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진짜 생맥주를 찾아서

눈에 보이지 않고, 섬세하게 다루어야 하고, 없어도 되지만 있으면 더 멋지고, 마주하기 위해선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고, 다양할 때 더 빛나는 건 영혼일까 효모일까?

프로필 by 박호준 2023.03.01
 
 
“나마비루 구다사이.” 일본 여행을 가기 전 알아두어야 할 필수 회화다. 여기서 일본어 ‘나마’는 생(生)을 뜻한다. 그러나 우리가 마셨던 생맥주는 엄밀하게 따지면 생맥주가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 ‘생’은 무슨 의미일까? 같은 한자를 사용하는 나마자케(生酒)는 발효를 일으킨 효모가 살아 있는 사케를 뜻한다. 즉 ‘생’맥주의 원래 의미는 효모가 살아 있는 상태라는 뜻이다. 그러나 현재 대량 유통되는 맥주에는 살아 있는 효모가 들어 있지 않다.
모든 생맥주는 유통 전에 반드시 효모를 살균하거나 걸러낸다. 이유는 맥주의 맛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다. 효모는 사실 맥주를 만드는 일의 거의 전부를 담당한다. 맥아의 당을 섭취해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데 온도에 민감해 효모가 든 상태로 유통하면 맛이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 변질된 맛과 향을 이취(off-flavor)라고 한다. 간혹 이취를 의도하는 맥주도 있지만 다루기가 쉽지 않고 설사 원하는 이취를 얻더라도 유통 과정에서 다시 변질될 확률이 높다. 즉 맥주 맛을 일정하게 오래도록 유지하기 위해선 효모를 제거하는 게 최선이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지금처럼 맥주의 유통기간이 획기적으로 늘어날 수 있었던 건 효모를 제어하는 방법이 개발되면서부터라는 얘기다.
효모를 제한해 유통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파스퇴르는 1864년 ‘저온 살균법’을 고안해냈다. 맥주를 섭씨 60℃의 열로 약 30분간 가열해 남아 있는 효모와 각종 박테리아를 죽이는 방식이다. 1967년에는 산토리가 열을 사용하는 대신 효모조차 통과할 수 없을 만큼 촘촘한 세라믹 필터로 효모를 걸러낸 ‘순생(純生)’이라는 맥주를 출시했다. 이후 산토리는 자신들의 맥주를 생맥주라고 주장했는데, 저온 살균법과 달리 필터를 이용하면 맥주 맛에 영향을 주지 않으므로 효모가 없더라도 생맥주와 다르지 않다는 논리였다. 경쟁 업체들은 즉각 반발했으나 1979년 일본 공정거래위원회는 ‘열처리를 하지 않은 맥주’를 생맥주로 인정한다. 같은 시기 유럽과 미국을 보더라도 ‘생’의 의미는 사라졌거나 희미한 상태였다. 로컬 양조장이 아닌 대형 맥주 회사는 전부 효모를 죽인 상태로 맥주를 케그에 담아 유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생맥주의 원어인 ‘draft beer’는 원래 나무통에서 막 꺼낸 효모가 살아 있는 신선한 맥주를 의미했으나, 맥주를 다루는 방식이 달라지면서 ‘케그에서 꺼낸 맥주’라는 뜻으로 바뀌었다.
돌고 돌아 원점인 것 같지만, 진짜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 2010년대 초반, 수제 맥주에 대한 국내 소비자의 관심이 증가하면서 대형 맥주 회사에서 만든 일률적인 맥주가 아닌 개성 강한 맥주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숫자로 보더라도 2013년 93억원 수준이었던 국내 수제 맥주 시장 규모는 2020년에 1000억원을 돌파하며 10배 이상 늘었다. 이건 계륵같이 여겨지던 효모가 빛을 볼 절호의 찬스였다. 그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선 효모에 대한 공부가 조금 필요하다.
 
바이오크래프트는 지리산 야생화에서 채취한 균주를 이용해 효모를 개발하기 위해 연구중이다.

바이오크래프트는 지리산 야생화에서 채취한 균주를 이용해 효모를 개발하기 위해 연구중이다.

 
맥주 효모의 종류는 수백 가지가 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궁금하다면 ‘화이트 랩스(whitelabs)’의 홈페이지에서 맥주 종류별로 한눈에 볼 수 있게 분류해놓은 200여 개의 효모를 확인하길 바란다. 일례로 지난해 2월, 국세청과 환경부가 손을 잡고 약 5년간 연구 개발을 진행한 결과 전통주와 맥주에 사용 가능한 토종 효모 6개를 발굴해냈다. 이 중 지리산 산수유 열매에서 분리한 2개 균주는 초기 발효 속도가 빠르고 발효 후 단맛과 감칠맛이 탁월해 특허를 출원했다. 비교적 맥주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는 몇몇 대기업을 제외하면 대부분 효모를 수입해 사용해왔다.
효모를 수입하는 형태는 크게 건조 효모와 액상 효모로 나뉜다. 건조 효모는 온도에 덜 민감하고 가벼워 운송이 쉬운 게 장점이다. 보관할 수 있는 기간도 3년 가까이 된다. 물론 단점도 있다. 수백 개의 맥주 효모 중 건조 과정을 견딜 수 있는 효모는 50여 종밖에 되지 않는다. 또한 맥아에 투입하기 전 ‘재수화(rehydration)’가 필요하다. 재수화란 효모가 다시 활동할 수 있게 회복하는 과정으로 마른 효모를 물에 불려 원래 상태로 되돌린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말로는 쉽지만, 실제 재수화 과정은 섬세하기 그지없다. 사용하는 물의 온도와 양, 물과 효모를 맞닿게 하는 방식, 상온에 노출되는 시간, 운반하는 방식 등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맞추어야 한다. 완벽에 가깝게 다루더라도 건조와 재수화 과정에서 효모가 힘을 잃는 건 어쩔 수 없다. 반면 액상 효모는 재수화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오염될 가능성이 적다. 상대적으로 활동성이 좋은 것도 특징이다. 단, 무게가 무겁고 보관이 까다로워 비용이 더 많이 든다.
이렇게 애지중지 모셔온 효모를 맥아에 투입할 땐 만들고자 하는 맥주 종류에 따라 각기 다른 양을 넣는다. 같은 양의 맥주를 만들 때 에일보다 라거에 쓰이는 효모의 양이 2배 이상 많은 식이다. 에일 역시 종류에 따라 갈리는데 벨기에 에일처럼 발효 특성이 중요한 맥주는 효모를 최소로 넣는 반면, 바이에른 바이젠이나 세종 같은 맥주를 만들 땐 권장 투입량의 최대치에 가깝게 넣는다. 여기에 커피, 허브, 각종 견과류와 과일 등 부재료를 추가하거나 한 번 사용했던 효모를 다시 사용하면 양조사가 계산해야 하는 방정식의 난도는 점점 복잡해진다.
재미있는 건 사람처럼 효모도 어린 효모, 젊은 효모, 늙은 효모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효모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인 수준으로 설명하자면 이렇다. 어린 효모는 상품화가 덜 된 상태의 효모다. 곧바로 맥아에 투입할 수 없고, 적절한 온도와 영양 공급을 통해 성장시켜야 한다. 젊은 효모는 힘이 넘치는 상태를 말한다. 같은 양을 넣더라도 재사용한 늙은 효모보다 활동량이 탁월하다. 그런데 똑같은 젊은 효모라도 수입 효모와 국산 효모는 활동량에 차이가 있다. “같은 종류의 효모를 사용해 동일한 조건에서 양조했는데도 결과물이 다르게 나올 때가 있어요. 양조사들끼리는 ‘맛이 야무지다’고 말하는데 의도했던 풍미가 잘 구현됐을 때 쓰는 표현이죠. 효모가 당을 잘 먹어 치워서 잔당감이 적고 깔끔한 맥주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바이오크래프트의 국산 효모를 선호하는 이유죠.” 맥파이 브루어리 주상헌 매니저의 말이다.
바이오크래프트는 효모를 수입해 유통하는 수준을 넘어 자체적으로 효모를 연구 개발하고 생산, 판매까지 하는 효모 전문 국내 기업이다. 이미 8종의 국산 맥주 효모와 5종의 전통주 효모를 취급하고 있다. “지금까진 독특하고 유용한 효모를 발견하더라도 본격적으로 상품화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했어요.” 바이오크래프트의 김성범 이사의 말이다. 바이오크래프트는 국세청, 환경부와 손잡고 토종 효모 상품화에 힘을 쏟고 있다. 그는 “오염되는 걸 막기 위해 생산을 위한 연구 및 작업은 무균실에서 이루어집니다. 작은 용기에서 생산을 시작한 효모가 대형 배양기에 들어가기까지 약 열흘이 걸리는데 출고 전 균주 수 확인, 미생물 오염 검사, 유전자 검사, 발효 테스트는 필수죠”라며 까다로운 효모 생산 과정에 대해 소개했다.  
효모의 세계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에디터를 현실로 건져 올려준 건 주상헌 매니저다. “사실 효모까지 생각하고 맥주를 마시는 사람은 없어요. 자기 입맛에 맛있으면 된 겁니다.” 그가 제일 좋아하는 맥주는 카스다. “저희가 추구하는 맥주는 다양성이에요. 람빅이나 고제를 좋아하면 ‘맥잘알’이고 카스를 좋아하면 ‘맥알못’인 게 아닙니다.” 국산 포도에서 채취한 균주로 맥주 효모를 만들기 위해 실험하고 있는 서울 브루어리 역시 비슷한 입장이다. “크래프트 맥주의 장점은 다채로움에 있습니다. 여러 맥주를 경험하며 소비자가 자신의 맥주 취향을 찾길 바라요.”
종합하면, 국산 효모의 종류가 늘어난다는 건 소비자 입장에서 완성도 높은 다양한 풍미의 맥주를 마실 기회가 많아진다는 말과 같다. 효모가 건강하면 양조사는 원하는 맥주를 만들기가 수월해지고 토종 효모를 쓰면 독일 맥주나 벨기에 맥주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독특한 풍미의 맥주가 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켓 컬리나 밀키트 산업이 성장하면서 생산부터 소비 단계까지 적합한 온도를 유지하며 유통하는 ‘콜드체인(cold-chain)’ 분야도 함께 발전하고 있다는 점 역시 이취를 걱정하지 않고 효모가 살아 있는 진짜 생맥주를 안방에서 즐길 수 있도록 돕는다. 변질을 이유로 사라져야만 했던 맥주 효모의 시대가 다시 도래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Credit

  • EDITOR 박호준
  • PHOTO 바이오크래프트
  • ART DESIGNER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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