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다카르 랠리를 완주한 사나이
류명걸 랠리스트는 안 된다는 모두의 말을 절대 듣지 않았다. 그런 말을 들었다면 한국인 최초로 다카르 랠리를 모터바이크로 완주해내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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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사막을 내려갈 땐 속도를 오히려 높이는게 요령이다.
다카르 랠리는 ‘죽음의 경주’라고 불리며 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하고 완주가 어려운 경주 중 하나로 손꼽혀요.
12일 동안 7800km를 달려야 합니다. 그냥 도로도 아니고 전부 사막이나 황무지 같은 비포장도로를 말이죠. 일반적으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운전하는 것도 피곤하다고 말하는데 저는 매일 그 거리의 약 1.5배를 모터바이크로 달렸어요. 톱클래스 선수들은 평균 시속이 120km정도 되는데 저는 첫 출전이라 시속 80km 정도를 유지했어요.
경주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새벽 3시쯤 하루를 시작해요. 사막은 온도차가 심해서 새벽엔 온몸이 떨릴 정도로 춥다가도 해가 뜨면 지면과 엔진에서 올라오는 열 때문에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더워요. 한 번도 오프로드에서 모터바이크를 타보지 않은 사람은 ‘그냥 앉아서 운전만 하는데 그게 그렇게 힘든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시시각각 달라지는 지형에 대처하며 몸의 무게중심을 이리저리 바꿔가며 장시간 달리는 건 높은 집중력과 강한 체력을 필요로 합니다. 다카르에 가기 위해 매일같이 러닝, 수영, 필라테스 같은 운동으로 체력을 다졌던 이유죠.
말 그대로 사서 고생이네요.
정말 그래요.(웃음) 목숨 걸고 참가하지만, 우승 상금도 없어요. 오히려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3억원가량 썼어요. 있는 돈 없는 돈 전부 모았는데도 부족해서 십시일반으로 후원받았습니다. 돈이 있다고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다른 대회에 참가했던 경력이 필요해요. 저는 2017년과 2019년 몽골 랠리, 2018년 멕시코 바하 랠리에 참가하며 이력을 쌓은 후 다카르 랠리에 도전했어요.
‘참가했다’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몽골 랠리와 바하 랠리 모두 1등을 차지했어요. 전부 한국인으로선 최초였죠. 비결이 뭔가요?
연습, 또 연습밖에 없습니다. 빠른 속도로 사막을 달릴 때 머리로 생각하면 늦어요. 몸이 반응하도록 완전히 체득해야 해요. 모래의 특성을 재빨리 파악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한국 모래와 사우디 모래가 다르고 어제 달린 사막과 오늘 달릴 사막의 모래가 또 다르거든요. 랠리라는 종목 자체가 그렇기도 하지만, 저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는 게 즐거워요. 다카르에 가기 전엔 자나 깨나 랠리 생각밖에 없을 정도였어요.
아찔했던 순간은 없었나요?
레이스 초반에 선두 그룹까지 치고 올라갔던 적이 있어요. 오랫동안 꿈에 그리던 무대를 달리고 있다는 기분에 취해서 그런지 순위 욕심이 자꾸 나더라고요. 그러다 긴 모래언덕에서 5바퀴 이상 뒹굴었어요. 정신을 잃지는 않았는데 숨이 턱 막히면서 머리가 멍하고 방향감각이 사라지더라고요. 다친 곳이 없는 게 천만다행이었죠. 그 후론 욕심을 내려놓고 ‘완주만 하자’는 생각으로 임했습니다. 그리고 트럭들도 무서웠어요.

처음 참가한 2020 다카르 랠리에서 그는 루키 클래스 5위를 달성했다.
트럭이요?
네. 다카르 랠리는 모터바이크뿐만 아니라 자동차, 트럭 클래스도 있어요. 모터바이크가 가장 먼저 출발하긴 하지만, 레이스 후반부가 되면 트럭에 따라 잡혀요. 말이 트럭이지 실제로 보면 오프로드를 달리기 위해 차체를 높인 탓에 탱크처럼 보여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일정한 반경 안에 트럭이 있으면 경보음이 울리긴 하지만 그래도 집채만 한 차가 시속 200km 가까운 속도로 다가온다고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하죠. 일반 도로에서도 그렇지만, 트럭 운전석에선 작은 모터바이크가 잘 보이질 않거든요. 스스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어요.
사고도 직접 목격했다고 들었어요.
바로 앞에 달리던 선수가 넘어지는 걸 봤어요. 잠시 레이스를 중단하고 사고 현장으로 달려갔죠. 다카르 랠리는 대회 운영 면에서도 수준급이기 때문에 구조 요청을 보내면 10~15분 만에 전문 의료진을 태운 헬리콥터가 와요. 나중에 알았는데 그 선수는 대퇴골 골절이었다고 하더라고요. 또 한번은 포르투갈 출신의 파울로 곤칼베스라는 선수가 저를 앞질러 간 적이 있어요. ‘다카르 랠리에 13번이나 참가한 랠리스트는 역시 빠르네’라고 생각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의료진에 둘려싸여 있는 걸 봤어요. 심장마비였다고 하더라고요. 사고를 애도하는 의미에서 하루 동안 경기가 중단됐는데 그날 되게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베테랑도 방심할 수 없을 만큼 위험한 곳에 와 있다는 게 새삼 느껴지면서 생과 사의 갈림길이 정말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걸 체감했던 것 같아요.
1분 1초를 다투는 경주 중 다른 선수를 돕는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텐데요.
원래 다카르 랠리에선 ‘착한 사마리안 법’이 적용돼요. 기록 측정을 할 때 다른 선수를 돕느라 늦어진 시간을 보상해주는 방식으로요. 근데 제가 GPS 조작에 서툴러서 시간이 제대로 측정되질 않았어요. 그때 지체한 시간이 기록에 반영이 됐더라면 루키 클래스 5위가 아니라 3위까지 노려볼 수 있었죠. 하지만 후회하거나 억울하진 않아요. 랠리에서 벌어지는 일은 모든 게 제 불찰이고 책임이니까요. 다시 그때로 돌아가더라도 그 선수를 도울 겁니다. 물론, GPS 버튼은 제대로 누르고 나서요.(웃음)
다카르 랠리를 갔다 와서 바뀐 점이 있나요?
갔다 온 지 벌써 2년이 훌쩍 지났네요. 한동안은 멍하게 지냈어요. 오랫동안 온 힘을 다해 준비했던 목표를 이루고 나니 그다음엔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더라고요. 솔직히, 현실적으로 달라진 건 별로 없습니다. 랠리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훈장을 받고 스포츠 스타가 되는 몽골과 달리 우리나라는 랠리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요. 그렇지만 유명세나 명성을 바랐으면 애초에 랠리를 시작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랠리에 계속 도전하는 이유는 뭔가요?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 한가운데에서 혼자 모터바이크와 씨름하며 달릴 때 살아있다고 느껴요. ‘더 이상은 못 하겠어’라는 말이 입안에서 간질간질할 때까지 스스로를 몰아붙인 후 결승점을 통과했을 때 느껴지는 희열과 성취감은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한 번 사는 인생인데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비싼 자동차를 타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이 있고 맛있는 음식 먹는 걸 즐기는 사람이 있듯 저는 랠리를 할 때 가장 행복합니다.
류명걸의 다음 도전이 궁금해요.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다카르 랠리에 가고 싶긴 해요. 당장은 랠리라는 종목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방향으로 노력하고 있어요. 맨땅에 헤딩하면서 얻은 노하우를 썩히긴 아까우니까요. 여러 랠리 대회에 참가하면서 서포트해주는 팀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어요. 누군가 랠리에 출전하고 싶다고 했을 때 훈련 단계부터 차근차근 함께 준비를 돕는 역할을 맡고 싶어요. 아주 드물지만, 선수로 참여해보고 싶다는 사람이 있긴 있거든요. 저보다 더 실력 좋은 랠리스트가 많아지면 랠리에 대한 관심도 조금은 커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요.
Credit
- EDITOR 박호준
- PHOTO 류명걸
- ART DESIGNER 최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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