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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욱의 영재원 마스터 클래스를 엿보다

까르띠에가 까르띠에 메종 청담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 부설 한국예술영재교육원의 학생들을 불러모으고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김선욱을 초대해 마스터클래스를 열었다. 그의 마스터클래스 레슨 현장을 엿보고나자 묻고 싶은 게 많아졌다.

프로필 by 박세회 2024.07.17
오늘 수업 참관하면서 정말 두근거렸어요. 마치 영화 같았달까요?
제가 가르친다는 게 뭔지 잘 몰라서, 또 이렇게 가르쳐볼 기회가 자주 있는 것도 아니라서 저 역시 재밌었어요. 저와 비슷한 시기에 수학한 친구들 중에는 이제 슬슬 음대 교수님들이 나오고 있거든요. 그런데 저는 계속 현장에서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였고 지휘자였으니 이런 마스터클래스는 아주 드문 경우죠.
받아본 적은 있죠?
그럼요. 아주 많지는 않지만 여러 거장들에게 꽤 받아봤죠.
오늘 학생들을 가르치며 뭘 전달하려 했는지가 궁금해요.
예전에 세계 무대에서 한국 연주자들을 평할 때 “한국인들은 기술은 뛰어난데 ‘사고’가 부족하다”는 말을 가장 많이 했어요. 아주 쉽게 얘기하면 손가락은 잘 돌아가는데 음악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거였죠. 어쨌든 클래식이라는 음악의 모태가 유럽이니까 아마 어느 정도 맞는 얘기였을 수 있어요. 물론 요즘은 그런 코멘트가 정말 많이 줄긴 했어요. 조금 다른 얘기로, 그때와는 달리 정보산업의 발달로 유튜브나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검색만 하면 거장들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죠.
그렇죠. 예전을 생각하면 접근성 자체는 무한대로 확장되었다고 봐도 좋지요.
비슷한 말이지만, 활용할 수 있는 정보의 리소스 역시 무한대로 확장된 거죠. 유튜브로 검색만 하면 거장들이 어떤 곡을 칠 때 어떤 노트를 어떤 손가락으로 치는지 핑거링과 핑거 넘버를 다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지금은 발전 속도가 정말 빨라요. 기라성 같은 연주자들의 손놀림을 너무 쉽게 익힐 수 있는 거죠. 그런데 문제는 왜 그런 손가락 번호로 연주하는지는 배울 수가 없어요. 예전에는 내 것을 찾아가는 시간이 필수였어요. 비록 그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해도요. 그래서 이런 기회를 통해 피아노를 잘 다루는 것보다 어떤 생각으로 이 곡에 접근하게 되었는지를 먼저 아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오늘은 그걸 모두 알려주기엔 시간이 조금 짧았죠.
한 학생당 원래 45분이었는데, 쉬는 시간을 줄여가며 1시간씩 계속 봐주느라 시간이 꽤 딜레이되었죠. 제가 여태까지 겪으면서 느낀 시행착오들을 제 다음 세대들은 좀 적게 겪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어요.
아까 베토벤을 연주한 학생에게 “우나 코르다를 너무 자주 써 버릇하면 5개의 음색을 낼 수 있는 가능성이 3개로 줄어든다”고 한 말이 기억에 남았어요.
‘우나 코르다’는 제일 왼쪽 페달을 말해요. 피아노의 중음들은 한 음당 3개의 현이 있고, 이 3개의 현을 해머가 때려 소리를 내죠. 그런데 이 페달을 밟으면 해머 전체가 줄을 두 개밖에 칠 수 없는 위치로 살짝 움직여요. 결과적으로 풀 볼륨 대비 70% 정도의 소리가 나는 역할을 하죠. 이걸 밟고 치면 훨씬 작은 소리를 잘 낼 수 있어요. 이걸 안 밟고도 손가락 힘 조절만으로 그 작은 소리를 낼 줄 알면 더 많은 음색을 갖게 될 수 있다는 얘기죠. 해머가 3개의 현을 때리는 소리와 2개의 현을 때리는 소리는 볼륨뿐 아니라 그 톤도 다르거든요. 이 페달을 밟으며 작은 소리를 해결하는 건 너무 쉬운 방식이기도 하고, 정말 이 페달을 밟아서 특별한 소리를 내야 할 때만 사용하라는 뜻이기도 했지요. 쉽게 얘기하면 ‘치트키’를 쓰지 말라는 거였어요.
또 다른 장면으로는 모차르트 곡을 친 학생으로 기억하는데, 그 학생이 연속되는 음들을 점차 크게 쳤더니, 선욱 씨가 “악보에는 크레센도가 없다”며 “음량은 일정하게 치면서도 마치 음들이 꿈틀거리는 것처럼 상승하는 분위기를 강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죠.
그게…마음이 정말 중요해요. 생각해보면 할수록 피아노는 정말 유니크한 악기예요. 어떻게 보면 피아노는 타악기죠. 꼭 손이 아니더라도 건반을 치기만 하면 소리가 나요. 어떻게 쳐도 소리가 나는데, 그 소리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 중요해요.
이날 김선욱은 까르띠에 메종 청담 4층과 5층 두개 층을 연결한 ‘라 레지당스’에서 한국예술영재교육원의 학생들과 마스터 클래스를 가졌다.

이날 김선욱은 까르띠에 메종 청담 4층과 5층 두개 층을 연결한 ‘라 레지당스’에서 한국예술영재교육원의 학생들과 마스터 클래스를 가졌다.

지난번 까르띠에와 함께 낸 <Ludwig van Beethoven: The Last Three Sonatas> 앨범으로 만났을 때도 우리가 좀 비슷한 얘기를 했었죠. 가끔 마치 현악 주자가 비브라토를 하듯 긴 음을 낼 때 건반 위에서 손가락을 떠는 피아니스트들이 있는데, 사실 피아노의 작동 원리를 생각하면 그건 좀 이상한 행동이죠. 이미 해머는 건반을 쳤으니까요.
비슷한 질문이 제 윗세대부터 있었어요. 과연 피아노로 크레센도를 할 수 있는가? 생각해보면 크레센도는 ‘점점 크게’라는 뜻이니까 시간의 경과에 따라 모든 음이 점차 커져야 하는데, 피아노는 처음 타건을 했을 때 그 박자에서 가장 큰 소리가 났다가 그다음 음이 나오기 전까지는 작아질 수밖에 없거든요. 만약 6개의 노트를 크레센도로 한다면 바이올린으로는 직선으로 이어지는 볼륨의 증가가 가능하겠지만, 피아노로는 6개의 음표가 계단형으로 커지는 방법밖엔 없어요. 그러니 과학적으로 피아노로 크레센도를 내기란 불가능한 거죠. 그래서 제가 크레센도를 칠 때는 이론상의 크레센도라는 효과를 만들기 위해 음표들을 치면서 영혼과 정신으로 엄청나게 크레센도를 외쳐요. 크레센도 크레센도 크레센도! 이렇게요. 그렇게 하면 관객에게 그게 전달되고 들려요. 연주자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상상을 하느냐에 따라 소리가 그렇게 들려요. 아까 그 학생에게 한 얘기도 마찬가지죠. 같은 음량의 음표를 치면서 상승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그런데 어떻게 까르띠에 메종 청담에서 마스터클래스를 하게 되었어요?
지난번에 까르띠에와 베토벤 후기 소나타 앨범과 그 영상을 발표한 뒤에 또 뭔가를 해보자는 얘기가 나왔어요. 그런데 그냥 까르띠에 주체로 음악회를 만드는 건 식상할 것 같더라고요. 이미 제가 경기 필하모닉 지휘도 맡고 있고, 피아노 연주도 계속하고 있으니까요. 지금까지 한 번도 안 해본 걸 해보려다 보니 한국예술영재교육원 학생들을 가르치는 마스터클래스라는 아이디어가 떠오른 거죠. 마침 얼마 전에 리노베이션을 마친 최적의 공간이 있기도 했고요. 까르띠에는 ‘레조낭스’라는 이름으로 예술가들을 후원하고 고객들과의 접점을 만들어오고 있는데, 그 일환이라고 볼 수 있죠.
한국 연주자들이 세계로 진출한 지는 꽤 됐지만, 한국에서 교육받은 연주자들이 세계 무대에서 활동한 걸로 따지면 김선욱, 손열음 등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들이 그 1세대죠. 전자가 한국 연주자의 우수성을 입증했다면 후자의 세대에 와서야 한국 음악 교육의 우수성이 증명된 거라고도 볼 수 있고요.
약 18년 전 저와 손열음 씨가 주목받은 게 처음이었죠. 그 이후로는 워낙 잘하는 친구들이 많이 나왔지만요. 지금이야 한국예술영재교육원과 같은 교육기관이 몇 개가 있지만, 그때는 거의 유일했어요. 전 영재원 출신은 아니지만 영재원 덕에 저희 세대에 잘하는 연주자들이 여럿 나왔다고 생각해요. 영재 육성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거죠. 제가 이런 기회로 어떤 식으로든 조금이라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되게 행복해요. 영재 교육이 중요한 이유는 원석을 발견해야 하기 때문이에요. 예전에 제가 대학생일 때 아직 중학생이던 조성진 씨를 레슨한 적이 있어요. 중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조성진 씨를 보면서 ‘이 친구에겐 빛이 있다’고 느꼈어요. 윤찬이를 처음 봤을 때도 그랬죠. 듣는 순간 진짜 원석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참 신기한 게 그런 친구들은 뭔가를 남들과 조금 다르게, 배운 것과도 다르게 하고 있는데 자기가 왜 그렇게 하고 있는지를 몰라요. 이유를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그냥 그게 좋아서 그렇게 하고 있는 거예요. 전 그게 재능 같아요.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설명할 수 없는 순수한 재능.
본인도 원석이셨으니까 재능에 대한 그런 멋진 해석이 가능하군요.
아유, 그런 건 아니고요. 보면 정말 그래요.

Credit

  • PHOTOGRAPHER 김성룡
  • ASSISTANT 신동주
  • ART DESIGNER 박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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