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가을을 위한 북마크

네 명의 아트북 서점 디렉터들이 고른 책.

프로필 by ESQUIRE 2023.11.13
 
 
IRASUN
이라선은 서울대학교에서 사진 미학을 전공한 김진영 디렉터가 2016년 오픈한 사진집 전문 서점이다. 사진 저널리스트로도 활동할 만큼 사진에 대한 인사이트가 깊은 김진영은 책 한 권을 들여오더라도 출판사를 직접 찾아갈 만큼 큐레이팅에 세심함을 담는다.  
<LEAVING AND WAVING> Deanna Dikeman<LEAVING AND WAVING> Deanna Dikeman<HOW I TRIED TO CONVINCE MY HUSBAND TO HAVE CHILDREN> Olga Bushkova<HOW I TRIED TO CONVINCE MY HUSBAND TO HAVE CHILDREN> Olga Bushkova
좋아하는 사진가는 누구인가.
리 프리들랜더(Lee Friedlander)다. 어느새 아흔이 된 그는 병원 침대에 누워서도 거울에 비친 자신을 찍을 정도로 포트레이트를 사랑한다. 사진에 빠지게 된 초창기에 그의 작업을 많이 들여다보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사진집의 매력은 무엇인가.
동시대 사진집은 그저 개별 사진의 합으로만 남기를 거부한다. 낱장의 사진이 포토북으로 엮임으로써 의미는 확장되고 하나의 독창적인 예술 작품이 된다. ‘사진집>개별 사진의 합’이라는 부등호가 성립된다는 것이 가장 인상적이다. 이미지와 텍스트 같은 재료가 편집, 구조, 인쇄 등의 다양한 형식적 매개변수를 거쳐 완성된 후, 작가보다 오래 살아남는다.
소장한 사진집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것은.
올가 부시코바(Olga Bushkova)의 <나는 아이를 가지기 위해 남편을 어떻게 설득했는가(How I Tried to Convince my Husband to Have Children)>다. 이 책은 아이를 갖고 싶었던 작가가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는 남편을 설득하는  3년간의 과정을 담았다. 작가는 남편을 설득하기 위해 친구의 아이들과 함께 가족사진을 찍고 이를 집에 붙여놓았다. 책 중간중간엔 남편을 설득하는 동안 끊임없이 복용해야 했던 피임약 사진도 있다. PVC로 인쇄된 40여 장의 피임약 사진은 네 쪽마다 한 번씩 등장한다. 이러한 규칙성은 정기적인 배란과 이에 따른 피임약 복용을 책 전반에 걸쳐 상기시킨다. 독자 역시 규칙적으로 알약을 보면서 책장을 넘길 수밖에 없다. 책 내용과 맞물리는 구조적 장치가 굉장히 매력적이다.
판매하고 있는 사진집 중 한 권을 추천한다면.
디에나 다이크먼(Deanna Dikeman)의 <헤어짐과 배웅(Leaving and Waving)>. 1991년 여름, 부모님의 집을 방문한 디에나 다이크먼은 손을 흔들며 자신을 배웅하는 부모님을 찍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27년 동안 계속해서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 사진집은 특별하거나 거창할 것 없는 이 행위를 반복적으로 보여주는데, 이러한 방식을 통해 부모의 변함없는 사랑을 전달한다. 페이지를 넘김에 따라 부모님은 나이가 들고, 중간부터는 아버지가 사라진다. 하지만 무겁거나 슬프게 다가오진 않는다. 어머니가 즐겨 입은 밝고 화려한 옷 색깔을 반영해 컬러 삽지를 넣었기 때문이다. 
 

 
THE PHRASE
전 <마리끌레르> 패션 에디터 김누리, 패션 디자이너였던 최태순 부부가 설립한 더 프레이즈는 요즘 가장 핫한 아트북 서점 중 하나다. 이들이 큐레이팅한 패션, 건축, 사진, 예술 분야의 다양한 아트북과 매거진을 보면 부부가 쌓아온 감각과 취향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STUDY> Christopher Niquet<STUDY> Christopher Niquet<STUDY> Christopher Niquet<SOMEWHERE> Shin Sunhye<SOMEWHERE> Shin Sunhye
좋아하는 사진가는 누구인가.
콜리어 쇼어(Collier Schorr)의 인물 사진을 좋아한다. 명확히 구체화되지 않은 인물의 다양한 정체성이 자연스럽게 사진 속에 드러나는 데서 큰 영감을 얻는다. 특히 모델 폴 아멜린과 교류하며 찍은 <폴의 책(Paul’s Book)>을 인상 깊게 봤다.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경계를 넘나드는 점도 매력적이다. 책이 출간되었을 때 북 사인회에서 사인을 받기도 했다.
사진집의 매력은 무엇인가.
우리에게 사진집은 일종의 숏폼 콘텐츠다. 짧은 휴식 시간이 생기면 주저하지 않고 주변에 있는 책을 집어 든다. 사진집을 보면 잠시 동안은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 상황에 따라, 현재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따라 이미지가 다른 맥락으로 다가오는 점도 매력적이다.
소장한 사진집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것은.
신선혜의 <Somewhere>. 작가가 프랑스, 아이슬란드, 모로코 등 낯선 공간에서 채집한 94개의 순간을 담고 있는데 더 프레이즈의 시작을 알린 책이어서 더 의미가 깊다.
판매하고 있는 사진집 중 한 권을 추천한다면.
크리스토퍼 니케(Christopher Niquet)가 2022년 창간한 <스터디>를 소개하고 싶다. <스터디>는 디지털 시대에 전통적인 종이 매거진이 고려할 수 있는 흥미로운 대안이다. 그 이유는 제본 방식에 있다. <스터디>는 제본 대신 반으로 접혀 종이 케이스에 담겨 있는 독특한 형태다. 각자의 방법으로 순서를 재구성할 수도, 낱장으로 소장할 수도, 벽에 붙일 수도 있다. 개인의 SNS 피드처럼 말이다. 광고 비주얼도 신중하게 고른다. 각 이슈마다 특정 주제나 인물을 깊게 탐구하며, 계절에 구애받지 않는 화보를 싣는다. 한 시즌으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소장가치가 있다.
나만 알고 싶은 아트북 서점이 있다면?
런던 브로드웨이 마켓 초입에 위치한 돈론 북스(Donlon Books)다. 2008년 오픈한 이 서점의 오너는 볼프강 틸먼스의 스튜디오에서 오랫동안 일해온 코너 돈론(Conor Donlon)이다. 틸먼스가 오랫동안 그를 찍어 책으로 엮었을 만큼 매력적인 인물이다. 레어 북 컬렉션부터 다양한 분야의 독립 출판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북 셀렉션을 선보인다. 
 

 
PDF SEOUL
포토(Photo), 디자인(Design), 패션(Fashion). 올해 초 오픈한 PDF 서울은 이 세 가지 테마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서점이다. 포토그래퍼, 디자이너, 큐레이터로 활동하던 이승현 대표는 10년가량 모아온 아트북을 더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 싶어 PDF 서울을 열었다.
<FOTOGRAFIE> Stern<FOTOGRAFIE> Stern<100 DESIGNS FOR A MODERN WORLD> Kravis Design Center<100 DESIGNS FOR A MODERN WORLD> Kravis Design Center
좋아하는 사진가는 누구인가.
헬무트 뉴턴(Helmut Newton). 에로티시즘과 섹슈얼리티가 담긴 이미지를 예술의 반열로 끌어올린 패션 사진의 거장이다. 헬무트 뉴턴 박물관을 보기 위해 베를린에 다녀왔을 정도. 사울 레이터(Saul Leiter)도 있다. 화가로 시작했지만 사진가로 더 유명해졌다. 회화적인 무드와 구도로 바라보는 시선이굉장히 매력적이다. 사진을 공부했던 대학생 때부터 그를 좋아했는데, 그동안 취향이 많이 달라졌음에도 그의 사진은 변치 않고 마음에 든다.
사진집의 매력은 무엇인가.
사진집은 펼칠 때마다 새로운 것들이 느껴진다. 시대적 배경, 장소, 인물, 시선 등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고 많은 영감을 준다.
소장한 사진집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것은.
Fotografie 사진집 시리즈. 전 세계 유명 작가와 함께 한 권씩 사진집을 만들었는데, 총 62권까지 나온 걸로 안다. 마틴 파, 팀 워커, 아라키 노부요시 등 세계적인 포토그래퍼와 칼 라거펠트, 에디 슬리먼 같은 디자이너도 참여했다. 그중 다섯 권을 보유하고 있다. 지금은 절판되어 구하기도 힘들다.
판매하고 있는 사진집 중 한 권을 추천한다면.
어떤 프로젝트를 하느냐에 따라 취향도 바뀌는 편이다. 최근 가장 관심이 가는 분야는 가구였다. 그래서 <현대 세계를 위한 100가지 디자인(100 Designs For A Modern World)>을 들였다. 미국 오클라호마주에 있는 크라비스 디자인센터(Kravis Design Center)에서 발행한 책으로 1900년부터 현재까지 디자인사에서 의미 있는 작품을 엄선했다. 의자, 라디오, 다리미, 전자시계, 도자기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나만 알고 싶은 아트북 서점이 있다면?
뉴욕의 프린티드 매터(Printed Matter). 1976년 루시 리파드(Lucy Lippard), 솔 르위트(Sol LeWitt), 칼 안드레(Carl Andre) 같은 저명한 개념미술 분야의 대가들이 오픈한 곳이다. 그로부터 세월이 많이 흐른 현재는 여전히 전 세계의 수많은 아트북을 만나볼 수 있는 곳이자 비영리단체가 되어 독립출판사들의 인큐베이터가 되었다. 아트북이라는 매개로 예술을 공유하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은 내게 프린티드 매터는 가장 인상 깊은 서점이자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다.
 

 
OFR. SEOUL
서울의 작은 파리라고 불리는 오에프알 서울. 마레 지구에 있는 오에프알을 서울로 옮겨온 박지수 디렉터가 직접 이곳을 이끌고 있다. 열흘에 한 번씩 본점에서 독립출판물과 희귀한 예술 서적을 보내오기 때문에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보물찾기를 하는 느낌마저 든다.
<TANTE SIMONE> Dominique Nabokov<TANTE SIMONE> Dominique Nabokov<LE CAIRE> Felix Dol Maillot<LE CAIRE> Felix Dol Maillot
좋아하는 사진가는 누구인가.
인테리어와 건축물 사진으로 유명한 프랑수아 알라르(Francoise Halard). 그가 사진에 담는 디테일과 색감, 작가의 독특한 시선으로 포착한 세계 곳곳의 명소들이 무척 아름답다. 유명 인사들의 사적인 공간이나 일반인에게 출입을 허락하지 않는 유적지도 발견할 수 있다. 그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여행을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사진집의 매력은 무엇인가.
사진은 실제 존재하는 인물이나 사물, 장소를 찍지만, 그것을 사진집으로 엮는 과정에서 작가나 출판사의 관점과 철학이 개입된다. 또 편집 방식에 따라 이미 실재하는 것이 완전히 새롭게 재창조되기도 한다. 이런 특징들이 사진집을 예술 작품으로 만든다. 내가 아는 장소, 이미 가본 곳조차도 사진가와 사진집의 시선에 따라 완전히 새롭게 바뀌게 되는 거다.
소장한 사진집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것은.
아파르타멘토(Apartamento)의 발행인 도미니크 나보코브(Dominique Nabokov)의 사진을 묶은 <탄테 시몬(Tante Simone)>. 이 책은 뉴욕, 파리, 베를린의 거실 문화를 담은 아파르토멘토의 프로젝트 서적 ‘리빙 룸’ 시리즈의 후속작이다. 탄테 시몬이 특별한 이유는 도미니크의 잘 알려지지 않은 사생활과 이야기를 엿볼 수 있는 가장 개인적인 책이기 때문이다. 어릴 적 이모와 함께 살았던 도미니크는 그녀의 임종 이후 유년 시절을 기록하기 위해 집을 찍는다. 꽃무늬 벽지, 등이 높은 의자, 노란 타일 등 한 사람의 취향이 빼곡히 담긴 공간을 짚어나가는데, 그 사랑스러운 추억들이 사진 너머로도 느껴진다.
판매하고 있는 사진집 중 한 권을 추천한다면.
끊임없이 유동적으로 변화하는 두 도시가 우연히 맞닿는 순간을 포착하고 그 속에 살아 숨 쉬는 이야기를 공유하는 사진가 펠릭스 돌 마요(Felix Dol Maillot)의 <르 클레어(Le Caire)>다. 이 책은 이집트 카이로(Le Caire)와 프랑스 르 아브르(Le Havre) 두 도시를 담고 있다. 완전히 다른 문화권에 속하지만 어딘가 묘하게 연결되어 있는 듯한 풍경과 문화적 지점을 포착한다. 넓은 대로를 따라 수채화처럼 희미해지는 도시의 풍경을 느낄 수 있다.

Credit

  • EDITOR 이다은
  • PHOTOGRAPHER 김현동
  • ART DESIGNER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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