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가든'이라는 식당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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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때 친구들이 삼원가든으로 저녁을 먹으러 간다는 사실에 놀랐죠.”
신현호 씨에게 삼원가든은 압구정 중산층의 상징이었다. 그는 대전 출신으로 고등학생 때 서울의 외국어고등학교에 입학하며 압구정에 있는 학원에 다녔다. 당시 학원에서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은 압구정 출신들이었는데, 저녁 시간에 친구들이 함께 밥을 먹으러 가자며 데리고 간 곳이 삼원가든이었다.
“제게 삼원가든은 어른들 없이 혼자 가서 먹을 수 없는 거대한 고급 음식점이었으니까요. 물론 구이 메뉴를 먹은 건 아닙니다. 메뉴에는 갈비탕도 있었으니까요.”
갈비탕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짜장면이 3000원이던 시대에 1만원을 훌쩍 넘기는 가격이었다. 압구정 아이들에게는 서울 3대 가든인 삼원가든도 저녁밥을 먹는 갈비탕집일 뿐이었던 걸까? 삼원가든과 갈비탕으로 인연을 맺은 사람이 그만은 아니다. 나 역시 성인이 되어서야 갈비탕으로 삼원가든을 처음 접했다. 내 첫 편집장은 허세가 좀 있는 귀여운 남자였다. 그는 종종 마치 세상의 모든 일에 달관했다는 듯 혀를 쯧쯧 차며 “세상일이 다 그렇지”라는 식의 말을 하곤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그의 나이는 고작 삼십대 중후반. 하여튼 그 선배가 하루는 마감 중에 “삼원가든에 가자”라며 팀원들을 데리고 간 게 삼원가든과의 첫 조우다. 하필 마감 때라 한도액이 얼마 남지 않은 그의 법카로 여럿의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던 메뉴가 갈비탕뿐이었던 건 그에게는 필연 나에게는 우연일 것이다. 가족들이 단란하게 갈비를 굽고 있는 테이블에 둘러싸여 마감 노동자 다섯이 갈비탕으로 식사를 하는 상황은 무척 어색했다. 물론 우리도 조금만 호기를 부리면 고기를 구울 수는 있었다. 그러나 그날 저녁 갈비탕은 충분히 맛있었고, 구이 메뉴를 시킬 마음은 들지 않았고, 분위기는 어색했다. 왜 그랬을까?
“축하할 일이 없었기 때문은 아닐까?”
개포동 출신인 내 아내에게 삼원가든은 ‘축하할 일이 있는 날’에 가는 곳이었다. 아이들의 졸업식, 가족 어르신의 생신 등 돈을 좀 들여 축하할 때 가는 곳이 삼원가든이었다. 기쁨의 에너지를 뿜어내며 투뿔 넘버 나인급의 마블링이 박힌 7만원(당시에는 1인분에 7만원 정도였던 것 같다)짜리 고기를 굽고 있는 축하할 일이 있는 사람들과, 축하할 일이 없이 끼니를 때우기 위해 그곳을 찾은 사람 사이에는 다른 공기가 흐를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그제야 내가 삼원가든에서 구이를 먹어보지 못한 이유가 확연해졌다. 아마 신현호 씨도 비슷한 이유가 아니었을까? 우리에겐 굳이 압구정에서 축하할 일이 좀처럼 없었다.
우리의 근거지엔 우리만의 가든이 있었다. 예를 들면 강서에 살았던 내 가족은 축하할 일이 생기면, 지금은 메이필드 호텔 안에 있는 낙원가든을 찾았다. 낙원가든은 메이필드 호텔보다 역사가 깊다. 호텔이 아직 세워지기 전에는 ‘낙원가든’이라 불렸고, 같은 소유주가 가든을 품는 형태로 메이필드 호텔을 세운 뒤에야 지금의 ‘낙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김포공항 바로 옆 개인 소유지인 수명산 자락 녹지에 폭 싸여 있는 낙원가든은 차가 없이는 가기 힘들었고, 한복을 입은 종업원들이 테이블마다 한 명씩 전담해 고기를 잘라주곤 했다. 내 사촌들과 옛일을 회상할 때면, 종종 가든은 기억의 책갈피가 된다. 예전에 낙원가든에서 할머니 생신 때 고모랑 큰엄마가 너무 크게 싸웠더랬지, 라는 식이다.
우리에겐 각자의 가든이 필요하다. 미국 레스토랑의 카테고리엔 스테이크 하우스가 있다. 움푹 들어간 뱅킷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거대한 티본 스테이크를 써는 곳, 아이들의 고등학교 졸업식 때 아빠가 지갑을 탈탈 터는 곳, 가게 전체를 채운 소고기의 지방이 타는 고소한 냄새가 평생을 함께할 추억의 책갈피로 남는 곳. 그런 스테이크 하우스의 문화가 한국에선 가든이다. 서울의 3대 가든이라고 하면 삼원, 낙원, 명월관을 꼽는다. 그러나 당신의 가든이 반드시 이 중 하나일 필요는 없다. 아내의 가족은 어르신의 생신이나 졸업식 등 크게 축하할 일이 있을 때면 삼원가든에 갔지만, 아이들의 생일이나 입학식 때는 우래옥 대치점을 찾았다. 우래옥 대치점도 아내의 가든인 셈이다. 나의 어머니는 기분이 좋고 돈이 좀 있는 토요일이면 나를 데리고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서 책을 사주고 미진 등의 맛집에 데리고 가곤 했다. 그러나 기분이 아주 좋으셨던 어느 날에는 나를 끌고 한일관에 간 적이 있었다. 봉긋하게 솟아오른 서울식 불고기 불판을 그날 처음 봤고, 그 맛에 매료되어버렸다. 한일관은 그날 이후 나의 가든이 되었다. 성인이 된 이후 나는 작게 축하할 일이 생기면 양미옥에서 일찍 1차를 마치고 을지면옥에서 입가심을 하곤 했다. 또 다른 옵션으론 소위 ‘보래옥’ 코스도 있었다. 우래옥 불고기는 너무 비싸니, 보건옥에서 불고기를 먹고 우래옥에서 냉면으로 입가심을 하는 코스다. 우래옥 대치점은 팬데믹으로 문을 닫았고, 양미옥 본점은 화재로 폐업했으며, 을지면옥은 부지 재개발 때문에 영업을 중단했다. 얼마 전 삼원가든이 리모델링을 마치고 재개장한 일은 그래서 더욱 반갑다. 가든은 영원하지 않다. 그러니 지금 서너 개쯤 당신만의 가든을 더 만들어둔다고 해서 나쁠 건 없다.
박세회는 <에스콰이어 코리아>의 피처 디렉터이자 소설가다.
Credit
- EDITOR 오성윤
- WRITER 박세회
- ILLUSTRATOR VERANDA STUDIO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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