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체코의 와이너리 '그루다우'는 사시까이아를 꿈꾼다

체코의 ‘와인 복합 시설’ 그루다우 와이너리의 대표 예넥 홀트와 소믈리에 마리안 네멕을 만났다.

프로필 by 박세회 2024.05.01
그루다우 와이너리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모습.

그루다우 와이너리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모습.

지난 4월 체코 그루다우 와이너리의 대표 예넥 홀트와, 와이너리 소유 레스토랑의 소믈리에인 마리안 네맥을 도산대로의 와인숍 탭샵바에서 만났다. 우리는 한국 출시를 앞두고 있는 그루다우 와이너리의 리슬링 2종(베스니스 쿠르드조프 2022, 스타라 호라 2022)과 그뤼너 벨트리너 1종(비노흐라드키 2022)을 시음하면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나 나의 눈에 먼저 띈 것은 이들이 시음을 위해 체코에서부터 들고 왔다는 글래스였다.
이 글래스(‘크베트나, KVĚTNÁ’라 적혀 있다)는 뭐죠? 얇고 우아하네요. 특히 스템이 정말 얇고 스템과 바닥이 붙는 이음새가 훌륭해요.
예넥 홀트(이하 ‘홀트’) 오! 이 글래스가 다르다는 걸 알아보는군요. 좋은 와인은 좋은 잔에 마셔야 합니다. 이 글래스는 세계 유수의 글래스 브랜드를 주문 생산하는 체코의 유리 공장에서 자체적으로 낸 브랜드의 제품이에요. 예를 들면 오스트리아의 브랜드인 잘토 등은 실제로는 제품을 만들지 않습니다. 잘토는 이 글래스를 만드는 공장 등에 주문생산방식으로 오더를 내고 거기에 브랜드를 붙여서 팔지요. 이번에 한국에 와인을 수출하면서 글래스도 함께 선보이고 싶어서 가져왔어요. 한국에 온 이후에 여러 사람들에게 보여줬는데 관심이 대단합니다.
이런 얇은 글래스를 좋아하는 애호가로서 반드시 수입되면 좋겠네요. 그루다우 와이너리와 빈야드의 입지적 특징에 대해서 얘기해주세요.
홀트 저희 와이너리는 쿠르드조프 마을에 있는 야니케 언덕의 포도밭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어요. 경사진 곳이라 다른 곳들과는 다른 미세기후(micoroclimate)을 가지고 있지요. 더울 때도 너무 덥지 않고, 추울 때도 너무 춥지 않은 그런 기후에요. 라임스톤, 샌드스톤, 자갈로 이루어진 토양 위를 진흙이 덮고 있고 미네랄이 풍부한 떼루아를 가지고 있어요.
미리안 네맥(이하 ‘네맥’)이 지역에서 포도를 재배한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습니다. 쿠르드조프 마을 인근은 1720년대에는 독일어를 사용하던 지역이었지만, 이후에는 슬라브어의 영향을 받기도 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은 지역이었습니다. 저희 와이너리의 이름인 ‘그루다우’와 마을의 이름인 ‘쿠르드조프’는 슬라브 어족의 뉘앙스를 품고 있지만 사는 사람들은 독일 혈통이 많았어요. 18세기에는 300헥타아르에 달하는 면적에서 포도를 재배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19세기에는 필록세라 병의 유행으로 포도 나무가 전부 죽고, 2차 세계대전으로 독일계 거주민들이 모두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서 포도 재배가 중단됐지요. 2011년에 와이너리를 만든 그루다우가 2013년 이곳에 포도를 심으며 이 긴 역사에 새 숨결을 불어넣었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와이너리 본관 아래에 있는 숙소의 모습.

와이너리 본관 아래에 있는 숙소의 모습.

사진으로 보기에는 포도밭이 넓어보이지 않는군요.
홀트 맞아요. 2013년에 우리는 7헥타아르의 밭에만 포도나무를 심으며 시작했어요. 그게 2022년에 10헥타아르로 넓어졌고, 지금은 13~4헥타아르 정도 되지요.
그런데 한국에까지 판매할 수 있는 와인이 생산 가능한가요?
홀트 한국에 있는 와인 소매상에 이 와인을 납품할 생각이 아녜요. 레이블을 보지 않고 이 와인이 가진 가치를 알아주는 아주 소수를 위해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을 위주로 얼로케이션(수량이 모자라는 와인을 업장에 배당해 판매하는 방식)할 예정입니다.
한국에 수출하는 품종은 리슬링과 그뤼너 벨트리너입니다. 둘 다 알자스나 모젤 등 유명 산지가 이미 정해져 있고 가격대가 그리 높지 않은 시장입니다. 어떤 차이점을 부각할 예정인지요.
네멕 리슬링을 예로 들면 모젤이나 알자스의 클래시컬한 와인의 전형들과 조금 다른 터치를 가미하기 위해 노력 중이에요. 예를 들면 리슬링의 경우 최상급의 클론들 6가지 정도를 구획 나눠 재배하고 이 구획의 포도에서 착즙한 것들을 섞어 저희만의 와인을 만들지요. 지금 마셔보시죠.
(우리는 그루나우의 엔트리 레벨 리슬링인 ‘베스니스 쿠르드조프 2022’와 ‘스타라 호라 2022’를 테이스팅 했다.) 그렇군요. 그루다우만의 터치가 있어요. 리슬링의 청량감은 물론 청귤의 껍질, 유자의 씨가 연상되는 쓴맛이 무척 매력적이에요. 청량감을 그대로 살렸으면서 복합도도 뛰어나요.
네맥 저희의 양조 철학은 매우 단순해요. 지금 저희가 생산하는 와인을 전부 합쳐봤자, 1년에 1만 6000병 밖에 되지 않아요. 적은 양의 와인을 생산하는만큼 와인을 만드는 디테일에 무척 집착하는 편입니다. 떼루아를 가꾸는 일, 클론을 선택하는 일, 와인을 담을 병을 고르는 일 등등이죠. 예를 들면 포도를 키울 때도 봉오리 단계에서 세심하게 잘 자랄 봉오리를 남기도 나머지를 잘라내지요. 발효과정에서도 마찬가지에요. 스타라 호라의 경우 젖산 발효(젖산발효가 일어면 산미가 떨어지고 와인이 좀 더 부드러워진다. 젖산 발효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와인 메이커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결정이다)를 한 것과 젖산 발효를 하지 않은 베이스 와인들을 블렌딩 해서 그 포도가 가지고 있는 포텐셜을 전부 끌어내도록 합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저희의 양조 철학은 미니멀리즘이에요. 와이너리에서 하는 일의 90%는 그저 날씨에 따라 포도가 잘 자라기를 바라며 지켜보는 것이죠.
그루다우 와이너리의 전경.

그루다우 와이너리의 전경.

방금 맛본 와인의 밀키한 느낌이 젖산발효를 한 베이스 와인에서 온 거겠군요. 오키한 느낌은 아닌데, 뭔가 아주 프레시한 리슬링과는 좀 다르다고 느꼈거든요.
네맥 젖산발효 역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과정이죠. 젖산 발효를 일어나게 할지 말지는 온도 조절 등으로 컨트롤해요. 현대적인 테크놀러지를 쓰기는 하지만 제가 발효의 과정에서 컨트롤 하는 것은 온도일 뿐이죠. 현재 3년이 걸리는 오가닉 인증 과정을 거치고 있어요. 올해로 2년이 지났으니 곧 받을 수 있을 거예요. 또 다른 자격증이라면 저희 빈야드를 날아다니는 벌들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아마 잘 아실 거예요. 벌들은 공기 중이나 꽃에 묻은 화학원료에 매우 민감해서 만약 당신의 포도밭에 벌이 날아다니고 있다면 그건 당신이 포도를 유기적으로 제대로 키우고 있다는 증거지요. 그게 제 자격증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와이너리에는 양조장 뿐 아니라 다른 시설들도 있다고 들었어요.
홀트 (사진에 있는 벙커처럼 생긴 부분을 가리키며) 총합 서른 명 가까이 묵을 수 있는 두 개의 숙박시설과 미쉐린 스타 셰프인 조지프 수쿱이 이끄는 레스토랑이 있습니다.
지난 주에 이탈리아의 루가나 지역에 있는 와이너리에 다녀왔는데, 와이너리에서 호텔을 운영하는 곳들이 있더군요. 비슷한 콘셉트인가요?
네맥 저희 숙박시설은 호텔은 아니지만, 고급 숙소에서 숙박을 하며 와이너리를 둘러보고 미쉐린 스타 셰프의 음식을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좀 새로운 콘셉트이긴 합니다. 그런 곳들은 호텔과 와이너리가 보통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예약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홀트 아직은 인터넷 예약 시스템은 만들지 않았어요. 아까 명함에 있는 제 전화번호로 전화하세요. 저희는 아직 이런 프라이빗하고 개인적인 방식을 선호합니다.
그루다우 와이너리의 소믈리에 마리안 네맥.

그루다우 와이너리의 소믈리에 마리안 네맥.

마지막 질문입니다. 이 리슬링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한들 사람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브랜드의 힘을 뛰어넘으려면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릴텐데요. 같은 가격대면 보통은 익숙하고 품질이 보장된 브랜드를 주문하는 경향도 있고요.
홀트 오래 전의 사시까이아를 생각해보세요. 테이블 와인부터 시작했잖아요.(수퍼 투스칸인 사시까이아는 출시 당시 이탈리아 품종이 아니라는 이유로 테이블 와인 등급을 받은 바 있다) 저희도 그렇게 되지 말란 법은 없지요.

Credit

  • 그루다우 와이너리 제공

MOST LIKED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