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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G는 현대 블록버스터를 어떻게 망쳐 왔나?

프로필 by 김현유 2023.07.29
 
제목 그대로다. 이 글은 CGI가 현대 블록버스터 영화를 죽이고 있다는 이야기다. Z세대에 해당하는 독자라면 이게 무슨 소리인지 납득이 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들은 태어나면서 이미 CGI가 뉴노멀인 시대에 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모든 특수효과가 CGI로 만들어지는 세상에서 태어난 세대에게 CGI는 그냥 공기 같은 것이다. <분노의 질주> 시리즈를 한번 생각해보시라. 올해 개봉한 <분노의 질주 : 라이드 오어 다이>는 대부분의 자동차 추격 장면을 CGI로 완성했다. 2001년 개봉한 <분노의 질주>는 그렇지 않았다. 대부분 장면은 실제 자동차를 활용한 스턴트로 만들었다.
이 글을 읽는 Z세대 독자는 지금쯤 놀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 자동차를 이용해서 액션을 찍었다고? 오로지 편집의 마술만으로 액션 장면을 만들어냈다고? 그렇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나는 얼마 전 OTT 서비스 ‘왓챠’와 함께 ‘왓챠파티’라는 걸 진행했다. 접속한 이용자들과 영화를 함께 보며 해설을 하는 행사였다. 내가 꼽은 영화는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1982)였다. 매 장면 나는 “이 장면은 CGI가 아니라 배경 그림과 실제 연기 부분을 일일이 필름 위에 합성한 매트 페인팅이라는 기술로 만든 겁니다”라거나 “날아가는 자동차를 잘 보세요. 자동차에 매달린 선이 희미하게 보일 겁니다. 크레인으로 매달고 찍은 거예요”라는 설명을 했다. 그럴 때마다 “이게 CGI가 아니라고요?”라는 댓글이 쏟아졌다. 그들은 진심으로 놀라고 있었다.
영화 역사상 가장 완벽하고 아름다운 특수효과를 선보였다고 평가받는 <블레이드 러너>에는 CGI로 만든 장면이 하나도 없다. CGI 기술이 없었기 때문이다. 할리우드에서 본격적으로 CGI가 활용되기 시작한 건 1990년대 초반의 일이다. 제임스 캐머런이 <터미네이터 2 : 심판의 날>(1992)에서 CGI 액체 금속 로봇을 선보이자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쥬라기 공원>(1993)에서 CGI 공룡을 공개한 순간은 고전적인 물리적 특수효과의 시대는 끝났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시 고3이던 나는 브라키오사우루스가 등장한 순간 느꼈던 시각적 충격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쥬라기 공원> 이전의 영화적 괴물들은 기계 모형을 만들어 촬영한 뒤 필름에 일일이 합성하는 방식을 택했다. 배우의 연기만 촬영한 장면에 무언가를 디지털로 합성해 넣는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제임스 캐머런과 스티븐 스필버그라는 위대한 작가들이 1990년대 초 할리우드의 역사를 완전히 바꾸어버렸던 것이다.
30여 년이 흘렀다. 이제 CGI로 만들지 않는 것은 없다. 우리는 완벽한 CGI 시대로 진입한 것인가? 고전적인 물리적 특수효과는 이제 완전히 버려도 괜찮은 것인가? 당연히 나는 그렇지 않다고 고집스럽게 주장할 생각이다. 가장 훌륭한 사례는 아무래도 얼마 전 개봉한 <인디아나 존스 : 운명의 다이얼>일 것이다. 사실 이 시리즈는 1989년 개봉한 3편으로 끝냈어야 마땅하다. <인디아나 존스>는 고전적 특수효과의 세계에서 빛나는 이야기였다. 젊은 해리슨 포드가 온몸으로 탱크에 매달리는 스턴트를 하며 찍어낸, 고전적인 활극의 재미가 있었다. 해리슨 포드는 이제 80세 노인이다. 더는 달리는 자동차에 매달리며 영화를 찍을 수 없다.
나는 2008년 개봉한 4편 <인디아나 존스 :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을 보며 절망했다. 2008년은 2020년처럼 CGI 기술이 발전하지 않은 해였다. CGI가 본격적으로 블록버스터 영화에 쓰인 지 20년이 채 되지 않았던 시기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물리적 특수효과 시대를 상징하는 이 시리즈를 CGI의 화력으로 되살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결과는 형편없었다. 특히 나는 자동차를 타고 나치와 정글에서 벌이는 추격 장면에서 절망했다. 1980년대 시리즈에서 느꼈던 추격 장면의 스릴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모든 장면이 그린 스크린 앞에서 촬영돼 CGI로 합성됐다는 사실이 분명히 보였기 때문이다. 사람의 감각이란 참 신기하다. 눈에 보이는 것이 가짜라는 걸 인식하는 순간 스릴은 반감된다. 신기한 것과 진짜 같은 것은 다르다. CGI는 마블 영화처럼 완벽한 가상의 세계를 창조하는 데 더 효과가 좋다. 실재하는 현실의 공간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CGI를 지나치게 쓰는 순간 현실감은 사라진다. 현실감이 사라지면 스릴도 줄어든다. 천재적인 스티븐 스필버그마저도 CGI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디즈니가 <인디아나 존스 : 운명의 다이얼>을 만든다고 발표했을 때 나는 꽤 기대가 컸다. <인디아나 존스 :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으로부터 뭔가를 배웠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기대와 믿음은 배신당했다. 스필버그에 이어 메가폰을 쥔 제임스 맨골드는 거의 모든 장면을 CGI로 발라버렸다. 처음부터 끝까지 엄청난 규모의 액션 장면이 이어지지만 단 한 장면도 손에 땀을 쥐게 하지 못한다. CGI의 약점을 숨기기 위해 대부분의 장면이 컴컴하다. 1980년대 시리즈의 액션 장면들은 언제나 눈이 부시도록 쨍한 태양 아래서 벌어진다. 해리슨 포드는 진짜 태양 아래, 진짜 사막 위에서 트럭을 몰고 탱크에 매달린다. 나도 안다. 80세 해리슨 포드가 더는 그런 스턴트를 펼칠 수는 없다. 하지만 이해하는 것과 납득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인디아나 존스 : 운명의 다이얼>은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 국가의 박스오피스에서 처절할 정도로 망했다. 3억 달러라는 엄청난 제작비를 투여한 이 영화는 영화 역사상(시리즈 역사상이 아니다!) 가장 돈을 많이 잃은 영화로 기록될 예정이다.
나는 <인디아나 존스 : 운명의 다이얼>의 가장 압도적인 반대 사례로 <미션 임파서블 : 데드 레코닝 파트 원>을 들 예정이다. 독자 여러분이 이 글을 읽고 있는 시점에 톰 크루즈의 이 역사적인 7번째 액션 프랜차이즈는 이미 흥행 중일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로튼 토마토의 평점은 거의 100%에 가깝다. 나도 시사회로 영화를 봤고, 거의 무릎을 꿇었다. 아마도 많은 독자는 톰 크루즈가 절벽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뛰어내리는 장면의 비하인드 컷을 유튜브로 봤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CGI로 만들면 되는데 저렇게까지 목숨을 건 스턴트를 할 필요가 있어? 있다. 분명히 있다. <미션 임파서블 : 데드 레코닝>의 클라이맥스 액션 장면들은 관객을 자리에서 튀어오르게 만들 정도의 스릴로 가득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진짜로 찍었기 때문이다. 진짜로 찍은 장면들엔 컴퓨터로 렌더링한 이미지가 포착하지 못한 우연의 디테일들이 존재한다. 아무리 슈퍼컴퓨터가 발달하고 모든 변수를 정교하게 측정해 완벽하게 모델링을 하더라도 기상 상황을 정확하게 예측해내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
역설적이게도 톰 크루즈에게도 CGI는 필요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필요하다. 고전적인 활극의 의미를 아는 톰 크루즈는 <탑건 : 매버릭>에 이어 여기서도 대부분의 액션 장면을 실제로 찍은 다음 CGI로 교묘하게 손보는 방식을 선택했다. 톰 크루즈는 안다. 그는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블록버스터를 만들어온 남자다. 고전적인 물리적 특수효과의 시대와 CGI 시대를 거치면서 살아남은 유일한 스타다. 덕분에 톰 크루즈는 CGI가 가진 함정을 안다. 아직 CGI는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안다. CGI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은 무언가를 드러나게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하게 ‘감추는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여전히 빌딩에 매달리고, 비행기에 매달리고, 절벽에서 뛰어내린다. 톰 크루즈 영화에서 CGI는 주인공이 아니다. 강백호의 왼손이다. 왼손은 거들 뿐이다. 이는 21세기 블록버스터를 만드는 모든 사람이 기억해야 할 명제여야 마땅하다.
 
김도훈은 글을 쓰는 사람이다. <씨네21><geek>과 <허프포스트>에서 일했고, 책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낯선 사람>을 썼다. 
 

Credit

  • EDITOR 김현유
  • WRITER 김도훈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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