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DOUBLE ATTACK

1더하기 1이 3이 되는 더블 캐스크의 마법.

프로필 by 박호준 2024.01.29
 
 
위스키는 나무로 만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크통 이야기다. 숙성 단계에 들어가기 전, 스피릿 단계의 위스키는 보드카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오크통과 시간이 만나 마법을 부리면 특유의 풍미와 색깔을 갖게 된다. 숙성 창고의 환경과 오크통이 품고 있는 향미가 최종 결과물을 좌지우지한다. 과거에는 너도밤나무 등 오크가 아닌 나무를 위스키 숙성에 사용하기도 했으나 1990년대 들어서 ‘오크통에 숙성해야만 위스키라고 부를 수 있다’는 법이 적용된 후로는 모든 위스키 증류소가 오크통만 사용하고 있다.
강도와 유연성이 뛰어나고 열을 가하면 쉽게 갈라지지 않아 의도한 모양에 맞게 쉽게 구부러진다는 특징 덕에 오크가 위스키 숙성의 그릇으로 채택됐지만, 약 600종에 이르는 오크의 다양한 품종마다 특성이 천차만별이라 위스키를 만들 땐 같은 오크라도 세심하게 선택해야 한다. 숙성 중 바닐라 풍미를 더하는 ‘바닐린’이나 코코넛 풍미를 더하는 ‘락톤’ 등 세부적인 향미 물질의 함유량이 나무의 품종에 따라 달라 큰 차이를 보인다. 실제로 ‘옛 잉글랜드의 오크’라고 불리는 ‘퀘르쿠스 로부르’와 ‘퀘르쿠스 페트라에아’와 같은 유럽 품종은 미국산 화이트 오크보다 약 10배 더 많은 타닌을 함유하고 있다. 여러 증류소가 더 나은 맛을 얻어내기 위해 양질의 오크통 확보에 전력을 다하는 이유다.
품종 외에도 오크통의 크기, 사용 횟수 등 자세하게 파고들면 끝도 없는 게 위스키 숙성이지만, 아벨라워를 마주했을 때 기억해야 하는 것은 명확하다. 바로 ‘더블 캐스크’다. 아벨라워는 아메리칸 버번 캐스크와 스페인 셰리 캐스크에 각각 12년간 숙성한 후 다시 한 곳에 모아 만들어낸다. 이는 하나의 캐스크에서 숙성시킨 후 병입 전 잠시 다른 캐스크에 넣는 ‘피니싱’과는 맛의 깊이에서 차원이 다르다.
아벨라워는 셰리 캐스크 중에서도 ‘올로로소 셰리 캐스크’를 사용한다. 올로로소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만들어지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주정 강화 와인의 한 종류로 스페인산 오크로 만든 캐스크에 발효된 와인을 넣고 주정을 강화해 1~4년, 길게는 10년까지 숙성한다. 이렇게 올로로소 셰리 숙성에 사용한 캐스크는 뉴오크에 비해 중화된 향미 물질들과 너티한 올로로소 와인의 풍미를 머금고 있는데, 이 올로로소 캐스크를 선별해 스코틀랜드로 공수해 아벨라워의 숙성에 사용한다. 이는 숙성에 쓰일 오크통을 스페인에서 직접 선별하는 데 아벨라워의 마스터 디스틸러가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더블 캐스크 방식이 적용된 아벨라워 위스키는 12, 14, 16년 숙성이다. 셰리 캐스크에서 느낄 수 있는 풍부한 과실 향과 버번 캐스크에서 느낄 수 있는 달콤함이 동시에 느껴진다는 것이 장점. 어쩌면 이러한 복합적인 풍미 덕에 미식 기준이 높은 프랑스에서 아벨라워가 싱글 몰트 위스키 판매량 1위를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반면 아벨라워 18년은 더블 캐스크 대신 더블 셰리 피니시 방식을 사용한다. 올로로소 셰리 캐스크와 페드로 히메네스 셰리 캐스크를 이용해 셰리 특유의 풍미를 극대화한다. 독특한 맛을 추구하는 위스키 애호가라면 ‘아벨라워 아부나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게일어로 오리지널을 뜻하는 아부나흐는 셰리의 풍미가 가장 잘 묻어나는 ‘퍼스트 필’ 올로로소 셰리 캐스크를 사용한다. 또한 알코올 도수 조절을 위해 물을 섞는 다른 제품과 달리 오크통에서 꺼낸 상태 그대로 가수(물을 섞어 도수를 낮추는 과정)를 하지 않고 병입하는 ‘캐스크 스트렝스’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이에 따라 그 도수는 약 60도에 달하고 배치(batch)에 따라 맛이 다른 것이 특징이다. 아벨라워 아부나흐는 처음 입안에 들어왔을 땐 스파이시한 맛이 강하지만, 잠시 입안에 머금고 음미하면 금세 단맛이 올라온다. 셰리 캐스크를 선호하는 사람에겐 가히 축복과도 같은 제품이다.
 
 
서로 다른 오크통에서 만들어진 2개의 위스키를 잘 섞기 위해 아벨라워는 병입 전 ‘매링 툰(Marrying Tun)’이라는 거대한 숙성통에서 ‘매링’ 과정을 거친다. 매링은 2개의 위스키와 물을 거대한 스테인리스 통에 넣어 2~3개월간 서서히 섞는 과정으로, 양쪽의 풍미가 잘 어울리도록 하는 것뿐만 아니라 물과 위스키가 만났을 때 서로 다른 농도 때문에 층이 생겨 맛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을 막는다. 참고로 위스키 배치 넘버에 따라 매링에 걸리는 시간 역시 조금씩 달라진다. 이는 배치마다 미세하게 맛이 다르기 때문이다.
더블 캐스크와 더불어 아벨라워의 아이덴티티를 잘 보여주는 요소는 하나 더 있다. 아벨라워의 슬로건이자 케이스 상단에 적혀 있는 ‘Let the DEED show’라는 문구다. 의역하면 ‘말보다 행동으로 실천하라’는 뜻이다. 1879년 아벨라워 증류소를 만든 창립자 제임스 플레밍은 증류소가 있는 아벨라워 마을에 마을회관, 병원 등을 지어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했다. 그는 증류소를 끼고 흐르는 스페이강의 빠른 물살에 휩쓸려 목숨을 잃은 마을 소년의 소식을 접한 후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해 다리를 세우기까지 했는데 일명 ‘페니 브리지’라고 불리는 다리가 그것이다. 또한 증류소 반경 15마일(약 24km) 이내에서 생산된 최상급 보리만을 이용해 위스키를 만들도록 한 방침 역시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으며, 주조에 쓰이는 물도 증류소 근처의 ‘버켄부시 샘’을 고집한다.
아벨라워 증류소는 1898년 발생한 화재로 전소되었다가 ‘찰스 도이그’라는 건축가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졌다. 당시 증류소는 화재에 휘말리는 경우가 잦았는데, 숙성 창고의 공기 중에 다량의 알코올이 퍼져 있어 작은 불꽃에도 쉽게 불이 옮겨붙는 탓이다. 지금도 증류소 투어에 참여했을 때 가이드가 대기 알코올 측정기를 들고 다니며 사진 촬영을 할 때 플래시를 터뜨리지 못하게 한다. 증류소를 다시 건축한 찰스 도이그는 ‘파고다 루프’라는 증류소 지붕 디자인을 처음 고안한 인물이다. 몰팅 과정에서 환기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파고다 루프는 아벨라워 외 다른 스코틀랜드 증류소에서도 종종 확인할 수 있다.  
2018년 아벨라워가 국내에 처음 출시될 때 강조했던 포인트는 ‘프레스티지 부티크 몰트’였다. 표준화되고 대형화된 다른 싱글 몰트 제품과 차별화해 규모는 작지만 독특하고 퀄리티가 돋보이는 제품을 만들어내는 브랜드라는 의미다. 올로로소 셰리 캐스크와 아메리칸 버번 캐스크를 이용한 더블 캐스크, 위스키 본연의 맛을 그대로 전달하는 데에 적합한 캐스크 스트렝스, 증류소 주변의 보리와 물만 고집하는 신념이 어우러진 결과다.
 
올로로소 셰리 캐스크와 아메리칸 버번 캐스크를 이용한 더블 캐스크가 아벨라워의 특장점이다.

올로로소 셰리 캐스크와 아메리칸 버번 캐스크를 이용한 더블 캐스크가 아벨라워의 특장점이다.

Credit

  • EDITOR 박호준
  • PHOTO ABERL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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