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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복제 기술은 이미 '무엇이 원본이냐'하는 문제가 의미 없어질 만큼 발달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거상은 분리된 조각들을 토대로 재건 과정 중이다. 카라바조와 베로네세의 복제 작품들은 원본을 대체한다. 심지어 내부에 고대 비문이 가득한 동굴 전체를 3D로 인쇄해 브라질로 배송하기도 한다. 팍툼재단의 이런 작업들은 우리가 예술에 대해 품고 있던 오래된 확신에 의심을 품게 하고, 새로운 질문을 안겨준다. 예술 작품의 진정성이란 무엇일까? 예술은 과연 영원할 수 있을까?

프로필 by 오성윤 2023.04.25
 
마리 카르멘 파스칼이 거상의 오른쪽 다리 마감 작업을 하고 있다. 송진과 대리석 먼지로 재구현한 복사본 조각은 원본과 시각적으로 구별된다.

마리 카르멘 파스칼이 거상의 오른쪽 다리 마감 작업을 하고 있다. 송진과 대리석 먼지로 재구현한 복사본 조각은 원본과 시각적으로 구별된다.

 
밀라노 프라다 재단 미술관의 가장 큰 전시장인 치스테르나(Cisterna). 대리석 소재로 보이는 친숙한 질감의, 그러나 비현실적일 만큼 거대한 크기의 조각상이 그 넓은 공간을 좁아 보이게 했다. 고정된 시선이 인상적인 얼굴, 집게손가락이 하늘로 향한 손, 땅에 단단히 박힌 아름답고 단단한 발... 그건 분명 로마 카피톨리니 박물관에 전시된 그 유명한 콘스탄티누스 거상이었다. 콘스탄티누스 거상은 전체 조각 중 얼굴, 손, 발을 포함한 10개의 조각만 남겨졌고, 나머지 부분은 모두 유실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 공간에 서 있는 조각은 고대 로마인들 중 단 몇 세대만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던 온전한 모습 그대로였다. 가슴을 드러낸 채 옆구리를 따라 떨어지는 청동 페플로스를 입은 콘스탄티누스는 로마제국의 상징인 홀(笏)과 구체를 손에 쥔 채 앉아 있었다. 콘스탄티누스 거상엔 팔과 다리가 온전히 붙어 있었으나, 거상의 바로 앞에 카피톨리니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그 유명한 조각들과 같은 크기의 거상 조각들도 있었다. 다시 말하면, 치스테르나에 전시된 이 온전한 콘스탄티누스 거상은 원본이 아니라 카피톨리니 박물관에 전시된 10개의 조각을 토대로 만든 작품이라는 뜻이다. 유실된 모든 조각을 찾아 조립했을 때 그 온전한 모습을 가상으로 구현해놓은 것이다.
큐레이터 살바토레 세티스는 프라다 재단의 전시 <Recycling Beauty>를 위해 콘스탄티누스 거상 재현 기획을 제안했고, 정교한 기술을 사용해 예술 작품을 ‘디지털로 재창조’하는 작업을 위해 2009년 마드리드에 설립된 팍툼 아르테(Factum Arte)의 자회사 팍툼 디지털 기술 재단(Factum Foundation for Digital Technology)이 참여했다. “우리는 콘스탄티누스 거상의 10개 조각을 전부 스캔한 뒤 온전한 모습을 재현했습니다.” 팍툼의 디렉터 아담 로우의 설명이다. 팍툼은 사진측량 기술을 통해 카피톨리니 박물관 안뜰에 있는 콘스탄티누스 석상의 10개 조각을 레이저로 스캔한 뒤, 손실된 부분을 가상으로 예측하고 3D 프린팅으로 구현해냈다. 10개월 동안 스무 명의 인원이 강도 높게 실시한 작업이었다. 콘스탄티누스의 몸체를 봉합하는 작업은 결과물이 진짜 대리석처럼 보이도록 하기 위해 폴리우레탄을 사용했으며, 송진과 운모, 대리석 먼지를 사용해 여러 겹으로 마감 처리했다. 관람객에게 콘스탄티누스 시대 로마제국의 경이로움과 경외감을 선사하기 위한 것이었다. 아담 로우는 이렇게 말했다. “이 거상은 팩시밀리로 송신받은 재현물인 거죠.”
 
비침습성 고해상도 레이저 스캐너인 루시다 3D(Lucida 3D) 스캐너는 팍툼 아르테의 마누엘 프랑켈로가 설계한 것으로, 극도로 정밀하게 돌출된 표면을 3차원으로 구현해낼 수 있다. 그림 작품을 스캔하는 데에 사용되며 최대 2.5cm 높이의 저부조(높이가 낮은 부조)를 스캔할 수 있다.

비침습성 고해상도 레이저 스캐너인 루시다 3D(Lucida 3D) 스캐너는 팍툼 아르테의 마누엘 프랑켈로가 설계한 것으로, 극도로 정밀하게 돌출된 표면을 3차원으로 구현해낼 수 있다. 그림 작품을 스캔하는 데에 사용되며 최대 2.5cm 높이의 저부조(높이가 낮은 부조)를 스캔할 수 있다.

 
이러한 재현은 1969년 팔레르모에서 마피아에게 도난당한 후 다시는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진 작품 ‘성 프란치스코와 성 로렌초가 함께 있는 예수 탄생’에도 적용됐다. 팍툼은 원본 작품을 찍은 흑백사진을 토대로 정교한 작업을 수행해, 최대한 원본에 가까운 색감을 표현하고자 했다. 카라바조가 남긴 이 걸작을 재건하는 작업은 원본이 유실된 상태에서 원본을 재건해야 하는, 극도로 난도 높은 작업이었다. 아담 로우의 표현에 따르면 그건 “모든 면에서 창의력이 필요한 작업”이다.
나폴레옹의 군대가 베네치아에서 약탈한 파올로 베로네사의 ‘가나의 혼인 잔치’는 ‘모나리자’ 앞에 전시되어 있는 서러움도 모자라 진품의 가치를 둘러싼 논란까지 겪었다.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된 이 작품이 원래 위치했던 베네치아 산 조르조 마조레 수도원으로 반환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그 대신 2007년 팍툼 아르테가 제작한 사본이 귀향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형태의 사본들이 진품의 자리를 차지하려 한다면 작품의 독창성, 예술가의 진정성, 모조품의 정의, 그리고 작품을 보존하기 위해 세기에 걸쳐 힘써온 사람들의 노력과 같은 다양한 개념이 흔들릴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 응당 있어야 할 베네치아의 자기 자리에 존재하는 ‘가나의 혼인 잔치’ 복제품은 단순히 가짜인가? 아니면 약탈의 죄에 대한 합리적인 배상인가? 나아가 오리지널 조각들을 토대로 전체를 재현한 콘스탄티누스 거상은 타당한 작업인가? 아니면 그저 호화로운 게임에 불과한가? 유실된 카라바조의 ‘성 프란치스코와 성 로렌초가 함께 있는 예수 탄생’ 재건 작업은 원본 작품을 재현한 것이라 말할 수 있는가? 아니면 그저 사진을 따라 그린 것인가?
 
루브르 박물관의 ‘가나의 혼인 잔치’ 원본 스캔을 팍툼 아르테 기술자가 만든 컬러 샘플과 비교하는 작업. 아래는 가나의 혼인 잔치 복제본 디테일.

루브르 박물관의 ‘가나의 혼인 잔치’ 원본 스캔을 팍툼 아르테 기술자가 만든 컬러 샘플과 비교하는 작업. 아래는 가나의 혼인 잔치 복제본 디테일.

 
아담 로우 역시 이 질문들에 동의했다. “이미 원본과 구별하기 힘들 정도의 그림을 우리가 제작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근본적인 질문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제 ‘진짜냐 가짜냐’보다 더 중요하게 판단해야 할 것은 ‘둘 중 어느 쪽이 작가의 의도에 더 가깝게 제작됐는가’인 거죠.” 각종 논란의 중심이 됐던 베로네세의 ‘가나의 혼인 잔치’ 재현 작업과 관련해, 그는 인류학자 브뤼노 라투르와 함께 ‘오라의 이전(La migrazione dell’aura)’이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의 에세이를 썼다. 일찍이 철학자 발터 벤야민이 사진술 및 복사 기술의 발달로 붕괴됐다고 주장했던 것, 바로 그 예술 작품의 오라에 관한 글이었다. 두 사람은 해당 에세이를 통해 “예술 작품을 재현할 팩시밀리, 그리고 정교하고 복잡한, 발전하는 디지털 기술이야말로 ‘오리지널 작품이란 무엇인가’를 재정의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실제로 팍툼이 정교한 레이저 스캔 기술과 재현 전문 화가의 페인팅 기술을 통해 재현한 베로네세의 작품은 1563년의 입체적인 붓 터치마저 되살린 것처럼 느낄 정도였다. 거장들의 손에서만 생성될 수 있는 ‘오라’까지도 함께 재구성한 것이다.
이 두 명의 팩시밀리 이론가는 예술이라는 개념이 구축해놓은 어떤 견고한 확실성마저 흔들 수 있는 질문을 던졌다. “진품이 아닌 복제품에서도 미학적, 감정적 반응을 그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인가?” 그 대답은 브라질 싱구(Xingu) 원주민 지구의 와우자, 키쿠루, 크레나크 족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문화적 기반인 카무쿠와카(Kamukuwaka)의 신성한 동굴에서 고대 벽화들이 파괴되는 걸 목격했고, 팍툼은 2018년과 2019년 사이 카무쿠와카의 신성한 동굴을 1:1 스케일로 재현한 3D 복제본을 만들었다. “작업하는 2년 동안 원주민 공동체 및 지역 인류학자들과 긴밀하게 협력했죠. 정확한 재구성을 목표로 하는 포렌식 작업을 위해 동굴 전체를 고해상도 3D로 촬영하고, 그걸 바탕으로 손상되기 전의 음각 사진과 원주민들의 증언까지 추가해 더욱 정교하게 만들었습니다. 원주민 공동체 대표자들이 완성된 3D 복제본을 처음 봤을 때 ‘새로운 원본’이라고 했을 정도로요.” 아담 로우의 설명이다. 예술 작품의 보존 및 복원 관련 논의에서 거의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을 이 ‘새로운 원본’은 브라질 싱구의 손상된 원본 동굴 옆에 이전되어 재조립될 예정이다. 조상들의 신성한 문화와 글을 보존하고 후대에 전수하겠다는 싱구 원주민의 선택은 ‘원본이냐 복제본이냐’와 같은 단순한 대립을 간단히 넘어섰으며, ‘복제품에 대해서도 미학적,감정적 반응을 그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인가’ 같은 순진한 호기심도 넘어선 차원이었다. 카무쿠와카의 신성한 동굴 사례에서 복제 작업은 오랫동안 보존해온 것들을 이어갈 수 있게 하는 약속이자, 단순히 파괴된 것에 대한 보상이 아닌 예술이라는 개념에 대한 사고 혁명이 되었던 것이다.
 
팍툼 아르테가 2007년 제작한 ‘가나의 혼인 잔치’ 팩시밀리 앞에 서 있는 아담 로우. 이 작품은 조르조 치니 협회(Giorgio Cini Foundation)와 협업으로 완성했으며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설치돼 있다.

팍툼 아르테가 2007년 제작한 ‘가나의 혼인 잔치’ 팩시밀리 앞에 서 있는 아담 로우. 이 작품은 조르조 치니 협회(Giorgio Cini Foundation)와 협업으로 완성했으며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설치돼 있다.

 
‘원본이냐 복제본이냐’ 같은 논의는 나머지 본질적인 것들을 놓치게 할 수도 있다. “우리의 재현 작업은 작품의 컨디션을 해치거나, 저작권, 작업에 대한 접근권 같은 문제를 우려하도록 하지 않죠. 팍툼은 작품의 표면을 절대 건드리지 않습니다. 또 우리가 기록하는 모든 데이터는 명백하게 해당 저작물을 보관하는 기관이나 박물관의 것입니다. 데이터와 결과물로 어떤 작업을 할지, 혹은 어떤 사람에게 작업 권한을 부여할지도 그들의 것이죠. 우리의 작업은 단지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데이터를 저장, 사용하고 배포할 수 있도록 도울 뿐이에요.” 아담 로우의 설명을 듣고 있자니, 어쩌면 예술이 그토록 바라던 ‘영원’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손상되거나 손실된 작업물을 되돌릴 수 있게 사용되는 이 정교하고 심층적인 데이터 클라우드에. 잠재적으로 무한 재생 가능한 팩시밀리의 디지털 재창조는 작품이 영원히 남길 바랐던 작가들의 고독한 몸짓을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또 다른 질문을 던져본다. 예술이란 과연 물질적 결과물로서만 가치가 있을까? ‘예술은 일종의 편재성을 획득할 것’이라고 한 시인 폴 발레리가 1928년 발표한 글 ‘편재성의 정복’을 다시 읽어볼 필요가 있다. 결국 예술은 우리가 필요할 때 언제든 꺼낼 수 있는 즉각적인 존재가 되거나, 어디에나 있는, 어떤 장치에서나 발현되는 형식이 될 것이다. 예술의 혜택은 우리가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형태로 온전히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집에서든 어디서든 최소한의 노력으로 편하게 예술의 시각적·청각적 이미지를 얻게 될 것이다. 물, 가스, 전기가 그렇게 되었듯이 말이다. 폴 발레리가 말한 가설은 음악의 물질적 결과물인 레코드의 발명으로 구현됐다. 물론 그가 데이터 스토리지의 잠재력까지는 예견할 수 없었지만. “저는 모든 사람이 자신들만의 완벽한 ‘팩시밀리 컬렉션’을 구축하고 살 수 있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아담 로우가 말했다. “이전에 디지털은 가상과만 연결됐죠. 하지만 이제 디지털은 그 이외에도 다양한 형태로 변모할 수 있게 됐으니까요.” 

Credit

  • EDITOR Vito De Viasi
  • TRANSLATOR 우정호
  • ART DESIGNER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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