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배, 부자였어요?” 노파심에 말하지만 이렇게 다짜고짜 무례하게 물은 건 아니다. 5분간의 대화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랬다는 이야기다. 대화가 시작된 계기는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승마 사진 때문이었다. 사진 속 잘 정돈된 갈기와 윤기가 흐르는 흑갈색 말 위에 올라 여유롭게 고삐를 쥔 모습은 한두 번 말을 타본 모양새가 아니었다. 무릎까지 올라오는 검은색 승마용 부츠, 베이지 치노 팬츠, 아가일 패턴 니트 베스트와 화이트 셔츠의 조합도 한몫했다. “에이, 무슨 소리야. 승마 그렇게 비싼 운동 아니야. 너도 할 수 있어. 한번 해볼래?”
숨이 가쁘다. 달린 건 말인데 정작 가뿐 숨을 몰아쉬는 건 올라탄 기수(騎手)다. 고작 30분 남짓 체험했을 뿐인데 온몸이 덜덜 떨린다. 꾸준한 운동으로 기초체력은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근육통으로 어기적어기적 움직일 내일이 눈에 훤했다. “처음엔 다 그렇습니다. 쓰지 않던 근육을 써서 그래요. 긴장을 풀고 몸에 힘을 빼는 게 도움이 됩니다.” 골든쌔들의 이승준 승마교관의 말이다. 하지만 골프나 테니스를 배워본 사람은 안다. 몸에 힘을 빼라는 가르침이 초보자에게 얼마나 어려운 경지인지 말이다.
몸에 힘을 빼는 게 어려운 이유는 이렇다. 일단, 말이 크다.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제주도에서 탔던 말을 생각하면 오산이다. 체고(體高)라고 부르는 말의 키는 사람처럼 발끝부터 머리까지가 아니라 앞 어깨까지의 길이로 측정한다. 제주마의 키가 110~120cm인 것에 비해 승마에 주로 사용하는 ‘서러브레드(Thoroughbred)’는 160cm가 넘는다. 목이라도 한껏 치켜들면 2m에 육박한다. 게다가 지방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탄탄한 근육질의 몸은 450kg이 넘는다. 대형견을 보며 ‘혹시 싸우면 이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말 앞에선 ‘도망가면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앞선다. 물론, 승마 중 말이 사람을 공격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두 번째 이유는 쉴 새 없이 바쁜 머리와 몸이다. 웨이트트레이닝에 비유하자면, 스쿼트와 벤치프레스를 동시에 하는 느낌이다. 전신에 걸쳐 신경 써야 할 동작이 많다는 뜻이다. 안장 위에 올라 등자(鐙子)에 발을 끼웠다면 발끝은 안쪽으로 모으고 발뒤꿈치는 지면 방향으로 지그시 눌러 내린다. 이렇게 해야 하체를 말에 밀착할 수 있다. 허벅지와 코어에 힘을 주어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되 말의 움직임에 맞추어 리듬을 탈 수 있도록 상체는 유연해야 한다. 굳어서 잔뜩 힘만 주고 앉아 있으면 말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 시선은 떨구지 않고 진행 방향을 본다. 양손으로 쥔 고삐는 배꼽 언저리에 두는데 부드럽게 밀고 당기는 게 포인트다. 여기서 한 단계 나아가면, 엉덩이를 일정한 간격으로 들어 올린다. 평보가 아닌 경속보(輕速步)로 달릴 때 사용하는 스킬이다.

곽기종 씨는 마장마술 대회에 나갈 때 대여한 말을 타고 나간다. 7분 빌리는 데 300만원이다.
말의 움직임은 크게 평보, 속보, 구보로 구분하는데 사람으로 치면 걷기, 조깅, 달리기 정도다. 재미있는 점은, 보법에 따라 말이 내딛는 발의 순서가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평보는 4박자다. 기수 입장에선 몸이 전후좌우로 끊임없이 흔들리지만, 충격이 크진 않다. 속보는 2박자다. 왼쪽 앞다리와 오른쪽 뒷다리, 오른쪽 앞다리와 왼쪽 뒷다리가 짝을 이루어 움직인다. 속보를 하면 트램펄린에서 통통 튀는 것처럼 몸이 출렁인다. 구보는 3박자다. 흔히 말이 달리는 소리를 ‘다그닥’이라 하는 까닭이다. 구보로 달릴 때 기수는 웨이브를 하듯 리드미컬한 골반 움직임이 필요하다. 첫 수업은 평보에서 마무리하는 게 보통이지만 이승준 교관은 “처음 하는 것 맞아요? 잘하는데요? 속보도 한번 해볼까요?”라며 속도를 높였다. 말의 움직임과 교관의 구령에 맞추어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했는데 5분도 지나지 않아 몸이 땀으로 흠뻑 젖고 “살려주세요”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만약 엄살이라고 생각한다면 지금 당장 앉았다 일어서기를 쉬지 않고 빠른 속도로 5분 동안 해보길 바란다. “승마가 생각보다 에너지 소모가 많아요. 밸런스를 유지하기 위해 하체와 코어, 심폐지구력까지 필요하죠.” 승마가 끝나면 손바닥으로 말의 목덜미를 가볍게 토닥이며 “잘했어”라고 칭찬해주는 걸 잊지 말 것.
승마가 귀족 스포츠로 알려진 건 오해다. 승마 클럽의 위치와 시설에 따라 다르지만 1회 45분 승마에 드는 비용은 7만~10만원이다. 헬스장에서 PT를 받을 때와 비슷한 수준이다. 필드에 한 번 나가는 데 수십만 원이 드는 골프와 비교하면 오히려 저렴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필드에 나가기 위해 수백만 원을 들여 골프 클럽 및 장비를 구매해야 하는 것과 달리 승마는 몸만 가도 된다. 그런데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승마를 귀족 스포츠로 인식하고 있는 건 말을 구매해 타는 ‘자마 회원’들의 경우에서 비롯된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다. 앞서 말한 서러브레드를 제치고 최근 인기를 끄는 말은 ‘웜블러드(Warm-blood)’다. 서러브레드는 경마용 말로 쓰일 만큼 빠른 속도를 자랑하지만, 힘과 체력이 약한 편이다. 반면 웜블러드는 체구가 더 크고 힘이 좋다. 참고로 웜블러드라는 이름은 ‘콜드블러드(Cold-blood)’와 ‘핫블러드(Hot-blood)’의 교배로 탄생한 종이다. 콜드블러드는 추운 지역에서 살던 종으로 200여 종이 넘는 말 중에서 가장 체급이 큰 편에 속한다. 핫블러드는 중동 지역의 말로 피부가 얇고 늘씬해 몸놀림이 날렵하다. 웜블러드는 둘의 장점만을 모았다. 독일을 중심으로 승마가 발달한 유럽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볼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일반적인 승마를 목적으로 하는 웜블러드의 가격은 2000만~3000만원 선이다. 여담이지만,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이 타는 말은 최소 10억이 넘는다.
구매는 대행이다. 말에 조예가 깊다면 직접 거래를 할 수도 있지만, 열에 아홉은 소속 클럽을 통해 한다. 승마를 오래 한 것과 좋은 말을 볼 줄 아는 건 다른 영역이다. 물론, 자동차를 구매할 때처럼 잠시 타보는 것도 가능하다. 명심해야 하는 건, 70억 인구 중 같은 사람은 없는 것처럼 말 역시 100마리가 있으면 100마리 모두 특성이 다르다. 조련 과정을 통해 다듬을 수는 있지만, 타고난 성질 자체를 바꾸긴 어렵다. “자동차랑 비슷해요. 차도 승차감이 부드러운 차가 있고 핸들링이 좋은 차가 있잖아요. 순간 가속이 빠른 차도 있고요. 말도 마찬가지예요. 무던한 말, 예민한 말, 체력이 좋은 말, 눈치가 빠른 말 등 가지각색이죠.” 승마 경력 10년 차인 자마 회원 장연수 씨의 말이다. 이어서 그는 “저는 한 마리로 5년 이상 쭉 타고 있지만, 말을 자주 바꾸거나 여러 마리를 보유한 사람도 있어요. 어떤 심정인지 이해는 가요.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랑 포르쉐 911을 둘 다 같고 싶은 마음이겠죠. 잘 조련된 비싼 말은 부조(명령)를 살짝만 넣어도 마치 기수의 마음을 읽은 것처럼 반응이 빨라요”라고 덧붙였다.
문제는 유지 비용이다. 돈 먹는 건 하마가 아니라 말이다. 편차가 있긴 하지만, 보통 말 한 마리를 유지하기 위해선 매달 200만~300만원이 든다. 말을 먹이고 재우고 씻기는 데 드는 비용이다. 편자를 갈아 끼우고 날마다 적절한 운동과 조련을 하는 관리 비용을 포함한 액수다. 개가 산책을 나가지 못하면 스트레스를 받는 것처럼 말도 매일 움직여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매일 승마장을 찾기란 쉽지 않은 탓이다. 1년 유지 비용이 구매 비용을 상회하는 탓에 승마를 정기적으로 즐기는 사람 중 자마 회원의 비율은 20% 미만이다.
그런데도 말을 구매하는 이유는 뭘까? “승마의 기본은 교감입니다. 말은 아무 때나 기름 넣고 시동 걸면 달리는 오토바이가 아니에요. 서로 유대 관계를 쌓고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하죠. 이렇게 부조를 주면 싫어하는구나, 워밍업을 짧게 하는 걸 좋아하는구나 같이 서로의 성격을 맞추어가는 과정이 필수죠. 그런 교감이 쌓여야만 ‘척하면 척’이 가능합니다.” 국가대표도 출전하는 대통령기 전국승마대회 마장마술 C클래스에서 3위를 차지한 곽기종 씨의 말이다. 그는 15년 전 취미로 승마를 시작해 생활스포츠 지도사 2급, 재활승마지도사 3급 등 총 4개의 승마 관련 자격증을 땄다. 매번 다른 말을 타는 일반 회원과 달리 한 마리 말을 꾸준히 타는 자마 회원은 말과 교감을 쌓기 훨씬 유리하다. 말은 지능이 높은 편이라 사람을 기억하는 것은 물론 그 사람의 승마 스타일에 맞추어 달린다. 뒤집어 말하면, 승마 실력이 좋지 못한 사람이 말을 타면 말까지 뛰는 습관이 나빠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말과의 교감은 일반 승마가 아닌 대회의 영역에서 더욱 중요하다. 말의 입장에선 마장마술이나 장애물 경기를 펼치는 경기장이 낯선 공간이므로 기수와 신뢰가 쌓이지 않으면 첫 발걸음을 떼는 것조차 힘들다. 최근엔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이 변하면서 힘으로 말을 찍어 누르는 방식 대신 말의 상황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방식의 승마가 떠오르고 있다. 간단하게 따져보아도 몸집과 힘이 훨씬 강한 말을 힘으로 제압하는 것보단 잘 구슬리는 게 효율적이다.

우수한 승마 클럽을 찾고 있다면 말들이 사는 마사를 유심히 살펴볼 것.
“승마는 유일무이한 스포츠입니다. 매력이 넘치죠.” 이승준 교관, 자마 회원 장연수 씨 그리고 마장마술 대회 출전을 즐기는 곽기종 씨가 입을 모아 한 말이다. 누구나 자신이 즐기는 스포츠를 좋아하지만, 그들이 풀어놓는 매력의 근거는 꽤 합리적이다. 첫째, 혼자서 즐길 수 있다. 대부분의 운동은 제대로 즐기기 위해선 파트너가 필요하다. 승마는 다르다. 다른 사람과 시간을 맞출 필요 없이 훌쩍 승마 클럽에 들르기만 하면 된다. 이기고 지는 게임이 아니므로 역량껏 타면 그만이다. 둘째, 나이 제한이 없다. 지난 2020 도쿄 올림픽에서 1959년생과 1969년생 기수가 메달을 거머쥐었다. 20대 메달리스트는 한 명도 없었다. 곽기종 씨는 “승마는 재능보다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자주 오랫동안 말과 호흡을 맞추었는지가 중요하죠. 제가 마흔 살에 승마를 시작했지만, 15년이 지난 지금도 체력적 부담 없이 잘 타고 있잖아요. 오히려 그때보다 훨씬 잘 타죠”라며 평생 즐길 수 있는 운동으로 승마를 적극 추천했다. 셋째, 심리적 안정이다. 동물과 호흡을 맞추는 운동은 승마가 유일하다. 반려견을 키우며 감정을 순화하는 것과 같은 이치로 승마 역시 살아 있는 생명체와 교감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암에 걸리고 나서 승마를 시작했어요. 세상에 대한 화가 많았는데 승마를 하면서 많이 누그러졌죠. 말 위에 올라가 있는 순간만큼은 잡생각을 전혀 할 수 없거든요. 이 세상에 말과 나밖에 없는 몰입감이 주는 즐거움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워요.” 장연수 씨의 말이다. 마무리는 이승준 교관이 장식했다. “인근 초등학교와 연계해 약 500명의 어린 학생들이 저희 클럽을 찾아요. 처음엔 겁먹고 울음을 터뜨리던 아이들이 불과 몇 번만 승마를 하고 나면 눈에 띄게 밝아지죠. 담당 선생님도 아이들이 승마를 하고 나서 달라졌다고 하고요. 저는 학생 때부터 선수를 목적으로 승마를 배웠지만, 취미로 말과 소통하는 게 얼마나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키는지 깨달은 건 얼마 되지 않았어요.”
국내 승마 산업은 성장세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2년 2671억원이었던 승마 산업 규모는 2019년 4274억까지 커졌다. 2026년에는 관련 종사자를 9000명, 규모는 5000억원까지 키운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제3차 말 산업육성 종합계획이 지난 6월 30일 발표됐다. 계획은 총 세 가지 갈래로 나뉘는데 문화 확산, 가치 창출, 사회공헌 강화다. 문화 확산은 학교와 연계해 승마를 정식 과목 중 하나로 편입을 추진하는 식으로 정기 승마 인구를 늘리기 위한 내용이 담겼다. 가치 창출은 말 유통 시스템의 체계화가 중점이다. 이력 관리 프로그램을 만들고 전문인력 양성기관을 늘릴 예정이다. 사회공헌 강화는 재활 승마와 관련이 깊다. 자폐나 ADHD, 신체 마비 등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승마 기회를 제공해 치료와 재활을 돕는다는 것. 눈여겨볼 점은 말의 복지 개선에 대한 부분도 지침이 확대됐다는 사실이다. 한국마사회가 지난해 집계한 전국 승마시설은 428개, 등록된 말의 수는 1만3000여 마리다. 한 해 동안 47만6154명이 승마를 체험했는데 이는 2016년 대비 5배나 늘어난 수치다. 인스타그램에 승마를 검색하면 수십만 개의 사진이 쏟아지는 것도 늘어나는 승마의 인기를 대변한다.
승마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는 이유를 인스타그램 때문이라 보기도 한다. 남들과는 다른 취향을 향유하고 있다고 과시하고 싶은 요즘 세태에 승마가 적합하다는 맥락이다. 하지만 승마는 최소 3년은 꾸준히 말을 타야 평보, 속보, 구보를 원하는 대로 구사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필요한 종목이다. 한두 달 짧게 배워서 정해진 코스가 아닌 산과 해변에서 자유롭게 달리는 ‘외승’을 꿈꾸는 건 어불성설이다. 이승준 교관은 “외승을 동경해 승마를 시작하는 사람이 많아요. 하지만 조심해야 합니다. 말은 예민한 동물이라 새나 쥐 같은 작은 동물만 마주쳐도 크게 놀라거든요. 전문가의 입장에서 초보자를 데리고 외승을 하는 건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외승 중 낙마 사고가 발생했다는 이야기는 매년 끊이지 않는다. 공인된 시설에서 자격증을 갖춘 트레이너와 보호대를 제대로 착용한 후 말을 만나는 게 중요하다. 누군가 “난 뛰는 거 싫어. 왜 앉아서 할 수 있는 운동은 없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승마를 추천한다. 뛰는 것보다 앉는 게 더 힘들 수 있다는 건 비밀로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