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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AI가 그린 만화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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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깐, 의문점이 드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밥줄이 걸린 작가도 아니고, 독자가 AI 작업을 거부한다니? 내용이 재미있고 그림이 좋다면 수용자의 입장에서는 AI가 그리든 사람이 그리든,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 같은데 왜 분노하는 것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단 독자들이 단순히 상품으로서 만화를 사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파악해야 한다. 웹툰을 본 적이 있는 이라면 이런 댓글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작가님 드리려고 쿠키 구웠어요.” 네이버에서 웹툰 거래에 사용하는 가상화폐를 ‘쿠키’라고 부른다. 독자들은 웹툰의 미리보기 회차를 구매하려고 환전할 때마다 ‘쿠키를 샀다’고 하지 않고 ‘쿠키를 구웠다’고 표현한다. 저 말에는 작품 한 편을 샀다는 단순한 소비 행위를 넘어, 작가를 대접하고 상찬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만화와 같은 예술 콘텐츠에 돈을 지불하며 느끼는 감정은 공장에서 생성된 제품을 구매할 때 느끼는 감정과는 다르다. 독자들은 만화 산업을 작가가 자신의 창의성을 발휘하고 쏟아부은 노고에 공정한 비용을 지불하는 생태계라고 이해해왔다. 이른바 금손의 재능, 작가가 되기까지 갈고닦은 노력, 교육을 받아온 비용, 작품 연재를 위해 맞바꾼 건강, 연재를 위해 고통스럽게 들이는 노동, 그 모든 것에 리스펙트를 보낸다는 개념이다. 내가 인정한 작가가 내가 구운 쿠키를 통해 맛있는 걸 먹고, 상위 랭킹에 오르길 바란다. 그렇게 독자는 작가와 연대감을 구축한다. 작가에게 팬덤이 생기는 것도 이런 원리다.
독자들이 스스로 웹툰 시장을 형성하는 한 축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인건비 감소를 위해 AI가 도입되면 양산형 AI 웹툰이 판칠 것이고, 실력 있는 작업자들이 판을 떠나며 산업 전반이 망가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다. 단순 수용자가 아닌,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는 적극 가담자로서 산업의 붕괴를 걱정하는 것이다.
그 증거로 독자들이 표절과 트레이싱에 예민하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좋을 것 같다.독자들은 좀 더 윤리적이고 정당한 노동을 한 작가에게 옳은 보상을 하고, 이 작품을 선택한 자신의 안목이 자랑스러운 것이 되길 바란다. 표절이나 트레이싱 같은 문제를 일으켜 자신이 힘들게 벌어 생태계에 기여한 돈의 가치를 우습게 만들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여기에 독자들이 느끼는 모욕감이 더해진다. 직업으로 삼고 있는 작가들뿐 아니라 독자들이 느끼는 모욕이라니? 마르셀 뒤샹의 ‘변기’에서 보듯, 현대의 미술은 레디메이드 된 제품이라도 괜찮다. 쓰레기 봉지라도 괜찮고, 바나나를 붙여놔도 괜찮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처음부터 괜찮았던 것은 아니다. 이런 작품들에 대해 수용자들에게서도 부당한 감정들이 나타났던 것을 떠올려보면 명쾌해진다. 창작 과정에서 작가의 테크닉과 노동의 고통이 안 느껴지는 작품이라면, 그 외의 탁월함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독자들은 AI로 급하게 만들어진 만화들의 저급한 연출 수준과 조잡한 배경, 손가락의 어색함을 지적하며 마치 모욕이라도 당한 것처럼 행동했다. 그런데 웹툰 독자들은 그림은 조금 못 그리더라도 스토리가 좋고 작품성이 있으면 인정해주지 않았나? 그것은 일종의 착시다. 웹툰 독자가 눈이 낮거나 관대한 게 아니다. 독자들은 그림을 못 그리는 작가도 알아보고, 유난히 특정 연출에 약한 작가도 다 알아봤다. 손이 느린 작가, 그림체가 변하는 작가, 작화 붕괴가 일어난 회차도 다 알아본다. 다만 독자들은 이를 ‘익스큐스’ 했다. 작가가 인간이기 때문에, 웹툰에 시간과 노력을 들인 작가의 사정을 알기 때문에 단점이 있어도 그것을 보완하고 상회하는 다른 장점을 발견해가며 감안하고 격려해온 것이다. 인간이기에, 개개인의 특성과 장단점이 다른 작가의 모든 맥락과 사정을 고려해 수용하는 셈이다.
그런데 AI로 급하게 출시된 만화들은 독자들의 이런 오랜 배려를 계산이라도 한 듯 보였다. ‘독자들은 그림에 안 예민해’ ‘어차피 효과를 떡칠하면 잘 그린 줄 알아’ ‘한 편 보는 데 어차피 1분도 안 걸리잖아’ ‘최고 수준의 연출을 해도 어차피 몰라’라는 생각을 그대로 담은 듯, ‘적당한’ 작업물을 내놓고 독자들의 지갑이 열리길 기다렸다. 더욱 탁월함을 증명해야 할 판에 독자들을 얕본 것이다.
독자들이 AI 만화에 분노한 이유는 이처럼 종합적이다. 그렇다면 AI로 만화를 작업하는 것은 불가능한가? 아닐 것이다. AI는 특이점을 넘었다. 이 흐름은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중요한 건 위에서 설명했듯, 독자들의 소비 심리와 모욕감의 정체를 확실히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흔히 ‘기계에 밀려난 인간들’이라며, 기술의 발전을 겁내는 비문명적인 심리로 설명하는 것은 초점을 잘못 맞춘 것이다.
AI로 만든 만화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면, 독자들의 반발은 어떻게 되는 걸까. 이에 대해서는 손으로 진행했던 만화 작업이 디지털로 옮겨가던, 포토샵 초창기의 분위기와 비교가 가능할 것 같다. 당시 포토샵의 다양한 기능이 외부에 알려지며, 디지털 작업을 수행하던 콘텐츠 제작자들은 ‘간단한 작업 하나만 포토샵으로 해 달라’는 요구를 종종 받았다. 이런 요구를 하는 사람들은 포토샵에서 적절한 명령만 내리면 작업물이 뚝딱 나오는 줄 알았던 것이다. 지금은 포토샵을 전혀 못 쓰는 사람이라도 포토샵 작업에는 작업자의 예술적인 창의성과 기술적 능력이 필요하며, 이런 요구가 아주 부당하다는 것을 안다.
AI 작업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단순한 ‘딸깍이’로 보이지만, 막상 해보면 그렇지 않다. 어떤 방향으로든, 인간의 창의성과 노력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저 지금까지와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AI 만화가 독자들의 이해를 얻기 위해서는 한 가지 심플한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으면 된다. 독자들이 돈을 지불할 가치가 있고, 상대는 그 돈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답을 얻기 위해 고민해야 할 부분이 있다. 우선적으로는 AI 학습에 이용된 작품들의 저작권 문제를 해결해 윤리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또 단기 매출에만 눈이 멀어 양산형 작품을 내놓고 독자들의 안목을 얕보지 않을 것이란 확신도 필요하며, 이 모든 것이 웹툰 산업의 발전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장기적 비전도 보여야 한다. AI의 등장으로 이 판이 망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들이 이를 통해 새로운 지평을 열거나, 업계 전반의 상향 평준화가 이뤄진다거나, 인간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해 자신도 몰랐던 창의력을 끌어낼 수 있다는 가능성 등이 보이면 된다. 그러나 이를 제대로 보여주기 전까지 독자들이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도 이해해야 한다.
서두르고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아직 AI와 함께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았다. 앞으로 그다지 밝지만은 않은 미래가 올지도 모르지만, 흐름은 꺾을 수 없다. 독자의 입장에서, AI 만화를 읽을 준비를 미리 할 필요는 없다. 오로지 독자는 내 돈을 쓸 자격이 상대에게 있는지 판단할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것, 그 사실만큼은 결코 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전혜정은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콘텐츠스쿨의 교수다.
Credit
- EDITOR 김현유
- WRITER 전혜정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JEWE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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