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에스콰이어> 에디터들이 추천하는 이 달의 책

프로필 by ESQUIRE 2023.06.14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

김상욱 / 바다출판사
세상의 모든 것을 알고 싶은 물리학자가 세상을 설명하기 위해 책을 썼다. 그런데 그 첫발을 원자부터 떼었다는 것. 그러니까 원자에 대한 설명으로 1장을 시작한다는 것은 무척 용감한 일이다. 제목에 포함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이 모두 원자로 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독자는 설마 이 책의 첫 장에 양자역학과 코펜하겐 해석이 나올 거라고는 상상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다리시라. 이 책은 생명부터 재밌어진다. 물리학자는 과연 생명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유지와 보존의 결합으로 이해되는 생명의 특성보다 더 큰 가르침은 ‘우주 전체를 보면 죽음이 자연스러운 것이고 생명이야말로 부자연스러운 것’이라는 당연한 사실이다. 탄소, 수소, 산소, 질소 원자가 97%를 이루는 인간이라는 원소의 집합이 그 상태를 유지하고 복제하기 위해 끊임없이 뭔가를 해나가는 상태가 전 우주를 놓고 보면 지나치게 특이한 상태라는 물리학자의 성찰은 책을 읽고, 밥을 먹고, 글을 쓰고, 잠을 자는 모든 행위에 매우 기묘한 감정을 덧씌운다. 박세회

 

갈대 속의 영원

이레네 바예호 / 반비
출발점은 ‘책 사냥꾼’들의 여정이다. 이집트 왕의 도서관에 세상의 모든 책을 채워 넣기 위해 바다 건너를 떠도는 밀사들의 이야기. 동화 같은 뉘앙스의 모험은 소설 같은 문체를 만나 마치 셰헤라자데가 샤리아 왕에게 들려준 천일야화 중 하나쯤 될 것처럼 들리지만, 실상 논픽션이다. 이 책의 정체는 문헌학자인 이레네 바예호가 ‘이야기꾼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책과 인류가 맺어온 관계’에 대한 책이다. 그것은 ‘책의 역사’와 동의어인 듯 미묘하게 다르다. 그의 이야기는 역사에서 영화로, 우화로, 자신의 경험담으로 끊임없이 도약하고, 그래서 처음 인간이 소리를 내지 않고 책을 읽었던 순간의 경이로움, ‘걸어 다니는 책’이었던 음유시인의 고단하고도 아름다운 삶, 모든 책을 갖춰 오히려 아무 책도 읽지 못하게 되는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 대한 예언이란 것을 깨달을 때의 충격, 그 모든 것이 독자의 마음에 성큼 다가선다. 저자는 끝내 책의 운명에 대한 어떤 주장도 내놓지 않지만, 책을 덮을 때에는 제목과 부제가 새삼 뭉클하게 읽히기도 할 것이다. 오성윤 

 

완전판 캘빈과 홉스

빌 워터슨 지음/ 북스토리
시니컬하고 상상력 풍부한 꼬마 캘빈과 캘빈 앞에서만 살아 움직이는 호랑이 인형 홉스의 이야기를 처음 접한 건 2000년대 초반이었다. 어린이를 위한 만화는 아니었지만 조숙한 초등학생이던 나는 재미있게 읽었다. ‘아빠 지지율’이 하락 중이니 아들에게 더 잘 하라고 아빠를 압박하거나, 상속을 받아 부자가 되고 싶으니 더 열심히 일하라고 부모에게 요구하는 발칙한 꼬마는 초등학생이 보기에도 웃겼던 것이다. 그래서 추억 속 <캘빈과 홉스>가 무려 24년 만에 완전판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소식은 무척이나 반가웠다. 완전판은 작가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만 10년간의 연재분을 전부 담았고 과거의 번역 오류도 수정했다. 어린 시절에는 일부러 아이답지 않게 구는 캘빈과, 그런 캘빈의 옆에서 온갖 기상천외한 말썽을 돕는 홉스의 일화들이 마냥 웃기기만 했다. 어른이 되어 다시 읽으니 변하지 않는 우정의 힘과 캘빈의 동심을 지켜주고자 노력하는 부모님의 마음 등 전에는 보지 못한 것들이 보였다. 추억팔이에 속아 추억을 사고 나니 마음이 따뜻해졌다. 김현유

 

웃음이 닮았다

칼 짐머 / 사이언스북스
세계적인 과학 저술가이자 분자 생물학자인 칼 짐머의 첫딸이 그의 아내의 태중에 있을 때, 그와 아내 두 사람은 담당의의 권유에 따라 유전 상담사를 찾아갔다. ‘유전 상담사’라는 직업이 있다는 것 자체가 흥미롭지만 일단 넘어가기로 하자. 그날 짐머 부부는 칼의 외삼촌, 어린 시절 모종의 유전 질환을 앓고 있던 그 외삼촌이 칼의 엄마도 모르는 사이에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곧 태어날 아이가 심각한 유전 질환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짐머 부부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아이를 키우는 분자생물학자는 유전에 대해 깊게 파고들었다. 첫째 딸 샬럿과 둘째 딸 베로니카의 피부 색조가 왜 다른지, 홍채의 색은 왜 다른지, 노래를 잘 부르는 재능은 누구에게 받은 것인지. 원래 이과생이 하나에 미치면 무서운 법이다. 유전의 역사를 파고들기 시작한 칼 짐머는 결국 880페이지에 근친혼만 고수하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유전에 대한 분석부터 현생 인류에 숨은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의 흔적과 게놈 프로젝트에 대한 방대한 설명까지 정리했다. 박호준 

Credit

  • EDITOR 박호준
  • PHOTO 바다출판사/반비/북스토리/사이언스북스
  • ART DESIGNER 김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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