우리 은하의 중심부를 본다는 뜻인데 여름과 달리 겨울엔 지구의 공전 궤도상 지구가 은하의 바깥 부분을 향한다. 여름은 반대다. 밤이 짧고 장마와 태풍이 이어져 관측 일수가 확보되지 않는다. 2019년 여름에는 3개월 동안 관측 일수가 고작 하루였다. 종합하면, 달이 없고 투명도가 좋으며 봄철 황사가 끝나고 여름 장마가 시작되기 전 짧은 기간에만 우리나라에서 선명한 은하수를 볼 수 있다.


“실망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간혹 화를 내는 분도 계시고요.” 지름 1m짜리 망원경 앞에 선 유주상 천문대장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망원경 속 별의 모습이 맨눈으로 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다. 오히려 더 작게 보이는 경우도 많다. 이따금 희미하게 반짝이는 걸 제외하면 검은 종이 위에 흰색 점 하나 찍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다. 태양처럼 이글거리는 별의 모습을 기대하고 천문대를 찾았다면 십중팔구 실망한 얼굴을 내비칠 수밖에 없다. 실망감을 넘어 망원경이 고장 난 것 아니냐고 항의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혹시 조경철 천문대의 망원경이 작아서 그런 건 아닐까? “국내에선 연구기관을 제외한 시민 천문대 중 이곳에 있는 구경 1m짜리 망원경이 가장 큽니다. 중형급 망원경이죠. 하지만 어떤 망원경이어도 결과는 똑같습니다. 짧게는 수십, 길게는 수만 광년 떨어져 있기 때문에 배율을 늘린다고 점으로 보이던 별이 갑자기 생생하게 보이는 일은 없거든요.”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망원경 지름을 열 배로 늘린다 한들 광활한 우주의 크기와 비교하면 20km 떨어진 북한군 초소를 보기 위해 한 발자국 앞으로 움직인 것보다 못할 테니 말이다. “그래서 이제 막 우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사람에겐 별이 아니라 달을 보라고 권해요. 달은 가까워서 보이는 것도 많고 관측하기 쉽거든요. 하루 단위로 보이는 모양이 달라지니까 보는 맛이 있어요.”
우주가 까마득하게 넓다는 건 누구나 안다. 와닿지 않을 뿐이다. 지구가 콩알만 하다고 가정해보면 어떨까? 그럼 태양은 농구공 정도 크기다. 농구공과 콩까지는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태양계는 태평양 정도 됩니다. 태양계에서 태양은 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농구공과 비슷하다는 말이죠.” 태평양 한가운데에 가본 적은 없지만 인지의 수준을 벗어날 정도는 아니다. ‘딥 스카이’라고 부르는 우리 은하 밖 우주로 가면 한계가 온다. 태양과 같은 항성이 1000억 개 이상 모인 군집을 은하라고 부르는데 이런 은하가 다시 1000억 개 이상이라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견해에 따라 수천억 개 이상이라고 보는 학자도 있다. 현기증이 밀려오는 대목이다.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1995년 전 세계 천문학자 모두가 경악한 것도 같은 이유였어요. ‘별이 없는 우주를 보고 싶다’는 엉뚱한 발상으로 암흑처럼 보이던 부분을 허블 망원경으로 열흘 동안 찍었는데 그전까진 전혀 보이지 않던 약 1500개의 은하가 발견된 거죠. ‘허블 딥 필드’라는 사진입니다. 그 후 천문학자들이 우주를 대하는 태도는 많이 달라집니다. 논리와 이성에 기반해 만물의 이치를 밝히려 했던 과학계가 ‘어쩌면 인류는 끝내 진실을 밝혀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한 거죠.”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해 아리스토텔레스와 갈릴레오를 거쳐 우주선에 망원경을 실어 쏘아 올리는 단계까지 발전한 인류가 우주에 대해 내린 결론이 ‘잘 모르겠다’라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밤하늘을 보고 있자 유 천문대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역사를 사람 나이로 치환해보는 겁니다. 망원경의 개발로 지동설이 등장한 16세기는 열여섯 살, 만유인력의 법칙이 등장한 17세기는 열일곱 살로요. 근대는 중세라는 사춘기를 세게 겪고 나서 머리가 좀 커지니까 ‘나는 똑똑해. 어떤 것이든 다 이해할 수 있어!’라는 자신감에 가득 찬 시기였다고 생각해요. 산업혁명에 이어 과학혁명까지 이루어내며 혈기 왕성했으니까요. 그런데 웬걸? 스무 살이 되어 사회에 나왔더니 다 안다고 생각했던 세상이 모르는 것 투성인 겁니다. 안다고 생각했던 것조차 실은 모르고 있던 거라는 걸 깨닫는 중이죠. 하지만 데이터는 분명 말하고 있습니다. 더 넓은 우주가 있다고요. 또래 천문학자끼리 하는 농담이 하나 있는데 ‘애매한 시기에 태어났다’는 거예요. 50년만 늦게 태어났으면 진짜 우주에 나가 연구하는 일이 가능했을 테니까요.”

별이 폭발하는 현상을 초신성이라고 한다. 조경철천문대가 초신성 촬영에 성공했다.
“나랏하늘이 듕귁에 달아…” 세종대왕이 〈칠정산(七政算)〉을 편찬할 때 이렇게 말하진 않았을까? 중국의 말과 조선의 말이 달랐듯 중국의 하늘과 조선의 하늘도 달랐을 것이기 때문이다. 〈칠정산〉은 우리나라 하늘에 맞추어 편찬한 최초의 역법(曆法)서로 별들의 움직임을 계산해 밤낮의 길이와 절기를 정확히 계산하기 위한 여러 공식과 이론이 담겨 있다. 중국의 것을 빌려 쓰던 것을 국내 실정에 맞게 수정한 것만으로도 대단하지만, 더 놀라운 건 정확도다. 일례로 〈칠정산〉은 1년의 길이를 365.24일이라고 밝혔는데 소수 둘째 자리까지 현재 사용하는 표준연력과 일치한다. 갑자기 조선시대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100년도 살지 못하는 인간이 100억 광년이 넘는 우주를 관찰하는 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짚어보기 위해서다. 요일의 어원이 행성에서 왔다거나 12진법과 60진법이 천문학에서 비롯됐다는 교과서적인 설명을 하려는 게 아니다.
“달이 언제 뜨는지 물으면 대부분 밤이라고 대답합니다. 몇몇 분들은 항상 떠 있는 것 아니냐고 하고요. 정답은 ‘그날그날 다르다’입니다. 일출 시간이 하루에 1~2분씩 미세하게 달라지는 것과 달리 월출 시간은 20~80분까지 들쑥날쑥 바뀝니다. 다시 말해 새벽에 뜨기도, 낮에 뜨기도, 밤에 뜨기도, 아예 안 뜨기도 합니다. 해에 가려 보이지 않을 뿐이에요. 낮과 밤, 해와 달을 반대 개념으로 인식하는 건 고정관념이었던 거죠. 한 가지 더 예를 들어볼까요? 화성에선 노을이 푸른색입니다. 대기 구성이 지구와 달라서 그래요. 이런 예는 천문학에 수없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별을 보며 얻어야 하는 건 인간은 티끌만도 못한 존재라는 깨달음, 그러나 그 깨달음을 허무주의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도전적이고 열려 있는 삶의 태도다.
어쨌든 돈은 벌어야 한다. 천문학을 하기 위해선 천문학적인 돈이 들지만, 정작 수익을 내긴 쉽지 않다. 천문학 박사를 통틀어도 300명이 될까 말까 한 국내에선 더욱 그렇다. 졸업 후 한국천문연구원이나 항공우주연구원 또는 지자체가 후원하는 시민 천문대에 들어가는 게 일반적이다. 강단에 서는 방법도 있지만 천문학과가 있는 대학교가 8개밖에 없어 길이 매우 좁다. “천문학은 다른 여러 분야와 맞닿아 있어요. 기계공학과 만나면 항공우주공학이 되고 수학과 만나면 천체물리학이 되죠.” 교육학과 천문학을 전공한 유 천문대장의 말이다. 최근 떠오르고 있는 건 천문대 컨설팅이다. 천문대 설립과 운영 방식, 콘텐츠 기획을 종합적으로 제안하는 사업으로 천문 관련 인프라가 미비한 방글라데시, 말레이시아, 태국 등 동남아시아 개발도상국이 주 타깃이다. 지난 2월, 국내 천문 관련 기업 ‘메타 스페이스’는 방글라데시 라즈샤히(Rajshahi)에 건축 중인 천문과학관의 망원경 설치 및 교육,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조경철천문대 운영을 맡고 있는 ‘SL랩’ 역시 해외 진출을 준비 중이다. 유 천문대장은 “천문 콘텐츠 컨설팅은 원래 일본이 꽉 잡고 있던 시장이었지만, 우리나라 방위산업이 동남아에 속속 진출하면서 과학 분야도 덩달아 입지를 넓히고 있다”고 덧붙였다.


2022년 5월 2일 조경철천문대는 6300만 년 떨어진 처녀자리 은하단에 속한 초신성(SN2022hrs) 촬영에 성공했다. 별이 폭발하며 엄청난 에너지를 순간적으로 방출하며 밝기가 평소의 수억 배에 이르렀다가 낮아지는 걸 초신성이라고 한다. 불멸할 것 같은 별의 죽음을 목격한다는 것 외에 초신성 연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대표적인 성과 중 하나는 ‘거리 측정’이다. 초신성이 폭발할 때 내는 밝기가 일정하다는 사실을 역이용하는 방식이다. 이를 천문학에선 ‘표준촛불(표준촉광)’이라고 한다. 교육 프로그램 외에 연구 활동도 병행 중인 송 연구원이 매일 새벽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까닭이다. 조경철천문대에는 총 11명이 근무하지만 망원경을 다루고 별을 연구하는 직원은 천문대장을 포함해 총 4명이다. 낮에는 관람객을 맞이하고 밤에는 느리지만 꾸준히 별을 연구하는 중이다.
이제 한국도 달에 간다. 지난해 5월 21일, 우리나라는 전 세계 국가 10번째로 ‘아르테미스 프로그램’ 참여 약정에 서명했다.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은 유인 달탐사 계획이다. 8월 초 발사 예정인 국내 최초 달탐사선 ‘다누리호’에 달의 ‘영구음영지역’을 촬영할 수 있는 ‘섀도캠’을 탑재하게 된 것도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의 일부다. 계획이 성공한다면 대한민국은 달 궤도에 진입한 일곱 번째 국가가 된다. 또한 우리나라는 곧 완공 예정인 칠레의 25m 지름의 거대 망원경 ‘Giant Magellan Telescope(GMT)’ 프로젝트에도 참여 중이다. 10%의 지분을 보유한 우리나라는 1년에 약 30일을 운용할 예정이다. 유 천문대장은 “GMT를 이용한 연구 데이터가 쌓이는 2030년대엔 우리나라에서도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나올 거라 본다”며 국내 천문계가 이젠 양적 성장이 아닌 질적 성장을 추구할 때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동안 대부분의 천문대는 어린이 위주였어요. ‘아름다운 별나라 세상’을 팔았죠. 그게 잘못됐다는 게 아닙니다. 어린이를 위한 천문대가 있으면 어른을 위한 천문대도 있어야 한다는 말을 하려는 거예요. 해외여행이 재개되면 별 여행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싶어요. 별을 테마로 미국, 호주, 몽골 등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거죠. 상상만 해도 감격스럽지 않나요?”
지구는 작다. 코로나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겪으면서 인류는 이역만리의 일이라고 여겨졌던 일이 당장 내일 나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천문학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넷플릭스 영화 〈돈 룩 업〉의 결말이 파국으로 치달았던 이유는 정치, 국가, 인종으로 나뉘어 ‘우리’라는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유주상 천문대장은 언젠가 우주에 나가 지구를 바라보며 사람들이 “우아, 우리 지구다”라고 말할 때 인류는 비로소 하나가 된다고 믿는다. 그날을 위해 천문대는 오늘도 캄캄한 산꼭대기에서 하염없이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일반 관람객이 방문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천문대다. 해발고도 1010m에 위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