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간미식가
‘문체는 곧 그 사람이다’라는 말을 요즘 식으로 바꾸면 ‘피드는 곧 그 사람이다’ 아닐까? 수백 개의 피드를 찬찬히 살피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의 라이프스타일을 얼추 가늠할 수 있다. 인터뷰를 준비할 때 인터뷰이의 인스타그램을 가장 먼저 확인하는 이유다. 종종 훌륭한 안목이 묻어나는 계정을 발견할 땐 냉큼 팔로우 버튼을 누르는데, 〈공간미식가〉에 담긴 이야기가 그렇다. 뉴욕 FIT(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는 맨해튼과 서울의 여러 레스토랑을 디자인했고, 아르헨티나에서 직접 와인을 만들며, 영국 남동부에서 바람 쐬기는 게 취미다. 돌아다니길 좋아하는 그의 안목을 눌러 담아 87군데의 장소를 Wit, Connection 같은 5개의 키워드로 분류해 엮었다. 런던 최초의 엘리베이터인 사보이 호텔의 ‘붉은 승강기(The Red Lift)’ 안에 놓인 의자를 화두로 시간과 시간 사이를 다루는 일본의 ‘간(間) 디자인’과 엘리베이터 내부 디스플레이에 대한 인식까지 건드리는 식이다. 장소당 2~3장의 사진과 2000자 내외의 글로 담백하게 구성되어 있어 읽는 데 부담이 없다.
박호준

독일은 왜 잘하는가
영국인이 독일인에 대해 말하는 감정은 한국인이 일본에 대해 말할 때 느끼는 것과 비슷할까? 제2차 세계대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정치, 경제 심지어는 축구 같은 스포츠 영역에서까지 으르렁거리는 사이니 말이다. 저자 존 캠프너는 젊은 시절부터 독일 특파원으로 일하면서 독일인보다 더 독일의 면면을 탐구해온 영국인이다. 그는 독일이 ‘잘하는 나라’인 이유를 역사, 이민, 환경, 문화, 외교 등 5가지 측면에서 분석한다. 특히 전범국이었던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끊임없이 반성하는 과정이 자세히 묘사돼있다. 일례로 독일에는 성대한 국경일 행사가 없다. 영국과 달리 나라를 위해 싸우다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명예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책은 이러한 책임감과 반성에 기반한 독일인의 국민의식이 ‘라인강의 기적’이라고 부르는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룩하는 밑거름이 됐다고 이야기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유럽연합의 중심을 잡아주는 국가가 있다면 단연 독일일 거라는 주장을 논리정연하고 다양한 근거를 들어 뒷받침하는 대목에선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송채연

네안데르탈
네안데르탈인이 과학계의 수많은 호미닌 중 록스타급 인기를 누리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불과 10년 전 현생 인류의 조상인 호모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이 동시대 같은 지역에 존재하며 짝짓기를 했을 수도 있다는 유전학적 증거가 발명되면서부터다. tvN의 대작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에서 지략을 쓰고, 철을 다루고, 글자로 기록을 남기는 ‘사람’과 신체 능력이 월등하지만 문화를 가꾸지 못하는 ‘뇌안탈’이라는 가상 인류를 만들어낸 것은 바로 그 과학적 발견에 따른 아이디어였다. 이제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데니소바인과 네안데르탈인 그리고 호모사피엔스는 서로 다른 인류로 동시대에 존재하며 서로의 유전자를 섞었다. 과학자들 사이에서 네안데르탈에 관한 뉴스는 너무 핫해서 클릭베이트 취급을 받을 정도다. ‘네안데르탈인은 사실 예술을 사랑했다’ 등의 뉴스가 하루가 멀다 하고 미디어를 장식한다. 반대로 얘기하면 그만큼 인기가 많다는 뜻이다. 〈네안데르탈〉은 핵 DNA 분석에 다다른 발전된 과학을 토대로 네안데르탈의 면면을 재구성했다.
박세회

우리는 왜 서로를 미워하는가
이상한 일이었다. 선거 기간 동안 온갖 추문과 밑천이 드러났고, 유권자 대다수도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고 평가한 후보였다. 하지만 정작 그에게 던져진 표는 예상을 한참 웃돌았다. 그런 인간이 대통령이 되어야 했을 만큼. 45대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이야기다. 혹시나 다른 이야기로 오인했다면 미안하다. 하지만 그건 의미가 있는 착각이다. 한 번의 기이한 사건이 아니라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종의 경향이라는 방증이니까. 이 ‘이상한 선거’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정치학자 래리 바텔스도 “최근 선거들과 다를 바 없었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에즈라 클라인은 그것을 “시스템 전체가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이 책의 원제는 묻는다. “왜 우리는 양극화되는가(Why We’re Polarized)?” 어떤 인물이 나오건, 어떤 짓을 하건 ‘우리 편’에 표를 행사하려는 행태는 왜 강화되고 있으며,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분명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질문인데, 그에 답하는 VOX 공동설립자 에즈라 클라인의 통찰과 균형감각도 놀랍다.
오성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