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바'는 어떻게 5회째만에 밀라노 디자인 위크의 가장 뜨거운 행사로 부상했을까?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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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바'는 어떻게 5회째만에 밀라노 디자인 위크의 가장 뜨거운 행사로 부상했을까?

올해로 5회를 맞은 밀라노 디자인 위크의 신생 박람회 알코바. 무료로 운영되는 이 독립 디자인 플랫폼이 유수의 디자인 박람회와 세계적 패션 하우스의 위세를 뚫고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가장 뜨거운 이벤트로 부상한 비결은 뭘까? 알코바 2023을 돌며 그 매력을 포착하고 설립자 발렌티나 치우피와 대화를 나눴다.

오성윤 BY 오성윤 2023.06.06
 
 
“지금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꼭 하나만 가야 한다면 단연 알코바(ALCOVA)죠.” 출장차 디자인위크 기간에 밀라노에 간다고 했을 때 한 국내 디자이너가 일러준 말이었다. 촉박한 일정에 대한 토로에 가볍게 돌려준 팁이었지만, 그 내용은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 대해 제법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도 의아해 할 만했다. 이제야 5회를 맞는 무료 전시가 제일 먼저 찾아야 할 곳이라고? 이 세계 최대 디자인 축제의 시발점이었던 전설적 박람회 살로네델모빌레, 혹은 밀라노 곳곳에서 열리는 글로벌 브랜드들의 기상천외한 이벤트들을 제쳐두고? 곁에 있던 다른 디자이너들도 그의 말에 수긍했지만, 후에 알코바 행사장에서 만난 발렌티나 치우피는 그 이야기에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너무 추켜세운 것 같은데요. 살로네델모빌레가 없었다면 알코바는 물론 오늘날의 밀라노 전체가 존재하지 못했을 거예요. 저마다의 행사가 디자인의 다른 면을 보여주기 때문에, 행사들을 두고 그렇게 경쟁 모티브로 말하기 어려울 것 같기도 하고요.” 그녀의 정체는 알코바의 설립자. 살로네델모빌레와 저울질을 하는 표현 앞에서 그녀는 난색을 표했지만, 이 행사의 출발점을 되짚을 때는 알코바가 가진 대안적 성격에 대해 솔직히 털어놓기도 했다. “2000년대 초반의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는 이런 종류의 전시가 좀 더 흔했어요. 하지만 곧 지역이 개발되면서 고유의 분위기가 사라져버렸죠. 그래서 동료 디자이너인 조셉 그리마와 저는 직접 만들기로 한 거예요. 우리가 알던 그 ‘옛날의 밀라노 디자인 위크’를요.” 
 
알코바는 밀라노 시내의 오래되고 방치된 건축물들을 발견하고 옮겨 다니며 행사를 여는 독립 디자인 플랫폼이다. 올해 행사는 밀라노 동남부의 폐쇄된 거대 도축장 ‘엑스 마첼로’에서 열렸다. 사진은 엑스 마첼로 내부 곳곳에 설치된 독립 디자이너, 중소기업, 박물관, 학교, 재단 등의 전시품들과 행사장 바깥에서 자유로이 뜨개 작업물을 만들고 있는 크로아티아 디자이너 로라 므르크사.

알코바는 밀라노 시내의 오래되고 방치된 건축물들을 발견하고 옮겨 다니며 행사를 여는 독립 디자인 플랫폼이다. 올해 행사는 밀라노 동남부의 폐쇄된 거대 도축장 ‘엑스 마첼로’에서 열렸다. 사진은 엑스 마첼로 내부 곳곳에 설치된 독립 디자이너, 중소기업, 박물관, 학교, 재단 등의 전시품들과 행사장 바깥에서 자유로이 뜨개 작업물을 만들고 있는 크로아티아 디자이너 로라 므르크사.

앞서 말했듯, 알코바는 밀라노 기반의 두 디자이너, 스튜디오 베뎃의 발렌티나 치우피와 스페이스 캐비어의 조셉 그리마가 2018년 발족한 디자인 플랫폼이다. 밀라노 디자인 위크마다 선보이는 동명의 행사가 핵심인데, 가장 흥미롭게 회자되는 요소는 장소가 1, 2년 간격으로 계속 바뀐다는 것이다. 처음 행사가 열린 건 중앙역 북쪽의 방치된 파네토네(이탈리아 파운드 케이크의 일종) 공장터였고, 이듬해에는 1930년대에 캐시미어 방적 공장이었던 건물에서, 작년과 재작년에는 군병원 폐허에서 열렸다. 그리고 올해 행사가 열린 곳은 밀라노 동남쪽의 폐쇄된 거대 도축장 ‘엑스 마첼로’였다. 설립자 두 사람이 아무 이유 없이 밀라노 이곳저곳을 운전하고 다니다 이 폐허를 발견한 건 4년 전의 일. 하지만 소유자가 누구인지 찾아내는 게 쉽지 않았고, 결국 집요한 노력 끝에 올해에야 협업이 성사된 것이다. “계속 새로운 역사적 장소들을 찾는 게 알코바의 아이덴티티라고 생각해요. 밀라노 디자인 위크는 밀라노라는 도시를 발견하는 방법의 하나이기도 하잖아요. 저희가 기본적으로 전시 공간과 그 안에 전시된 디자인 사이의 대화를 믿기도 하고요. 만약 매해 같은 공간에서 같은 디자이너와 작업한다면 저는 거기서 어떤 게 나올지를 이미 알게 되겠죠. 정형화되기 시작하면 곧 상업화돼요. 그러고 나면 더 이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어려워질 테고요.” 발렌티나 치우피의 설명을 듣는 동안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알코바 2023의 전시장 곳곳에서 마주친 놀라운 광경들이었다. 실내의 바닥 구획과 배수 환경을 이용해 수공간을 조성하고 그 위에 일상 가구들을 설치한 ‘디스 이즈 덴마크’관, 현장에서 발견한 오래된 건축 자재들을 도열해 엑스 마첼로의 재개발 계획을 표현한 디자인 및 컨설팅 업체 스탄텍, 방치된 건물 바깥의 우거진 나뭇가지들 사이로 자유롭게 뜨개질을 하고 있던 크로아티아 디자이너 로라 므르크사까지. ‘노마드적 방식이 급진적 디자이너들의 발전을 지원한다’는 치우피의 다소 추상적인 설명이 순식간에 선명해지는 장면들이었다.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어요. 젠트리피케이션의 총알을 피할 수 있다는 점이죠. 장소를 계속 옮겨서 지역 경제나 영세한 신진 디자이너의 참여에 끼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거예요. 짧은 기간 특정 지역에 조명을 비추긴 하지만, 향후 궤도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 정도로 금방 사라지니까요.” 그저 참신하고 사려 깊은 아이디어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사실 알코바 운영진이 이 기조를 유지하기 위해 들이는 노고는 상상 초월이다. 매번 새로운 폐허와 그 주인을 찾아 사용을 협의하고, 엔지니어링, 보안, 안전, 상수도 연결 가능성을 체크하고 보완하며, 업체를 선정해 동선을 새로 짜야 한다. 본업이 따로 있는 직원 5명이 그 모든 걸 다 하고 있다는 뜻이다. “알코바 2023의 오프닝 전날에 친구들을 모두 불러서 저녁을 먹고 있었어요. 그런데 전시회 현장에 일할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결국 새벽 1시에 모두 끌고 와서 다 같이 청소를 했죠.” 실제로 그녀는 알코바 행사장 야외에서 진행된 30여 분의 짧은 인터뷰 사이에도 몇 번씩 자리를 비웠다. 지나가던 전시 참가자를 응대하거나, 현장에서 벌어지는 자잘한 사고들을 직접 처리해야 했기 때문이다. “저런 경우도 한번 보세요. 원래는 저기서 담배를 피우면 안 되는데, 오 잠깐. 죄송해요. 잠깐만요” 하면서.
 
5명의 디자이너 겸 큐레이터로 구성된 알코바 팀은 전시를 희망하는 세계 각지의 디자이너들과 협업해 밀라노 디자인 위크를 위한 행사를 기획한다. 올해 행사에는 1000개가 넘는 지원서가 도착했고, 그중 100여 팀을 선정했다. 사진은 알코바의 공동설립자 발렌티나 치우피와 행사장 곳곳의 풍경들. 
 
 
여타 박람회와 구별되는 알코바의 특징은 관람객의 면면에도 있다. 누가 봐도 비즈니스 명목으로 이 도시를 찾은 듯한 정중한 슈트 차림의 사람들부터 온갖 인종의 디자인 학도들, 빼어난 패션 센스를 자랑하는 밀라네제들, 반려동물이나 유모차, 휠체어를 끌고 나온 동네 주민들까지 온갖 종류의 사람을 볼 수 있었으니까. 무료 입장이라는 요소 역시 알코바의 핵심이라는 뜻이다. “저희가 생각한 건 처음부터 끝까지 깨끗하고 완벽한 패션쇼가 아니었으니까요. 알코바는 붐비는 도시와 모든 종류의 사람들을 위한 파티로 기획되었기 때문에, 늘 다양성을 추구하고 배타성을 경계하죠.” 그 결과로 알코바가 얻은 가장 큰 매력은 디자인의 ‘실제적 적용’이다. 어둡고 축축한 지하 공간에서 아름다운 조명을 마주한 사람들의 표정을 볼 때, 야외에 설치된 벤치에 누워 낮잠을 자는 젊은이들을 볼 때, 이 행사에서 디자인이란 단순히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모든 것이 그렇듯 거기에도 명암은 있다. 행사가 호황이라는 말에 발렌티나 치우피는 ‘솔직히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는데요’ 하며 근심스러운 얼굴로 행사장 바깥을 내다보기도 했다.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간 부분은 있죠. 중요한 건, 알코바의 지향점이 계속 팽창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중요한 건 ‘우리’가 되는 거지. 이렇게 긴 대기줄이 생기는 건 관람객에게도 고통스러운 일이잖아요.” 관람객뿐 아니라 알코바에 참여하고자 하는 디자이너도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올해 신청자는 1000팀이 넘어섰고, ‘독립 디자인을 위한 플랫폼’으로 시작했던 알코바는 이제 ‘디자이너, 중소기업, 박물관, 학교, 재단을 포괄해 국제적인 관점에서 디자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스냅샷을 제공하는 행사’로 성장했다. 알코바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이 자유롭고 재기 넘치는 행사가 어느 순간 상업적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걱정을 하는 건 발렌티나 치우피도 마찬가지다. 아이러니하게도, 알코바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그녀가 찾고 있는 것은 브랜드들과의 더 긴밀한 협업이다. 지자체의 지원을 받지 않고 자생적으로 운영하면서도 무료 입장 기조를 유지하고, 영세한 디자이너들이 마음 편히 참가할 수 있도록 하게 해줄 그런 협업 말이다. “앞으로 알코바의 목표는 다시 작아지는 거예요. 우리는 여전히 다섯 명이고, 다섯 큐레이터의 영혼은 이 모든 것이 시작했을 때나 지금이나 동일하니까요.” 하지만 그녀는 그게 ‘회귀한다’는 뜻은 아니라고도 했다. “중요한 건 계속 움직이는 거죠. 그간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실패했던 이벤트들이 놓친 것을 계속 상기하고, 그들이 지역에 끼쳤던 악영향을 곱씹으면서요.” 
디자인 컨설팅 기업 스탄텍이 선보인 ‘A Valuable Collection of Things’ 전시 전경. 알코바 2023의 행사 장소이자 폐쇄된 도축장인 엑스 마첼로에서 수집한 폐자재들을 전시했다. 버려지고 방치되는 자원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이를 기반으로 도출되는 새로운 미래를 의도했다.

디자인 컨설팅 기업 스탄텍이 선보인 ‘A Valuable Collection of Things’ 전시 전경. 알코바 2023의 행사 장소이자 폐쇄된 도축장인 엑스 마첼로에서 수집한 폐자재들을 전시했다. 버려지고 방치되는 자원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이를 기반으로 도출되는 새로운 미래를 의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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