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엿볼 수 있는 '국가'의 사정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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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엿볼 수 있는 '국가'의 사정

오성윤 BY 오성윤 2022.07.30
 
올해는 베니스 비엔날레가 열리는 해다. 비엔날레지만 팬데믹으로 1년이 밀려, 3년 만에 열린 것이다. 나는 열 명의 동료를 이끌고 베니스에 와서 전시를 돌아보고 있는 중이다. 지난 일주일 동안 본 전시는 약 140개. 하루 평균 스무 개가량의 전시를 본 셈인데, 일정이 막바지로 치닫자 현대미술 울렁증을 호소하는 일행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피상적인 감상 대상으로만 보았던 미술 작품을 짧은 시간 안에 너무 많이 관람하다 보니 전시를 대하는 시선의 해상도가 너무 높아진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가 전시를 보는 게 두렵다고 말하는 일행도 있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단일한 전시의 이름이 아니라100개가 넘는 전시들의 총합이다. 그래서 베니스 비엔날레에 간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이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 “거기 가면 무슨 전시 봐야 해요?” “무슨 전시가 좋아요?” 그런데 이 질문, 어디서 들어본 것 같지 않은가. 코인이나 주식 이야기를 하면 항상 도달하는 결론, “그래서 뭐 사요?”와 크게 다르지 않은 질문이다. 많은 사람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는 전시, 실물의 모습과는 별개로 사진이 잘 받는 덕분에 SNS에서 회자되는 작품은 대체로 비슷하다. 하지만 전시를 보고 느끼는 바는 개인별로 천차만별이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명 작가라고 해서 모두에게 감동을 안기는 것도 아니고, 전시 자체는 별로지만 거기 있는 몇몇 작품만은 기억에 남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슨 전시를 봐야 하느냐. 물론 비엔날레 전체 주제를 제시하는 본 전시를 먼저 관람해야 한다. 그다음에는 비엔날레 도록이나 가이드북의 목차 페이지를 펼친 뒤 평소엔 이름조차 들어볼 기회가 많지 않은 나라들이 마련한 파빌리온부터 찾아가보라고 말하고 싶다. 몬테네그로, 키르기스스탄, 아르메니아, 시리아처럼 여행으로도 방문하기 어려울 것 같은 나라들. 그런 나라들은 대체로 비엔날레 전시만을 위해 만들어진 ‘자르디니 델라 비엔날레(비엔날레 공원)’나 해군 병기창을 거대한 전시장으로 개조한 ‘아르세날레’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외교적 역량이나 예산이 부족한 탓에 영구적인 건물이나 전시장 대신 찾아가기 불편한 곳, 심지어 배를 타고 건너가야 하는 섬에서 전시를 열 확률이 높은 것이다.
조지아 파빌리온은 서울로 치환하면 문래동이라 할 만한 주데카 섬 깊숙한 골목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곳을 우두커니 지키고 있던 파울리나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비엔날레에 오는 사람들은 다들 자르디니랑 아르세날레만 가는 것 같아. 이런 외곽에서도 이렇게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데 말이야.” 조지아 파빌리온에서는 마치 ‘여러분은 잘 몰랐겠지만, 우리도 이런 최첨단 아-트를 하고 있습니다’라고 외치는 듯한 VR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역만리 너머 베니스까지 와서 전시를 열었음에도 전시를 대하는 온도에는 나라마다 편차가 있다. 비엔날레에 참여하긴 했지만 미술을 소개하는 것보다 국가 홍보에 진심인 나라도 있다. 조지아 파빌리온과 벽을 맞댄 옆 건물에서 열린 과테말라 파빌리온에 들어갔더니 전시장 입구에 비디오 아트가 아닌 과테말라 투자 유치용 홍보 영상이 놓여 있었다. 100곳이 넘는 비엔날레의 모든 전시장을 통틀어 유일하게 무료 에스프레소 머신을 제공했기에 당황스러운 마음을 가까스로 달랠 수 있었다.
‘여러분은 몰랐겠지만’이라는 외침에도 다양한 결이 있다. 국제갤러리가 주축이 되어 비엔날레 병행 전시로 개최한 원로 화가 하종현의 회고전, 폴란드의 스타락 패밀리 파운데이션이 마련한 에바 쿠릴루크의 회고전 등에서는 모국에서 이미 대가의 반열에 오른 아티스트를 세계 관객에게 소개하고 더 큰 차원의 미술사에 편입시키려는 의도가 명확히 보였다. 특히 하종현 전시장 입구 벽면에 붙은 꼼꼼하고 거대한 영어 연표, 한국에서도 보기 어려운 아카이브 자료, QR코드로 제공되는 영어 오디오 가이드에선 ‘세계화’를 향한 열망이 드러났다. 독일이나 영국, 미국 같은 1세계 국가들도 ‘여러분은 몰랐겠지만’을 외쳤다. 독일은 나치 시절에 증축되어 감춰졌던 파빌리온 건물의 일부를 드러냈고, 영국은 흑인이라는 이유로 잊혔던 여성 보컬리스트들을 가시화했으며, 미국은 식민주의 과거를 돌아보기 위해 대칭적이고 권위적인 네오 팔라디안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을 아프리카식 볏짚과 나무 기둥으로 가렸다.
국가적 차원의 ‘여러분은 몰랐겠지만’ 중에는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는 제스처도 돋보인다. 북유럽 3국(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의 ‘노르딕 파빌리온’은 ‘사미 파빌리온’으로 이름을 바꿨다. 세 나라의 국경을 넘나들며 생활하는 북극지방의 사미족 원주민들에게서 박탈한 권리를 돌려주고 사죄하는 의미로 전 세계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전시장의 이름과 운영 주체를 바꾼 셈이다. 네덜란드 역시 1954년부터 매번 선보였던 메인 베뉴의 전시장을 에스토니아에 통째로 넘겨주고, 건물 위에 ‘에스토니아’라는 표지판까지 세워주었다. 에스토니아는 이에 화답하듯 식물 수집의 형태로 벌어진 유럽(과 네덜란드)의 인도네시아 식민 행위를 다루는 전시를 선보였다.
그렇다면 한국 파빌리온은 어떨까? 한국은 아직 역사적 과오를 되짚거나 자기 공간을 다른 국가나 집단에 내어줄 여유까지는 없는 듯했다. 앞서 묘사했듯, 아직까지 우리에게 ‘여러분은 몰랐겠지만’의 최대치는 국제적으로 더 알리고 싶은 작품과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정도인 것 같다. 복잡한 과학 실험 도구에 생명이 깃든 것처럼 보이는 김윤철 작가의 작품을 보러 매일 2000여 관람객이 한국 파빌리온을 찾는다고 하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전시장을 지키고 있는 현지인 지킴이들의 말로는 유럽인으로선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미감과 메커니즘이 새롭단다.
그 와중에, 100년 넘게 비엔날레 공원을 지킨 러시아 파빌리온은 굳게 문을 걸어 잠근 상태였다. 큐레이터와 작가 모두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쟁을 반대하며 비엔날레 참여를 거부한 탓에 관객들에게 보여줄 내용이 사라지고 만 탓이다. 세계대전이나 냉전으로 전시가 열리지 않은 적은 있지만, 큐레이터와 작가가 스스로 전시를 포기한 것은 러시아 파빌리온 역사상 초유의 일이다. 그런데 텅 빈 건물 입구를 쓸쓸히 지키는 경비원의 모습이 마치 퍼포먼스 작업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모습이 비엔날레 관람객들에게 꽤나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는 러시아 파빌리온 앞에서 셀카나 기념 사진을 찍는 모습이 심심찮게 목격된다.
그리고 이 모든 전시를 아우르는 올해 비엔날레의 주제이자 제목은 바로 ‘꿈의 우유’다. 올해 비엔날레의 예술감독 체칠리아 알레마니는 코로나19 팬데믹과 전 지구적 재난으로 인해 더는 ‘이성애자 백인 남성’을 인류의 기본값으로 삼을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고 선언했다. 그간 살펴보지 않은 것, 주목하지 않았던 것을 다시 한번 되짚으려는 노력이 베니스 비엔날레의 본 전시뿐 아니라 여러 국가의 파빌리온에서 드러나는 것도 그런 이유다. 그런데 왜 ‘꿈의 우유’인가? ‘꿈의 우유’는 초현실주의 화가 레오노라 캐링턴이 그린 그림 동화책에서 차용한 제목이다.
하지만 그렇게 보자면, 20세기 초 유럽을 중심으로 일어난 초현실주의가 오늘날의 뒤집힌 세상을 들여다보는 좋은 렌즈가 될 수 있을까? 우유만 마시면 아랫배가 울렁대는 유당불내증을 앓는 사람이 인구의 절반이 넘는 한국인 혹은 아시아인으로서,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가 권하는 ‘꿈의 우유’는 왠지 앞뒤 따지지 않고 벌컥 들이켜고 싶은 주제는 아니다. 그보다 어떤 방식으로든 비엔날레의 주제를 각자의 전시에 반영하거나 뛰어넘으려는 여러 나라의 노력을 목격하며 질문을 던지게 된다. 꿈의 우유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박재용은 작가이자 큐레이터, 통번역가다. 800일 넘게 매일 명상과 달리기를 하고 있다. 10여 명의 동료와 함께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열린 전시 150여 개를 하나도 빠짐없이 관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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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오성윤
    WRITER 박재용
    ILLUSTRATOR VERANDA STUDIO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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