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올해 밀라노디자인위크에서 기량을 펼친 4팀의 한국 디자이너

올해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만난,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네 팀의 디자이너.

프로필 by 오성윤 2024.06.06
ARCHI@MOSPHERE
[ Dropcity 2024 In-Progress & Korean Craft Show in Milan 2024 ]
디자인 스튜디오 아키모스피어의 대표 박경식. 아키모스피어는 사람과 공간의 실질적 접점에 주목하는 ‘통합 경험 디자인 스튜디오’다.
아키모스피어가 드롭시티 2024 ‘In-Progress’에서 진행한 알루미늄의 소재성에 관한 전시 일부.

아키모스피어가 드롭시티 2024 ‘In-Progress’에서 진행한 알루미늄의 소재성에 관한 전시 일부.

2024 밀라노 한국공예전에 설치했던 파빌리언 작업 ‘공존의 마당’.

2024 밀라노 한국공예전에 설치했던 파빌리언 작업 ‘공존의 마당’.

작업 세계 ‘architecture’와 ‘atmosphere’의 합성어인 이름처럼 공간, 가구, 건축 등 분야를 구분하지 않고 특정한 경험, 기억, 분위기를 만드는 공간 요소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디자인의 속성으로 말하자면 ‘선’에 관심이 많다. 선이 모이고, 조합되고, 해체되면서 만들어지는 조형이라든가 선이 만들 수 있는 ‘한국성’이라든가. 그 선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알루미늄을 자주 활용해왔는데, 본의 아니게 알루미늄이라는 소재가 아키모스피어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된 부분이 있다. 참여 전시 드롭시티의 밀라노 디자인 위크 행사 ‘In-Progress’에 참여했다. 드롭시티는 밀라노의 옛 중앙역 터널 시설을 리노베이션한 공간으로 디자인, 건축, 사회를 탐구하는 리서치 센터 역할을 한다. 올해 행사 역시 미래 세대의 삶과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현재 건축과 디자인 시스템에 한계가 있다는 인식을 토대로 새로운 대안을 소개하는 전시와 강연이 주축이 되었는데, 아키모스피어도 전시 초청을 받았다. 재생과 확장이 무한대로 가능하다는 알루미늄의 성질을 바탕으로 다양한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는 점을 흥미롭게 본 것 같다. 2024 밀라노 한국공예전 <사유의 두께>에도 초청되어 전시의 파트 3에 해당하는 ‘공존의 마당’ 작업을 했다. 전시 작품 드롭시티의 전시는 아키모스피어가 그간 알루미늄을 탐구한 과정을 단계별로 나눠 제시하는 형식을 취했다. 초창기 프로파일 샘플부터 다양한 프로젝트의 접목에서 나온 효용, 알루미늄으로 구축된 파빌리언까지 보여주며 디자이너의 고민이 소재가 타고난 속성을 초월할 수 있도록 하는 여정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한국공예전에서는 그것이 열리는 로사나 올란디라는 공간에 여러 전시가 하나로 연결될 수 있게 하는 디자인이 필요하다고 이해했다. 그래서 한국의 초가지붕을 형상화한 파빌리언을 설치해 한옥의 ‘마당’ 같은 역할을 하는 공간을 조성했다. 기억에 남는 반응 드롭시티에서 받은 많은 질문이 ‘재생’에 대한 것이었다. 언젠가 한번 재생 알루미늄을 활용해 작업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은 나도 하고 있었지만 적합한 프로젝트를 만나지 못해 미뤄두고 있었는데, 이번에 그에 대한 고민을 능동적으로 병행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미래 세대를 위해 고민해야 한다는 그들의 태도가 새삼 자극이 되었달까. 한국공예전 경우에는 애초에 ‘분위기’를 만드는 데에 초점을 둔 프로젝트였다. 로사나 올란디라는 공간의 모든 요소, 지붕의 각도, 창의 위치, 나무 하나까지도 염두에 두고 마치 원래 여기에 있던 시설처럼 자연스러운 느낌을 내는 데에 중점을 뒀기 때문에, 다른 어떤 피드백보다도 칵테일 파티를 비롯해 전시 기간 내내 많은 사람이 그 공간을 즐겼다는 소식을 가장 큰 성취로 여긴다. archimosphere.kr




WKND Lab
[ Alcova Milano 2024 & Isola Design Festival 2024 ]
위켄드랩이라는 디자인 듀오로 활동하고 있는 전은지, 이하린. 위켄드랩은 ‘지속가능성’이라는 테마를 중점으로 탐구하는 디자인 스튜디오다.
올해 이솔라 디자인 페스티벌에서 1위를 차지한 ‘Paper Stratum No.3’.

올해 이솔라 디자인 페스티벌에서 1위를 차지한 ‘Paper Stratum No.3’.

알코바에서 첫선을 보인 최신작 ‘Depth of a Line’.

알코바에서 첫선을 보인 최신작 ‘Depth of a Line’.

작업 세계 스튜디오 오픈 초기에는 새로운 소재를 개발한다거나 하는, 환경적 측면의 지속가능성에 집중해왔다. 2022년부터는 다음 단계로 접어들었다. 문화적, 사회적 측면에서도 지속가능성이라는 가치를 추구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전통 소재나 기술의 새로운 활용성을 찾는다거나, 그를 통해 사라지고 있는 장인들을 재조명하는 식으로. 전통 소재가 친환경적인 요소가 많아, 배우고 확장하는 과정에서 일련의 유기성을 느끼는 중이다. 참여 전시 밀라노 곳곳의 방치된 폐허들을 디자이너들의 작품과 전시로 채워 새로운 가능성을 도출하는 작업을 하는 전시 플랫폼 알코바에 참여했다. 알코바는 최근 몇 년 동안 큰 반향을 일으켜 작년 12월 미국 마이애미에도 진출했는데, 위켄드랩은 거기서 처음 알코바와 연을 맺고 이번에 밀라노 행사까지 함께하게 됐다. 플랫폼이 가진 결이나 파급 효과 측면에서 위켄드랩의 방향성과 부합하는 바가 있다고 느꼈다. 전시 작품 최근에 위켄드랩이 주목하고 있는 기술인 옻칠 기반의 신작 ‘Depth of a Line’을 비롯해 전통 매듭을 활용한 ‘MAEDEUP’, 한국의 종에서 영감받은 ‘BEOMJONG’ 등 다양한 작업물로 밀라노 교외에 위치한 저택인 빌라 바가티 발세키(Villa Bagatti Valsecchi)의 방 하나를 꾸몄다. 작년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 참가했던 이솔라 디자인 페스티벌에서 올해도 초청을 해줘 알코바와 별도로 그곳에도 출품했는데, ‘Paper Stratum No.3’가 올해 어워드에서 1위를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과월호 매거진이나 쇼핑백 등 유휴 자원과 옻칠 테크닉을 활용해 만든 꽃병 작업이었다. 인상 깊었던 측면 제아무리 국제적인 규모의 행사라도 어느 정도는 해당 행사가 열리는 지역성이 기반이 될 수밖에 없는데, 밀라노 디자인 위크는 ‘멜팅팟’ 같은 느낌이 있다. 정말 다양한 사람들과 다채로운 결의 작품들이 모이고, 하나같이 놀라울 정도로 열린 태도를 보여준다. 그들과 대화하며 우리가 애초에 상상했던 것 이상의 뭔가를 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어 좀 신이 났던 것 같다. 새로운 영감 위켄드랩은 순수예술의 경계에 있는 작업도 이어오고 있다. 해외 전시 기회가 있을 때마다 흔쾌히 응하는 데에는 그런 이유도 있다. 아무래도 국내보다는 디자인과 파인아트를 명확히 구분 짓지 않고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기조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번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일본 디자인 스튜디오 WE+가 두오모 광장 근처에서 큰 인스톨레이션 작업을 했는데, 그게 참 근사했다. 위켄드랩도 언젠가 밀라노의 멋진 공간에서 인스톨레이션 작업을 하면 좋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우리가 지금껏 다뤄온 소재들과 테크닉을 종합해볼 수 있는 작업이 된다면 더없이 기쁠 것 같다. wknd-lab.com




KIM BYUNGSUB
[ Dolce&Gabbana Gen D, Vol.2 ]
독립 디자이너 김병섭. 현대와 전통 사이의 공백과 균형을 표현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김병섭 디자이너의 돌체앤가바나 Gen D Vol.2 작업 결과물인 ‘Ceramic Nacre’.

김병섭 디자이너의 돌체앤가바나 Gen D Vol.2 작업 결과물인 ‘Ceramic Nacre’.

이탈리아 모자이크 장인들과의 소통을 위해 만들었던 작업 설계도.

이탈리아 모자이크 장인들과의 소통을 위해 만들었던 작업 설계도.

작업 세계 어릴 때, 해외의 경우 어디에서 공부했는가에 따라 특유의 디자인 기조를 갖게 되는 게 멋있다고 생각했다. ‘한국적인 디자인은 뭘까’를 찾다가 경복궁 뒤에 유리 빌딩이 서 있는 광경처럼, 전혀 다른 속성을 가진 것들이 어우러지는 게 자연스럽게 내 미감에 녹아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후로 시대성이 다른 것들을 겹쳐 본다거나 시간의 갭을 벌려 보는 등의 시도를 지속하고 있다. 참여 전시 Gen D는 돌체앤가바나가 세계 곳곳의 젊은 디자이너 10명과 협업해 가구를 만드는 프로젝트다. 가장 중요한 점은 이탈리아의 장인들과 협업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감각의 가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젊은 디자이너들과 장인들이 각각 다른 방향의 가능성을 발견하도록 다리 역할을 해주며, 밀라노 디자인 위크 기간 동안 결과물을 공개하는 전시를 연다. 전시 작품 기존에 나전칠기를 활용한 작업을 해본 적이 있는 나는 ‘작은 조각들을 붙여서 형상을 만드는’ 모자이크 공예에 관심이 생겨 함께 작업하게 됐다. ‘Ceramic Nacre’는 수납장 겸 오브제 개념의 가구다. 표면은 도자기 모자이크로 되어 있는데, 그것이 모여 나전칠기에서 따온 패턴을 이루도록 했다. 통상적으로 쓰는 화려한 색의 타일 대신 모노톤의 타일을 써서 모자이크의 공예적 아름다움이 한층 더 잘 보이도록 하고, 동시에 한국적 미감을 담으려 했다. 인상 깊었던 측면 섭외 연락이 인스타그램 DM을 통해서 왔다. 큐레이터와 협업해 세계 각지의 무수한 디자이너들 중에서 후보를 추리고 선정한다는데, 선정된 디자이너들 면면에서부터 정말 폭넓고 면밀하게 찾아봤다는 느낌이 들었다. 돌체앤가바나와 밀라노가 가진 힘에 대해 생각했고, 작년에 Vol.1에 선정되었던 디자이너들까지 만나 대화를 나눠볼 때는 이 프로젝트가 매해 지속되며 낳을 효과를 상상하게 됐다. 기억에 남는 반응 작품을 보면서 스스럼없이 반응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떤 지점이 좋았는지, 어떤 부분이 궁금한지 작가에게 굉장히 캐주얼하게 알려주기도 하고. 사람들이 내 작업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대해 내가 그간 상상에 의존하는 부분이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됐고, 현장에서 즉각적인 반응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게 굉장히 좋았다. 밀라노 디자인 위크라는 틀 안에서 도시 전체가 좀 더 자유롭게 소통하는 것 같았달까. 전시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저녁에 식사하러 갔다가도 옆 테이블 사람과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묻고, 서로의 작업을 보여주고, 새로운 기회를 발견하기도 했다.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더 많은 것을 해보고 싶다는 꿈을 품게 됐다. 기왕이면 더 큰 기회로. kimbyungsub.com




STUDIO GYU
[ Salone del Mobile Salone Satellite ]
독립 디자이너 이형규. 작년 말 오픈한 스튜디오 GYU를 통해 사물과 공간에 대한 폭넓은 크리에이티브 및 개발 서비스를 제공한다.
올해 살로네 델 모빌레의 ‘Silhouette from AI : Lounge Chair 02’ 전시 부스 전경.

올해 살로네 델 모빌레의 ‘Silhouette from AI : Lounge Chair 02’ 전시 부스 전경.

이형규는 살로네 델 모빌레 전시를 염두에 두고 ‘Silhouette from AI : Lounge Chair 02’를 최소 단위로 분해가 가능하도록 모듈 설계했다.

이형규는 살로네 델 모빌레 전시를 염두에 두고 ‘Silhouette from AI : Lounge Chair 02’를 최소 단위로 분해가 가능하도록 모듈 설계했다.

작업 세계 새롭고 대담한 시도를 통해 좋은 제품을 만들어내고 싶다는 방향성을 갖고 있다. ‘아름다움’보다는 ‘의미가 있는 새로움’을 추구한달까. 일례로 최근에는 디자인 과정에서 AI 프로그램을 활용해 가구를 만드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참여 전시 살로네 사텔리테는 살로네 델 모빌레에서 운영하는 디자이너 지원 프로그램이다. 35세 미만 디자이너를 선발해 살로네 델 모빌레에서의 전시와 다양한 커넥션을 제공한다. 큰 기회를 주는 만큼 MoMA 건축디자인 부서 수석 큐레이터를 의장으로 한 100명이 넘는 심사위원단이 전 세계 무수한 지원자 중에서 옥석을 골라내고 있다. 간절한 마음으로 지원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도 내가 선발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아무튼 비전공자로 회사 생활 중에 우연히 디자인을 접한 후 이 업계에 발을 들이게 된 내게는 가장 적절한, 가장 필요한 기회였다. 전시 작품 ‘Silhouette from AI : Lounge Chair 02’를 전시했다. 딥러닝 기술을 디자인 프로세스에 통합해 현대적인 디자인 맥락에 적합하면서도 한층 새로운 접근 방식을 모색한 것이다. 일단 목적에 적합하며 사용자의 통제권이 높은 머신러닝 프로그램을 만들고, 거기에 1920년대부터 1970년대 사이 모더니즘 시대에 디자인된 의자 60종을 학습시켰다. 형태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내가 직접 스케치한 다양한 각도의 이미지들로. 그리고 모두 지운 후 해당 프로그램이 백지에서부터 완전히 새로운 의자를 디자인하도록 한 것이다. 실물로 구현하는 과정에서는 모더니즘 가구들의 주요 소재와 구조를 공부하고 적용했는데, 결과적으로 AI와 공예 요소들이 조화를 이룬 작업이 된 것 같아 흡족하다. 살로네 델 모빌레 참가를 위해 최소 단위로 분해하고 다시 설치가 가능하도록 모듈형으로 설계했다. 기억에 남는 반응 젊은 사람들은 이 작업의 개념적인 부분, 즉 AI가 어떻게 작업에 활용되었는지를 흥미로워하고 때로 열광했다. 대신 결과물의 디테일에는 관심이 적어 보였다. 반면에 나이가 있는 분들은 의자의 실루엣, 실제 착용감 같은 부분을 중점적으로 보고, AI에 대한 설명은 잘 이해 못 하는 듯 보였다. 다음 전시에는 그런 상반된 이해의 융화에 대해 좀 더 고민해볼 예정이다. (살로네 사텔리테는 한번 선발되면 세 번까지 전시 기회를 준다.) 인상 깊었던 측면 살로네 사텔리테의 다른 참가자들 작품을 보며 많은 영감을 얻었다. 무엇보다 크게 느낀 건, AI나 지속가능성 같은 이슈들이 흥미롭고 중요하긴 하지만 결국 본질은 그 형태나 소재로 얼마나 설득력 있는 것을 만들어내는가 하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덕분에 ‘Silhouette from AI’의 다음 단계로 AI 기술과 조형적인 아름다움이 좀 더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룬 개선점을 연구하고 있다. studiogyu.com

Credit

  • PHOTOGRAPHER 김성룡
  • ART DESIGNER 주정화

MOST LIKED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