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이 너무 힘든 나라, 한국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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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이 너무 힘든 나라, 한국

김현유 BY 김현유 2023.09.04
 
감히 단언할 수 있다. 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힙한 도시는 분명 서울이다. 하지만 드라마 속 치킨 배달도,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한 레스토랑 예약도 관광객에게는 여전히 TV 속 판타지일 뿐이라는 사실을 아는가?
4년 만이었다. 팬데믹과 육아, 그리고 지나치게 올라버린 항공 가격 등의 이유로 미뤘던 한국행을 드디어 결정했다. 우리 가족은 포틀랜드의 친구 커플과 함께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6월의 인천공항은 8월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지글지글 끓고 있었다. 지루한 비행과 입국심사로 칭얼대던 딸아이에게 뭐라도 사주기 위해 공항 내 편의점으로 발길을 옮겼다. 아이스크림 하나를 집어 계산대로 갔더니, 직원은 간데없고 셀프 계산을 하라는 메시지만 달랑 떠 있었다. 과연 잃어버린 휴대폰조차 훔쳐가지 않는다는 한국에 도착하긴 했구나 싶어 묘한 기분이 드는 동시에, 사용 방법을 몰라 한참을 헤매야 했다. 고작 아이스크림 하나 사고 나왔을 뿐인데 이상하게 주눅이 들었다.
이렇듯 교포로서 나의 지위가 공고해질 때쯤, (외국인) 남편이 물었다. “한국 유심칩 사야 하는 거 아냐?” 미국에서 하던 업무가 있었기 때문에 비상시 연락이 닿지 않을까 걱정이 됐던 터라 본래 쓰던 미국 통신사의 해외 로밍 한 달권을 쓰기로 했다. 이때까지는 몰랐다. 본인 인증이 가능한 한국 휴대폰 번호가 없으면 어떤 불편한 일들이 벌어지는지.
안국역에서 멀지 않은 레지던스를 예약했을 때부터 사실 나는 이미 내가 외국인 관광객이 다 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서울 거주자들은 가지 않는, 관광객으로만 가득한 인사동이나 한옥마을에 가고 싶어 하는 것 자체가 관광객의 마인드 아닌가. 나와 가족들, 그리고 친구 커플은 여행 내내 게으른 로컬이라면 결코 하지 않을 법한 ‘줄서기 오픈런’을 숱하게 해냈다. “포틀랜드 빵집은 여기 비할 바가 아니야. 서울만 이런 거야, 아니면 다른 도시의 빵도 다 이렇게 맛있는 거야?” 포틀랜더 친구 커플이 북촌의 한 베이커리에서 한 말이다. 미식 부심이라면 그 어느 나라, 어느 지역 사람들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 포틀랜더들조차 ‘음식에 언제나 진심’인 한국의 수준에는 놀라게 되는 것이다.
감탄하던 이들이 간편하고 재빠른 한국의 시스템에 좌절하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친구 커플을 애먹인 것은 레스토랑 예약이었다. 몇몇 유명 레스토랑 홈페이지에 영어 소개글과 함께 문의 이메일이 있어 몇 주 전부터 여러 번 메일을 보냈으나, 답변을 해온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는 것이다. 찾아낸 예약 앱은 컴퓨터로는 아예 구동이 되지 않았고 영어 버튼을 찾기가 어려웠다.
호기롭게 대신 해주겠다고 답한 뒤 예약 앱을 다운로드하고 예약 날짜와 시간을 입력했는데 이런, 로그인을 요구했다. 카카오톡 연동 버튼이 있어 눌렀지만, 잠시 후 이것이 눈가림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름부터 시작해 귀찮은 정보를 입력하고 다시 회원가입 수순을 밟아야 했던 것이다. 예약 앱이니 휴대폰 번호가 필요하다는 것은 이해했다. 문제는 국가번호를 원천 봉쇄하고 있어 예약이나 결제는 둘째치고 외국 번호를 가진 사람은 가입 자체도 불가능했다. 이럴 거면 카카오톡 연동은 도대체 뭐 하러 하는 걸까?
결국 한국 친구에게 대행을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그중 몇 군데는 미리 예약금을 내야 했기에, 한국 친구가 자신의 카드로 납부하고 우리가 돈을 주면 포틀랜드 친구가 다시 우리에게 전달하는 아날로그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예약 앱 때문에 곤란한 상황은 또 있었다. 한국 친구들이 나와 약속을 잡으며 레스토랑을 예약하고, 앱을 통해 정보를 보내주었기 때문이다. 카카오톡을 통해 예약에 초대받았다는 메시지와 함께 링크가 오는데, 나는 앱 가입자가 아니기 때문에 정보를 확인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친구에게 구구절절 설명해야 했다. 현재 나는 한국 휴대폰 번호를 가지고 있지 않고, 그래서 이 앱에 가입을 할 수 없으며, 따라서 네가 보내준 정보를 읽을 수 없으니, 귀찮겠지만 레스토랑 주소와 시간을 직접 타이핑해서 알려줄래? 친절한 그녀는 나에게 주소를 찍어주는 대신, 편하게 보라고 네이버나 카카오 맵에 있는 주소를 카피하여 알려줬다. 결국 나는 앱스토어를 열고 네이버와 카카오 맵을 다운로드해야 했다. 적어도 네이버나 카카오 맵은 휴대폰 번호 기입을 강요하진 않으니 다행이랄까. 사실 한국에 왔으니 한국인들이 쓰는 앱을 다운로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또 남편과 친구들은 네이버 맵의 영어 정보가 완벽하지는 않아도 꽤 쓸 만하다고 했다. 그나마 우리는 영어권에서 왔으니 다행이다. 영어를 잘 하지 못하는 다른 국가의 외국인들은 어떨까? 네이버나 카카오 맵이 도움이 될까? 모를 일이다.
더 사려 깊은 친구는 여의도에 있는 유명한 일식집 좌표를 네이버 맵이 아닌 구글 맵으로 전달했다. 구글 맵을 주로 사용하는 나를 위한 배려였다. 괘씸하게도 구글 맵은 본점과 별관점을 헷갈려 했다. 오락가락한 구글 맵 덕에 스시 한 점 먹으려고 한여름 여의도 직장인들 사이를 땀띠 나게 뛰어다녔던 작은 추억이 생겼다. 사실 한국에서는 구글 맵이 잘 작동하지 않는다. 버스나 지하철 정보는 뜨지만 도보 및 자동차 내비게이션 역할은 사실상 막혀 있다. 군사 안보 이유라고 하는데, ‘공간정보 구축 및 관리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누구든 국토해양부장관의 허락 없이 지도 데이터를 국외로 반출할 수 없다고 한다. 구글의 해외 서버에 지도 데이터가 저장되는 것을 국외 유출로 보기 때문에 구글 맵의 기능에 제한이 생긴 것이다. 한국에 처들어오기로 마음먹은 해외의 적들이 제발 구글 맵을 이용해 나를 비롯한 외국인 관광객들처럼 혼란에 빠지길 바라는 바다.
레스토랑 예약 앱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한국 여행에 가장 필요한 세 가지 앱이라면 레스토랑 예약 앱을 비롯해 카카오 택시, 그리고 배달 앱이 아닌가. 그런데 셋 모두 한국 휴대폰 번호가 없으면 가입이 불가능했다. 결국 나는 한국 친구들에게 택시 예약이나 배달을 부탁해야 했는데, 그들이 내 대신 택시비와 배달 음식비를 내야 한다는 의미라는 걸 깨닫고 나서는 택시 예약과 배달 자체를 포기하게 됐다. 한국 드라마나 예능을 보고 버킷 리스트를 짜고 있는 외국인 관광객들은 아마, 현지의 한국 친구를 만들어 그들에게 기대지 않고서는 한국의 문화를 결코 완벽하게 즐길 수 없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을 것이다.
예약과 배달의 본인 인증을 모두 포기하고 워크인으로 레스토랑에 찾아간대도 쉽게 밥을 먹기는 어렵다. 맛집의 대기줄 번호를 받으려면 역시 한국 휴대폰 번호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국가번호가 막혀 있던 탓에 결국 우리는 멀리 집에서 한적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노모의 한국 휴대폰 번호를 이용하는, 아주 피곤하고 골치 아픈 전략을 써야만 했다.
한국 사회의 많은 일상이 스마트폰에 의지하는 부분이 크기 때문에 이와 관련한 다양한 불편함이 존재했으나, 이외에도 글로벌 관광객들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모습은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뉴욕에 살 때, 남편은 나 대신 나서서 한국의 지하철 및 대중교통이 얼마나 깨끗하고 잘 운영되고 있는지 자랑하곤 했다. 그러나 우린 세계 최고 수준의 자랑스러운 지하철 역사 내 그 어디에서도 T머니 카드를 구할 수 없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급한 대로 1회용 T머니 카드를 구입해서 쓰고, 카드 자체는 환불받을 수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나 역내에서 마주친 건 T머니 충전기기뿐이었고, 구입기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T머니 카드를 구입하는 위치에 대한 설명은 오로지 한글로만 쓰여 있었는데, 한국어로 20년 가까이 기사를 써냈던 나조차도 불친절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 어느 나라를 여행하면서도 지하철 입구에서 지하철 티켓을 팔지 않는 곳은 본 적이 없다. 그런데 그 나라가 바로 내 나라였다니.
지난 10년의 이민 생활 동안, 미국에서 한국의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여러 경험을 통해 체감했다. 심지어 내가 ‘한국인이라서’ 나와 친해진 미국 친구들이 있을 정도다. 그들은 종종 북한에 대한 나의 의견을 묻고는, 이어 조심스럽게 〈사랑의 불시착〉을 봤는데 너무 재미있었다며 다른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추천해달라곤 했다. 해외에서 나의 어깨는 점점 올라가고 있는데, 외국인들이 돈을 들고 환호하며 내 조국으로 몰려드는데, 관광객들을 위한 인프라는 너무도 인색하다. 예약 불가, 택시 불가, 배달 불가, T머니 카드 구입 불가, 수많은 ‘불가능’의 경험을 뒤로한 채 나는 다시 포틀랜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다음에 올 땐, 내 고향 서울이 조금 더 낯선 여행자에게 관대한 도시로 거듭나 있길 바라면서.
 
손혜영은 프리랜스 에디터로, 〈마리끌레르〉〈인스타일〉 등에서 피처 에디터로 일했다. 현재 남편, 딸과 함께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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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김현유
    WRITER 손혜영
    ILLUSTRATOR MYCDAYS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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